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향 9권 24화 – 전쟁과 창녀의 관계

전쟁과 창녀의 관계

“공작 전하, 제5유격 전대에서 적 기사단과 조우한 모양이옵니다.”

“뭣이?”

부하의 다급한 보고를 받고 크로아 공작은 튕기듯이 일어났다. 적 기사단과의 접전 소식은 그가 정말이지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이었다. 놈들도 이제 이 끝도 없 을 것 같은 전투를 슬슬 결말지을 생각이 든 모양이었으니까 말이다. 크로아 공작은 통신실로 달려가며 물었다.

“적의 규모는??

공작의 물음에 상대는 난처한 듯 대답했다.

“그게…, 정확히 알 수가 없사옵니다. 지금 예상으로는 최소한 3대 이상이라는 것밖에는.. 그리고 통신을 방해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 전력이 있는 것이 확실 하옵니다.”

“통신의 내용이 뭐였기에 그러느냐?”

“적 타이탄이 나타났다는 한마디뿐이었사옵니다. 그리고 통신이 두절되었사온데, 아마도 마법사가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겠지요. 유격 기사단의 경우 타이탄전이 시작되면 그래듀에이트 두 명을 포함한 기사 여섯 명이 마법사를 보호할 수 있사옵니다. 아마도 마법사가 당했다는 것은 그들도 모두 죽었다는..

“가능성은 있지.”

통신실에 도착한 공작은 마법사를 향해 물었다.

“제5유격 기사단이 활동하던 영역은 어디냐?”

“텔라크 지역이옵니다. 전하.”

“최후에 들어온 통신은?”

“안티온 마을 부근에 나타나던 게릴라의 본거지를 포착했다는 것과, 그들이 가고자 하는 좌표였사옵니다.”

공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마법진을 준비해라. 내가 직접 가겠다.”

“예? 전하께서 직접 가시는 것은 위험하옵니다.”

“무슨 소리냐? 너는 내 실력이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거냐? 군소리 말고 빨리 준비해라.”

“예, 전하.”

곧 상대의 유격 기사들을 상대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열 명의 기사들이 집합했다. 공작은 그들과 함께 마법진이 완성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번 작전의 생 명은 시간이었다. 놈들이 이쪽의 기사단을 전멸시킨 후 돌아간 다음에는 그곳에 도착해 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저 젊은 마법사의 마법진 그리는 속도는 도저히 공작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윽고 젊은 마법사가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는 신호를 하자, 공작 일행은 재빨리 마법진 위에 올라갔다. 마법사는 일행들을 향해 주의 사항을 말했다.

“지도에 의하면 전하께서 가시고자 하는 곳은 숲이옵니다. 하지만 숲에는 나무들이 어느 정도 높이인지 알 수 없어서 위험하니 그곳은 안 되고, 좀 더 적합한 지형 으로 가야합니다. 마침 1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바위들이 있는데 그곳으로 이동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약을 대비하여 상공 5미터 정도 높이를 목표로 공간 이동할 것이니 모두들 충격에 대비하십시오. 그리고 누구 한 분은 제가 안전하게 밑으로 내려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마법사는 시동어를 외쳤다. 그와 동시에 주위가 뿌옇게 변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마법진으로 공간 이동을 할 때의 전형적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 했다. 주위가 핑핑 도는 것 같고, 뭔가 어지러운 느낌이 잠시 들었다. 그리고 곧이어 몸은 공간 이동을 완료했다.

모두들 눈앞이 확 밝아짐과 동시에 몸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자, 침착하게 충격에 대비했다. 크로아 공작은 직접 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마법사를 붙잡고 아래로 떨 어졌다. 그들이 공간 이동한 장소는 돌과 바위들이 많아서 그런지 키가 작은 잡목들과 잡초들이 군데군데 솟아 있었다.

마법사는 해를 보고 방향을 가늠해 본 후, 한 방향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목표로 하시는 장소는 저쪽으로 1킬로미터 정도 지점이옵니다.”

공작이 앞장서자 기사들 중의 한 명이 마법사를 껴안고 달렸다. 이윽고 목표 지점에 도착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마법사는 이리저리 둘러보며 변명을 늘어 놓았다.

“어? 이상하네, 전하께서 오고자 하신 곳은 이곳이 틀림없사옵니다.”

그러나 경험이 부족한 젊은 마법사의 말은 무시한 채, 공작은 주위를 빙 둘러봤다.

“자, 모두들 흩어져서 찾아라. 아마도 이 근처에 있을 것이다.”

“옛, 전하.”

공작이 거느리고 온 열 명의 그래듀에이트들은 모두들 오너급이었기에 공작 앞에서 자신들의 실력을 과시하듯 최대한 빨리 사방으로 흩어졌다.

“자네는 마법으로 찾아보게나. 혹시 뭔가 흔적이라도 있는지…….”

“옛, 전하.”

