묵향 5권 2화 – 여행의 시작
여행의 시작
다크는 토미 블레어라는 사냥꾼 집에서 장장 2년이라는 세월을 소모했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말을 배우는 것이었고, 또 길 가다가 미친놈 취급 안 당하려면 이들의 관습이나 생활 습관 따위도 어느 정도 알아야만 했다.
블레어 씨가 일주일에 한 번씩 알란 마을에 사냥을 통해 얻은 가죽과 말리거나 소금에 절인 고기, 버섯, 약초 따위를 팔려고 갈 때 그와 동행하면서 이들의 생활상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었다. 아울러 자신이 사냥한 것들의 가죽이나 이빨, 뿔 등 돈 되는 것들을 함께 팔아 약간씩 돈도 모았다.
여기서는 돈의 최하 단위가 타라. 1백 타라가 모여 1실버라는 10그램 무게의 은화가 된다. 그리고 50실버가 모여 10그램의 무게를 가진 1골드라는 금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너무 많은 동전을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되도록 10타라, 25타라, 50타라짜리 동전이 있었고, 5실버, 10실버, 25실버짜 리 은화도 있었다. 그리고 5, 10, 25골드짜리 금화도……………
다크가 최초로 구입한 것은 옷이었다. 토미 블레어 씨의 낡은 옷은 좀 컸기에 먼저 자신의 체구에 맞는 옷이 필요했던 것이다. 물론 돈이 그렇게 많 지 않아 보통 사람들이 그냥 평범하게 입는 바지와 셔츠, 속옷 등을 구입했다. 그리고 망토도 구입했다. 망토야 중원에서도 권문세가의 자제들 중 멋 내기 좋아하는 녀석들이 입는 것을 보긴 했지만, 여기서는 좀 더 실용적으로 사용되었다. 망토는 아주 두터웠고, 여행자들의 경우 이걸 담요 대용으 로 썼다.
다크는 블레어 가족이 사는 부근에서 언제나 노숙을 하고 있었기에 여러모로 편리할 것 같아서 망토를 하나 구입한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구입 한 것은 이 세상에 대한 정보였다. 즉, 잡화점에서 35실버 16타라나 되는 돈을 주고 지도와 여행자를 위한 안내 책자를 구입했던 것이다.
다크는 그때서야 지금 자신이 사는 곳에서 아무리 동서남북 어느 쪽으로 죽자고 달려도 중원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다. 혹시나 했었는데 그 최후의 가능성마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다크는 포기하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려고 고심했다. 하지만 조 그만 마을에서 얻을 수 있는 지식으로는 자신의 궁금증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 길드란 것들이 존재한다는 좀 더 큰 마을로 떠날 결심을 굳 혔다.
2년간 함께 생활하며 정이 들었던 블레어 가족을 떠난 다크는 지도 상의 좀 더 큰 마을로 향했다. 그의 첫 목적지는 이 지방 영주, 누구더라 하여튼 복잡한 이름을 가진 녀석이었는데…………. 그자의 성(城)이 있는 곳이었다. 주머니 안에는 12골드 8실버 62타라나 되는 돈이 들어 있었고, 뭐 이거라도 다 떨어지면 적절히 해결(?)하면 되니까 처음부터 돈 걱정 따위는 안 했다.
다크가 길을 가면서 느낀 것은 대단히 짐승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몬스터라는 것들도 그렇고 늑대나 여우, 토끼나 사슴 등 수많은 동 물들이 버글거렸다. 덕분에 며칠에 한 번씩 맛깔스런 개고기를늑대도 개니까먹을 수 있었지만…………….
그날 저녁도 개고기를, 아니지 늑대 구이를 먹고 있었다. 블레어 가족과 살면서 늑대의 발이나 송곳니 같은 것은 꽤 돈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도대체 왜 이런 걸 장신구로 쓰는 미친놈이 있는지 모르겠지만—필요한 부분은 잘라 내거나 뽑아내고 구웠다. 그리고 잘 익은 뒷다리부터 뜯어 먹 고 있는데 늑대 떼가 나타났다.
