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0권 17화 – 환마동의 붕괴

비뢰도 10권 17화 – 환마동의 붕괴

환마동의 붕괴

“헉헉헉!”

이제 막 환상에서 빠져나온 용천명의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그는 기분이 매우 찝찝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손에는 검이 잡혀 있었다.

사방의 암벽에 검흔이 가득한 것을 보아 무의식중에 마구 검을 휘둘렀던 모양이었다. 그것도 오만 가지 초식을 한꺼번에 마구잡이로 펼친 듯했다. “너희들이 지닌 모든 기량을 전부 극한으로 발휘해야만 무사히 이 시련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문득 마진가의 연설이 뇌리에 떠올랐다.

마진가는 시험이라 하지 않고 시련이라 했다. 그것만으로도 이 시험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짐작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막상 들어와 보니 ‘정말 이런 기분 처음이야’라는 그런 느낌이 들 정도로 칙칙하고 찝찝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곳에는 진짜 공포가 있었다. 아직도 방금 전 자신 이 느꼈던 공포가 가시지 않고 있었다. 명예와 신념을 위해 소림칠십이관문(少林七十二關門)에 목숨 걸고 도전했을 때조차 이런 위협과 뼛속 깊은 공포를 느낀 적 은 없었다. 그렇다. 지금 용천명의 가슴에 피어나고 있는, 마치 거대한 절벽 앞에라도 서 있는 것 같은 위태위태한 이 기분은 명백히 ‘공포’였다. ‘공포’ 말고는 지금 자신의 기분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단어가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의 숨통을 노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길. 용천명의 육감은 그것을 확실하게 느끼고 있었다.

“젠장. 출소림의 하산관문을 돌파할 때도 이렇게 두려워해 본 적이 없거늘… 빌어먹을!”

오래간만에 그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어지간해서는 쓰지 않는 말이었다. 그만큼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절대로 발걸음 을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겁쟁이’라고 부르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었다.

“그것들이 바로 나의 마음속에 있는 천겁령의 그림자인가… 고작 내가 만들어낸 환상 따위에 이런 공포를 느끼고 뱀 앞의 개구리처럼 옴짝달싹을 못하다 니…….”

갑자기 그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제 내 나이 또래에서는 적수가 없다고 자부했거늘… 아직도 공부가 부족하구나! 아직도!”

그는 자신의 애검이자 사문의 비보인 녹옥여래신검을 다시 한 번 쓰다듬어 보았다. 녹옥여래신검, 그것은 자신의 명예와 자신이 짊어질 책임과 자신의 존재에 대 한 증명이었다. 그러자 그의 마음속에서 용기와 투지가 조금씩 다시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용천명은 다시 용기백배하여 앞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보이지 않는 주변의 적에 대해 충분히 신경을 쓰면서..

그런데 그때 짙은 어둠을 몰아내며 동굴 안에 눈부신 태양빛이 떠올랐다. 그 빛은 용천명의 몸을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그것은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눈앞을 가득 메우는 새하얀 섬광! 그리고 귀청을 찢는 듯한 폭음! 그리고 굉음을 일으키며 무너져 내리는 천 근은 족히 넘을 듯한 거대한 돌덩이들의 우박!

광폭한 폭음은 사납게 환마동 전체를 휩쓸며 모든 환상을 일순간에 날려버렸다. 거대한 폭발에 동굴 전체에 펼쳐져 있던 진법이 순식간에 변형된 탓이었다. “으아아악!”

콰르르르릉! 쿠콰쾅!

윤준호는 잔뜩 얼굴을 찡그리며 바닥에 주저앉아 귀를 틀어막았다. 좁은 동굴에서 반사되어 나오는 소리는 사람을 찢어발기듯 사납고 흉폭했다.

“지… 지진인가?”

당황스럽기는 남궁상도 마찬가지였다.

“상!”

옆에 있던 진령이 다급하게 거의 본능적으로 그의 팔에 매달렸다. 위험을 느낀 그도 진령을 꼭 껴안았다. 여기서 만일 동굴이 무너진다면 관도 모두 생존할 가능성 은 전무하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모두들 광폭하게 흔들리는 대지에 엎드린 채, 폭발의 진동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후두두득! 콰르르릉!

