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13권 5화 – 두 번째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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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13권 5화 – 두 번째 관문!

두 번째 관문!

겁흔벽(劫痕壁)

놀랍게도 회의노인은 염도의 걱정과 예상에도 무사히 밧줄다리를 건너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는 속도를 과시해 뭇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역시 보통 노인네가 아닌 것만은 확실 했다.

안개 낀 미로처럼 정체가 여전히 불명확한 게 마음에 걸리기는 했지만 ‘태극의 인재’와 비류연이 아닌 다른 진짜 사부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을 아무 곳에나 방치 할 수는 없었다.

산은 점점 높아지고 험준해졌다. 빽빽하게 늘어선 길고 장대한 아름드리 나무가 청량한 수목의 향기를 내뿜으며 그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고, 디디면 디딜수록 우거지는 수림은 점점 높아지는 뜨거운 햇빛을 시원스레 가려주고 있었다. 무성한 초록의 나뭇잎 사이로 살짝살짝 햇빛이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와 그림자 속에 서 빛의 흰 궤적을 그렸다.

길이라고 할 만한 것이 전혀 없었다. 걸어가면 걸어갈수록 높아지고 낮아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그들이 가는 곳이 곧 길이 되었다. 무릎이 잠길 정도로 풀이 길 고 억세기만 한 곳도 있는 반면, 어떤 때는 암석들이 그득해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황량한 장소도 있었다. 아직 가을인지라 화산의 자랑인, 눈을 현란하게 어지럽 히는 붉은 매화의 물결은 보이지 않았다.

두 번째 관문이 어디메뇨, 두 눈 부릅뜨고 찾을 필요는 없었다. 어디냐고 묻자 종쾌는 올라가다 보면 자연히 알게 될 거라면서 웃으며 배웅했다. 그냥 가보면 알게 될 거라는 종쾌의 말대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그곳은 그런 곳이었다.

그곳은 널찍한 빈터였다.

이 가파른 천무봉의 중간에 어엿이 존재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평평하고 넓었다. 짐승들이나 다닐 법한 험한 길을 지나온 사람들은 직감적으로 이곳이 두 번째 관문임을 알아챘다.

“아무도 없나? 기분 나쁜 정적이군.”

염도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첫 번째 관문처럼 두 번째 관문도 관리자가 존재하는 것이 당연한 이야기의 수순이었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람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비류연이 손을 들어 정면 저편을 가리켰다. 구차하고 번거로운 말은 없었다. 그 손가락 끝을 따라 염도의 시선이 움직였다.

그것은 벽이었다. 밤의 어둠처럼 새까만 칠흑같이 검은 벽.

자석에라도 이끌리듯 사람들의 발길이 그 검은 벽을 향했다.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의 거리까지 검은 벽에 다가가서야 사람들은 그 벽이 거울처럼 윤이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좀처럼 당황이나 경악으로 자신의 중심을 잃는 일이 없는 비류연의 입에서 경악성이 흘러나왔다.

극도로 억제하고는 있지만 벽을 만져 보기 위해 뻗은 팔의 미약한 떨림마저 억제하기는 불가능했다. “이게 왜 여기에…….”

검은 얼음 같은 바위의 차가운 감촉을 손끝으로 느끼며 비류연의 눈동자가 심연 깊숙이 가라앉았다.

그 벽은 어떠한 자연의 강압에도 굳건하게 그 자존심과 형태와 모습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그 벽은 위압적이고 경이로우며, 단단하게 생성되어 있었 다. 감히 어떠한 외력으로도 흠집 하나 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지금, 굳건했던 묵빛 바위의 자존심은 그 위에 새겨진 무수한 상처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한때 드높은 자존심을 구가했을 것 같은 그 고고했던 검은 광택은 셀 수 없는 상처로 유린되어 있었던 것이다.

