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9권 17화 – 영구적인 동맹 조약
영구적인 동맹 조약
미란은 갑작스런 방문객으로 인해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란 연합의 의장인 지크프리트 데 가므 3세는 먼저 와리스 백작의 방문을 받고 그와 상세하게 상 의를 했다. 하지만 미란 연합은 왕들의 토의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지 의장의 독단에 의해 파병을 할 수는 없었다. 그 때문에 가므 왕국으로 네 명의 왕들이 소환되었 고, 그곳에서 그들은 모두들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시작했다. 미란 연합은 크루마를 제어하기 위해 강력한 힘을 갖춘 동맹국을 원하고 있는 실정이었기에, 막강한 기사단을 가지고 있는 크라레스를 도와주는 것에 대해 그렇게 회의적이지는 않았다.
“크라레스 왕국에서 사신이 도착했소. 구원병을 파견해 달라는 얘기더군.”
가므 의장의 말에 모두 파병이 의미하는 바를 깊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흐음, 나중을 생각한다면 조금 무리가 있더라도 크라레스를 도와주어 빚을 만들어 두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 연합의 기사단은 지금 엉망진창입니다. 도저히 남을 도와줄 입장이 아닙니다.”
“그건 본인도 잘 알고 있소. 크라레스에서 파견되어 온 와리스 백작의 말로는 기사단을 파견할 필요는 없다고 하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군대의 파병이오. 물론 신 분을 철저하게 숨긴다면 어려울 것은 없을 것 같소이다만…….”
“군대라면 괜찮겠지요. 본 연합에는 14개 사단과 기병 4개 여단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전시(戰時)가 아니니까, 한… 2개 사단, 심지어 4개 사단을 뺀다고 해도 별 문제될 것은 없을 겁니다.”
가므 의장은 그 의견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자네 말이 맞을 것 같네. 사실 전쟁이란 것이 타이탄들끼리의 결전에서 모든 것이 판가름 나니까 말이야. 문제는 본 연합의 군대가 별로 전쟁에 익숙하지 못 하다는 것인데……. 그들이 원하는 것은 점령지 곳곳에서 출몰하는 소규모 게릴라들을 제압하는 것일세. 점령지가 원체 넓다 보니 도저히 크라레스의 군사력 가지 고는 그걸 모두 제압하는 것이 턱도 없는 모양이더군. 전쟁을 하다 보면 점령을 해 나가면서 확보한 도시에 얼마간이라도 병력을 주둔시켜 둬야 할 것이 아닌가? 지 금 크라레스는 7개 사단을 이용해서 간신히 보급로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보면 될 걸세.”
가므 의장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며 토란의 국왕이 말했다. 7개 사단이라면 그렇게 작은 병력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점령지가 얼마나 넓은데 그러십니까?”
“크로나사 평원의 절반, 그러니까 미란 전 영토의 세 배 정도 되는 크기겠지. 그 영토를 13개 사단으로 커버하는 중이라더군. 그중에서 2개 사단은 기병일세.” 스므에의 국왕이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큭큭…, 그건 말도 안 됩니다. 겨우 그 병력으로 어떻게 그 넓은 땅덩어리를 먹을 생각을 했는지…….”
“웃을 일은 아닐세. 기사단은 지금도 계속 진격 중이야. 크라레스는 크로나사 평원 전체를 집어먹을 생각인 것 같아. 그러니까 13만이나 되는 병력을 가지고도 턱 도 없이 모자라는 것이지.”
“불가능합니다. 크로나사 평원이라면 미란 전체의 여섯 배나 되는 영토입니다. 그것을 잡아먹는 데 13개 사단이라면……. 겨우 13개 사단을 그 넓은 땅덩어리에 풀어 놓으면 한 개 도시에 몇 명이나 배치가 가능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죠.”
“그래서 구원병을 청하는 거야.”
“하지만 사태가 그 지경이라면 본 연합에서 4개 사단을 파병해 준다고 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습니다. 가망성이 없는 전쟁터라구요.”