그날은 달이 하나밖에 안 떴지만 보름달이었기에 제법 주위가 환했다. 그런데 늑대들 사이에 괴상하게 생긴 늑대가 한 마리 있었다. 그걸 늑대에 포 함시켜야 될지 감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머리는 늑대같이 생기고, 몸통과 사지(四肢)는 수북한 털로 뒤덮인 녀석이었는데, 얼핏 봐도 8척(약 2.4미터) 은 되어 보이는 장신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크는 늑대 뒷다리를 우물거리며 중얼거렸다.
“저건 도대체 또 뭐야. 하여튼 여기에는 별별 것이 다 있군.”
놈이 천천히 접근해 오는 것을 보면서도 다크는 빙그레 미소만 지으며 늑대 다리를 쥐고 뜯을 뿐, 다른 행동은 하지도 않고 있었다. 하는 짓이 같잖 았으니까…………. 하지만 상대는 순식간에 다크를 덮쳐 왔다. 이 정도로 빠르리라고 다크가 미처 예상을 못 했기에 잠시 동안의 주도권을 쥔 그 녀석은 열심히 공격을 해댔다. 정말이지 놀라운 속도에, 놀라운 힘이 느껴졌다.
이때 순간적으로 빛이 번쩍인다 싶더니 다크의 손에서는 퍼런 강기가 날아가 상대의 몸에 깊은 상처를 냈다. 하지만 그놈의 살은 순식간에 아물어 버렸고 계속적으로 놀라운 공격을 퍼부어 댔다.
“제기랄, 정말 여기는 재생력 좋은 놈들이 많군. 그럼 이거나 먹어랏!”
다크는 순간적으로 왼손에 들고 있던 늑대 다리를 옆으로 던져 버리고 장풍(風)을 쏘았다. 물론 넓게 확대시킨 것이 아니라 좁은 공간으로 한정시 킨 장풍이었기에 그 위력은 더욱 강했다.
늑대 같기도, 인간 같기도 한 놈의 몸에 적중되자 녀석의 몸통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며 뒤로 튕겨졌다. 하지만 그 녀석은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섰다. 물론 가슴에 커다란 구멍을 가진 채로 말이다.
정말이지 놀라운 생명력이었다. 그 녀석은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일어나자마자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치기 시작했다. 도저히 자신이 상대가 안 될 정 도로 강자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었다.
“멍청한 녀석! 그렇게 도망갈 거면 처음부터 뭐 하러 덤벼. 괜히 아까운 다리만 한 짝 버렸잖아.”
저런 괴물이 대도시 부근에도 나타난다는 것은 치안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말이다. 영주라는 녀석이 산다는 불케인 마을까지는 이제 하루거리밖 에 안 남았는데, 그런 대도시 주변까지 저런 놈이 나타나다니…………. 아마도 이곳은 상당히 치안이 엉망이든지 아니면 인구가 적은지도 몰랐다.
다크는 중원에 있을 때도 그랬지만 정말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경공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사실 급할 것도 없는데 죽자고 경공술을 전개할 필요를 못 느끼기 때문이다. 오늘 도착하지 못하면 내일 도착하면 되는 것이고………….
그것이 다 그놈의 탈마에 이르러 5백 년에 이르는 생명을 보장받고 난 다음에 생긴 습성이 아닌가 싶다.
다음 날 아침에도 어제 먹다 남은 늑대 고기를 소금에 찍어 먹는 것으로 식사를 해결한 다음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말이 천천히지 보통 사람들이 빨 리 걷는 것과 거의 비슷한 속도였다.
“흐읍…….”
상쾌한 아침 공기였다. 이곳에 온 다음에 느낀 것인데, 여기는 대자연의 기가 대단히 풍부한 곳이었다. 정말이지 이상할 정도로 강력했다. 다크 자신 이 탈마에 이르러 있어 소모한 기가 빠른 시간 내에 보충된다고 하지만, 여기서는 웬만한 무공을 사용해 가지고는 거의 무공을 사용했는지도 못 느낄 정도로 기가 빠르게 보충되었던 것이다.
‘이런 곳이라면 아마도 무공을 익히기가 더욱 쉽겠지. 내공을 쌓는 게 그만큼 빠를 테니까……………. 그렇다면 이곳의 고수들은 어떤 무공을 사용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걷는 사이 어느덧 제법 넓은 하천이 나타났고, 그 위에는 마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다리가 놓여 있었다. 그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앞쪽에 웬 여자가 다리 옆에 서 있던 나무 뒤에서 나오며 말을 걸었다. 황금색 머리카락에 푸른 눈의 제법 아름다운 얼굴이었지만, 생 긴 것과는 달리 2척(약 60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날카로워 보이는 검을 뽑아 들고 서 있었다.
