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8권 5화 – 전쟁의 시작

전쟁의 시작

“모두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전하.”

“좋아.”

그녀가 방 안에 들어서자 넓은 탁자에 빙 둘러 앉아 있던 인물들이 재빨리 일어서며 인사했다. 그녀가 가볍게 답례를 한 후 자리에 앉자 그들도 앉으 며 저마다 인사를 건네 왔다.

“작전 성공을 축하드리옵니다, 전하.”

“고맙소.”

그녀는 앉아 있는 스무 명 남짓한 인물들을 천천히 빙 둘러본 후 나직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경들, 갑작스런 회의에 시간을 내줘서 고맙소. 내가 경들을 소집한 이유는 이거요. 카드렛 경!”

그러자 한쪽에 앉아 있던 30대 초반의 남자가 일어서서 그녀의 호명에 답한 후 입을 열기 시작했다.

“예, 전하. 모두들 알고 계시겠지만 어제 선전 포고를 하기 위한 사절이 코린트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선전 포고는 물론 15일 후 그들이 코린티아의 수도에 도착한 다음 코린티아 황궁에 전달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전면전이 시작될 것입니다. 첩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코린트의 기사단들이 속속 국 경 주위에 배치되고 있는 형편이기에 폐하께서는 전쟁을 하루라도 뒤로 미루기 위해 선전 포고 사절단을 파견하기로 결정하신 겁니다. 상대도 이쪽 에서 선전 포고를 위한 정식 사절단이 파견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사절단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대국(大國)으로서의 예의라는 것을 알고 있 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었습니다. 이로써 본국은 15일의 시간을 벌었습니다. 그 15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본국의 흥망이 걸려 있다고 하겠습니 다.”

“공작 전하께서는 어떻게 하실 의향이시옵니까?”

“일단은 황궁에서 내려지는 결정에 따라야 하겠지. 하지만 본국의 관례상 전시의 모든 작전권은 총사령관에게 있는 만큼 본인도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겠기에 경들을 소환한 것이야.”

미네르바는 앉아 있는 인물들을 차근차근 훑어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경들도 알고 있다시피 코린트가 본국을 침공해 들어오기 위해서는 미란 국가 연합을 통과해야 한다. 그 때문에 코린트도 섣불리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이동 마법을 이용해 소수의 기사단만을 투입한다고 해서 전쟁을 끝낼 수는 없다. 정규군을 격멸하는 데는 기사단이 최고겠지만, 점령지 를 확보, 관리하는 데는 군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야. 문제는 코린트가 투입할 연합군 병력의 규모와 그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서 본국과의 전쟁 에 투입되느냐 하는 것이지.”

그 말에 공작의 옆쪽에 앉아 있던 장년의 사내가 당당한 어조로 말했다.

“미란 국가 연합은 예로부터 본국과 코린트의 사이에서 힘의 균형을 잡아 가면서 번성해 온 국가이옵니다. 그들은 지금의 이 균형이 깨지기를 원하 지 않을 것이오니 당연히 코린트는 미란을 짓밟지 않고서는 그들을 통과하기는 힘들 것이옵니다. 그 점도 생각해 두는 것이 어떠하는지요?”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쪽에서 그에 대한 반론이 튀어 나왔다.

“하지만 미란 국가 연합은 도저히 코린트를 막을 수 없소. 만약 코린트를 막으려고 든다면 자국이 전쟁터가 되어야 할 텐데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코 린트의 군대를 막을 필요가 그들에게 있겠소?”

“막을 힘이 있다면 가능하겠죠. 본국이 병력을 지원해 준다면………..?”

장년의 사내는 그의 말에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첨부해서 반박했다. 하지만 그는 뒷말을 흐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크루마의 군사력을 지원해 준다고 해도 코린트를 막는 데는 역부족일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본국의 기사단은 본국을 지키기에도 벅찬 형국인데 타국을 지원해 준다는 것은 말도 안 되오. 아마도 코린트는 현재 군사력으로 봤을 때 최소한 20 개 보병사단, 5개 기병 사단, 2백여 대가 넘는 타이탄을 투입해 올 거요. 물론 자국 방어 및 치안 안정을 위해 충분한 양의 기사단을 제외한다고 해도 말이오. 그 외에 코린트와 동맹을 맺은 국가에서 파견할 군대까지 감안한다면..

“하지만 경의 생각은 좀 지나친 감도 있소. 왜 꼭 코린트가 전면전으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이쪽에서 군사력을 증가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하는 형식의 무력시위 정도로 끝날 수도 있소.”

“무력시위? 하! 유감스럽게도 코린트는 본국에서 드래곤 한 마리에 해당하는 막대한 양의 드래곤 본을 삼킨 것을 알고 있소. 그들이 본국의 군사력 이 엄청나게 확대되기를 참고 기다려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요? 나라도 그 정도 무력시위 좀 한다고, 아니 그 무력시위의 결과로 상대국에서 더 이 상 무력 팽창은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성명을 발표하고 각서를 쓴다고 해도 믿지 않을 거외다.”

