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유친(父子有親)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친함이 있어야 한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있나…….
임성진은 주위의 환경에 주의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사방의 빛이 모두 차단되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돌에 부딪치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어딘가에 함정이 있을지도 몰랐다. 미지에 대한 두려움만큼 큰 공포는 없다. 차단된 정보가 그의 머릿속에서 무수한 상상들을 만들어냈다. 끔찍하고 전율 스런 상상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그의 발걸음은 더욱더 무거워졌다.
임성진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독특한 향기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귓가로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명의 사람들이 웅얼거리는 듯한 그 소리는 아마도 어떤 경문 같았다. 하 지만 지금 상황으로서는 그것이 환청인지 아닌지 분간하기조차 힘들었다.
“이거 왜 이러지?”
왠지 긴장이 풀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따뜻한 온천에 하루 종일 들어갔다 나온 듯한 그런 나른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다. 손도 발도 왠지 무기력하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겹기만 했다.
‘잠시 발을 멈추고 쉬었으면…….?
그런 생각이 임성진의 뇌리 속을 깊숙이 지배했다.
‘몽환소혼향(夢幻消魂香)’이라고 불리는 이 미향의 효과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참가자들 중 아무도 없었다.
“임성진, 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냐?”
갑작스럽게 자신의 앞에 나타난 거구의 장한, 온몸에 털이 가득하고 사방에 그림자를 드리울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큰 몸뚱이였다.
“아버지!”
임성진이 소스라치게 놀라 외쳤다.
“그래도 아직 애비 얼굴은 안 잊어먹은 것 같구나. 장하다!”
굵고 거친 송충이 눈썹에 뻗친 수염이 빽빽하게 나 있는 부리부리한 얼굴이었다. 그의 전신은 상처투성이였고, 심지어 얼굴에도 여러 개의 상처가 나 있었다. 이 상처는 그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영업을 뛰었는지 나타내주는 영광의 상처였다.
“여긴 어떻게?”
임성진은 아직도 벌름거리는 심장을 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 상식을 초월할 일이 벌어질 거라더니 이건 정말 반칙이었다.
“인연을 끊은 것 아니었습니까?”
임성진은 본능적으로 철곤(鐵榥)을 내밀며 경계 태세를 취했다.
“애비가 자식 놈 얼굴 좀 보겠다는데 누가 말려, 내 맘이지. 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해!”
그러고 보니 분명 그런 빌어먹을 성격임이 분명했다. 저 망할 놈의 제어 불가능한, 끓는 냄비 같은 막무가내적 성격을 보니 아버지가 맞긴 맞는 것 같았다. 그러나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자신의 가업이 뭔지 몸서리쳐질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설마 잡혀온 건 아니겠죠?”
그것만은 아니기를 빌었다.
“흥! 누가 감히 이 몸을 잡을 수 있단 말이냐? 이 몸을 잡을 수 있는 놈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무척이나 많이 있죠. 단지 귀찮아서 안 할 뿐이구요.’
그의 아버지 직업은 바로 녹림대도(綠林大盜)였다. 게다가 길가는 행인을 터는 따위의 시시한 일은 거들떠도 안 보는 거물이었다.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넌 내 아들이야!”
“흥! 전 이제 녹림인이 아니라 백도인입니다. 마음대로 아들을 도둑놈 만들지 마십시오. 아들 혼삿길 막힙니다.”
임성진이 소리쳤다. 아버지의 직업은 그에게는 벗을 수 없는 굴레였다.
“어쩔시구리, 이놈 봐라? 감히 애비의 말에 반항을 해. 한번 녹림도는 영원한 녹림도야! 자신의 출신은 어떻게 발버둥친다 해서 바뀌는 게 아니야! 네 몸속에 흐르 는 녹림의 피를 넌 부정할 수 없다. 넌 누가 뭐라고 씨부렁거려도 녹림칠십이채 총표파자 녹림왕(綠林王) 광풍마랑(狂風魔狼) 임덕성의 아들이야!”
총표파자란 녹림칠십이채의 수장을 가리킨다. 총채주의 다른 호칭이라 할 수 있었다.
‘젠장, 별로 떠올리기 싫은 일이 떠오르는군!’
광풍마랑도의 달인! 녹림칠십이채의 총표파자!