공작이 거느리고 온 마법사도 고작 4사이클급의 수련 마법사였기에, 진짜 마법사라면 비행 마법(Aviation)이라도 사용하면서 찾았겠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그는 마법을 이용해서 나무로 올라가는 그 마나도 아끼기 위해서 나무를 하나 택한 후 낑낑거리며 올라갔다. 그런 젊은 마법사의 행동을 보면서 공작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마법사도, 기사도, 병사도, 모든 게 너무나 부족하다는 것이 절실하게 느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법사가 나무 꼭대기에서 이리저리 한참을 둘러보고 있는 사이, 기사 한 명이 재빨리 돌아와서 공작에게 보고했다.

“저쪽에 건물들이 있사옵니다, 전하.”

“그래? 그곳으로 이동한다. 나머지를 빨리 불러 모아라.”

“옛!”

공작이 그쪽을 향해 달려갈 때 뒤쪽에서 마나를 실은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퍼져 나갔다.

공작이 목표지에서 본 것은 시체들뿐이었다. 공작은 시체들의 상처를 주의 깊게 살펴보고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때쯤 나머지 기사들이 마법사를 데리 고 나타났다. 그들도 거의 1백여 구에 달하는 시체들을 보고는 재빨리 조사를 시작했는데, 마법사만이 이 처참한 장면에 놀랐는지 하얗게 질린 채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시체들의 상태로 봤을 때 죽은 지 약 세 시간 정도 흐른 것 같사옵니다.”

“흐음, 그렇군.”

공작은 여기저기서 흔적이 될 만한 것을 필사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곳에 시선을 멈췄다.

“저것은 여자 시체가 아닌가?”

“예?”

공작이 가리킨 곳을 향해 기사 한 명이 몸을 날렸다. 그 기사는 시체들을 쭉 둘러본 다음 공작을 향해 말했다.

“창녀들의 시체이옵니다. 전쟁터에는 어디를 가도 창녀들이 있사옵니다. 아마도…….”

공작은 한 손을 살짝 들어 상대의 말을 막으며 자상하게 말했다.

“아, 너무 심하게 학살했다는 것을 질책하는 것은 아니니 변명할 필요는 없네. 사냥꾼의 오두막을 중심으로 대충 얼기설기 건물들을 급조해서 지어 놨기는 하지 만, 내가 말하는 것은 창녀들이 있는 곳이라면 여기는 본진일 거라는 것이지.”

공작의 말대로 전쟁터와 창녀들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대부분의 경우 창녀들은 포주를 중심으로 마차를 타고 돌아다니며 병사들에게 몸을 팔았다. 이런 식으로 전쟁터를 전전하는 창녀들이라면 당연히 싸구려 창녀들이 대부분이었고, 아주 저질인 여자들인 경우가 많았지만 상관들은 그녀들이 군대를 따라 이동해 오 는 것을 묵인해 주었다. 병사들이 욕구를 해결할 만한 최소한의 방법마저 막는다면, 근처 인가의 여자들을 겁탈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상관들의 묵인 하에 창녀들이 군대의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고는 하지만 그녀들은 될 수 있는 한 며칠 단위로 작전을 나가는 패거리를 따라다니지는 않는다. 왜냐하 면 그들은 작전을 수행한 후 본진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습지요.”

“그렇다면 아마도 이 녀석들은 여기서 몇 명 생포해서 고문을 했겠지. 그런 다음 공격 조를 따라갔을 가능성이 커. 만약 이곳처럼 고정적인 목표라면 여기를 전멸 시킨 후에 전과에 대한 보고와 함께 그 다음 예정지를 알려 왔었겠지.”

공작의 세밀한 추리에 부하들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것 같사옵니다, 전하.”

“문제는 그 녀석들이 어디로 갔느냐 하는 것인데……. 여기서 가장 가까운 본국의 보급 루트가 어디냐?”

공작의 질문에 기사는 황급하게 지도를 꺼내어 보면서 말했다.

“예, 여기서 주도로까지는 42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사옵니다.”

“좋아, 그쪽으로 가자. 그리로 가다 보면 뭔가 단서가 있을지도 모르지.”

“옛, 전하.”

중간 중간에 서서 주위를 관찰하는 것을 제외하고 공작 일행은 최대한 빨리 이동하기 시작했다. 말은 처음부터 가져오지도 않았기에, 그들은 그냥 달릴 수밖에 없 었다. 하지만 모두 그래듀에이트를 상회하는 인물들이었기에 큰 문제가 없었다. 물론 마법사를 제외하고. 마법사는 꼭 필요한 존재였기 때문에 누군가 한 사람은 마 법사를 안고 뛰어야 했다.

한참 달리고 있던 공작은 갑자기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부하들에게 말했다.

“저쪽으로 가자.”

상관의 돌연한 행동에 부하들은 의아해하며 물었다.

“예? 왜 그러시옵니까?”

“저쪽에서 연기가 보이는데 자네들은 안 보이나?”

“예? 저희들의 눈에는…….

“어쨌건 저쪽으로 간다.”

그들은 공작의 지시에 따라 오른쪽으로 꺾어져서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을 더 달리자 몇몇 기사들의 눈에도 미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정말이지 난장판이었다. 수많은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곳곳에 솥이 걸려 있었다. 이들을 이곳까지 안내한 연기는 솥 밑 에 피워져 있는 불에서 나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들은 식사 준비를 하다가 제5유격 기사전대에 걸려서 전멸당한 모양이었다.