두 사람이 열을 올리기 시작하자 한쪽에서 그들을 향해 손을 내저어 보이며 열기를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자, 자, 너무 열을 올리지 마십시오. 현재 코린트의 군대가 이동하는 것을 파악해 본 결과에 따르면 결코 무력시위 정도로 끝나지는 않을 것 같습니 다. 5개 사단 병력은 타렌 왕국과의 접경에 있는 쟈므시에 서서히 집결 중입니다. 그리고 군대가 이동할 수 있도록 미란 국가 연합과 물밑 접촉을 시

도 중이죠. 그리고 본국을 둘러싸고 있는 세 개의 제국, 다섯 개의 왕국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코린트는 본국 을 멸망시킬 의사가 충분히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옳은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언제 전력을 투입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겠지요. 지금까지의 정보로 봤을 때 코린트는 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자신하고 있는 만큼, 한 번에 전 병력을 투입해서 끝장을 낼 생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식으로 전쟁을 벌인다면 코린트로서도 막대한 피해 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본국 주변의 국가들을 이리저리 쑤셔 대고, 또 본국의 동맹국들을 괴롭혀 이탈하게 만들어 서 본국을 고립시키는 작전을 선행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전쟁은 본국이 완전히 고립되고 난 후에 시작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들의 말에 미네르바의 옆에 앉아 있는 지크리트 루엔 공작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머리가 있는 놈들이라면 당연히 그 방법을 쓸 테지.”

“하지만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 않소? 현재로도 서로가 병력을 동원한다면 10대 6 정도로 본국이 밀리는데…, 거기다가 동맹군까지 가세한다면 10대 5도 되기 힘드오. 그런데도 코린트가 정석적으로 행동해 줄까?”

“좋은 지적이십니다. 현재까지 첩자들을 통해 들어오고 있는 정보로는 완전 고립 정책을 우선 시행하면서 천천히 전쟁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 입니다. 만약 기습전으로 나온다면 기사단을 후송해야 하는 군대가 어딘가에 대량으로 집결해야 함에도 그런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쟈므 시에 집결 중인 5개 사단도 아직까지 국경을 통과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코린트의 동맹국인 타렌 왕국에서 아직 허가가 떨어지지 않은 모양입니 다. 물론 타렌 왕국의 군함들이 렌트항에 속속 집결 중이라는 정보가 들어와 있는 것을 보면 곧이어 타렌의 국왕이 코린트의 5개 사단을 수송해 주겠 다고 허가할 것 같지만 말입니다.”

“흠, 코린트에 바다가 없다는 것이 이런 때는 매우 다행이군. 바다를 통한 이동을 하려면 일일이 타국의 도움을 받아야 하니 그 과정에서 정보가 누 설된다 이 말씀이야. 안 그렇소?”

“그 덕분에 바다 쪽은 거의 걱정하지 않고 있는 것 아니겠소? 하지만 타렌 왕국이 병력을 수송해 주려고 든다면 그 대비는 충분한가요?”

“예, 마틸다 장군이 정예 해군을 배당받아 지키고 있습니다. 마법사들까지 지원받았으니 아마도 무난하게 저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으음…, 이 상태로 코린트가 시간만 끌어 준다면 더 이상 좋을 것이 없을 텐데 말이오.”

“하지만 두 달 이상은 힘들 것이오. 겨우 두 달 동안 신형 타이탄을 생산해 봐야 몇 대나 만들겠소?”

“잘하면 2차 증강분까지는 인도될지도 모르죠. 2차분의 타이탄은 자금 문제상 엑스시온만 아직 제작하지 못하고 있지 않소? 뼈대와 장갑판은 모두 제작된 상태니까 신께서 도우셔서 드래곤 본만 빨리 팔아치울 수 있다면 가능성은 있소.”

“하지만 그 정도 황금을 가진 국가는 거의 없습니다. 또 드래곤 본은 엄청난 고가의 물건이지만, 그걸 가공하는 것도 매우 힘든 일이죠. 웬만한 국가 들의 경우 드래곤 본 가공은 생각도 못 하지 않습니까?”

“그거야 생각해 보나 마나 알카사스에 판매하게 되겠지. 하지만 알카사스에 대량의 드래곤 본이 유입되고, 또 엑스시온을 제작하기 위한 재료들이 대량으로 이곳으로 운반된다면 그걸 눈치 채지 못할 바보는 하나도 없다는 것이야. 알카사스와 본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사이도 아니고 말이지.”

이때 여태껏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던 미네르바가 피식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드래곤 본은 이동 마법진을 통해 알카사스로 운반될 것이니 경들은 걱정할 필요 없다. 문제는 엑스시온의 재료들을 어떤 경로로 가지고 오느냐 하 는 것이겠지. 재료들 중에서 가벼운 것들이나 소량 사용되는 것들은 모두 다 이동 마법진을 통해 본국으로 전송될 것이야. 하지만 타이탄 생산에 대 량으로 사용되는 미스릴이나 크로네, 황금, 은 따위의 금속성 물질들은 그 부피는 제쳐 두고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있지. 하지만 그것들은 비밀리에 따로 운반될 테니 그대들은 걱정하지 말라.”

“예, 전하. 하지만 그렇게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그러자 미네르바의 옆쪽에 앉아 있던 지크리트 루엔 공작이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선 타이탄 몇 대 정도 제작할 수 있는 분량은 우선적으로 마법진을 통해 전송받았다. 나머지는 천천히 공급받게 될 거야. 그리고 금이나 은이라 면 귀족이나 부자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징발이 가능하니 수급에 약간의 차질이 생기더라도 문제는 없다고 생각하네.”

“그 말씀을 들으니 안심이 되옵니다, 전하.”

일단 어느 정도 토론이 오고간 후 미네르바는 좌중을 둘러보며 조용한 어조로, 하지만 힘주어 말했다.

“일단 본격적인 전쟁이 벌어지기 전까지 2차 증강 작업을 완료해야만 해. 이건 칙명(勅命: 황제의 명령)으로 들어라. 이제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 다. 경들은 각자의 군대를 확실히 장악하여 경거망동을 삼가도록 하라. 그리고 타이탄을 보유한 기사들은 이동 마법진이 갖춰져 있는 5대 도시에 모 두 배치될 것이다. 그리고 마법사들을 철저히 보호하라.”

“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