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8권 12화 – 수정궁 이동 마법의 비밀
수정궁 이동 마법의 비밀
“도대체 말이 되느냐?”
제임스 드 발렌시아드 후작으로부터 호출당한 죠드는 상관의 호된 질책을 들었지만,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이번 사건이 원체 모호했기 때문이 다.
“기껏 잡아 왔다가 사라진 소녀와 그 일행은 놔두고라도 코타스 공작 전하께서 실종되신 지 벌써 10일이 경과되었다. 그런데도 알 수 없다는 변명이 나 늘어놓고 있는 것이냐?”
“하지만 알 수 없는 것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자료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자료? 무슨 자료 말이냐? 이따위 쓰레기를 자료라고 가져온 거냐?”
제임스는 죠드가 어제 밤새 쓴다고 낑낑거린 서류들을 내팽개치며 으르렁거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내! 그 계집과 공작 전하를 말이다. 이제 곧이어 크루마와 전쟁이 벌어질 거다. 이런 중요한 때, 코타스 공작 전하께서 실종 되신다면 이 얼마나 비웃음거리가 되겠냐? 돌아가셨다면 시체라도 찾아와.”
똑똑!
한참 죠드에게 울화를 터뜨리고 있는데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제임스는 문 쪽을 보며 짜증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무슨 일이냐?”
제임스의 짜증스런 목소리에 찔끔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듯 조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 무척 화가 난 상태인 상관의 주변을 얼 쩡거리다가는 자칫 불똥이 튈 수도 있기 때문에 알아서 몸을 사려야 했지만, 이걸 전해 주지 않았다가는 나중에 더 큰 화를 당할 수 있기에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예, 크로데인 백작님으로부터 통신이 들어와 있습니다.”
“알겠다. 죠드, 너도 함께 가자.”
“예, 후작 각하.”
죠드는 어쩔 수 없이 내키지 않는 걸음걸이로 젊은 후작의 뒤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대단히 유능한 후작의 친구가 어떤 단서라도 발 견해 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오랜만이군.”
“그래, 그쪽은 어떻게 되었나?”
“꽤 재미있는 사실이 몇 가지 발견되었기에 연락하는 거야.”
까미유의 말에 제임스는 약간 얼굴이 환해지며 물었다.
“좋은 소식이야?”
“그건 자네가 들어서 판단해 봐. 우선, 그 소녀하고 일행을 봤다는 사람들을 발견했지.”
“뭐야? 어디서?”
“코린티아시 외곽에서 식당 주인에게서 확인까지 받았지. 거기서 식사를 하고 갔다고 하더군.”
서둘러 탈출한 것이 아니라, 범행 장소 부근에서 식사까지 한 것을 보면 정말 간이 커도 보통 큰 놈들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제임스는 질문을 던졌다. “어디로?”
“글쎄. 마법진을 썼기에 어딘지 확실히 알 수 없어. 죠드가 말 안 하던가? 마법의 탑에서 알려 주는 자료만 가지고는 도대체 어디로 갔는지 알 방법 이 없지. 마력이 발생한 대략적인 위치와 그 추정 마력. 그리고 그게 포착된 시간만 기록되어 있으니까 말이야. 어쨌든 마법의 탑에 알아 본 바로는 4 백만 기간트라급의 이동 마법이야. 이 근처에 수소문을 해 봤더니 그 소녀의 일행은 꽤나 대 부대가 되어 있더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소녀 외에 열 명. 꽤나 떼거리 숫자가 늘어나 있기에 그 패거리인지 확실하지가 않아. 엄청난 미인인 소녀 한 명, 그리고 드워프 하나, 그리고 죠드 에게서 들은 대로 키 175센티 정도의 머리를 아주 길게 기른 눈에 확 띌 정도의 미남자 한 명. 이 셋이 끼어 있었다는 것은 확인했어. 그들 외에 덩치 좋은 검객 여섯 명하고 좀 호리호리한 남자 한 명. 그렇게 해서 열한 명이지. 도대체 어디에 다섯 명이나 되는 놈들이 숨어 있다가 끼어든 거지?”
“글쎄, 그럼 놈들은 어디로 갔다는 거야?”
“글쎄 잘 모르겠어. 이들이 남겨 놓고 간 마법진도 발견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너무 지난 관계로 희미해져 버려 별로 도움이 안 되더군. 마법의 탑에 알아본 결과 사람 열한 명과 말 여섯 필을 4백만 기간트라급 마력으로는 그렇게 초장거리 이동을 시키기는 힘들다는 보고만 받았지. 무게에 따라 상
당히 오차가 날 수도 있지만 이동 거리를 대략 추정한다면 1만 1천에서 1만 2천 킬로미터 정도? 최대한 길게 잡는다면 1만 3천까지도 될 거라고 하 더군.”
까미유의 말에 제임스는 대충 지도와 축척(縮尺)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외쳤다. 1만 2천 킬로미터라면 짧은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1만 2천 킬로미터? 그렇다면 우리나라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충분히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거리잖아.”
