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권 20화 – 중양표국은 영원한 밥이었다

중양표국은 영원한 밥이었다

한바탕 소란이 있었던 날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사천성 지역을 벗어나 강호에는, 사천 아미산 밑자락에 위치한, 중원 십대표국 중 수위를 점하고 있던 중양표국이 어떤 정체 모를 무리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받아 깨졌다는 풍문이 돌았다.

중양표국이 완전히 깨졌다는 소문의 진위 여부는 정확히 판명되지 않았다. 손님들의 표물은 손톱만큼의 흠집도 없이 모두 무사했고, 어떤 이유에선지 표사들 중에 도, 방 밖과 집 밖, 또는 표국 밖을 두문불출하는 사람들의 수는 많아졌지만, 정작 사상자는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정체 불명의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한 것은 사 실이지만, 맡겨진 표물들은 모두 무사했고, 사상자는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소문은 엉뚱한 방향으로 춤을 추고 있었다. 표물을 노린 정체 불명의 괴한들에게 표국이 습격을 당했지만, 중양표국의 모든 표사들이 목숨을 걸고 용감히 맞서 표물을 지켜낸 덕분에, 표물을 노리고 달려든 정체 불명의 침입자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꽁지를 말고 물러났다는 이야기였다. 진실은 뒤바뀌고 탈색된 다 음, 다시 물들여지고 채색되어지는 각색의 총체적인 과정을 거쳐, 강호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 진실 속에는, 국주 장우양이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는 노력을 들여 모아 놓았던 재산 대부분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음을 아는 자는 없었다. 또한, 그 재산 의 상당 부분을 피해 보상비 명목으로 뜯어 간 사나이, 비류연의 존재가 있었음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러한 불명예를 주제로 한 내면 깊숙한 비밀은 외부의 다 른 사람들에게 퍼져 나가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중양표국의 전 표사들은 모두 입에 지퍼를 굳게 채우고, 묵묵히 함구했다. 자신의 일자리와 목숨은 중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중양표국에 표물을 맡기면, 중양표국 자신이 어떠한 피해를 당해도, 심지어 몰살의 위기가 닥치더라도 표물만큼은 굳건하게 지켜 낸다는 식으로 소문이 각색되어 오히려 전보다 중양표국에 표물을 맡기려는 상인이나 무림문파의 수가 배로 늘게 되었다. 심지어 표물을 맡기기 위해 표국 밖에 줄을 서는 웃지 못할 현 상까지 생겨나게 되니, 중양표국은 예전의 전성기를 능가하는 호황을 누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사업의 규모는 오히려 전보다 더 커지게 되었다.

중양표국 이야기에 별 관심이 없지만 지극히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건의 원인 제공자라고 할 수 있는 비류연과 그의 제자인 당삼의 상태는 많이 호전되어 완쾌 를 앞두고 있었다. 나머지 주작 단원도 한 달 동안의 마지막 마무리를 통해 이제 직감적으로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으니, 그 문제가 지금 비류연의 골머리를 아프게 만들고 있었다.

“크아아, 돈이 없어.’

돈, 언제나 항상 이것이 말썽이었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아마 미래에도 그럴 것이다. 역시 금전 문제는 사람의 생활과 직결되는 부분이기 때문 에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냐고!?

비류연이 좌로 두 번 굴렀다. 방바닥이었기 때문에 흙은 묻지 않았다. 합숙 훈련소의 방바닥은 물론 나무로 되어 있었는데 깔개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질 좋고 결 좋은 고급 오동나무 판자를 사용했기 때문인지, 비류연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돈, 돈. 도오온!”