“이봐, 지금 어디 가는 거야?”
“불케인시(市)에………….”
“이 다리를 건너려면 통행료가 있다는 거 몰라?”
“얼마냐?”
“10실버…….”
“10실버라고? 엄청나게 비싸군. 못 주겠다면?”
그 아가씨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헤엄쳐서 건너야지.”
“하하하…, 이거 재미있는 소저(少姐)로군. 헤엄쳐야 한다 이거지?”
그와 동시에 다크의 몸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금발의 아가씨는 놀라서 찌르려고 했지만 다크의 속도는 그녀가 생각하는 인간의 속도와는 차원 을 달리하고 있었다. 다크는 재빨리 검을 잡은 상대의 손을 왼손으로 잡고, 그녀의 목을 오른손으로 거머쥔 다음 위로 들어 올렸다. 목을 잡힌 상태에 서 위로 대롱거리기 시작한 여강도(强盜)는 경악에 찬 비명을 질렀지만 다크는 못 들은 척 말을 건넸다.
“내가 솜씨를 보여 줬으니 구경값을 내야지.”
“저, 돈 없어요. 오죽하면 강도질을…….”
“하하, 그건 네 사정이지. 나야 알 바 아니고. 어디 보자…….”
상대는 멱줄을 잡힌 상태라 반항할 엄두도 못 내고 있으니 몸수색은 아주 간단하게 이뤄졌다. 허리에 있는 돈주머니를 꺼내 보니 얼마 정도의 잔돈 이 들어 있었다. 그걸 대강 들여다본 다크가 즐겁다는 듯 말했다.
“히야, 이거 15실버는 되겠군. 감히 돈이 없다고 거짓말을 하다니……
다크는 그걸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은 다음 그녀가 가지고 있던 2척 길이 검과 그녀의 품속에서 꺼낸 작은 단검 두 자루도 빼앗았다.
“제법 돈이 되겠군. 하지만 이거 가지고는 모자라.”
“뭐가요?”
“구경값…………. 눈요기를 했으니 돈을 줘야 할 거 아냐? 할 수 없군. 벗어! 그거라도 팔아야지.”
다크는 여자의 망토와 외투까지 벗기고, 그녀의 손수건을 찢어 팔을 묶기 시작했다. 여자는 감히 반항은 못 했지만 그래도 입은 죽지 않았다는 듯 떠 들어 댔다.
“뭐 하는 거예요?”
“조금 지나면 알게 돼!”
그가 여강도의 몸을 번쩍 들어 올리자 그녀의 경악한 목소리.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아직도 구경값이 안 돼. 나머지는 몸으로 대신해 줘야겠다.”
“끼야약.”
“첨벙!”
다크는 다리 위에서 강으로 곧장 그 여자를 집어 던졌다. 다리는 안 묶었으니 운이 좋다면 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수영 실력이 모자라서 익사 (死)하더라도 자신의 책임은 절대 아니라는 게 다크의 생각이었다. 평소에 수영 연습을 안 한 놈, 아니 년이군. 어쨌든 그자의 죄지…………. 첨벙거리면 서 차가운 물속에서 다리를 바둥거려 가까스로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는 여강도를 바라보며 다크는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푸하하하, 꼴좋군. 이걸로 구경값은 됐어.”
“어푸, 이, 이 자식…………. 죽여 버릴 거야!”
다크는 키득거리면서, 그녀의 악에 받친 욕설을 뒤로 하고 빼앗은 것들을 챙겨 불케인시로 향했다.
“폐하!”
젊은 황제는 허둥지둥 들어오는 신하를 느긋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약간은 의아함을 띤 얼굴로 물었다.
“이 시간에 무슨 일이오?”
“아주 긴급을 요하는 정보를 획득했사옵니다.”
“뭔가요?”
“전에 구했던 드래곤 하트만으로는 연구하기에 부족했는데……… 드래곤 하트를 더 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생겼사옵니다.”