비류연의 손을 중심으로 평평하고 검은 벽에는 거미줄같이 미세한 세선(線)들이 빽빽하게 그어져 있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수백 마리의 거북이 등껍질을 붙여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매끄러운 흑광택 거울에 드리워진 거미줄 같은 모습처럼 보이기도 했 다.

‘무엇이 그를 저토록 동요시키는 걸까?’

항상 가볍고 지나칠 정도로 유쾌했던 비류연이었다. 나예린은 여태껏 그가 이토록 심각한 표정을 짓는 것을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비류연과 동요, 생각하면 생각 할수록 어울리지 않는 묶음이었다.

원하지 않지만 가져버린 그녀의 용안으로도 평소 비류연의 마음은 읽을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정도 틈이 벌어졌는지 그의 마음에서 창포물처럼 번져가는 동요가 확실히 보였다. 의혹의 그림자가 겹겹이 쌓일수록 그의 동요도 점점 커져갔다. 무섭다고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녀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했는지 비류연은 계속해서 검은 벽만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있을 수 없어!’

비류연은 절대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선은 가늘고 날카로웠지만 세월의 풍화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무형의 검기(氣)를 품고 있었다. 신의 역작이 아니라면 사람의 마음 속에 절망을 새겨넣기 위한 악마의 농간이리라.

빙검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벽 가까이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의 시선이 멍하니 검은 벽의 전면에 새겨진 문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님?”

뒤에서 빙검의 딸인 관설지가 그를 불렀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그 검은 벽에 집중되어 있었다.

남궁상도, 용천명도, 청흔도, 장홍도, 마하령도, 신유성도 무형의 기운에 이끌리기라도 하듯 그 대열에 합류했다. 그 외에도 몇 명이 더 합류했다.

그러자 두 개의 군집이 생겨났다. 벽에 다가가 문양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부류와 약간 떨어진 채 그저 ‘왜들 저러지?’라는 시선으로 지켜보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 었다.

비류연을 선두로 벽에 가까이 다가간 이들은 검은 돌벽 안에 숨겨진 수수께끼라도 찾아 풀려는 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바위벽도 자존심이란 게 있었기에 그들의 집중적이며 집요하기까지 한 시선에 구멍이 뚫리거나 하는, 말도 안 되게 터무니없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벽에 다가간 이들은 한참 동안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침묵 속에서 묵묵히 그 흔적만을 바라보았다.

“으음…….?”

무거운 침음성이 모두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침묵은 육성(肉聲)에 의해 깨졌다.

“어때? 볼만한가?”

느닷없이 귓가를 울리는 목소리에 사람들은 그 목소리의 출처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여기라네! 여기!

처음에는 그저 검은 벽 옆에 솟아 있는 검은색 돌부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돌부리가 움직이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자세 히 살펴보니 텁수룩한 수염 같은 것에 가려 잘 구분은 가지 않지만 눈, 코, 입도 달려 있다는 것이다. ‘오오! 이것은 전설상에 나오는 말하는 인면석(人面石)이 아닌 가! ’라고 외치고 싶은 사람도 있었겠지만, 그러기에는 아무래도 인간일지도 모른다고 의심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어? 돌덩이가 말을 다하네?”

염도가 신기한 듯 말했다. 답변은 금방 돌아왔다.

“자네 눈은 장식으로 달려 있는 건가? 엄연한 사람일세, 사람!’

확실히 그런 것 같기는 했다.

그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노인은 검은 옷에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수염이 무덤가의 잡초처럼 아무렇게나 나 있었다. 때문에 첫 대면부터 인간이라고 선뜻 믿기가 힘들었다. 백 년 동안 한 번도 몸단장할 생각을 하지 않은 사람 같았다.

이끼 같은 잡초들이 그의 몸을 휘감고 있어서 처음에 바위덩어리인 줄 안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노 선배님께서는……?”

염도가 조심스레 여쭈었다. 그는 종쾌의 경우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 노인의 신분도 보통은 아닐 터였다.

“만나서 반갑군, 빨강머리 친구! 노부가 이 두 번째 관문의 시험관일세!”