다시 비류연이 우로 두 번 굴렀다. 비류연은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고 방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고민이라는 수렁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고민의 시간 이 길어질수록 육체를 이탈하는 머리카락의 개수는 점점 증가할 추세였다. 계속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가는 비류연의 머리카락 개수는 점점 줄고 최악의 경우, 뿌리 까지 뽑힌 머리카락은 재생의 기미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최악의 가정인 민둥 대머리가 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그만큼 비류연의 머리에서 강 제 이탈되어지는 머리카락의 개수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쥐어잡아 댕겨도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다. 역시 사고력(思考力)의 증가(增加)는 뽑 혀 나오는 머리카락 개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인체 실험을 통해 그 사실의 진위 여부를 눈물 나게 확인 체험해 본 비류연은, 탈모 행위를 중지하고 사태 해결을 위한 다른 해결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애들을 천무학관까지 돌려보내려면 당연히 그 여정에 해당하는 여행 경비가 필요하다. 여기까지는 다 좋다. 그런데 문제는 돈이 없었다. 예산은 이미 다 써 버리고 땡전 한 푼, 동전 한 닢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지출에서 비류연 자신의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린 돈들은 이미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자신 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돈은, 그 돈의 근본과 실례(實例)와 이력이 어떻게 되었던 간에, 그런 사실에 상관없이, 자신의 돈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비류연의 철학이었다.

처음 계곡에서 원인 모를 사인으로 죽은 할아버지의 품 속에서 나온 편지에 따르면 3개월 간 사부질하면서 애들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경비를 동봉해 보내고, 만 일 애들을 가르치다가 돈이 부족하게 되면 거기에 쓰여 있는 천무학관 산하의 은장에 경비를 추가로 요구하라고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마저도 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미 2개월 전에 귀향비 명목으로 상당 액수의 돈을 우려냈기 때문이다. 예정된 수련 기간이 3개월이었기 때문에, 3개월이 지나면 더 이상 의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기한이 지나기 전에 귀향비 명목으로 마지막 돈을 우려내었던 것이었다. 물론 그 돈은 고스란히 비류연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 다.

말을 타고 가도 족히 한 달은 걸릴 여정이었다. 두 발로 걸으면 시일이 더 소요되는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 시일이 더 걸린다 함은 경비가 더 많이 요구된다는 이야기와 같았다. 하지만 말을 사 주기에는 너무 비싸고, 그러다 보니 천상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천혜의 교통 수단인 발을 저렴하게 이용하는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신법과 경공을 써서 망원경巨視器: 멀리 보기 위한 기구)에 땀띠 나게 뛴다 해도, 한계 이상으로 여정을 단축하기는 힘들 것이다. 어차피 16명이 한 달 넘게 여행하기 위한 경비가 적은 액수의 돈일 리가 만무했다. 그렇다고, 안 보낼 수도 없고..

그래서 지금 비류연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에 빠져 있는 것이다. 대가리를 굴리고 굴려, 귓구멍에 연기 날 때까지 잔머리를 굴리는데도 획기적이고 진취적이며 사 태 해결을 용이하게 할 유용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던 중이었다.

‘크아악! 공짜로, 공짜로, 공짜. 안 되면 최소 경비라도……. 어떡하지, 돈 한 푼 안 들이고 어떻게 쟤들을 보낼 수 있을까? 그것도 16명이라는 인원을 말이다. 무 슨 뾰족한 수가 없을까??

안 굴리던 잔머리까지 함께 굴리려니 정말 돌아가실 것만 같았다.

“뭔가 좋은 생각이 없냔 말이야? 여행, 귀향, 16명, 공짜, 경비, 천무학관, 파양호, 남창, 무림인, 무공…….?

마치 주문영창(呪文靈唱)처럼 생각의 파편들을 열심히 열거하던 비류연은 불현듯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어 사고(思考)의 중얼거림을 멈추었다.

‘힘? 쎄~에……. 짝, 그래 바로 그거야. 크하하. 이제 모두 해결됐다, 모두 해결됐어. 이의 없지? 있으면 죽어, 죽는다고. 하하하.”

한 줄기 유성처럼, 일섬(一閃)의 뇌전(雷電)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비류연이 지금까지 머리 싸매고 고민했던 것들을 모두 쾌도난마(快刀亂麻)해 줄 비상한 방법이 떠올랐던 탓이다. 마침내 비류연은 그의 제자들을 부담 없이 돌려보낼 준비를 끝낼 수 있었다. 방법을 생각해 내었으니 이제는 오직 실천만이 남았을 뿐. “내일은 다시 한 번 마을에 다녀와야 되겠군.’