“꼭 그렇게 생각할 것은 아니라고 보네. 크라레스의 기사단은 매우 강하지. 그건 벌써 크루마 전선에서 입증이 된 것이고, 또 크로나사 평원에서도 입증되었지. 동 십자 기사단의 전대 하나를 간단히 전멸시킨 것을 보면 모르나? 그리고 그 막강한 코린트가 왜 병력을 한 곳에 모으지 않고 확 퍼뜨려서 게릴라전을 벌이겠나? 전면 전으로 나간다면 더욱 힘들다는 것을 이미 알아챘기 때문이지. 그만큼 크라레스의 군대는 소수 정예라고 생각하면 될 거야.”
알렌의 국왕이 고개를 끄덕인 후 단호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파병한다고 하고, 어떻게 보내실 생각이십니까? 4개 사단, 4만 명의 병력입니다. 그들을 마법진으로 옮기실 겁니까? 아니면 아르곤을 통과시 킬 겁니까? 그도 아니면 코린트 영토를 가로지르게 만드실 겁니까?”
“그래서 하는 말일세. 어떻게 하면 조용하게 병력을 파병할 수 있겠나?”
“해로로 하면 어떨까요?”
쟈렌국왕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하자, 알렌의 국왕은 말도 안 된다는 듯 말했다.
“해로로 하면 빙 돌아서 가야 하기에 시간이 더 걸립니다. 일단 크루마에 양해를 구해 놓고 크루마를 가로질러서 라크비에 왕국으로, 그 다음에 랜트 연방으로 이 동해서 그곳에서 해로로 크라레스에 보내는 방법이 가장 빠르겠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토란의 국왕이 그 의견에도 회의적인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하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그게 가장 비밀스럽고도 빠른 길이라고 해도 최소한 3개월은 걸립니다. 원군이란 원래 적은 수를 파병하더라도 지금 당장 보내야 하는 것이죠. 그 때문에 보통 기사단을 보내 주는 것이구요.”
“그럼 한 번에 마법진으로 파견 가능한 인원은 몇 명인가?”
“아마도 각국의 마법사들을 몽땅 다 모은다고 해도, 한 번에 2천 명 정도가 고작일 겁니다. 물론 조금 무리한다면 하루에 3번 정도는 보낼 수 있을 테죠. 아시다시 피 크라레스와 본 연합과의 거리가 엄청나서 마력 소모가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무리하지 않고 보낸다면 하루에 4천 명씩 열흘이면 다 보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모든 마법사를 한 곳으로 불러 모아야 하겠지만요.”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지금은 괜찮지만 아마도 크루마는 나중에 마각을 드러낼 수도 있어. 나는 그때를 대비해서 크라레스와 좀 더 친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야.”
“의장의 생각이 맞습니다. 이번 휴전을 단번에 성사시키면서 크루마는 겨우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그 못된 놈을 파견해서 겨우 황금 3톤 정도로 입막음하지 않 았습니까? 본 연합이 그놈들을 위해 흘린 피를 생각한다면 그 열 배를 배상해도 부족할 지경인데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나오는 크루마를 더 이상 믿는다는 것은 자 살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대충 파견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지자, 가므 의장은 왕들을 쭉 둘러본 후 말했다.
“흐음…, 좋소. 그럼 크라레스에서 온 와리스 백작을 한번 만나 보겠소? 그편이 더 좋지 않을까?”
“찬성입니다. 먼저 그쪽의 의견을 들어보고 최후 결정을 내리기로 하죠.”
가므 의장은 고개를 밖으로 향해 외쳤다.
“밖에 누구 없느냐?”
그러자 호화로운 옷차림을 한 장교가 문을 열고 들어와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무슨 일이시옵니까? 전하.”
“와리스 백작을 들라고 해라.”
“예, 전하.”
곧이어 뚱뚱한 와리스 백작이 등장했다. 그는 매우 검소한 크라레스 황실의 분위기에 익숙했었기에 금은색이 번쩍이고 있는 이 호화로운 방 분위기에 주눅이 들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가 조금은 주눅이 든 자세로 들어오자 널찍한 원탁에 앉아 있던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 원탁과 떨어진 또 다른 탁자 옆에 놓여 있는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거기에 앉게나.”
“예, 전하.”
