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6권 2화 – 달갑지 않은 방문객

달갑지 않은 방문객

“제기랄…..”

생각만 해도 분하다는 듯 팔시온이 욕설을 입에 올리자 시드미안이 미소 띤 얼굴로 위로했다.

“참게나. 장난이라고 했잖아.”

“아니, 성질 안 나게 생겼어요? 생각만 해도 열불이……. 어?”

똑똑.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여관 주인이 들어왔다.

“저, 손님이 찾아오셨는데요. 이리로 모실까요? 아니면 밑에서 만나시겠습니까?”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일까 생각하면서 시드미안이 일어섰다.

“밑에서 만나죠.”

시드미안과 팔시온, 미카엘, 안토니가 1층으로 내려가자 테이블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던 인물들 중의 한 명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시드미안 일행에게는 초면이었다. 장대한 체구의 사내 세 명과 꽤나 단련을 했는지 근육질인 여자 한 명 또 마법사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 한 명.

“무슨 일이신가요?”

“당신이 그라드 시드미안인가?”

방금 손을 흔들었던, 마법사 분위기를 풍기는 60세 정도의 인물이 다짜고짜 반말지거리로 나왔지만 일단 상대의 신분을 모르는 이상 같이 맞받아 칠 수는 없었기 에 시드미안은 공손히 대했다.

“그렇습니다만……?”

그러자 상대는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코린트 제국 궁정 마법사 길레트 지오네다. 그리고 이쪽은 내 일을 도와주기 위해 파견된 철십자 기사단의 크로돈 안티네스, 토리오 지르네인, 리나 인트레 인, 지단틴 카메오라고 하지. 황제 폐하께서는 이번에 사라진 그 물건에 대해 매우 심려하고 계신다. 그게 도난당한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난 걸로 아는데, 조사는 어 떻게 되었나?”

코린트 제국이라면 세계 최강의 대국이었고, 시드미안의 트루비아는 코린트의 변방에 위치한 작은 속국에 불과했다. 물론 근위 기사단장인 시드미안의 실력은 뛰 어났다. 여기 모여 있는 코린트의 기사들보다 월등하게 말이다. 하지만 그는 감히 상대방에게 뻣뻣하게 나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들이 거짓보고를 올려서 트루비 아를중상모략이라도 하는 날에는, 트루비아는 그날로 바로 지도 상에서 사라지게 되는 운명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이래서 약소국은 서러운 것이고…….

“조사는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도둑 떼 정도로 생각했지만 의외로 놈들의 배후 세력이 두터운 것 같은……

그러자 지오네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말을 돌리지 말고 바로 해라.”

“이번 추격 때 로메로 네 대가 갑자기 기습을 가해 오는 통에 엄청난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6사이클과 5사이클급의 마법사도 만났구요. 또 그 외에 저희들이 신 상을 파악한 그래듀에이트만 두 명입니다. 국가급의 후원이 없다면 그 정도 규모를 갖출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들의 흔적은 토리아 왕국에서 끝났고, 저희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흔적을 찾고 있지만……, 더 이상의 추격은 어렵게 되었습니다.”

“알겠다. 그대가 여태껏 트루비아 국왕에게 보고한 서류를 읽어 봤다. 놈들의 규모나 그 배후 세력을 캐는 데는 더 큰 힘이 필요함을 알고, 그대의 국왕이 황제 폐 하께 그것이 없어진 것에 대한 사죄를 하고 도움을 청했다. 그래서 우리들이 온 것이지. 나중에 찾더라도 드래곤 하트를 도난당한 것에 대한 책임은 트루비아에서 져야 할 것이다. 알겠는가?”

“예.”

“이제부터 지휘는 내가 한다. 그대는 우리들이 보고받지 못한 최근의 내용이 있다면 보고해라.”

“어디까지 보고를 받으셨는지?”

“신탁을 받고난 후 조사를 하겠다는 것까지.”

“그럼 보고드릴 것도 없군요. 신탁은 여기 있습니다. 저희들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단서가 없습니다.”

상대의 고압적인 태도에 배알이 뒤틀린 시드미안이 드래곤 하트를 찾아 별짓을 다 했다는 보고는 생략한 채, 품속에서 두 장의 그림을 꺼내 그들에게 넘겨줬다. 지 휘를 하겠다는데, 말리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안 그래도 골치 아파 죽겠는데…….

역시 상대도 그 그림을 보고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한참 동안 테이블 위에 펴 놓은 두 장의 그림을 쏘아보던 지오네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자네는 이게 뭐라고 생각하나?”

“알 수가 없으니 수소문을 한 게 아닙니까?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도저히 알 수…….”

“흐음, 이렇게 특이하게 생긴 짐승은 없어. 거기에 푸른색이라니……. 그리고 또 이 거대한 신전 같은 것은 또 뭐야? 알 수가 없군. 참, 그런데 보고받기로는 그대 가 새로이 고용한 인물들이 있다면서? 그들은 믿을 만한가?”