비류연은 곧 유성이 되어 떨어질 것만 같은 밤하늘의 별을 보며 내일 해야 할 일들을 차근차근 정리해 보았다. 천공에 수놓아진 빛 하나가 꼬리를 그리며 지상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유성이었다.

머리를 싸매며 고심하던 비류연이 찾아 낸 획기적이며 유용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바로 중양표국이었다. 아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인가? 비류연은 이제 항구 적이며 영구적인 중양표국의 원수가 되기로 결심한 것일까? 중양표국을 이용하자고 해서 다시 제자들과 함께 쳐들어가서 강제로 여비를 뜯어 내자는 생각은 절대 아니었다. 비류연, 그가 생각한 것은 바로 표행이었다.

그의 제자 16명의 목적지는, 천무학관이 위치한다는 남창(南昌)의 파양호 변. 그곳은 천무학관이라는 거대한 존재 때문에 명실공히 백도무림의 중심지가 되어 있 는 곳이다. 덕분에 남창은 더욱 더 번영의 길을 걷고 있었다.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에 따라 소모되는 용품, 물품의 양도 증가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였 다. 백도무림의 중심지라고 불릴 정도가 되면, 그곳을 향해 이익을 찾아 모여드는 사람들의 수가 부지기수인 것은 당연했다. 그래서, 그렇게 번화하고 활발한 도시 남창을 향한 표물들과 표행 문의는 언제 어느 때나 쉼 없이 끊이지 않고 표국으로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수많은 양의 재화가 들어갔다 나가기를 반복하며 거래 되는 곳이 바로 남창(南昌)이었던 까닭이다.

요즘의 중양표국은 어찌된 일인지 예전보다 일이 들어오는 수와 양이 더욱 늘어났지만, 들어오는 표행에 비해 일할 표사의 수는 현저히 부족해 일손이 달리고 있 는 실정이었다. 게다가 한 달 전의 그 생각하기도 싫은 사건 때문에 뼈가 부러진 반병신의 표사들이 많아 제대로 써먹지도 못할 상황이었다. 표사를 다시 뽑는다 해 도 높은 무공 실력을 가진 좋은 표사들을 뽑기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는 표국에 산재되어 있는 남창을 향한 표물들. 비류연이 주목한 부분은 바로 이 부분이었다. 그리하여 비류연은 다시 한 번 중양표국의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물론 이 일은 중양표국의 입장으로 볼 때, 절대 달갑지 않은 일임은 틀림없었다.

가을의 끝, 춥지도 덥지도 않은 기분 좋은 날씨의 오후. 평화로움이 넘치는 가을의 막바지에 두 명의 표사가 표국의 정문을 지키고 서 있었다. 한 달 전에 누군가의 발길질에 의해 망가졌던 정문도 이제는 말끔히 수리되어 문 중앙의 움푹 패들어간 자리만 빼고는 모두 말짱했다. 그 문을 등 뒤로 하고 지금 장팔과 이삼은 표국의 경비를 서고 있는 중이었다. 오늘은 바로 장팔과 이삼 자신들이 한 조를 짜서 경비를 맡아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 표국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비류연의 그림자를 확인한 일반 표사 장팔과 이삼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경비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려 했다.

“무슨 일……. 칵!”

표사 두 명이 갑자기 급성 심장마비 환자처럼 가슴을 움켜쥔 채 숨을 멈추었다. 오금을 못 펴고 시퍼래진 안색은 몸의 어느 곳이 잘못 돼도 단단히 잘못된 중환자 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 잘 있었나? 오랜만일세. 안에 국주 있지? 내가 좀 보잔다고 가서 전하게.”

“왜 그러나? 자네 어디 아픈가?”

“커억… 캑… 칵… 칵……..

멈추었던 호흡이 다시 돌아온 듯 목기침을 심하게 하며, 장팔은 꼬랑지에 불 붙은 망아지처럼 부리나케 표국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필이면 많고 많은 날들 중에 서 오늘의 표국 경비 당번으로 당첨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면서 남아 있던 일반 표사 이삼이 다리를 덜덜 떨며 간신히 말했다..

“안, 안으로 드, 드시지요. 잠, 잠깐만… 기, 기다리십시오. 곧, 연… 연락을…….”