“그렇다고 봐야지. 하지만 국경을 넘을 수 있는 곳은 몇 곳 되지 않아. 북쪽으로는 도달할 수 있는 나라가 없고, 동쪽의 아르곤, 남쪽의 크라레스, 그 리고 서쪽에는…, 으음 그쪽은 좀 많군.”
“꼭 국경을 넘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잖아?”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어.”
“뭔데?”
“정밀 조사를 실시해 본 결과 수정궁의 그녀 일행이 묵었던 방에는 두 곳 어디에도 숯가루나 뭐 그 어떤 가루도 발견되지 않았어.”
야외에 그리는 마법진은 바람이나 비 같은 것 때문에 곧이어 사라지므로 대충 아무거나 가지고 그리지만, 실내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작대기 같은 것 가지고 그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연필이나 물감 따위로 그걸 그렸다가는 누군가가 씻어 내지 않는 한 남아 있기에 행적이 노출될 우려가 있었다. 그렇기에 보통 실내의 마법진은 밀가루나 숯가루 등을 이용해서 그리게 된다. 그러면 마법이 발동되는 순간에 움직이게 되는 마나의 기류에 의해 그 마법진은 지워지게 되어 흔적을 없앨 수 있다. 하지만 이때 여기서 마법진을 그렸다는 숯가루 등의 증거물은 남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기서는 마법진을 사용하지 않고 공간 이동을 했다는 거야?”
“그렇다고 봐야지. 마법의 탑에 기록된 자료를 살펴보면 처음 공작 전하께서 실종되실 때, 그때 발생한 마력은 50만 기간트라. 그걸 마법진 없이 돌 렸다는 것은 6사이클급 마법사가 이동 마법을 사용했다고 봐야 해. 50만으로 두 명이면 마찬가지로 거의 국경 가깝게까지 날아갈 수 있지. 두 번째 발생한 마력은 1천 기간트라 정도. 그 방 안에 있던 사람의 수를 생각해 본다면 상당히 근거리 이동이야.”
제임스는 잠시 생각해 본 후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흐음, 앞뒤가 대충 맞는 것 같은데?”
까미유는 슬쩍 제임스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친구도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그렇지? 그녀는 공작 전하와 초장거리 이동을 해서 어딘가로 갔어. 그런 후 시간이 그렇게 많이 지나지 않아서 돌아왔지. 그때는 어떤 미남과 함께 왔지만 말이야. 그런 후 단거리 이동으로 코린티아 시외로 나왔고, 식사 후 초장거리 마법을 펼친 것이 확실한 것 같아. 그런데 마법의 탑 자료에 상 당히 재미난 사실이 있더군.”
일부러 흥미를 자아내는 듯한 까미유의 말에 제임스는 짐짓 흥미를 보인다는 듯이 질문을 했다. 자신의 친구에게서 빠른 대답을 들으려면 적당히 맞 장구를 쳐 줘야 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떤?”
“바로 제일 마지막 이동의 시발점이 된 식당이 있는 곳. 그 근처에서 엄청난 마법이 사용되었어. 어떤 종류의 마법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의 850만 기간트라급 마법. 그리고 곧이어 24만 기간트라급 마법.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일부러 궁금증을 일으키게 만드는 까미유의 화법에 짜증이 난 제임스는 투덜거렸다.
“답답하게 굴지 말고 속 시원하게 설명해 봐.”
“앞의 850만 기간트라급 마법은 뭔지 몰라.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지. 두 번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된 걸 보면 한 사람이 썼을 가능성이 매우 커. 그 리고 그 사람이 두 번째 마법으로 공간 이동했다면 대충 앞뒤가 맞아. 24만 기간트라로 한 명이면 공작 전하가 이동한 곳과 거의 비슷한 거리까지, 아 니면 바로 그곳에 이동이 가능해. 850만 기간트라급을 곧바로 썼다면 그는 7사이클급 마법사지. 그 마법사는 그리로 이동했다가 다시 돌아왔어. 소 녀만 데리고 말이야. 그다음은 자네가 아는 대로지. 그런데 몇 가지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도 많아.”
“어떤?”
“그 정도 마법사가 있는데도 식당 근처에 그려진 마법진은 4백만 기간트라급 치고는 엄청나게 컸어. 마법사들의 의견으로는 저위급 마법사가 안전 을 위해서 그렇게 과도하게 크게 그린다고 하더군. 그 말은 거기서 마법진을 발동시킨 녀석은 고위급이 아니야. 그렇다면 고위급은 그 정도 마법도 쓸 수 없는 상태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이 나오지.”
“호오, 마력을 거의 다 소모했다는 거야? 그렇다면……”
“그래, 아마도 그 녀석이 공작 전하와 싸웠을 수도 있을 거야. 이 풍경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그 말과 동시에 까미유의 모습은 수정 구슬에서 사라지고 황폐한 벌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그 벌판은 원래부터 황폐한 것이 아니라 뭔가 거 대한 규모의 마법 실험이라도 한 것처럼 파헤쳐져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수정 구슬에는 까미유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그게 뭐야?”
