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6권 21화 – 반격

반격

다크는 천천히 눈을 떴다. 세린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려다보고 있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정도로 다크가 처한 상황이 좋은 게 아니었다.

“주스.”

세린이 재빨리 과일 주스를 가져다주자 그걸 천천히 다 마신 후 컵을 세린에게 넘겨줬다.

또 작살나기는 했지만 최초로 공격을 해 봤다는 게 별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다크는 천천히 오른손을 들어 자세히 살펴봤다. 악몽을 꾸기 시작한 후부터는 완 전히 틀어박혀 수련만 했기에, 그녀의 피부는 햇볕을 받지 못해 완벽할 정도로 하얀색이었다. 이 하얀 손이 찢겨지며 가루가 되어 흩날리던 영상이 잠시 떠올랐지만 이런 일을 한두 번 당해 보는 게 아니니 요즘 들어서는 별 감흥도 안 났다.

하지만 남의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는 기분과 자신의 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는 기분은 완전히 달랐다. 정말 그 고통에 미치고만 싶었지만 그녀의 굵은 신경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딴 계집애들 같았으면 바로 기절해서 고통받지 않았을 텐데……. 신경이 굵다는 게 좋은 것만도 아니군. 어쨌든 무기도 없이 그런 괴물과 싸운다는 것은 자살 행 위야. 놈은 너무나 강해. 하지만 나도 강해. 놈이 무기만 안 쓴다면 이길 수 있어. 그런데 그놈이 무기를 안 쓸 리 없지. 비겁한 자식! 그러면 내가 무기를 쓰는 수밖에 없는데, 뭐로 싸우지? 자기 전에 검을 안고 자 봤지만 효과가 없고……. 아쿠아 룰러는 있지만 아쿠아 룰러의 힘은 나이아드의 힘. 과연 나이아드와 싸울 때 아쿠아 룰러를 쓸 수 있을까?”

“제길! 알 게 뭐야. 아니지, 한번 실험을!”

다크는 아쿠아 룰러가 끼워진 왼손을 앞으로 쭉 뻗으며 막대한 기를 집어넣었다. 그러면서 외쳤다.

“아쿠아 에로우!”

뭔가가 곧장 앞으로 뻗어 나가며 벽에 구멍을 하나 뚫어 버렸다. 다크는 잠시 놀랐지만 놀라고 있을 수 없었다. 그대로 쫓아가서는 구멍을 확인했다. 역시 예상대 로 구멍은 물에 젖어 축축했다. 엄청난 속도의 물이 지닌 파괴력. 벽을 뚫을 정도라면 사람의 육신에 구멍 내는 거야 별로 어렵지 않으리라.

“그래, 오늘 저녁에 보자. 개자식! 한번 써 보고 안 되면 더 내공을 쌓아 검기나 강기로 상대해 주겠다.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죽일 거야. 크하하하!”

세린은 핏발이 선 눈으로 미친 듯이 웃고 있는 주인을 걱정스런 안색으로 바라보았다.

“누굴 찢어 죽이실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목욕이나 하시죠. 땀에 흠뻑 젖은 옷을 입고 계시면 건강에 안 좋습니다, 주인님.”

다크가 목욕을 끝내고 나왔을 때 방에는 토지에르와 실바르가 와 있었다. 토지에르는 약간 긴장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살짝 시선을 돌 렸고, 실바르는 얼굴색이 급속도로 뻘게지면서 뒤로 돌아서 버렸다.

“웬일이야? 새벽같이 찾아오고……?

“이봐, 옷이나 입고 얘기하자구.”

“으응? 그렇군. 세린!”

“예.”

다크는 세린이 건네준 옷을 입고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무슨 일이야?”

토지에르는 옷을 다 입은 다크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정상인 것 같은데?”

“무슨 소리야?”

“세린이 아무래도 주인님이 이상하다고 해서 왔지. 아무래도 미친 것 같다고 말이야. 누군가를 찢어 죽이겠다고 외치더니 갑자기 미친 듯이 웃더라나?”

“푸훗! 그래서? 내가 미쳤다면 고쳐 주겠다는 말이야?”

“아니, 최소한 토굴에 가둬 둘 수는 있겠지.”

“눈물나게 고맙군. 별일 없으니까 그만 돌아가.”