‘역시!’

짐작이 들어맞았다.

“그럼 어디 얼마나 재료가 튼실한지 한번 볼까!

대지에 뿌리를 내린 바위처럼 좌정하고 있던 노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노인은 키가 무척 크고 기골이 장대했다. 언뜻 봐도 염도보다도 더 클 것 같았다. ‘헉!’

그 순간 염도는 수백 개의 무형 도기가 자신의 몸을 난자하는 듯한 느낌에 기겁을 하며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당황한 나머지 너무 급히 물러나는 바람에 한참이나 신형을 제대로 잡기가 힘들었다. 산발 괴노인이 염도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바뀌었다.

“호오? 빨강머리 친구, 피 한 바가지 뒤집어쓴 듯한 머리카락을 지닌 것치고는 좀 하는구만! 꽤 좋은 실력인걸? 내 살기에 반응해 내 칼의 간격에서 벗어나려 하다

니 말이야.”

괴노인은 무척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염도는 결코 그 칭찬을 좋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노인의 시선이 염도의 허리를 향했다. 물론 괴노인은 염도의 통나무 같은 허리에 관심이 있을 만큼 변태이거나 타락하지는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허리에 찬, 독특한 기운을 품고 있는 염도의 애도 홍염이었다.

“좋은 도로군!”

“제 분신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보던 도인데…….”

금세 노인의 추저분한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노화와 치매를 극복하고 기억해 내는 데 성공한 모양이다.

“과연 그랬었군, 빨강머리 친구! 자네는 그분의 제자였구만!”

왜 요즘 들어 자신의 신분을 아는 사람이 많은지 염도는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빙검도 그 건에 관해서는 기분이 안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사부님 의 엄명이 자꾸만 떠올라 결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 노인의 정체는 뭘까?”

“노 선배님의 존함은 어찌 되시는지요? “

염도가 다시 정중하게 물었다. 도법에 관해서 일가를 이룬 그의 도기(刀氣)조차 이 노인에 비하면 한참 모자란 감이 있었다.

“저 불타는 개차판이 기세에서 밀리다니!’

사람은 정말 오래 살고 볼 일이었다.

그 때문에 염도의 고민도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았다.

백합 내에는 승부를 장담할 수 없었다. 아까 전부터 계속 저 괴노인의 전신에서 발산되는 무형의 도기를 깨트려 보려고 애를 써봤지만 허사였던 것이다.

“예에에에?’

코앞에서 들은 염도는 물론이고 대표단 전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노인의 이름이 어디서 많이 들어보던 이름이었던 것이다.

염도가 떠듬떠듬한 목소리로 외쳤다.

“서, 설마 그 일도단애(-刀斷崖) 도제(刀) 용경의(龍驚意)?”

도제 용경의! 한 칼에 절벽을 두 동강 낸다(一刀斷崖)는 그의 휘호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무섭고 뛰어난 도객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며 생긴 경악에 대한 면역력과 비공답운 종쾌의 일만 없었어도 어디서 거짓부렁을 치냐고 칼침을 날렸을 터였다. 첫 관문을 겪은 이후 이제 누가 나와도 놀라지 않겠다던 맹세는 어느새 화장실의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도제 용경의! 그는 염도가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천겁혈세 이후 역시 실종되었다고 들었는데……?”

당시의 실종이란 이미 죽었지만 안타깝게도 시체는 건지지 못했다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였다. 피와 죽음의 시대 당시 실종된 사람이 어딘가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안일하게 생각될 만큼 그때의 상황은 평화롭지 못했다.

예상했던 대로의 반응이라는 듯 도제는 마른 입가가 파삭파삭 부서질 듯한 고소를 머금었다.

“왜 그러나? 이런 꼴사나운 모습이라 믿어지지 않나?”