새파래진 얼굴에 굳어 있는 혀를 놀리려고 하니 말이 자꾸 더듬어 졌다. 새파란 볼을 타고 다량의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자네 어디 아파?”

안쓰러운 표정으로 비류연이 물어 보았다. 그런 그의 표정에 더욱 더 겁을 집어먹은 이삼은, 더욱 새파래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만 있을 뿐이었다.

국주 장우양으로서는 살다가 지금처럼 황당한 일은 한 달 전 그 날을 빼고는 처음이었다. 장우양이 평상시에 사무를 보는 집무실의 문이 부서져 뜯겨 나갈 정도로 힘 좋게 문을 박차며, 표사 한 명이 뛰어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일개 표사가, 국주의 집무실에 아무런 기별도 없이 문을 냅다 박차고 뛰어 들어

온단 말인가? 자기 집 방문도 이렇게 무례하게 열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금 장우양은 이틀 후에 있을, 중양표국 사상 그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대규모의 표행 을 준비하느라, 자신의 눈 앞에 산더미처럼 수북이 쌓여 있는 서류들과 씨름하고 있는 중이었다.

때문에 신경이 머리 끝까지 곤두서 있는 상태였다. 이틀 후에 있을 남창을 향한 표행은 그 액수로 보나, 맡겨진 물건의 가치로 보나, 그리고 동원된 표사의 수로 보 나, 중양표국 설립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예정이었다. 지금 그 일 때문에 골머리 싸매며 고민하고 있던 중에 겁 없는 표사 한 놈이, 그 끝을 찾아 볼 수 없는 무례를 저 지르며, 자신의 집무실 오동나무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것이다.

국주 장우양의 심기는 이제 불편해질 대로 불편해져 폭발하는 것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지금 표국의 분위기를, 그리고 자신의 심리 상태를 아는 자라면 목 위에 달린 물건이 아까워서라도 이런 짓을 하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지금 뛰어 들어온 놈은 자신도 잘 알고 있는 일반 표사 장팔이었다. 눈치 빠르고, 약삭빨라 알아서 스스로 잘 긴다는.

“무례하구나. 여기가 감히 어디라고!”

“구, 국주님… 크, 큰일났습니다!”

굳은 혀를 놀리기 위해 용쓰는 장팔이의 모습이 딱해 보였다. 탈색되어 하얘진 이마를 따라 삐삐직 맺혀져 있는 식은땀, 그리고 푹 젖은 등은 지금 장팔이의 심 경을 잘 대변해 주고 있었다. 자신의 심기가 조금만 덜 나빴어도, 자네 몸 괜찮은가? 의원한테 한번 가 보지, 자네 며칠 쉬는 게 좋겠네, 라며 걱정의 말을 건네 주었 을 정도였다.

“웬 소란이냐. 큰일이라니?”

“노, 노 사부님께서 다시 찾아오셨습니다.”

“무엇이라고, 쾅!”

내려친 두 손의 힘에 의해 장우양 앞에 놓여 있던 소반이 산산이 부서졌다. 그 때문에 소반 위에 산처럼 쌓여 있던 서류들이 여파에 날려 방안 허공을 가득히 메우 게 되었다. 다시 종류에 따라 분리하여 순서대로 정리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허비될 것이다.

그 날 이후로 이 중양표국에서 ‘노 사부님’이라는 호칭이 지칭하는 인물은 오직 한 명밖에 없었다. 그냥 괴 노인, 혹은 괴물 노친네 등등이라고 칭하려다가, 혹시라 도 그 괴물 딱지 노인네의 귀에 들어가면 다시 발작하고 쳐들어올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괴 노인이라는 호칭을 포기하고, 점잖은 느낌의 ‘노 사부님’으로 호칭 하게 되었던 것이다.

“땡땡땡.”

일급 비상체제를 알리는 종이 표국 안에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우르르…….”

완전 무장을 한 표사들이 순식간에 연무장으로 뛰쳐나왔다. 그들의 손에는 번뜩이는 백색의 창과 백색의 검이 햇살을 받아 요란스럽게 빤짝거렸다. 현란한 광경이 었다.

