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7권 12화 – 미심쩍은 여행

미심쩍은 여행

3일이 지나자 새로운 인물들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패거리를 이끌고 온 사람은 샤트란 페르라는 옅은 갈색 머리카락을 짧게 기른 예쁜 여자였다. 나이는 서른 살 정도라고 밝혔지만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근육과 팽팽한 살결로 인해, 그녀는 20대 중반 정도로만 보였다. 샤트란은 키가 170센티미터는 되어 보였는데, 대단히 고급스럽고 두터운 갑옷으로 감싼 그녀의 늘씬한 몸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살짝 의례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자신과 새로운 동료들을 소개했다. 샤트란과 함께 온 두 명의 무사들은 모두 금발의 젊은이들이었는데, 탄탄한 근육과 손바닥의 굳은살은 그들이 어느 정도 수련을 쌓은 무사들인지 대변해 주고 있 었다.

“이분은 파시르예요. 그리고 이분은 죠 네르만. 두 분 다 그래듀에이트시죠.”

매서운 눈매와는 달리 전체적으로 평범한 얼굴을 한 파시르, 그의 얼굴 왼쪽 뺨에는 깊은 검상(劍傷)이 있어 평범한 그의 얼굴을 조금이나마 강렬하게 만들어 주 었다. 그리고 죠 네르만은 파시르보다는 조금 더 키가 커서 거의 190센티미터에 가까운 거대한 덩치의 소유자였지만, 얼굴 생김새는 짙은 턱수염을 제외하고는 매 우 평범했다. 하지만 그의 눈매는 파시르와는 달리 매우 부드러웠고 활달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파시르는 샤트란의 소개에 간단히 고개를 까딱하는 것으로 자신이 할 일은 다했다는 듯 서 있었다. 꽤나 무뚝뚝한 성격의 소유자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네르만은 달랐다. 자신이 소개되자 유쾌하게 미소 지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안녕하세요? 같이 일하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우와! 그런데 저 예쁜 아가씨는 누구야? 이봐, 혹시 애인 있어?”

한 대 먹여 줄까 하다가 다크가 참고 옆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가 투덜거렸다.

“이봐, 예쁘다고 뻐기지 말고 데이트 한번 하자구. 나 이래봬도 정말 괜찮은 남자라니까.”

그 말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스펜이 단호하게 말을 잘랐다.

“이보게, 그런 말은 나중에 하게나. 자자, 일단 이것으로 모든 인원이 갖춰졌군요. 전에도 말했지만 이번 작전에 투입되는 타이탄은 세대입니다. 저희 쪽에 한 대 가 있고, 파시르와 네르만이 각각 한 대씩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기초로 작전을 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규급의 기사가 여섯 명, 수련 기사 두 명, 마법사 두 명, 신관 한 명이 파티를 이루게 됩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드래곤을 잡을 수 있을 겁니다. 또 우리가 잡으려는 드래곤은 1천 살도 안 된 녀석이니 우리 쪽의 피해도 그렇 게 크지 않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혹시 질문이 있으십니까?”

용병이 타이탄을 소유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실력만 있다면 전장(戰場)에서 주인을 잃은 타이탄을 슬쩍 할 수도 있었기에, 몇몇 이름난 용병들은 타 이탄을 소유하기도 했다. 이 둘도 그런 경우로, 둘 다 가장 널리 사용되는 로메로급 타이탄을 가지고 있었다. 타이탄이란 것 자체가 유지 보수비가 들어가지 않다 보 니, 일단 슬쩍하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자신의 것만 된다면 정말 유용한 무기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잡을 그 드래곤은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네르만의 호기심 어린 질문에 지금껏 설명하고 있던 스펜이 슬쩍 미소로 얼버무렸다.

“지금은 그걸 말할 수 없습니다. 괜히 정보가 새어 나가면 최악의 경우 드래곤의 사체를 아르곤 당국에 뺏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드래곤을 잡는 데 필요한 모든 준비는 도우러 씨가 해 줄 겁니다. 출발은 내일입니다. 그러니 혹시 필요한 물품이 있으시면 준비하세요. 이상입니다.”

축 늘어져 있던 지미가 하품을 하며 있는 대로 크게 기지개를 켜고는 괜히 무게를 잡고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다크에게 투덜거렸다.

“정말 드래곤 잡으러 갈 거예요?”

“그럼, 안 잡으러 갈 이유가 없잖아. 드래곤이라는 녀석이 얼마나 강한지도 한번 봐야겠고……. 도무지 아르티어스만 봐서는 드래곤이 별로 강하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으니까 말이야.”

“예? 아르티어스가 누굽니까?”