“이거 섭섭하군. 그래도 모처럼 찾아온 손님인데 차 대접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웃기는 소리 하지 말고 돌아가. 나는 한시가 급하니까.”

“평상시와 하는 꼴이 마찬가지인 걸 보면 확실히 미치지는 않은 모양이군.”

토지에르가 이죽거리자 갑자기 신경질 난 다크가 외쳤다.

“뭐얏! 내가 매일 당하는 걸 너도 한번 당해 봐라. 이 빌어먹을 영감탱아. 아쿠아 에로우!”

그와 동시에 다크의 왼손에서 엄청난 속도로 뭔가가 튀어나왔고, 실바르는 황급히 토지에르의 앞을 막으며 검을 뽑아 들었다. 하지만 그 검은 채 다 뽑히기도 전에 날아오던 것과 부딪쳤고 “챙!”하는 큰 소리를 내며 부러져 버렸다. 그리고 이어지는 충격으로 비틀비틀 뒤로 밀린 실바르는 뒤에 앉아 있던 토지에르와 함께 나자 빠지고 말았다.

두 남자가 뻗는 걸 보면서 다크는 잔인한 미소를 피워 올렸다.

“흥! 그 정도는 별것도 아냐. 이제 진짜를 먹여 주지. 아쿠아 해머!”

“쿠엑!”

거대한 물줄기는 비실비실 일어서던 실바르의 복부에 정통으로 명중했고, 실바르는 자빠지면서 그 뒤에 뻗어 있던 토지에르를 뭉개고 지나갔다. 실바르는 이제 문 가까운 곳까지 밀려나가 뻗어 있었고, 이제 엄폐물이 사라져 버린 토지에르는 바닥에 쭉 뻗은 채 자신의 몸 위로 지나간 실바르의 몸무게를 떠올리고 있었다.

“너도 맞아 봐랏! 아쿠아 해머!”

“우와!”

몸에 정통으로 맞고 쭉 뻗어 있는 토지에르를 보면서 다크는 비웃음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단 세 방에 뻗어 버리다니……. 멍청한 자식들. 이봐, 실바르!”

“콜록콜록! 예.”

“저 녀석 데리고 나가서 치료해 줘. 갈비뼈 두세 대는 확실히 부러졌을 테니까……

“그러죠.”

두 남자가 물에 흠뻑 젖어서 비실거리며 나가자, 세린은 황급히 빈 물통과 걸레를 가져다가 갑자기 홍수가 나 버린 바닥을 열심히 닦기 시작했다.

스바시에 왕국은 요즘 들어 새로운 형국을 맞이하고 있었다. 왕국이 멸망하면서 거의 대부분의 귀족들이 처형되었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당했다. 또 어제까지 귀 족의 부인으로서 또는 딸로서 떵떵거리면서 살던 여자들은 하루아침에 경매장에 끌려와 팔리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자살한 여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의 운명을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초기에 기회가 있을 때 자살하지 못하고 사로잡힌 경우, 그녀들이 자살할 수 없도 록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막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매우 예쁜 데다가 교양과 예절이 몸에 배어 있어 매우 고가에 판매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울컥하는 기분에 자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이란 적응력이 매우 뛰어난 동물이다. 그렇기에 한두 달 지나고 나면, 모든 걸 체념하고 자신에게 새로이 다가온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어쨌든 성인 남자는 거의 모두 처형, 어린 남자 애들과 여자들은 모두 다 노예로 팔린다. 돈 안 되는 할멈들은 처형해 버리지만 말이다. 그렇게 스바시에의 귀족들 이 사라지고 난 자리를 크라레스의 귀족들이 차지하고 들어왔다. 크라레스는 이번 전쟁이 끝나자 곧 왕국에서 제국으로 칭호를 변경하고, 황제 즉위식을 가졌다. 그 러면서 이번 전쟁에서 공을 세운 인물들에게 포상하는 형식으로 영지가 하사되었다.

국유지는 황실의 재산이고, 황제가 직접 그걸 관리하지는 못하니 그 대리인으로 파견하는 게 지방 영주들이다. 그렇기에 영주들이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영지는 소 유가 아닌 땅을 관리할 권한만을 부여받은 것이기에, 자의로 매매나 증여를 할 수 없었다. 다만 그 작위와 함께 관리권이 장자(長子)에게 상속될 뿐이다.

