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8권 7화 – 사라진 그라세리안 드 코타스 공작

사라진 그라세리안 드 코타스 공작

빛이 번쩍하면서 여섯 명이 나타나자 모두들 처음에는 기절할 듯이 놀랬다가 곧 그들 중에 낯익은 인물들을 발견하고는 서둘러 달려가 인사를 했다. 

“안녕하셨사옵니까? 전하.”

한눈에 봐도 엄청난 수련을 했다는 것이 뻔히 보이는 40대 중반쯤의 무사가 전하라고 부르자 파시르의 길게 나 있는 검상(劍傷)이 꿈틀했다. 아직까 지도 자신에게 아무런 언질이 없었지만 전하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소녀가 왕족일 가능성이 높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호오, 자네들이 여기는 어쩐 일인가?”

다크의 말에 그 기사는 황송하다는 듯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예, 폐하께서 찾으시는지라 이렇게 달려왔사옵니다.”

“흠, 나는 벌써부터 일을 벌일 정도로 멍청한 녀석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다크의 혼잣말에 그 무사는 약간 멍청해진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저,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

“몰라도 돼. 그냥 혼잣말일 뿐이다. 우선은 으음, 저기 식당에 가서 식사부터 하기로 하지.”

“예? 전하, 한시가 급한 때이옵니다.”

“닥치고 따라와.”

소녀가 앞서가자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팔시온을 선두로 일행들은 그녀를 따라 식당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그녀와 꽤 오랜 시간 동행하며 그 습성을 잘 파악하고 있던 팔시온, 미카엘, 지미, 라딘이 앞장섰고 그 뒤를 남은 인물들이 마지못해 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파이어해머는 어떻게 하면 자신에게 닥친 이 난관을 돌파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뒤로 쳐지고 있었다. 예로부터 드래곤과 드워프는 도저히 상종할 수 없 는, 아니 드워프는 드래곤에게 악랄할 정도로 착취만 당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때 그의 앞에서 걸어가던 아르티어스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 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도망칠 생각을 한다면 네 녀석 가죽을 통째로 벗겨 놓겠다.”

어쨌든 다크와 아르티어스는 꽤나 죽이 잘 맞는 부자(父子)였다.

“끄응…….”

일행들과 달리 식당 안으로 들어서는 파이어해머의 발걸음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웠다.

이것저것 주문한 음식들이 나오자 다크는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원래 그녀 정도의 고수는 음식물의 양을 따지지 않는 법. 많은 양의 음식물이 들 어오면 기를 이용해 음식물의 일부를 위의 한쪽 구석에 뭉쳐 놨다가 천천히 시간 날 때마다 소화시킬 수 있는 재간이 있었기에 이론상 하루 한 끼만 먹어도 충분했다. 물론 최악의 경우 며칠 더 굶어도 상관은 없었지만……………

“그래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저기 아르티어스 님이 떠나신 후에 본국과 통신 마법을 시도했었는데, 그때 로니에르… 님을 빠른 시간 내에 찾아 서 귀환하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무사는 식당 안에 사람이 원체 많아서 그들의 대화를 엿들을 수도 있었기에 그녀에 대한 말투와 칭호를 변경했다. 하지만 상관을 그런 식으로 부르 게 된 것이 원체 어색했는지 말투가 약간 이상하게 변했다.

“흠, 이유는 잘 모른다 이거지? 그런데 이런 중요한 때에 기사를 두 명이나 이곳에 보내다니, 자네는 누구의 지시를 받고 이리 온 거야?”

“옛, 저희들이 투입된 것은 로니에르 님께서 행방불명이 되신 것을 그분께서 아셨기 때문이죠. 저희들은 처음에는 순수한 호위의 입장에서 투입된 것입니다. 물론 나중에 아르티어스 님께서 합류하셨고, 또 오늘 아침에 새로운 지시가 내려졌지만 말입니다.”

“알겠다. 일단 돌아가기로 하지. 하지만 별 볼일 없는 일일 때는 각오해 두라구.”

둘 사이에 오고 가는 대화를 듣고 있던 아르티어스는 못마땅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뭐야? 여행은 이제 끝이야?”

다크는 눈치 없는 드래곤을 향해 못마땅한 시선을 보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격식을 차려 대답했다.

“예. 여행은 예전에 실컷 하셨다면서요? 그런데 왜 또 여행 타령이에요?”

“그래도 아들하고 오붓하게 둘이서 여행하고 싶었는데………….”