검은 돌로 둘러싸인 천장에서 바위의 비가 쉴 새 없이 떨어졌다. 중간중간 굵은 자갈의 우박도 함께 섞여 있었다. 더 이상 가만있다가는 매장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사람들은 무조건 앞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악!”

“이 소저!”

효룡은 다급하게 이진설을 불렀다. 이진설은 그와 약간 거리를 두고 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동굴 전체가 지진이라도 만난 것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투툭!

효룡은 눈을 크게 떴다. 이진설의 머리 위쪽 천장이 마치 신필(神筆)로 화선지에 일필휘지 선을 긋듯, 커다란 금이 쭈우욱 그어졌다. 동굴 천장이 붕괴될 조짐이었 다. 금방이라도 낙반이 떨어져 내릴 것이다. 도저히 피할 시간이 없다.

“위험……!”

위험을 느낀 효룡은 망설이지 않고 이진설에게 몸을 날렸다.

콰콰쾅!

그와 그녀의 머리 위로 커다란 암석이 떨어져 내렸다.

“아악!”

“윽!”

두 사람은 낙반의 충격에 정신을 잃고 말았다.

우르르릉!

여전히 동굴 안은 미친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하얀 섬광이 터지는 그 순간 장홍은 누군가가 절규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안 돼애! 나 소저어어!”

피를 토하는 듯한 외침이었다.

“이 목소리는……?”

그것은 어디선가 분명히 들어본 남자의 목소리였지만 그 얼굴을 기억해낼 수는 없었다. 장홍은 자신의 사고를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상황이 그를 내버 려두지 않았던 것이다.

콰콰콰쾅!

“헉!”

왜냐하면 폭발 후에 찾아오는 사나운 충격파와 폭풍이 그의 전신을 사정없이 유린했던 것이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난폭한 폭풍과 맞서야 했다.

“크아아악!”

“으어어억, 살려!”

“커허허억, 안 돼!”

“흐흑흑흑흑!”

사방에서 사람들의 미칠 듯한 절규와 탄성, 한숨과 비명이 쏟아져 나왔다. 동굴 안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이… 이럴 수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폭발의 사정권에서 간신히 벗어난 위지천은 망연자실했다. 그의 몰골은 여기저기 찢겨지고 뜯어져 말이 아니었다.

“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이건 꿈이야!”

설마 그때 나예린이 던져진 뇌탄을 보고 비류연을 구하기 위해 달려갈 줄은 그로서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어느 순간 폭발할지 모르는 뇌탄의 위협에도 불구하 고 그녀는 비류연을 구하기 위해 달려갔다. 그녀의 행동은 위지천이 전혀 예상치 못한 최악의 행동이었다.

자신의 실수로 자기의 우상이자 모든 것인 나예린마저 대폭발의 섬광 속에 묻혀 버리고 이제는 그 생사마저 불분명해진 것이다. 그는 광란 상태에 빠져 버리고 말 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은 채 멍하니 자신의 두 손을 넋이 나간 듯 바라보았다. 방금 전 염마뢰라 불리는 현 무림 최강 최악의 화탄(彈)을 아무런 망설임 없이 조작했던 바로 그 손이었다. 그의 손은 수전증 환자의 그것처럼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갑자기 멍하니 바라보던 그의 손에서 붉은 피가 철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피는 하염없이 흘러내려 바닥을 가득 채우고 이윽고 그의 머리까지 차올랐다. 물론 피 의 홍수는 오직 그에게만 보이는 환각이었고, 지금 그의 처절한 심경을 드러내 주고 있었다.

“내…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러나 대답해 주는 이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땡땡땡!

환마동에서 발생한 돌발 사고에 따라 전 학관에 비상이 걸렸다. 학관 측으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에다, 덤으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누구도 이런 대형 사 고가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었다. 무엇보다도 환마동이라는 곳이 수색 작업을 하기에 무척이나 까다로운 구조로 이루어진 것도 걱정이었다. “왜 이리 소란스러운가?”

마진가가 묻자 소식을 들으러 갔던 보좌관 제갈 노사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사고가 났습니다.”

“사고?”

“예, 사고입니다.”

마진가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인명 피해란 말이오? 그거라면 이미 각오했던 일, 너무 소란스러운 것 아니오?”