와리스 백작은 공손하게 대답한 후 권하는 의자에 앉았다.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탐색하듯 바라보는 다섯 명의 왕들, 모두 하나같이 만만해 보이는 인물은 없 었다. 그들은 머리에 똑같은 형태의 아주 가벼워 보이는 자그마한 왕관을 쓰고 있었는데, 왕관 중앙에 박혀 있는 커다란 보석의 색상은 각기 달랐다. 투명한 다이아 몬드, 녹색의 에메랄드, 적색의 루비, 청색의 사파이어, 옥색의 비취였다. 이들은 아마도 연합 왕국의 협정을 맺으면서 그 왕관의 형태를 정한 것 같았다. 왕관에 박 혀 있는 서로 다른 보석들은 다섯 개의 왕국을 뜻할 뿐, 각 나라의 상하 관계를 규정한 것은 아니었다.
“짐이 각 왕들과 상의한 결과 몇 가지 그대와 상의할 일이 있을 듯하여 불렀네.”
먼저 만났기에 얼굴을 알고 있는 에메랄드의 왕관을 쓰고 있는 가므 의장이 말하자 와리스 백작은 그를 향해 공손하게 대답했다.
“예.”
이번에는 루비의 왕관을 쓰고 있는 인물이 말했다.
“도대체 귀국은 그 전쟁이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시작한 것인지 그것을 알고 싶네.”
“예, 전하. 본국은 크로나사 평원에 현재까지 9개 보병 사단, 3개 용병 사단, 4개 기병 여단을 투입했사옵니다. 그리고 3개 기사단, 타이탄 1백여 대도 집어넣었지 요. 또 후방에서는 새로운 용병 사단들이 조직되는 중이옵니다. 아마도 1개월 내로 4개 용병 사단을 추가로 투입할 것이옵니다. 코린트의 경우 병력은 이쪽보다 우 위에 있을지 모르겠사오나 기사단의 전력에 있어서는 본국보다 훨씬 뒤쳐지는 것이 사실이옵니다. 지금 코린트의 병력 배치로 봤을 때, 본국을 향해 총력전을 벌일 수 없기에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되옵니다.”
매우 솔직하게 자신들의 어려운 점을 지적하고는 있었지만, 미래의 전망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하는 와리스 백작을 향해 모든 왕들은 의외라는 듯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구원병을 청해 올 때 자신들이 어떻게 어려운지, 또는 대비책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대충대충 넘기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흐음…, 어째서 승산이 충분히 있다는 말인가?”
“예,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렇다는 말이옵니다. 지금 현재는 게릴라로 인해 전방으로 가는 물자들이 막히고 있사옵고, 또 적들이 결전을 회피하는 덕분에 어려움 이 많사옵니다. 하지만 조만간에 새로이 용병들을 모집하여 투입할 것이고, 또 한 달 내로 본국에서 대기하고 있던 예비 기사들까지 투입할 예정이오니 지금이 가장 중요한 때이옵니다. 지금 도와주신다면 그래지에트 폐하께서는 절대로 그 은혜를 잊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와리스 백작은 현재 전황을 비교적 솔직하게 말했다. 외교의 물꼬를 트는 첫 번째 과제는 상대와의 신뢰성을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롭게 예비 기사들을 투입한 다는 말에 비취 왕관을 쓰고 있는 인물이 질문했다.
“귀국에서 새롭게 투입할 기사의 수는?”
“그래듀에이트만 2백여 명이옵니다.”
와리스 백작의 답변에, 비취 왕관을 쓰고 있는 인물은 놀랍다는 듯 말했다.
“대단하군. 그래듀에이트만 2백여 명이면 전세를 뒤집기에 충분하겠지. 그런데 왜 진작 그들을 투입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오?”
“예, 지금 그들에게는 따로 주어진 비밀 임무가 있사옵니다. 그 때문에 지금 당장은 투입이 불가능하옵니다. 절대로 미란 연방에는 폐가 되지 않도록 하겠사오니 원병을 파견해 주셨으면 하옵니다.”