보통 지방 영주들은 황제로부터 받은 영지를 관리하면서 그 땅에서 생산되는 산물의 30퍼센트를 황제에게 바쳤다. 관리권을 위임받았으니 그 결과를 황제께 올리 는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지방 영주들은 따로 수입이 없으니, 황제에게 올리는 것보다 더 많은 양의 세금을 농노들에게서 거둬들이는 것 또한 당연했다. 그래야 성 도 수리하고, 사병(私兵)들도 거느리고, 딸 시집보낼 지참금도 마련해야 하고……. 뭐 그런 돈이 장만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주, 매우, 진짜로 양심적인 지방 영주들이 사유지(私有地)와 마찬가지로 산물의 50퍼센트 정도를 세금으로 거두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60퍼센트 정도를 거둬들이며, 일부는 농노들이 죽지 않을 정도만 남겨 두고 싹쓸이를 해 가는 빌어먹을 놈들도 있는 게 현실이었다.

그렇기에 국유지에 배속된 농노들은 영주가 바뀌고 안 바뀌고에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새로 바뀐 영주가 얼마나 세금을 거둬들일 것이냐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것 은 당연했다.

이번에 새로 들어온 영주들은 황제로부터 최고 50퍼센트를 초과하는 세금을 거둬들인다면 영지를 몰수하겠다는 통고를 받고 왔기에, 농노들의 환영을 받을 수밖 에 없었다. 대신 황제는 지방 영주들에게 25퍼센트의 소득만 바치도록 했기에 영주들도 그 제안을 수용했던 것이다.

또 사유지의 세금은 45퍼센트로 5퍼센트 인하한다고 발표했고, 자유 무역 지대는 세금을 40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인하하여 무역을 더욱 장려했다. 거기에다가 부자들로부터 더 많은 세금을 거둬들임으로써 그 부족분을 메웠기에 크라레스 황제로서는 손해 본 것도 없었다.

또 전쟁이 끝난 후 들끓게 마련인 산적들과 반 크라레스 잔당들, 몬스터들을 소탕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병력을 동원했기에, 민심이 크라레스 쪽으로 급속도로 기 울었다. 일단 잘살게 해 준다는 데야 군말이 있을 수 없었다. 또 추가로 세 개의 항구를 자유 무역항으로 지정했고, 이번 전쟁에서 새로이 얻은 해군력을 동원하여 해적을 대대적으로 소탕하면서 무역로를 개척해 나갔다.

점령지에 대한 정책들은 거의 20년에 걸쳐 계획해 온 것이었기에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소모되는 대량의 자금은 귀족들 로부터 몰수한 재산과 거상(巨商)이나 대규모 지주들, 또 정부와 결탁하고 매점매석(買占賣惜)을 행한 악질 상인들을 숙청하면서 간단히 해결되었다.

“크유, 오늘도 이렇게 끝나는군.”

투덜거리면서 다가오는 팔시온을 보고는 미카엘이 씩 웃으며 술병을 들어 보였다.

“술 마실래?”

“응.”

팔시온은 미카엘이 건네주는 술병을 통째로 들고 벌컥벌컥 들이켠 후 다시 그 병을 미카엘에게 내밀었다.

“전쟁보다 이게 더 어렵군.”

그 말에 앞쪽에 앉아 있던 미디아가 참견했다.

“투덜거리지 마. 원래 용병들이 싸우는 전쟁이란 게 이런 거야.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적들, 사방에서 기습을 당해 죽어 넘어지는 전우들. 처음부터 말도 안 될 정도 로 편한 전쟁을 해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거지.”

“그래! 너 잘났다.”

투덜거리는 팔시온을 향해 미디아가 정색을 했다.

“잘난 게 아냐. 그래도 콜렌 기사단에서 그래듀에이트 두 명이 지원 왔잖아. 뭐 타이탄은 없지만 그 사람들 정말 잘 싸우더라. 딴 데 가 봐. 그래듀에이트 구경이나 할 수 있을 줄 알아? 그 사람들이야 이런 싸움이 장난이겠지만 우리들로서는 목숨 걸어야 하는 거라구.”

그녀의 말에 미카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건 맞는 것 같아. 토지에르란 마법사, 제법 사람 쓸 줄 안다니까.”

“참, 너 소문 들었냐?”

미카엘이 어리둥절해서 물었다.