“현재까지는 믿을 만했습니다.”

“보고에 의하면 모험가 두 명에 용병 한 명, 겨우 3사이클급 수련 마법사 한 명, 무예 수련자 세 명이라고? 거기에 무예 수련자 둘은 아직 아카데미를 졸업한 지 2 년도 안 되는 햇병아리들… 자네 정신이 있는 건가? 이런 중차대한 일에 그따위 무리들을 이끌고 다녔다가는 목숨이 열 개라도 모자라.”

그 말을 들은 미카엘과 팔시온이 성질이 나서 한소리하려는 걸 시드미안과 안토니가 말렸다. 시드미안은 팔시온의 팔을 살짝 뒤로 밀고, 미카엘의 앞을 가로막으 며 말했다.

“아직까지는 꽤 믿음직한 동료였습니다. 일도 꽤 열심히 해 주었구요. 여기 당사자들도 두 명이나 있는데 조금 심하신…….”

하지만 지오네는 시드미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언성을 높이며 시드미안을 질책했다.

“닥쳐라. 네 녀석이 나한테 말대답을 할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느냐?”

그러자 곧장 팔시온이 미카엘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저희들이 믿음직스럽지 못하다면 이만 헤어지는 게 좋겠군요. 안 그래도 요즘 추격에 도움이 못 되어 송구스럽던 참입니다. 곧 여기서 무투회도 열리고 해서 저 희들도 이쯤에서 헤어질까 하고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팔시온은 분노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미카엘을 붙잡고 2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가소롭다는 듯 지켜보고 있던 지오네는 콧방귀 를 뀌며 이죽거렸다.

“흥! 꼴에 자존심은 있는 놈들이군. 자네들은 여기 앉게. 그리고 보고받은 신관은?”

“로니에 사제님은 밖에 나갔습니다. 구입할 것이 있다구요.”

“음, 곧 있으면 본국에서 두 명의 마법사와 한 명의 신관, 또 추가로 네 명의 기사가 타이탄을 가지고 올 거야. 폐하께서는 이 기회에 세계의 평화를 위협하는 못된 놈들을 강력히 응징하고 세계 질서를 다시금 세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예.”

“여기가 알카사스라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니야. 세계의 평화와 균형을 해치고자 하는 무리가 있다면, 이곳 알카사스를 전쟁터로 만들어서라도 응징을 해야 한다고 황제 폐하께서 말씀하셨다. 그리고 나에게 전권을 위임한다고 칙명을 내리셨지. 트루비아에서도 한 명의 기사를 더 보내오겠다고 했다. 물론 타이탄을 가지고 말이 야. 이렇게 되면 이미 정규급 타이탄만 열 대니까 도적 떼의 세력이 웬만한 국가급이라도 박살 낼 수 있겠지. 흐흐흐흐…….?”

“제기랄, 개새끼들!”

성질을 터뜨리는 미카엘을 팔시온이 위로했다.

“이봐, 참아. 저 새끼들 나름대로 찾아보라고 하면 되잖아. 사실 나는 다크가 그 모양이 된 다음부터 이번 일이 좀 찝찝했다네. 여기서 빠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 데 뭐..”

“어쨌거나 열 받잖아. 그 자식 말투하며 느글거리는 표정하며… . 제길! 다크가 예전 같기만 했으면 반쯤 죽여 달라고 부탁하는 건데…….”

“짐이나 꾸리자구. 나도 저 자식들 얼굴 보기는 싫으니까 여관을 옮기는 게 좋겠지. 참, 그러고 보니 이렇게 되면 이번 여행은 끝나는 건데.. 자네는 어디로 갈 건가?”

별로 대답을 기대하는 것 같지도 않은 팔시온의 물음에 미카엘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어디로 가기는? 자네는 모르겠지만 나는 할 일이 이미 정해져 있다구.”

거기에 약간 궁금함을 표시하는 팔시온.

“뭔데? 좋은 일이면 나도 같이 하자.”

“별로 좋은 일은 아니야. 계집애 꽁무니 따라다니는 일이니까.”

“정말? 나도 그런데……. 나는 다크하고 같이 갈 거야. 한동안은 보호가 필요하니까…….”

“이 자식이, 내가 먼저 생각한 일을?”

“하하하! 너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나?”

“아무렴. 이번 모험 때문에 신세 망친 유일한 인물이잖아. 그리고 누가 알아? 아부 잘하면 괜찮은 무술이라도 가르쳐 줄지…… 10년이면 마스터의 대열에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호언하는 인물인데 말이야. 또 아쿠아… 읍……!”

팔시온이 미카엘의 입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쉿! 그런 소리 하지 마. 잘못하면 목숨이 날아간다고……. 빨리 여기서 떠나자. 저런 녀석들하고 한지붕 아래에서 도저히 못 있겠어. 자네가 로니에 사제님한테 말해 주겠나? 지미하고 라빈에게도…….”

“그래, 그럼 자네가 여자들을 맡으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