녹림의 신, 도둑들의 왕!
어떻게 몸부림쳐도 자신이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갑자기 떠올리기 싫은 과거가 떠올라서인지 그는 얼굴을 찡그려야만 했다.
‘흥! 산도적의 자식새끼 주제에 너무 기고만장하구나.’
‘까마귀는 아무리 물속에서 자신을 백 번 천 번 씻어도 까마귀일 뿐, 절대 백로가 될 수 없다.”
“아니야! 아니야! 난 백도인이 될 거야!’
‘녹림의 피를 이어받은 너는 언제까지라도 녹림도일 뿐이야! 사파인인 너는 절대 정파인이 될 수 없다.’
다시금 떠올리기 싫은 추억이었다. 그런 일을 겪은 건 모두 다 저 망할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러나 임성진의 날카로운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말했다. 총채(總寨)를 떠나올 때도 이런 대치 관계가 있었다. 임성진은 그날의 일을 아직까지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넌 이 애비를 배신하고 어디를 가는 것이냐? 넌 나의 뒤를 이을 후계자다!”
“싫습니다. 전 천무학관으로 들어가 무도의 극의를 추구하고자 합니다.”
“넌 절대 그들과 어울릴 수 없다! 여기서 나의 뒤를 이어라! 너는 나 녹림왕의 아들이다. 자신의 터전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다는 거냐?”
“족보에서 지우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십쇼. 전 제 갈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임성진도 지지 않고 대꾸했다.
“이런 쳐죽일 녀석! 감히 이 애비의 말을 거역해?”
수많은 사람의 피를 먹은 시퍼런 낭아도가 살기 어린 푸른빛을 발했다. 그러나 임성진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버지고 뭐고 간에 전 아버지와 싸워서라도 여길 나가야겠습니다.”
그가 양손으로 곤을 쥐고 자세를 취했다.
“어라? 웬 곤이냐? 네놈 언제 곤법 같은 하찮은 무공을 배운 적이 있었냐?”
그의 아버지 녹림 총표파자 임덕성은 패도법의 달인이었다. 생긴 것도 어설프고 사람 죽이기도 무척이나 귀찮은 곤 같은 무기는 생전 익힌 적이 없었다. 그러니 더 욱 의아했을 것이다.
임성진은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대신 자신의 주장을 피력했다.
“말리지 마십시오. 전 제 갈 길을 갈 것입니다. 남의 재물이나 터는 도적 생활은 이제 지긋지긋해요.”
“임마! 사업이라고 해! 보호 사업! 너는 어리석게도 십만 녹림의 왕 자리를 차버리겠다는 거냐? 넌 나 녹림왕 임덕성의 아들놈이야!”
“그 핏줄이 이토록 원망스러워질 줄은 몰랐습니다. 자, 갑니다.”
“오냐! 오늘 인연 하나 끊어 보자! 녹림의 자식을 저 꼬장꼬장한 정파 새끼들이 받아줄 리가 없지. 잘해 봐라!”
“아니야! 난 백도인이 될 거야! 으아아아아아악!”
임성진은 광분한 채 철곤을 맹렬히 휘두르며 아버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날로 인연은 끝났다고 여겼는데…….’
그런데 그는 지금 또다시 아버지랑 대치하고 있었다.
“어쨌든 뭐라 말씀하셔도 전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곳은 제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제가 있을 곳은 바로 여기 천무학관뿐입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셔도 전 이곳 에 있겠습니다.”
임성진이 단호하게 말했다. 이 건에 대해서만은 타협의 여지가 없었다.
“흥! 말이 많다. 녹림의 아들은 칼로 모든 것을 결정짓는 법! 네 주장을 관철시키고 싶으면 날 이겨 봐라. 그날은 운 좋게 내뺄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그렇게 안 될 거다. 넌 어쩔 수 없는 녹림의 자식이라는 걸 내 증명해 주마. 자, 와봐라! 까마귀는 절대 백로가 될 수 없어!”
“아니야! 난 이미 백도인이야! 난 당신 같은 도적놈이 아니야! 아니란 말야! 으아아아아아!”
다시 한 번 광분한 임성진이 진성곤을 휘두르며 임덕성에게 달려들었다. 그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력적인 공격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