“무슨 소문?”

“이번 토벌전 끝나고 난 다음 치레아 국경으로 배치된다고 하던데……. 진짜인지 모르겠어.”

“국경에? 국경선에 용병대가 배치될 리 없잖아. 정규 사단들이 있는데…….”

“아니, 그럴지도 몰라. 만약에 치레아와 전쟁을 한다면 말이야.”

하지만 팔시온은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치레아는 약한 나라지만, 그 뒤에는 아르곤 제국이 있는데 침공할 수 있을까?”

“그건 모르지. 그런데 지미하고 라빈 이 녀석들은 어디 갔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미디아가 묻자 팔시온이 대답했다. 지미나 라빈은 소대장으로서 팔시온의 밑에 있었기 때문이다. “아, 낮의 싸움에서 라빈이 부상당했거든. 그래서 지미는 거기 가 있을 거야.”

“자식! 좀 조심하지.”

투덜거리는 미카엘을 향해 팔시온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요즘 그 녀석들 실력이 많이 나아졌던데 뭐.”

미카엘도 마주 웃었다. 처음 봤을 때는 어리숙한 멍충이들이었는데, 요즘 들어서는 제법 전사(戰士) 티가 났기 때문이다.

“그건 사실이야.”

미디아도 빙긋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어쨌건 여기처럼 용병을 쉴 틈 없이 써먹는 곳은 처음이야. 여기 일 끝나면 저리 가라. 저기 일 끝나면 그리 가라. 대신 한 곳에 용병대들을 대량으로 투입하고, 정 규 기사단에서 지원까지 해 주고, 만약 안 되면 타이탄까지 지원해서 목표한 곳은 완전히 뿌리를 뽑아 버리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해.”

“여기도 차츰 정이 들어가잖아? 꽤 살기 좋은 고장이야. 대 전쟁이 있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인심도 나쁘지 않고…, 또 용병대에 대해 사람들이 삐딱한 시선을 보내지도 않고 말이야.”

그러자 미카엘이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팔시온을 바라보았다.

“용병대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게 아니라 이걸 보고 사람들이 안심하는 거야.”

미카엘이 자신의 갑옷에 새겨진 머리가 셋 달린 붉은 드래곤을 가리켰다. 머리 셋 달린 붉은 드래곤은 크라레스 제국을 나타내는 문장이었다. 드래곤을 문장으로 쓰는 나라는 많았다. 금색 드래곤, 은색 드래곤, 녹색 드래곤 등등. 하지만 대가리를 셋이나 붙이지는 않는데, 왜냐하면 그게 메두사나 뭐 그런 전설에 나오는 악룡 들의 생김새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말되네.”

“용병대치고 이렇게 군기가 센 곳은 처음 봤어. 거의 정규군 취급하잖아. 한 번씩 함께 작전하는 정규군 경장 보병대들하고 무슨 차이가 있어?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렇게 군기를 강하게 하는 게 아무래도 용병대를 정규군에 통합할 생각인지도 모른다는 거야.”

미카엘의 말에 팔시온은 약간 놀랍다는 듯 말했다.

“용병대를 정규군에? 그러면 너는 좋겠군.”

미카엘이 인상을 찌그리며 팔시온을 바라봤다.

“왜?”

“너는 그래도 용병대보다는 정규군에 어울리잖아. 단번에 기사가 될지도 모르는데…….”

“야야, 기사가 될 생각이었으면 벌써 되었을 거야. 아무나 한 명 받들기만 하면 되는 게 기사인데 뭐. 나는 한 곳에만 얽매이는 건 싫어.”

“그래도 모르지. 그건 그렇고, 이거 끝나면 치레아 국경선으로 진짜 갈까?”

“그건 아무도 몰라. 하지만 내 생각으로는 아닌 것 같아. 이번에 점령한 점령지도 엄청나게 넓은데, 여기도 제대로 안정시키지 않고 또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없잖 아. 안 그래?”

“그것도 말 되네.”

그들의 말을 한참 듣고 있던 미디아가 중얼거렸다.

“다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참 특이한 애였는데.”

“애는? 70살 먹은 애도 있냐? 큭큭……. 처음에 다크가 여자가 됐을 때 생각이 한 번씩 떠오르면 돌아 버리겠다니까……?”