“내가 온 게 아무리 기쁘다고 해도 그렇지, 환영 행사치고는 너무 요란하구먼. 꼭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데.”

뒷머리를 긁으며 쑥스럽다는 듯이 비류연이 말했다. 제일 먼저 비상종도 치기 전에 비호처럼 뛰쳐나왔던 국주 장우양이 먼저 예를 차리며 인사했다.

“노 사부님, 어쩐 일로 이렇게 저희 표국에 다시 왕림하셨습니까?”

말끝이 떨리는 것을 장우양 스스로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절대로 한 달 전의 악몽을 다시 되풀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점점 더 무거워 만 졌다.

“어, 자네 신발 어쨌나? 벗어다가 딴 데 팔아먹었어? 어, 자네만 그런 게 아니네? 쟤도 그렇고 쟤도 그렇고……. 아니, 얘도 그렇네. 자네 표국 신발들은 모두 엿 바 꿔 먹었나? 작당하고서 말이야. 어떻게 신발을 제대로 신고 있는 사람이 드문드문한가. 신발을 팔아 끼니를 이을 정도로, 그렇게까지 표국 형편이 어렵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예?”

의아한 표정으로, 신기한 사람 보는 듯한 눈빛으로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비류연의, 갑작스럽고도 의아스러운 말에 자신의 발을 내려다 본 장우양은 당장에 자신의 볼을 붉혔다. 맨발이었다. 너무 급하게 뛰어나온 나머지, 신발 신는 것을 잊어 버렸던 모양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좌중의 하반신을 둘러본 장우양의 얼굴 은 더욱 더 붉어져, 이제는 아예 화산 폭발 직전의 활화산처럼 시뻘게졌다. 개중에는 장우양과 마찬가지로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뛰쳐나온 맨발의 표사들이 눈에 많 이 띄었기 때문이었다. 쑥스러움에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숙이며 장우양이 말했다. 힘있게 움켜쥐고 있는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이 영감쟁이, 이번엔 도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무슨 일로 다시 쳐들어온 거냐!’

간절한 이 한마디의 생각은 단지 생각으로만 머리 속과 입 속에 머물 뿐이었다. 생각이 효력을 가질 수 있도록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세상은 하나, 목숨도 하나, 세상 살아갈 기회도 하나인 이상 아낄 필요가 있었다. 장우양은 헛기침을 두어 번 한 다음, 안색을 가다듬었다. 계속해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저기, 무슨 일로..

“아, 요즘 자네의 중양표국에 일손이 달린다면서? 내 요즘 주변에 떠도는 이야기를 듣고서 찾아왔다네. 요즘 일손이 달려서 힘들어하고 있다고 해서 말이야.” ‘그게 도대체 누구 때문인데 알기나 하고서 얘기하는 거요?”

장우양은 욕이 나오려는 걸 무한한 인내력으로 참아 냈다. 힘없는 자는 분함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 어색해 보이는 미소와 함께 장우양은 공손히 대답했다. 

“예, 요즘 갑자기 사업이 커지는 바람에 일손이 많이 부족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저희 사업이 커지게 된 것도 다 노 사부님 덕분이지요.”

“그래? 소문이 사실이었군. 잘 됐군, 잘 됐어. 그래서 말이야, 내가 또 아는 처지에 자네의 어려움을 그냥 눈뜨고 볼 수 있나. 내 자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어 주려 고 이렇게 찾아왔다네. 구원의 손길이라고나 할까.”

“저 무슨 말씀이신지 소인으로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군요. 오직 노 사부님의 가르침만 바랍니다.”

매우 정중하고 공손한 말투였다. 하지만 겉과 달리 속은 정직한 탓인지 갑자기 한 달 전에 상대에게 맞았던 뱃가죽이 아파오는 것과 동시에 속이 쓰려 왔다. “쉽게 말해서 내가 손을 빌려 준단 얘기지. 어때, 좋은 얘기지? 무협지만 좋은 얘기가 아니라네. 남창 가는 손길이 달린다며? 내가 쾌히, 내 제자들을 16명씩이나 붙여 주지. 남창행, 표행에 말일세. 거절은 하지 말게나. 다 피차 상호간에 편리하자고 하는 일 아닌가. 애들 실력이야 자네들도 겪어 봐서 잘 알겠고……. 그러니 그 녀석들 실력에 대해선 두말하진 않겠네. 그럼, 자 어떡할 텐가? 뭐, 좋다고! 당연히 좋아할 줄 알았네. 그럼 그렇게 하는 거야. 결정된 걸세.”