“뭐, 그런 사람이 있어.”

다크가 슬쩍 얼버무리자 지미는 또다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다시 물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뭘 그렇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혹시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으신가요?”

“응.”

“그게 뭡니까?”

다크는 시선도 돌리지 않고 계속 창밖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이상하지 않냐? 자신들은 타이탄을 한 대만 가지고 있을 뿐이고, 나머지 두 대는 용병들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다크의 말에 지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별로 이상할 것은 없는데요? 사실 이름난 용병단이라고 해도 타이탄을 한 대 이상 가지고 있는 곳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그 용병단들이 서로 합친다면.”

“내 말은 그게 아니야. 내가 봤을 때 스펜이나 아더는 대단한 실력의 검객이야. 그들의 실력을 가늠해 봤을 때 그 녀석들이 타이탄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게 더 이 상하다 이거지. 아무래도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예? 그들의 실력이 그렇게 강한가요?”

“흐유, 너희를 잡고 얘기하고 있는 내가 멍청하지. 어쨌든 휴식이나 충분히 취해 둬라. 내일부터는 조금 재미있어질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스펜이 지휘하는 파티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여행을 떠났다. 다섯 필의 말에 짐을 잔뜩 싣고 떠나는 일행들은 모두가 가벼운 금속제 내지는 가죽 갑옷을 입고, 그 위 에 두터운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이런 옷차림은 매우 흔한 여행용 복장이었는데, 일행들 중에서 유일하게 갑옷을 걸치지 않은 사람은 다크뿐이었다.

모두 그녀를 숙련된 마법사쯤으로 알고 있었기에 다크가 갑옷을 입지 않은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일단은 위장용으로 허리에 칼까지 차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파티는 꽤나 길을 서둘렀음에도 드래곤이 산다는 곳을 향해 거의 한 달 정도 여행을 해야 했다. 드래곤은 아르곤 제국의 북쪽, 그러니까 아홉 개의 작은 국가들이 모여 형성된 랜트 국가 연합과의 국경에서 1백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그랜디아 산맥의 서북쪽 경사면에 살고 있었다. 그곳은 확실히 그린 드래곤이 매력을 느낄 정 도로 지독하게 울창한 숲이 우거져 있었다.

“우와! 여기 숲은 정말 끝내 주는군. 벌목을 하면 돈 좀 벌겠는데?”

10킬로미터 밖에 펼쳐져 있는 광활한 숲을 바라보며 네르만이 호들갑스럽게 말하자 스펜이 점잖은 어조로 대꾸했다.

“그랜디아 산맥은 아주 넓으니까……. 조사된 바에 따르면 여기에 살고 있는 드래곤은 다섯 마리나 되지. 아마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야. 지금까지 밝혀진 바 로는 그린 세 마리, 골드 한 마리, 레드 한 마리가 살고 있어. 드래곤들은 주변이 시끄러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고, 특히나 그린 드래곤의 경우 자신이 사는 주변의 숲 이 파괴되는 걸 아주 싫어하거든. 아마도 그 때문에 엘프하고 죽이 맞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런 형편이니 여기 벌목하러 올 바보 같은 놈들이 있을 턱이 없잖 아. 벌목한다고 깝죽거리다가 드래곤한테 걸리면 곧장 사망이라구.”

스펜의 말이 끝나자 아더가 참견을 했다.

“참, 드래곤들이 많이 사니까 당연히 이 산맥에 대한 몬스터 토벌은 생각도 못 했을 거야. 드래곤은 원래 주위가 소란스러운 걸 싫어하니까 말이야. 그 덕분에 여기 에는 몬스터들이 엄청나게 우글거린다고 하니까 모두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오늘 저녁부터는 교대로 불침번을 서야 해.”

“자자, 아더의 말 잘 들었지? 오늘은 여기서 야영을 하고 내일부터 숲으로 들어간다. 숲 밖이니까 몬스터가 습격할 리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그래도 오늘부터 불침 번을 서기로 하지. 오늘은 일찌감치 밥 먹고 푹 쉬었다가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하기로 하지.”

스펜의 말에 따라 모두들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저기에서 썩은 나뭇가지를 주워오고, 물통에서 물을 꺼내 스프를 만들었다. 모두 바쁘게 야영 준비를 하는 동안 다크는 멀찍이 서서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그랜디아 산맥을 황홀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계절은 본격적으로 가을에 접어들었기에 산맥은 울긋불긋 황홀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무를 사랑하는 그린 드래곤이 세심하게 보살핀 숲이었기에 다른 숲보다는 훨씬 나무들이 컸고 생동감이 있었다.

“쟤 왜 저러냐?”