물론 관도 한두 명이 명(命)을 달리했다는 말은 무척이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그의 손은 부르르 떨리고 있었지만 자신의 약한 모습을 보여 주기 싫었기에 속으로 꾹 참았다. 그는 자신이 남들에게 냉정한 지도자의 모습으로 비쳐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는 지배자는 아니었지만 지도자였다. 남들 위에 서 있는 자였으므로 그에 따른 의무를 져야 하고 벌어진 사태에 대한 책임 또한 져야 했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그의 예상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사고는 관주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제갈 노사는 말하고 싶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무슨 일인데 그렇게 호들갑인 거요? 항상 냉정 침착하게 본인을 보좌하던 모습이 아니구려.”

당연했다.

“환마동이 붕괴했습니다.”

우지끈!

그 한마디에 오랫동안 마진가 앞의 자단목 책상 – 그것도 무지무지 값비싼 – 은 두 번 다시 자신의 쓰임새를 수행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뭣이라! 그게 사실인가?”

마진가는 대갈성을 터뜨리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얼굴은 지금 믿을 수 없다는 경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좋은 소식이 잘못 전해지는 경우는 간혹 있어도 나쁜 소식이 잘못 전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운명의 신은 구두쇠인 모양이었다.

“사실입니다. 이번 화산규약지회의 참가 시험을 위한 시험 장소인 환마동에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보좌관 제갈 노사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끝까지 보고했다.

충격이 마진가의 전신을 휩쓸자 갑자기 세상의 균형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가 비척거리며 간신히 자세를 잡았다. 부하 앞에서 추태를 보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 이다.

“18년 동안 조용한 그곳에서 무슨 사고란 말이오?”

“폭발 사고라고 합니다.”

“뭐라고? 폭발 사고? 그럴 리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제갈 노사의 눈빛이 그의 이성만큼이나 날카롭게 빛났다.

“아무래도 인위적인 조작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환마동 안에서 뇌탄이 터질 리 없겠지요. 폭뢰탄은 비전 중의 비전, 누구나 어디서 함부로 구할 수 있는 값싼 노리개가 아닙니다.”

“나도 자네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네. 그렇다면 누가? 누가 감히 천무학관에 이런 가당찮은 작태를 저질렀단 말인가? 누가 감히?”

순간 불길한 그림자 하나가 마진가의 뇌리 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오싹한 마음에 그는 제갈 노사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을 보니 이미 그도 자신과 같은 생각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설마… 그 악마들이 다시 깊은 심연에서 깨어났단 말인가?”

그의 어조는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부정할 수 없는 가능성입니다.”

제갈 노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긴급 회의를 소집하게! 그리고 당장 환마동에 갇힌 아이들의 구출활동을 개시하고, 사상자에 관해서도 보고해 주게!”

마진가의 지시에 천무학관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긴급 회의가 소집되었다. 환마동 붕괴 사고 소식을 모두 접한 터라 그들의 안색은 모두 어두웠다. 벌써 여러 의견들이 오가고 있었지만, 다들 한 가지 일을 머릿속

에 떠올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맹주께서도 이번 일이 천우의 소행이라고 여기십니까?”

늑기한 노사가 일어나 물었다.

“저 정도 폭발력을 지닌 물건이 이 세상에 과연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시오?”

마진가가 되물었다. 그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마진가가 말을 이었다. 그의 어조는 격앙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사천당가의 칠대금용암기 중 하나인 벽력진천뢰(霹靂震天雷)와 그 망할 깃털 놈들이 썼던 ‘염마뢰(炎魔雷)’뿐이오! 한데 사천당가에서 함부로 칠대 금용암기를 유출했을 리가 없지 않겠소?”

“제가 당장 본가에 연락해 재고량을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천당가 출신의 무사부 당지명이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가주와 장로회의 승인 하에서만 반출이 가능한 것이 칠대금용암기였다. 쥐도 새도 모르는 유출이란 있을 수 없었다.

칠대금용암기와 칠대절독의 수량을 확인하고 관리하는 것은 가주의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그 일만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않고 직접 해야만 했다. 하지만 사천당가의 암기가 유출되었을 가능성은 너무나 희박했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

“설마 그럴 리가…….”