‘난, 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는 비류연이었다. 장우양은 여태껏 한 마디도 하지 못했었다. 그럴 짬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눈 앞에서 괴물 노친네가 혼자서 정 신없이 떠드는데 무슨 힘이 있어, 무슨 배짱으로 말에 토를 달고, ‘이의 있습니다.’ 하겠는가.

여전히 장우양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군다나 장우양으로서도 이번 조건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괴물 노친네가 갑자기 소문도 없이 찾아와 자신이 얼마나 가슴 졸였던가.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이틀 후에 떠날 표행의 표물 이야기를 듣고 그거 달라고 찾아왔으면 어떡하나 얼마나 걱정했었던가. 당분간 소화 불량 과 위장약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면 당장 사람을 시켜 황가 의원 황 의원을 불러 오리라고 결심했다.

황의원은 황가비전(黃家秘傳) 황가 위장약(黃家胃腸藥)과 속 다스림 솜씨가, 사천 제일이라는 소문이 자자한 유명한 의원이었다. 저 괴물 노친네가 달라면 어떡 하겠는가? 줘야지, 힘없는 사람이 무슨 할말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연히 표국은 파산이다. 3대를 이어 온 업(業)이 문을 닫게 되는 것이다. 근데 천지신명이 도우사 운명은 최악의 상황을 비켜갔고, 재앙신처 럼 보이던 사람은 갑자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복신(福神)으로 화(化)해 오히려 도움을 준다는 게 아닌가? 그것도 한 달 전 직접 눈으로 보고, 몸 으로 겪어 본 실력들을 지닌 사람들을 지금의 장우양에게는 실력 있는 일류 고수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해 주신다면 저로서는 감읍할 따름입니다. 제가 어찌 이의를 달겠습니까. 노 사부님의 이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장우양은 공손하게 허리를 직각으로 꺾었다. 기쁘긴 어지간히 기뻤던 모양이다.

“뭐 은혜랄 것까지야 있는가. 그런데 남창행 표행은 언제 출발하는가?”

“예, 이틀 후 아침 묘시(오전 8시)에 출발 예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 그럼 그때 보도록 하지. 무사히 남창에 도착하면 애들에게 표행 값이나 몇 푼 쥐어 주도록 하게. 그걸로 술이라도 마시라고 말이야. 요기도 하고 용돈도 하 고, 뭐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몇 푼을 특히 힘 주어 강조하는 비류연이었다.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절대로 말 그대로 몇 푼만 쥐어 주지 못할 것이다. 후환이 두려워서라도 빤짝빤짝 빛나는 것 수 냥은 쥐어 주어야 마음이 놓일 것이다.

“예, 여부가 있습니까. 심려치 마십시오.”

“후하게 쳐 주라고. 돈 값은 할 걸세. 걔들 좀 세거든. 내 제자라서 말이야.”

손을 흔들며 표국 밖을 나가려던 비류연의 신형이 돌연 멈칫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빙글, 한 바퀴 돌아서더니 불현듯 한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걔들은 일회용 편도 표사야. 남창까지 가는 길은 확실히 지켜 줄 테니 걱정 말게. 그렇지만 남창에서 헤어져야 할 거야. 올 때는 혼자 오도록 하게. 그 럼 이만…….”

“그, 그런, 아 저, 노 사부님, 노 사부님!”

어이없어 하는 국주 장우양의 말을 뒤로하고, 한 마디도 듣지 않은 채 비류연은 홀연히 사라졌다. 그 뒤로, 중양표국의 표사들이 맨발에, 손에는 창과 검을 쥐고 멍 하니 따가운 오후의 햇살을 받으며 서 있었다. 폭풍이 자신의 곁을 무사히 지나갔음을 천행(天)으로 여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