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권 4화 – 공포의 강철 빨래 방망이

공포의 강철 빨래 방망이

장작패기와 함께 사부가 나에게 가르친 것은 빨래였다.

초가집에서 약 한 식경(30분)쯤 걸어가면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나온다. 사부는 날 그곳으로 데려가더니 고린내 나는 빨래 한 짐을 떠넘기면서 모두 빨아서 오라고 했다. 나는 참았다. 그래도 명색이 제잔데……! ‘그래, 불쌍한(?) 사부를 위해 빨래 정도는 해 주자!’

이런 생각을 하며 순순히 사부의 지시에 응했다.

“쳇, 알았어요. 하면 되잖아요.”

“이놈아, 왜 그리 우거지상이야. 뭐 불만 있냐? 없으면 이거나 받아라!”

그리고는 시커먼 몽둥이를 하나 내밀었다. 길이가 어른 팔뚝만하고 신월 모양처럼 살짝 휘어진 둥그스름한 몽둥이였다.

“이게 뭡니까, 사부?”

“보면 모르냐, 빨래 방망이다. 너도 써 보면 알겠지만 빨래하는 데 꼭 필요한 필수 용품이지. 뭐 하냐, 팔 아프다, 냉큼 받거라!”

‘쳇, 뭐 하러 빨래 방망이까지…….”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문제의 빨래 방망이를 받아 들었다.

“욱!”

도끼와 마찬가지로 그 빨래 방망이도 지랄같이 무거웠던 것이다. 알고 보니 그 빨래 방망이는 강철로 된 빨래 방망이였다. 자칫 잘못했다면 나의 어깨가 퐁하고 빠 질 뻔한 순간이었다.

“사, 사부! 무, 무슨 빨래 방망이가 이렇게 지랄같이 무거워요? 이거 도대체 무게가 얼마나 되는 겁니까?”

난 시뻘게진 얼굴로 사부에게 소리쳤다. 사부의 목소리가 아련히 들려 왔다. 이때 나는 빨래 방망이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어 사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 다.

“뭐가 무겁다는 것이냐. 겨우 50근밖에 안 나간다. 겨우 쇠도끼 무게의 반밖에 안 나간단 말이야.”

“예? 무게가 80만리(30kg)나 된다구요! 뭐 이런게 다 있어요. 제 가냘픈 육신은 무식한 쇠도끼 하나만으로도 벅차다고요. 이런 무식한 빨래 방망이로 어떻게 빨 래를 한단 말입니까? 이런 걸 가지고 빨래를 하면 빨래가 아니라 걸레밖에 안 남을 텐데요!”

나는 이제 질식 상태에 빠진 얼굴로 사부에게 소리쳤다.

“야, 이놈아! 괜스레 숫자만 불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물론 보통의 방법으로 빨래를 해서야 빨래가 아니라 걸레밖에 남지 않겠지. 수십 근이나 나가는 철봉으 로 얇은 천 조각을 내려치는데 무사하겠느냐. 그걸 방지하기 위해 너는 유(柔)라는 구결을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강함 속에 부드러움을 담을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제대로 된 빨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 빨래는 어깨와 손목도 발달시켜 주기 때문에 일석삼조(一石三鳥)의 연동 효과(連效果)를 가지고 있지. 이 수행 방법 은 비법세탁(秘法洗濯)이라 불리는 우리 비뢰문(飛門)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공식 지정 수행 방법이다. 군말 말고 빨래나 열심히 빨도록 해라!”

사부는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나를 설득하려고 했다. 빨래를 하라고 설득하는 말 치고는 굉장히 요란한 편이었다. 도무지 현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러 나 수행의 일부라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나는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저항할 힘이 없는 내가 한심스러웠고 사부가 미웠다. 운명에 순응할 마음이 생겨 마음이 진정되자, 나는 검은 강철 빨래 방망이를 들었을 때 품었던 의문에 대해 사부에게 물어 보았다.

“사부! 이 강철 빨래 방망이는 금부연의 쇠도끼처럼 전설(傳說) 같은 것이 없나요? 예를 들어 조사님께서 계곡에서 이 강철 빨래 방망이로 빨래를 하고 계시다가 계곡에 목욕하러 내려온 선녀를 강철 빨래 방망이로 때려 죽이고 금품을 빼앗았다는 뭐 그런 이야기 말이에요.”

은하수같이 맑은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천진난만하게 묻는 나에게 사부는 알밤과 함께 퉁명스러운 답변을 던져 주었다.

“그런 이야기는 본문(本門)에 전해져 내려오지 않는다. 정 만들고 싶으면 네가 직접 실행해서 그런 전설을 남겨 보아라. 아무튼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빨래나 열심히 해라.”

이 말을 끝으로 사부는 빨래터를 떠났다.

처음에는 강철 빨래 방망이가 너무 무거워 두 손으로 들고 빨래를 해야 했다. 원래 한 손으로는 빨래를 잡고 나머지 한 손으로 빨래 방망이를 들고 빨래를 해야 했 음에도 말이다. 더군다나 바보 같은 사부는 쓸데없는 소리만 늘어놓았지 정작 중요한 유(柔)자 결은 가르쳐 주지 않고 그냥 가 버렸다. 그러니 제대로 빨래가 될 리 가 없었다. 나중에는 옷이 꿈 속에서 나비가 되었는지 아니면 걸레가 꿈 속에서 옷이 되었는지 알 길이 없게 되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그 날, 난 집으로 돌아가서 사부에게 늘씬하게 맞았던 것 같다. 덕분에 엄청난 피를 봐야만 했다. 다시 떠올리기 싫은 쓰라린 추억이고 그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엄 지와 검지가 따끔따끔 아파 올 지경이다. 그리고 밤새도록 걸레가 된 옷을 일일이 바늘로 꿰매야 했다. 새로 사는 게 더 빠르고 이익이라며 진언(言)했지만 독재 자이자 폭군이었던 사부는 충신(忠臣)의 진언에 귀를 기울일 만큼의 넓은 아량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면서 바느질은 정교한 손 감각을 가지는 데 도움이 된다 는 쓸데없는 궤변만을 내뱉었을 뿐이다. 어쨌든 나는 바느질을 해야 했고 그 걸레는 정말로 나의 피땀이 고스란히 어린 걸레가 되었다. 나는 그 걸레를 만결복(萬結 服)이라고 이름 지었다. 만 번이나 꿰맨 옷이라는 뜻이다.

나는 만결복을 걸치고 날이면 날마다 개울가에 가 빨래를 계속했다. 그리고 한 달 후, 드디어 나는 왼손으로 옷을 잡고 빨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강철 빨래 방망이 를 한 손으로 잡는 데는 약 1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일주일 간격으로 번갈아 가면서 한 주는 오른손에 빨래 방망이를 들고 빨래를 했고 그 다음 일주 일은 왼손에 빨래 방망이를 들고 빨래를 해야 했다.

만결복(萬結服)들은 나의 연습 상대가 되어 주었고 만결(萬結)이 천결(結)이 되고 천결(結)이 백결(百結)이 되며 다시 백결(結)이 십결(結)이 되고 십결 (+結)이 일결(結) 되며 일결(結)이 무결(無結)이 되기까지는 약 1년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주 편한 자세로 자연스럽게 빨래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강함 속에 부드러움(柔)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나의 바느질 솜씨는 이미 신기(神技) 에 도달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