2백여 명의 그래듀에이트들은 모두 포로들이었고, 그들은 지금 세뇌 중이었다. 토지에르 경의 말에 따르면 아마도 1개월 내에 그 작업도 마무리될 것이다. 그렇지 만 국제법에 위반되는 세뇌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와리스 백작은 대충 비밀 임무라는 말로 회피해 버렸던 것이다.
한참 서로 쑤군거리며 의논을 하던 가므 의장이 뚱보를 향해 말했다.
“왕들과 상의해 본 결과, 어려운 그대들을 일부러 핍박하는 것 같아 별로 모양새는 좋지 않지만……
가므 의장은 일부러 한동안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원군을 파병하는 대신 몇 가지 조건이 있소.”
일단 말이 끊어졌을 때 가슴이 콩닥콩닥하던 뚱뚱이는 재빨리 말했다. 사실 조건만 들어 보는 데야 시간만 다소 지체될 뿐, 손해 볼 것은 없었기 때문이다. “무엇이옵니까? 전하.”
“우선, 귀국과 영구적인 동맹 조약을 맺었으면 하오.”
뭐 엄청난 조건을 제시할 줄 알았는데 상대가 의외로 당연한 것을 요구해 오자 와리스 백작은 망설일 필요도 없이 즉각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제 혈맹이 될 것이온데, 그것은 당연한 것이옵니다.”
“그렇게 생각해 준다니 고맙소. 그리고 두 번째 조건은, 귀국의 황태자비는 우리 미란 연합의 왕족들 중의 한 명으로 해 줬으면 좋겠소. 물론 그것이 어렵다면 두 번째 왕자비라도 상관은 없소.”
와리스 백작은 가므 의장이 제일 뒤에 붙인 말의 의미를 읽었다. 두 번째 왕자비라도 상관없다는 것은, 그냥 맨입으로 때우기는 좀 이상하니 서로 간에 신뢰 관계 를 더욱 돈독히 쌓기 위하여 사돈을 맺자는 의도뿐이라는 사실을……. 그것도 이쪽의 딸을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쪽의 딸을 주겠다는 것이니 별로 손해될 것도 없 었다.
“예, 아직 황태자 전하께서는 반려자가 없으시니 그것 또한 어렵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만약 본국이 나중에 어려움에 처한다면 힘을 아끼지 말고 도와줘야만 하오.”
마지막의 말이 뜻하는 바가 뭔지를 짐작하며, 뚱뚱이는 속으로 미소 짓고는, 공손하게 하지만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폐하께서도 이렇듯 어려운 때 도와주신 미란 연방을 결코 잊지 않으실 것이옵니다.”
“좋소, 문서로 작성합시다.”
와리스 백작은 서류를 작성하기에 앞서 염치불구하고 궁금한 것을 물었다.
“저…, 그런데 얼마나 파병할 생각이시온지?”
“여러 왕들과 의논해 본 결과 4개 보병사단 규모가 적합할 것 같소. 마법진을 이용해서 10일에 걸쳐 보내 주겠소.”
4만 명이나 보내 주겠다는 말에 와리스 백작의 입이 딱 벌어졌다. 미란의 사정을 잘 아는 그로서는 그 많은 병력이 의미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감격한 듯 다섯 명의 왕들을 향해 말했다.
“4개 사단이라고요? 그렇게나 많이……..
가므 의장은 당연한 듯이 말했다.
“도와줄 때는 화끈하게 도와주는 것이 미란 연합의 방식이오. 원래가 미란은 상업 국가. 밀어줄 만한 상대가 나타났을 때 결코 주저하지 않소. 나중에 형편만 된다 면 기사들도 파견해 주겠소.”
“너무나도 황송할 따름이옵니다. 이 은혜 기필코 잊지 않겠사옵니다.”
서류를 다 작성하고 사라지는 뚱뚱이를 바라보며, 가므 의장은 옆의 왕에게 중얼거렸다.
“크루마의 그 뻔뻔한 사신 녀석과는 비교가 안 되는군.”
“상당히 믿음이 가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속은 잘 모르는 것이니…….”
“상대가 속이려고 든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겠소? 자, 모두들 오랜만에 만났으니 함께 한잔하는 게 어떻겠소? 아주 좋은 술을 구해 놨소.”
“그거 좋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