이리저리 둘러보던 기사가 한쪽을 가리키며 공작을 향해 말했다.

“저쪽에 타이탄 발자국이 보이옵니다.”

일단 이곳이 목표 지점이라는 것을 확인한 공작은 재빨리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이런 게릴라들 죽이는 데 구태여 타이탄을 꺼냈을 리는 만무하기 때문이었다. “너희 넷은 타이탄을 꺼낸 후 만약에 있을지도 모를 적의 공격에 대비해라. 그리고 자네들 여섯은 풀숲을 조사해라. 혹시 생존자가 있는지…….”

“옛, 전하.”

모두들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동안, 공작은 타이탄들의 발자국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호오…, 여섯 대군. 3대 6으로 싸운 것인가? 상당한 실력자들이군. 그리고 타이탄의 발자국 모양을 보아하니 미네르로군. 미노바는 형태는 같지만 이것보다 조금 더 크니까 말이지. 은십자 기사단 녀석들인가?”

쭉 발자국을 따라가던 공작은 자신의 부하들이 적을 따돌리고 탈출에 성공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법이로군.”

미소를 지으며 그 수법을 칭찬하고 있는데, 숲 속으로 들어갔던 부하들 중의 한 명이 다가와서 보고했다.

“공작 전하, 숲 속에서 시체들을 발견했사옵니다.”

공작의 미간에 잠시 그늘이 스쳤다. 오너들은 어떻게 해서든 탈출한 모양이지만 그 외의 부하들은 적들에게 당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만큼 크 라레스는 기사 한 명이 아쉬운 때였다.

“그래?”

“예, 마법사 이하 일곱 명 모두 전사했사옵니다.”

“흐음, 역시……. 가 보자.”

“옛, 전하.”

공작이 숲 속에 도착했을 때, 여기저기 쓰러진 시체들이 보였다. 그중에서 시커멓게 탄 시체는 아무래도 적의 마법에 격중된 듯 보였다. 시체들을 검사하고 있던 기사들 중의 한 명이 공작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에게 다가가서 보고했다.

“20분쯤 전에 죽은 것으로 추정되옵니다. 아직 온기가 식지 않았사옵니다.”

“그런가?”

공작은 대충 시체들의 쓰러진 모양새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아마도 저쪽에서 상대편 마법사가 나타난 모양이군. 거기서 이쪽 마법사를 공격했겠지. 그걸 저기 쓰러져 있는 기사가 마법의 강도를 채 가늠하지도 않고 마법사 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거고 말이야. 모두들 훌륭하게 싸웠구나.”

공작의 말이 끝나자 그는 자신이 조사한 바를 설명했다.

“아마도 적은 기사 네 명과 마법사 한 명 이상인 듯하옵니다. 시체들에 남겨진 검상(劍傷)으로 봤을 때 모두들 그래듀에이트급을 상회하는 실력자들임이 확실하옵 니다.”

“그렇겠지..”

공작은 마법진을 앞에 두고 단정하게 죽어 있는 마법사의 시체를 중심으로 사방에 흩어져 있는 시체들을 자세히 바라봤다. 대충 어떻게 싸웠기에 이런 모양새가 만들어졌는지 이해한 공작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모두들 통신 마법을 시도하는 마법사를 목숨을 아끼지 않고 훌륭하게 지켰다. 이들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것은 적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지, 이들이 무능하기 때문은 절대로 아니다. 이들의 시체를 정중하게 거둬들여라. 크리프!”

호명당한 기사가 재빨리 대답했다.

“옛, 전하.”

“이렇듯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려다가 전사한 이들의 유가족들에게 조의를 표하는 것은 수도에 남아 있는 될 수 있다면 높은 직위에 있는 인물이 직접 하라고 지 시해라. 그렇게 하면 병사들의 사기도 높아질 것이다. 아마도…, 레이폴트 후작 정도라면 좋겠지.”

“옛!”

“그리고, 이들 모두를 국상(國喪)으로 처리하고, 각기 작위를 한 단계씩 높여 줘라. 그리고……”

크로아 공작은 언뜻 마음속에 떠오른 금액을 말하려다가 그게 너무 많은 것 같은 생각이 들자 그 액수를 반으로 줄인 다음 말했다.

“그리고 유가족들에게 연금으로 그래듀에이트는 40골드, 기사는 20골드, 수련 마법사는 10골드씩 매월 지급하도록!”

“옛, 전하.”

“이제 돌아갈 준비를 하도록 해라!”

“옛!”

공작은 부하들이 시체들을 거두고 있는 것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마법사를 향해 말했다.

“나하고 저 시체들을 크로돈으로 보낼 수 있겠나? 크로돈에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 그리고 거기에 가는 길에 시체는 내가 가지고 가지.” “예, 가능하옵니다, 공작 전하.”

“좋아, 그렇다면 우선 크로돈으로 가는 마법진을 그려라. 그리고 내가 공간 이동한 후에 좀 쉬었다가 본진으로 돌아가도록!”

“옛, 공작 전하.”

마법사는 즉시 거대한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