멍청히 서서 산맥의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다크를 가리키며, 네르만이 옆에서 장작이 될 만한 걸 줍고 있는 라빈에게 물었다. 하지만 라빈이라고 그걸 알 수는 없었다. 사실 다크 정도의 고수는 엄청나게 먼 거리까지도 정밀하게 볼 수 있을 만큼 시력이 좋았기에, 그들이 보는 산맥의 아름다움과 그녀가 보는 아름다움 은 질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한 번도 그런 엄청난 시력을 지녀 본 적이 없어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예를 들어 시력 2.0인 사람과 0.5인 사람이 10미터 밖에 걸려 있는 아름다운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고 해야 할까?

“글쎄요.”

“풋! 가을이라……. 여자들은 가을을 타게 마련이지.”

“가을을 탄타구요?”

“똑같은 여자라도 가을에 꼬시기가 더 쉽다는 말이야. 평상시보다 더 감정적이 되거든. 그건 그렇고 다 주웠으면 돌아가자.”

다음 날 일행들은 숲으로 들어섰지만 몬스터는 만날 수 없었다. 어쩌다가 몬스터랍시고 고블린이나 트롤이 몇 마리 나타나기는 했지만, 이상하게도 으르렁거리면 서 싸우러 오는 게 아니라 그쪽에서 황급히 피해 버리는 것이 수상쩍었다. 하지만 이쪽이 원체 정예들만 모여 있는 판이라 그런 것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한 명도 없 었다.

꼬박 일주일 동안 산속을 헤맨 후에야 그들은 먼저 정찰 나갔던 패거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에 들은 것과 달리 그곳에는 세 명의 인물들이 기다리며, 뒤따라 온 파티를 반겨 주었다. 그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검고 긴 생머리를 허리까지 기르고 갈색의 아름다운 눈을 가진 마리나 지오그네라는 여자 마법사였다. 20대 중반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외모와는 달리 다크처럼 상당히 노련한 어떤 느낌을 풍기는 특이한 여자였다.

그리고 40대 중반 정도의 노련해 보이는 타론 스메르라는 기사. 스펜이나 아더가 그에게 상당히 조심스런 말투로 대하는 걸로 보아 아마도 파티의 실질적인 지도 자인 모양이었다. 그는 옅은 갈색 머리카락을 어깨 정도까지 기른 순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놀랍게도 드워프였다. 원래가 드워프란 종족이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이 지크레아 파이어해머라는 웃기는 이름의 드워프 또한 하나도 다를 게 없었다. 겨우 150센티미터가 될동말동한 짤막한 키, 그리고 떡 벌어진 어깨……. 이 드워프는 자기 키만 한 거대한 양날 전투 도끼를 등에 짊어지고는 텁수 룩한 수염이 가득 솟은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먼저 온 샤트란은 어디 있습니까?”

스펜의 물음에 타론은 다크 등 새로 들어온 사람들을 힐끗 보면서 대답했다.

“아, 싸울 위치를 잡기 위해 내가 먼저 보냈네. 그건 그렇고 생각한 것보다는 인원이 많군.”

“예, 예정 외로 저 세 사람이 끼어들었죠. 저 소녀는 마법사, 그리고 저 둘은 수련 기사입니다.”

“마법사라고? 저런 풋내기 마법사를 어디에다가 쓰려고?”

“5사이클급 공격 마법을 익혔답니다. 그녀의 실력은 베티 님이 확인해 주셨구요.”

스펜의 말에 타론은 싱긋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떡끄떡했다.

“좋아. 자네하고 아더는 그 드래곤이 사는 곳에 한번 가 보는 게 좋겠지? 나하고 함께 가세. 나머지는 여기서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하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타론, 스펜, 아더는 일행에게 내일 있을 드래곤 사냥을 위해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한 후 드래곤의 레어로 향했다. 목표물인 드래곤의 레어는 파티가 모여 있는 곳에서 1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들은 레어가 한눈에 보이는 숲 속에 가만히 숨어서 기척을 숨기고는 주위의 경치를 살폈다.

30미터 정도 높이의 절벽 아래에 위치한, 드래곤이 살 것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작은 동굴. 잘해 봐야 높이 7미터가 될까 말까 한 음침한 구멍 주위로는 짙 은 이끼가 덮여 있었고, 절벽에는 수많은 덩굴 식물들이 뿌리를 내려 멀리서 보면 절벽이 있는지조차 알기 힘들 정도였다. 수많은 식물들로 우거진 덕분에 생긴, 습 기 찬 음지에는 푸른 이끼들이 짙게 돋아나 있었지만, 동굴의 바닥에는 그 안에 뭔가가 살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듯 이끼나 식물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곳에 사는 녀석을 알아냈습니까? 정말 대단하군요.”