“나중에 실컷 같이 여행해 드릴게요. 그러면 됐죠? 이만 가자.”

일단 음식값을 지불한 후 그들은 한적한 도로로 나왔고, 마법사는 재빨리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열한 명에 말이 여섯 마리나 끼어 있는

엄청난 인원을 장거리 이동시키는 마법진이었기에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고 또 정교하게 그려졌다. 낮은 클래스의 마법사가 이 정도 숫자의 인원을 공간 이동시키려면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하면서도 정밀한 마법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르티어스는 마법사가 책을 힐끗힐끗 바라보면서 장시간에 걸쳐 공들여 낑낑거리며 마법진을 그리고 있는 것을 도와줄 생각도 하지 않고 다크와 정겹게 얘기를 나눴다. 남 은 일행들은 기다리다가 지쳐서 하품을 하기 시작할 때쯤 그 거대한 마법진이 완성되었다.

마법사는 일단 마법진을 발동시킨 후 이마의 땀을 소매로 훔친 후 다크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마법진이 완성되었사옵니다, 전하. 빨리 이쪽으로.”

말과 사람들이 모두 마법진 위에 올라섰을 때 마법사는 시동어를 외쳤다.

“공간 이동!”

“이상한 일이군.”

제임스 드 발렌시아드 후작은 보고를 올리고 있는 죠드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엄청나게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발렌시아드 후작 각하.”

“코타스 전하께서는 그 소녀의 방에 들어간 후에 그녀와 함께 행방불명. 그리고 그 소녀는 갑자기 어떤 수상한 놈과 함께 돌아와서 일행들이 묵고 있는 방 안에 들어간 후 모두 행방불명. 이게 말이 되나?”

하지만 보고를 올리고 있는 무사는 식은땀만 흘릴 뿐 감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상태니 추리조차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이상하군. 코타스 공작 전하라면 7사이클급의 대마도사이시다. 그런 분을 누가 감히 쓰러뜨릴 수 있다는 말이냐?”

그라세리안은 마법뿐 아니라 정령 마법까지 익힌 대마도사였다. 특히 그가 뇌전의 정령왕 카르스타까지 부릴 수 있다는 것은 제국의 최상층부만이 알고 있을 정도로 극비의 사항이었다. 정령 마법은 마법과 달리 주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동어만 외치면 곧바로 최상급의 정령 마법이 튀어 나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뛰어난 기사라고 해도 상대가 주문을 외워야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마법사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상대했다가는 결코 살아남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죠드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수긍했다.

“그렇지요.”

“마법의 탑에서 뭐라고 하더냐? 거기에도 당연히 물어봤겠지?”

“예.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동 마법진을 사용해서 이동한 경우 그 통보를 각 마법사 길드에서 접수하기에, 수도 내에 있는 다섯 개의 마법사 길드 모 두에서 정보가 취합되어 정리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답니다. 영구 이동 마법진은 숫자도 적고, 모두 군사적 목적만으로 이용되는 실정이기에 수도 내의 모든 마법사들은 이동 마법진을 그리거나 단거리의 경우 이동 마법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게 하루에도 수십 건이기에 그중에서 찾아내기 ……”

“정보가 모일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마법의 탑에 가서 오늘 통보되지 않은 공간 이동의 시간 기록과 그 추정 마력을 즉시 알아 와라. 그리고 다섯 개 의 마법사 길드에 사람을 보내어 여태까지 보고된 모든 이동 마법 신고서를 복사해 와라. 서둘럿!”

“옛, 각하.”

마법사 죠드가 지시를 받은 후 사라지자, 제임스는 자신의 오랜 친구 까미유 드 크로데인 백작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자네는 기사들을 지휘해서 혹시 남아 있을지도 모를 흔적을 조사해 주게. 마법사도 몇 명 데려가고.”

“그러지.”

“켄벨!”

까미유까지 나간 후 이제 혼자 방 안에 남아서 지시를 기다리던 마법사 켄벨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예, 각하.”

“너는 바로 마법의 탑에 가서 혹시 이동 마법 외의 강력한 마법 사용이 포착된 것이 있는지 알아봐라. 그리고 있다면 그곳에 가서 철저히 조사해. 우 선적으로 공격계 마법이다. 수도 내에서 그 정도 마법을 사용하는 놈이 있을 턱이 없을 테니 조사하기는 쉬울 거야. 그리고 혹시 다르게 포착된 마력 이나, 마나의 움직임 따위가 있었는지 그것도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예, 각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