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3권 11화 – 성대한 환영식

랜덤 이미지

비뢰도 13권 11화 – 성대한 환영식

성대한 환영식

세 개의 관문을 통과하고 화산 천무봉 꼭대기에 다 올랐을 때 그들의 마음 속을 지배하고 있던 감정은 승리감이라기보다는 지독히 심한 패배감과 절망감이었다.

평소 자신의 무공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던 그들이었지만, 자신들을 공깃돌 취급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무력을 지닌 사람들이 동시에 달라붙고도 이기기는커녕 뼈아픈 패배만을 일방적으로 당한 채 그 치욕을 평생에 남는 상처와 함께 가슴 속에 새겼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대비해야 할 상대란 게 그런 괴물이었단 말인가?”

추위에 단련된 몸임에도 으슬으슬 어깨가 떨려왔다.

자신들에게 그 끔찍한 것을 보여준 사람들이 미웠다.

“그게 과연 인간일까? 너무 과장해서 말하는 것 아닐까?”

친우인 남궁상을 바라보며 현운이 말했다. 평소 쾌활한 성격을 지닌 그였지만 지금은 안색이 그리 좋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진령을 포함하여 지금 함께 길 을 걷고 있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 모두 안색이 밝지 못했다. 우울한 공기가 일행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걸세……. 안타깝게도 말일세! “

남궁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숨겨진 이야기, 감추어진 진실! 물론 그 자신도 오늘 자신이 겪었던 일과 들었던 사실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모든 정황을 비 춰봤을 때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어쨌든 여기서 그자와 싸우는 건 아니잖아. 아직 현실화되지 않는 과거의 잔영에 부르르 떨 필요는 없다고 보네. 그때 그는 다시는 회복할 수 없을 만큼의 상처를 입고 도주했다고 역사는 전하지 않던가? 아마도 별일 없을 걸세.”

그것은 자기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오죽 좋겠나만…….”

일부러 쾌활하게 말했건만 효과는 생각만큼 탁월하지 못했다.

“일단 눈앞의 일부터 생각하자구. 언제 다가올지 모르고, 다가올 가능성마저 희박한 이야기에 너무 목 매달지 말라구. 기우일 뿐일세.”

“기우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그들은 홍매곡의 입구에 서 있었다.

마침내 천무학관 대표단들은 화산규약지회가 열리는 목적지인 홍매곡에 도착한 것이다.

그곳은 거대한 호리병 모양의 분지였다. 그러나 결코 좁지는 않았다. 주위에 여러 채의 웅장한 건물들이 열댓 채나 지어져 있음에도 전혀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 다. 병풍처럼 둘러싼 절벽으로부터 사방에서 작은 폭포들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폭포에서 떨어진 물보라들은 절벽 가장자리를 타고 또 다른 계곡으로 흘러갔다. 폭포 소리가 계곡 안을 가볍게 울렸다.

더욱 신비로운 것은 아직 가을철임에도 붉은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늘에 손짓하는 미인의 옥수처럼 우아하게 뻗은 나뭇가지에 분홍빛 눈 송이가 살포시 내려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그것들은 때로 반짝이는 홍옥 가루가 뿌려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계절과 시간을 잊고 흐드러지게 핀 매화, 농염하게 풍겨 나오는 짙은 향기. 신비롭고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광경이었지만 몇몇 여관도들은 깊이 감동해 눈가 를 훔칠 정도였지만 – 윤준호에게는 기절할 만한 일이었다.

계절을 벗어나 핀 탓인지 향기가 미약해 아직 기절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무척이나 어지러웠다. 이상하게도 두드러기는 돋아나지 않았다. 보통 때는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자신마저도 신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여전히 어지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서둘러 혈도를 짚어 후각을 차단했다. 태사부님이 가르쳐준 비장(?)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심리적 영향 때문에 몸이 위축되는 것만큼은 피할 수가 없었다. 시야 가 득히 흐드러지게 핀 매화가 그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이 세상에 이런 곳도 다 있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응?”

모용휘는 걷던 발걸음을 멈추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표단의 사람들 모두가 걷기를 중단한 채 한 손에 각자의 무기를 움켜쥐고 주변을 훑어 보고 있었다.

‘살기?’

모두들 같은 것을 느낀 것이리라.

남궁상과 현운이 눈빛을 교환했다.

‘하나, 둘, 셋, 넷…….’ 

조용히 속으로 셈을 해본다.

‘열넷?’

남궁상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모든 이들이 시위하듯이 기운을 발출시키고 있었지만,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기척을 죽인 채 매복하고 있는 이가 하나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은밀한 만큼 위험하다. 상당한 실력의 소유자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남궁상은 그 미세한 기척조차 놓치지 않았다.

비류연과 염도의 맹단련으로 그의 감각은 기민해질 대로 기민해져 있었던 것이다.

‘열다섯!’

“무례하군!”

무표정한 얼굴로 빙검이 말했다. 이어서 염도의 뒤틀려진 입가가 실룩거렸다.

“환영식이 꽤나 거창하군!”

이 거미줄처럼 사방에서 옥죄어오는 살기의 근원이 어디인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일종의 시험을 겸한 기세 싸움이 벌써부터 시작된 것이다. 이 줄다리기에서 지는 쪽은 꼬리를 만 강아지가 되는 것이다. 체면이 걸려 있다. 먼저 걸어온 싸움. 물러 설 수는 없었다.

“마천각…….”

장홍이 조용한 목소리로 뇌까린다.

“짜릿하게 환영해주는군! 선객의 호의란 것인가…….”

성대한 환영식! 신경 쓴 티가 역력하지 않은가! 그들이 드디어 발을 디딘 홍매곡은 첫 인사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재미있겠는걸.”

비류연이 씨익 미소 지었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