“그야말로 우연히 알아낸 거지. 보통 드래곤들은 마법을 이용해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지만 이 녀석은 어려서 아직 숨기지 못하고 있었기에 잡힌 거야. 사실 트랜 스포메이션해서 다른 생명체로 변신했다고 하더라도 드래곤 자체가 지닌 그 엄청난 마나의 힘은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한 숨길 수는 없지.”

스펜은 동굴 앞에 펼쳐진 지름 1백 미터는 될까 싶은, 풀들이 무성하게 자란 넓은 공간을 바라봤다. 아마도 동굴 앞에 이렇듯 넓은 공터가 있는 이유는 드래곤이 날 아오르기 위해 충분한 공간이 필요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겠지만, 드래곤 사냥꾼들에게도 이 공간은 매우 유용했다. 타이탄이란 거구들이 움직이려면 이 정도의 공 간은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싸우실 겁니까?”

“당연하잖나? 드래곤이 트랜스포메이션한 상태에서 죽이면 아무것도 얻지 못해. 반드시 본체로 현신한 후에 죽여야만 하니까 우선 미끼가 필요한 거야. 적당히 강 한. 하지만 그 녀석들이 잘해 낼 수 있을까?”

“잘해 낼 겁니다. 우선 그 녀석들에게 저 동굴 앞에서 드래곤을 순차적으로 공격하게 만들어, 독이 오른 드래곤이 현신하도록 해야 하죠. 참, 그런데 파이어해머는 왜 데려오셨습니까?”

“아! 그 녀석도 쓸 데가 있어서 데려온 거야. 드래곤 킬러(Dragon Killer : 드래곤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지는 무기의 총칭)를 그놈이 만들었거든. 그 위력을 직접 보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지. 또 드래곤 사체의 분해 등 뒤처리도 그 녀석이 책임지게 될 거야.”

둘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를 묵묵히 들으면서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아더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궁금한 표정으로 타론에게 물었다.

“그런데 샤트란은 어디 있습니까? 여기 오면 그녀를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큭큭, 그녀한테 푹 빠진 표를 너무 내진 말게나. 그녀는 절벽 위에 있네. 그녀는 절벽 위에서 아래로 공격할 예정이야. 일단 드래곤 녀석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아 야 하니까 말이야.”

“참, 그렇군요.”

잘 보이지도 않는 절벽 위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아더를 보며 싱긋 미소 짓던 스펜은 타론에게 슬며시 물었다.

“드래곤이 정확히 몇 살입니까?”

“마리나의 말로는 아마 8백 살 정도일 거라고 하더군. 궁정 마법사니까 그녀의 추측이 거의 정확할 거야.”

“8백 살이라……. 과연 미끼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타론이 음흉하게 미소 지었다.

“살아남을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할 걸세. 만약 살아남은 놈이 있다고 해도 내가 죽일 거니까 말이야. 어쨌거나 비밀은 지켜야지. 흐흐흐.

“하, 하지만 대장! 그건 기사도에 어긋납니다. 어떻게 동료를…”

스펜의 반박에 타론도 그것을 부정하기는 힘들었다. 왜냐하면 스펜과 타론은 이름 높은 기사. 전쟁의 신전에 그래듀에이트로 등록되어 있는 영예로운 기사들이었 고, 기사란 명예를 소중히 여기고 정의를 수호해야 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타론은 부하의 항의를 인정할 수 없었다. 이번 작전이 성공하 느냐 못 하느냐에 조국의 미래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드래곤 한 마리의 가치는 그 정도로 엄청났다.

“동료가 아니야. 소모품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드래곤을 적당히 화나게 만들어 현신하게 만들 정도로 강해야 하지만, 드래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도망치지는 않을 정도로 약한 존재. 그리고 그들은 그 성난 드래곤의 브레스를 정면으로 맞아야 하니 살아남을 가능성은 처음부터 없어. 그 때문에 미끼 역 을 우리가 하지 않고 외부인을 끌어들인 거야. 드래곤이 그들 모두를 없애 버려 우리의 손이 더러워지지 않게 해 주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겠지.”

말을 마친 타론은 시선을 하늘로 돌리면서 딱히 누구에 말한다고 할 수 없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기사도(騎士道). 정말 좋은 거야. 모든 기사가 기사도에 어긋나지 않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지. 하지만 자네들도 내 나이쯤 되면 알 거야. 이상과 현실이 잘 맞아 떨어진다면 좋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이야. 이상과 똑같은 행동을 할 수는 없는 거야. 가능한 한 이상에 가까운 행동을 할 수 있기를 염원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