‘드래곤 하트’는 드래곤의 일곱 번째 목뼈에 솟아 있는 붉은색 뼛조각을 말하는 것이었다. 드래곤의 절대적인 힘인 용언 마법의 기준점이 되는 곳으 로, 사람의 단전과 같이 마나(Mana)가 집중되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죽은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에는 살아 있을 때에 비하면 형편없는 양이지만, 인 간으로서는 꿈속에서도 불가능할 정도의 방대한 양의 마나가 집결되어 있었다.
이 드래곤 하트는 마법의 매개물로써 엄청난 효과가 있었기에 그 가격은 상상을 불허했다. 이처럼 대단한 물건이 언급되자 황제의 얼굴에 드리워진 의아함과 궁금증은 더욱 짙어졌다.
“어떻게… 드래곤 하트는 도저히 돈으로 살 수도 없을 정도로 비싼데· 전에도 어딘가의 던전에서 루빈스키 경이 구해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또 다른 곳에서 찾아내기라도 했다는 말이오?”
“아니옵니다. 지금 코린트 제국에 있는 지혜의 여신 아데나를 모시는 드로아 대 신전에서 보유 중인 드래곤 하트를 트루비아 왕국이 잠시 빌려 간다 고 하옵니다. 그걸 가로채야만 하옵니다.”
그러자 젊은 황제의 얼굴에 근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트루비아는 별 볼일 없는 코린트의 작은 속국이었지만 코린트의 정규 기사단이라면 얘기가 달 랐다.
“흐음… 드래곤 하트라면 경비가 엄중할 텐데, 그 가치가 가치인 만큼………….”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크옵니다. 드로아 대 신전이 위치한 국가는 대 제국 코린트. 누가 감히 그걸 건드릴 생각을 하겠사옵니까? 입수한 정보로는 트루비아의 국경선까지는 코린트 제국에서 파견된 기사들이 호위한다고 하옵니다. 그중 소드 그래듀에이트(Sword Graduate)는 한 명이라고 하옵 니다. 모든 엑스시온의 제작에는 루비가 사용되지만, 청기사의 엑스시온에는 꼭 드래곤 하트가 필요하옵니다. 위험 부담이 크더라도 드래곤 하트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사옵니다.”
“흐음, 하지만 소드 그래듀에이트가 있다면 타이탄도…………. 이쪽에서도 타이탄 몇 대 동원하는 거야 문제가 없지만, 타이탄이 동원되었다면 어떤 국 가가 그걸 훔쳤다는 걸 알고 철저히 추격해 올 텐데… 안 돼. 타이탄을 동원한다면 코린트가 눈치 챌 것이오.”
황제의 걱정은 당연했다. 지금 이 시대 최강의 병기는 타이탄이었다. 엑스시온이라는 심장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강철 인형(鋼鐵人形). 타이탄의 크 기는 보통 어깨 높이 5미터에 80톤의 체중이 표준이었다. 이 거대한 강철 덩어리는 무시무시한 속도로 움직이며 모든 것을 파괴했다. 웬만한 국가들 은 거의 1백 대도 못 되는 타이탄을 가지고 있었고, 수많은 종류의 타이탄이 존재했지만 타이탄이 사용되기만 한다면 그 타이탄의 발자국 모양과, 그 타이탄이 움직이면서 형성해 놓은 검술의 형(形 : form)만 보고도 어느 나라의 타이탄인지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예, 그럴 가능성이 크옵니다. 어쨌든 코린트에는 타이탄이 4백여 대나 있으니까요. 하지만 트루비아는 다르옵니다. 코린트 측 경비대는 트루비아 와의 국경선까지만 호위한다고 하옵니다. 그다음부터는 트루비아에서 경비를 하겠지요. 정보로는 기사 한 명, 그자도 소드 그래듀에이트지만 타이탄 은 없는 자라고 들었사옵니다. 타이탄 대신 기사들 50명으로 호위한다고………….”
그러자 젊은 황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흐음… 타이탄이 없다면 해 볼 만하겠군. 대신 배후에 국가가 개입되었다는 것을 꼭 숨겨야만 해. 알겠소?”
“예.”
“백성들과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 행동을 허락하겠소. 그러니 꼭 성공해야만 하오.”
“예, 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