“그 마법사 녀석이 소녀와 수정궁에 나타나기 전. 그러니까 공작 전하께서 소녀와 없어진 시간은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았어. 그렇다면 돌아올 때도 이동 마법을 썼다는 결론이잖아? 그래서 그 시간에 8천 킬로미터 내외의 거리에서 50만 기간트라급의 마법이 있는지 조사하니까 한 곳 있더군. 그쪽 으로 찾아가서 발견한 풍경이야. 어때? 근사하지?”
“글쎄, 뭔가 마법 실험이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인데? 완전히 엉망이잖아.”
“그렇지? 내가 데려온 마법사들의 의견으로는 전기, 그러니까 엄청난 규모의 뇌전에 의해 이렇게 된 것 같다고 그러던데?”
“그렇다면 거기서 공작 전하께서 싸우셨다는 거야?”
“그럴 가능성이 크지. 그리고 이 일대에는 타이탄 발자국도 있어. 7사이클급 마법사와 타이탄 한 대. 이 정도라면 아무리 공작 전하라도 힘들었을 “거야.”
“그럼 그 나쁜 연놈들은 공작 전하를 그곳에서 협공해서 시해弑)한 후 뻔뻔하게도 이쪽으로 왔다가 다시 어딘가로 갔다는 거야?”
제임스의 단순 무식한 추리에 까미유는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단순하기는. 그렇게 단정 짓기는 힘들어. 왜냐하면 실지로 그곳에서 싸웠다면 모든 무사들을 그쪽으로 데리고 가지, 왜 소녀와 그 마법사만 갔을까? 그리고 왜 공작 전하께서는 그 소녀와 단 둘이서 그 먼 곳에 가셨지? 그리고 소녀와 우리가 처음 만난 시점에도 문제가 있어. 소녀가 공작 전 하를 시해할 예정이었다면 코린티아 시가지를 어슬렁거리고 있어야지 그 먼 아르곤에는 왜 있었을까? 그리고 싸운 흔적을 보면 타이탄은 거의 움직 이지도 않았고, 또 뇌전 외에 딴 마법이 사용된 흔적은 없어. 그렇다면 코타스 공작 전하를 놈들은 어떤 방식으로 해칠 수 있었지?”
“글쎄.”
제임스가 이리저리 궁리를 하는 듯했지만 결국은 결론을 못 내는 것을 보며, 까미유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말했다.
“모든 것은 그 소녀를 찾아내야 알 수 있어.”
“그, 그럼 어떻게 하지?”
“쯧쯧 머리하고는…………. 어떻게 그 머리로 무술을 익혔냐? 내가 처음에 그 소녀를 발견한 곳이 어디라고 했지?”
제임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답했다. 기억이 났던 것이다.
“그야…………. 그래, 크라레스라고 했지.”
“맞았어. 나는 지금부터 크라레스로 갈 거야. 혹시 뭐 따로 전달할 사항은 없나?”
제임스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아니, 아직까지는 없어.”
“그럼 나중에 또 연락하지.”
“잠깐! 누구하고 같이 갈 거야?”
“오스카하고 같이 갈 거야. 그리고 마법사는 리카와 스타키를 데려가지. 나머지는 돌려보낼 거야.”
“겨우 그들만 가지고 될까? 기사를 몇 명 더 데려가는 게 좋지 않을까?”
“이봐, 오스카하고 나만 빠져도 벌써 제3근위대에 공석이 두 개나 생긴다구. 페트릭까지 데려가면 아마도 너희 아버지가 눈치 채실걸? 둘만 해도 충 분할 거야. 그리고 페트릭 그 녀석은 너무 귀족 냄새가 나서 들통 나기 쉬워. 그럼 다음에 연락할게.”
그 말을 끝으로 수정 구슬에는 더 이상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았다.
“제기랄, 까미유! 어쩔 수 없지. 원래 크라레스는 별 볼일 없는 국가니까 적기사 두 대만 해도 충분할지도…………. 죠드!”
“예, 후작 각하.”
“일단 수색을 위해 파견했던 모든 기사와 마법사들을 소환해라. 더 이상 근위 기사단에 빈자리를 놔두기는 힘들어. 언제 근위 기사단을 타국에 파견 하는 것이 결정될지도 알 수 없고.”
“옛! 후작 각하.”
“그리고 까미유로부터 확실한 보고가 들어오기 전까지 코타스 공작 전하께서는 적기사 제작에 너무 몰두하신 나머지 피곤이 쌓여 잠시 휴양을 취하 러 가셨다고 하도록!”
“명심하겠습니다, 후작 각하.”
“까미유가 잘해 주어야 할 텐데..
제임스는 최악의 상황, 즉 코타스 공작이 사망하지 않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바랄 수밖에 없었던 것도 지금 현 시점에서 공작의 사망 소식이 발표된다면, 그것도 누군가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이라면 코린트 군대의 사기(氣)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 했기 때문이다. 만약 진짜 코타스 공작이 사망했다면 그것은 전쟁이 끝난 후에 발표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그때 가서 철저한 피의 복수를 하려면 상 대의 흔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지금 조용히 자료를 모아 놔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