그 가능성은 배제하고 싶은 것이 여기 배석한 모든 이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너무 오랫동안 정체를 숨기고 있었기에 이들도 슬슬 그 이름을 잊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내 이들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듯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제갈 노사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하지만 제갈 노사는 마른침을 삼킬 뿐, 우물쭈물하며 본론을 쉽게 얘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당한 난제를 이야기하 려는 것 같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마진가가 제갈 노사의 말문이 트이게 하기 위해 거들었다. 제갈 노사의 안색은 너무 안절부절 못하는 것처럼 보여서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는 마진가에게 전하기 어려운 난제를 안고 이곳에 온 것이 분명했다. 제갈 노사는 군사이자 책략가이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 데는 서툴렀다.

“아직도 나를 더 괴롭힐 문제가 남아 있단 말인가?”

자조적인 웃음을 띠며 마진가가 말했다.

“말씀대로입니다.”

제갈 노사는 웃지 않았다.

“환마동이 무너지고 부상자가 속출한 이 마당에 더 안 좋은 일이란 게 뭔가? 뜸들이지 말고 말해 보게. 지금은 그 어떤 말을 들어도, 또 무슨 일이 터져도 놀라지 않을 것 같군.”

그러나 제갈 노사의 입이 열리는 순간 마진가는 자신이 방금 전에 말한 자신의 맹세를 깰 수밖에 없었다.

“뭐…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

제갈 노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진가는 하늘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저… 정말 그 아이가 그 안에서 실종되었단 말인가?”

제갈 노사는 굳이 실종이라는 말을 골라 썼지만 이 상황에서는 사망했을 확률이 너무 높았다.

“만일 이 사실이 무림맹에 알려진다면…….?

제갈 노사는 그것이 걱정인 모양이었다.

“그건 시간문제겠지. 그렇다면…….”

“아마도 조용히 끝나기는 힘들 겁니다.”

무림맹주 나백천의 팔불출 딸 사랑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아무리 오래된 지우라도 만일 딸의 신상에 잘못이 생겼다면 그는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평상시 에는 점잖고 위엄으로 가득 차 있지만 나예린의 문제에 있어서만은 사람이 바뀐 듯 달라지는 것을 마진가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딸의 실종 소식을 듣고 갑자기 꼭 지가 돌아가 버리는 나백천의 변모한 모습이 상상이 되자 마진가는 한기가 오싹올라와 몸이 부르르 떨렸다.

“또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제갈 노사는 아직 할 말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그의 입에서 이번에는 무슨 말이 터져 나올지 마진가는 두려웠다.

“무슨 문제 말인가?”

“그건 바로… 이번 사건을 누가 무림 맹주님께 전하나 하는 문제입니다.”

순간 마진가는 확 깨이는 바가 있었다. 그리고는 단숨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잊고 있었다. 그 중요한 일을!’

마진가는 갑자기 자기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어떻게 그 중요한 일을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개인적인 정보원으로부터 사고 소식을 알기 전에 화급히 인편을 통해 알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숨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은 심각하게 고려해 봐야 할 문제였다. 제갈 노사가 말을 계속했다.

“그리고 누가 그분의 분노를 진정시킬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셔야지요. 맹주님의 딸 사랑이야 이미 강호에 유명한 일 아닙니까. 자신의 금지옥엽(金枝玉葉)이 깃털 들의 음모에 의해 희생된 것을 아시면 그분도 가만있지는 않으시겠지요.”

“맞는 말일세. 숨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문제는 누가 가서 그 분의 분노를 진정시키는가 하는 것뿐이로군.”

“그렇겠지요. 아마 그분 성격에 주저 없이 칼을 뽑으실 겁니다.”

마진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제갈노사는 상황에 휩쓸려 신중함을 잃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마진가는 그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만으로 무림맹주의 분노를 잠재울 수 있 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이 정도 대규모 사고는 근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각 지부에 경계 강화령을 내리고 정보 수집에 최선을 다해 주시오.”

“존명!”

천무전에 모인 노사들이 사고 수습에 대한 마진가의 빠르고 적절한 조치에 모두 동의했다. 그러나 나백천에게 보내는 인편 문제만큼은 마진가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그것 말고도 그가 지금 신경 써야 될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시라도 빨리 사상자와 실종자의 수를 집계해 서면으로 보고하도록 하시오!”

그것은 무엇보다 선결되어야 할 과제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