“하하하, 나도 엄청 놀랐으니까 말이야. 이번 작전 끝나면 모두 휴가 내서 다크나 보러 갈까?”

“그러지.”

“찬성!”

다크는 천천히 일어서면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런데 오늘은 평상시와 약간 달랐다. 완전히 어두운 것이 아니라 어슴푸레하지만 사방이 보였다. “그가 오기 전에 도망쳐!”

“닥쳐! 흐흐흐, 오늘은 나도 준비가 좀 되어 있단 말이야. 이 개자식 폼 잡지 말고 빨리 나와.”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희미한 음영이 나타나면서 음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크크크크, 오늘은 힘이 넘치는군. 그래, 내 노예가 되겠느냐?”

“놀고 있네. 이거나 먹어랏, 아쿠아 소드!”

“아쿠아 바리어(Aqua Barrier)!”

그러자 희미한 음영 주위로 둥근 벽 같은 게 생겨났고, 날아갔던 아쿠아 소드는 거기에 부딪치면서 소멸해 버렸다.

“크흐흐흐, 겨우 얄팍한 거 몇 가지 배워 가지고 감히 이 위대하신 나에게 반항하려 들다니……. 아쿠아 해머!”

그 말과 함께 앞쪽으로 수십 개의 거대한 물줄기가 튀어 나왔다.

“아쿠아 실드!”

퍽!

거대한 물줄기 중 하나가 맹렬히 회전하는 물의 방패에 박히면서 산산이 분해되어 버렸다. 아쿠아 실드가 그 무작스럽던 아쿠아 해머를 간단하게 막아 내자 다크 는 자신감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할 수 있어. 개자식! 아쿠아 해머!”

세 개의 거대한 물줄기가 날아갔지만 상대의 방어벽을 뚫지는 못했다.

“크크크, 겨우 그따위 것도 공격이라고 하다니. 이게 진짜 아쿠아 해머다. 받아랏!”

상대의 물줄기는 점점 더 빨라졌고, 그에 따라 그 파괴력도 점점 더 강해졌다. 그렇기에 아쿠아 실드에 더욱 많은 내공을 넣어야만 그놈의 공격을 막을 수 있었다. 내공의 양에 따라 그 회전 속도가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크는 내력이 고갈되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내공을 넣어야만 발휘되기에 방 대한 내공이 소모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좋아, 좋아……. 이제 슬슬 기운이 딸리기 시작하는 모양이군. 그 정도면 많이 버틴 거야. 아쿠아 실드!”

그러자 그 희미한 놈의 주위에 다섯 개의 물 방패가 형성되었다.

“크크크, 아쿠아 실드는 상대의 공격을 막기만 할 수 있는 게 아냐. 어디 한번 막아 보시지. 죽어랏!”

그의 주위에 떠 있던 다섯 개의 물의 방패가 맹렬히 회전하면서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문제는 그 다섯 중 세 개는 일직선으로 날아왔지만, 두 개는 거의 타원을 이루면서 다크의 양쪽 옆구리로 날아왔다는 것이다.

“제기랄!”

그것들이 최대한 가까워졌을 때 다크는 위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공중에 뜬 상태에서 회전하는 속도가 비교적 느린 원반의 정중앙을 때렸고, 곧 구멍이 뚫렸지만 파괴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뒤에서 다가오는 속도가 빠른 물줄기에 부딪치면서 간단하게 손목이 잘려 나갔다.

“크윽!”

“그 아쿠아 실드는 방어 무기가 아닌 공격 무기야. 그 무엇이라도 잘라 내지. 강철도 잘라 내는 물의 위력을 맛 보거라. 크흐흐흐……. 아쿠아 에로우!”

수십 개의 물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보며 다크는 절망감을 느꼈다. 내공도 거의 고갈되어 방어하기도 벅찼다. 그녀는 간신히 아쿠아 실드를 불러내 물 화살을 막으 면서, 그걸 곧장 그놈에게 날렸다. 그러나 아쿠아 실드마저 놈의 방어벽에 부딪치면서 소멸되어 버렸다.

“하루 사이에 제법 쓸 만해졌다고 나를 깔보면 곤란하지……. 크흐흐흐, 네년은 죽었다 깨도 나만큼의 힘을 가질 수 없어. 자, 이제 나의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거 야. 으하하하하! 아쿠아 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