그의 오른쪽 소매가 어깻죽지부터 맥없이 바람에 휘날렸다. 천하제일경공의 두 다리, 천하제일도객의 오른팔. 그것이 이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표단들은 잘 알 고 있었다.

꿀꺽!

마른침이 대표단의 목젖을 타고 내려갔지만 오히려 갈증만 가중시킬 뿐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긴장한 모습을 오해한 도제는 아무래도 이들이 아직도 자신의 정체를 못 믿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한 모양이다.

“역시 도제는 도로 말할 수밖에 없는 모양이로군.”

푹!

갑자기 노인의 왼손이 자신이 앉아 있던 자갈방석 바로 옆에 깊숙이 박혔다. 그리고 길쭉한 흙덩어리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몽둥이 하나를 꺼내 들었다. 곳곳 에 시든 잡초가 붙어 있는 데다 군데군데 이름모를 잡풀까지 듬성듬성 나 있는 그 흙방망이로부터 ‘후두둑’ 흙모래가 비오는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뭐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예측할 수 없는 노인의 행동을 그들은 그저 멍하니 두 손 놓고 지켜만 볼 뿐이었다.

쾅쾅쾅!

스스로 자신을 백 년 전 아무도 모르는 이가 없던 초유명 인물이라고 양심선언(?)한 노인은 왼손 하나로 흙몽둥이를 휘둘러 단단한 돌덩이를 내리쳤다. 파사사삭! 퍽!퍽!

갈색 흙몽둥이와 회색 암석이 부딪칠 때마다 ‘우스스’ 굳은 흙덩이와 이끼, 풀이 떨어져 내렸다.

“응? 아직인가?”

쾅! 쾅!

노인이 몽둥이를 두어 번 더 내리치고 나서야 사람들은 그것의 숨겨진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알을 깨고 부화하는 병아리처럼 단단히 둘러싸인 진흙껍질을 깨 고 나온 것은 놀랍게도 한 자루의 도였다.

넓은 도신과 특색 있는 용 모양의 손잡이로 미루어 볼 때 도제 용경의의 애도 용천도(龍天刀)가 분명했다.

쇠도 두부썰듯 써는 천하의 보도라고 명성이 자자하던 것이 백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는 고물상에 가도 엿이나 제 값에 바꿔줄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참혹하게 곯 아 있었다.

저 상태로 미루어 보아 수 년간, 아니 수십 년간은 흙 속에 묻어둔 듯하니 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용하다 하겠다.

‘용케도 썩어 문드러지지 않았군…….?’

이미 곯을 대로 곯은 칼집은 가루가 됐어야 정상이라 여겨지는데 용케 저런 충격에도 여태껏 견디고 있는 것이다. 나무 칼집이라면 저런 무모한 일이 가능할 리가 없었다. 분명 한철을 모루 위에 두들겨 제작한 것이리라.

“이제 좀 볼 만하군.”

그러나 무식하게 대충 턴 것이라 여전히 군데군데 흙과 함께 한때 대지의 일부였다는 증거가 남아 있었다.

“뭐 아쉬운 대로 이걸로도 충분하겠지!”

그러고는 대표단들을 돌아보며 씨익 웃었다.

“……?”

그때까지만 해도 대표단들은 노인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했다.

슈욱!

퍽!

작은 북을 치는 듯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컥!”

그 순간 박자라도 맞추는 듯 윤준호가 배때기를 움켜쥐며 허리를 반으로 접었다.

“쯧쯧! 이런 것도 못 피하면 안 되지!”

슈욱!

다시 도제의 왼손에 들린 보관불량품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움직였다.

퍽!

또다시 울려퍼지는 소리!

이번에는 백무영이었다. 전적이 있어 경각심을 일깨웠을 텐데도 피하지 못한 것이다. 그의 눈에 눈물이 찔끔했다.

“이런, 이런! 봤다고 해도 피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지!”

노인이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망이라는 기색이다.

이 정도로는 아직 재미가 없는 모양이었다.

“쯧쯧쯧! 젊은 친구들이 이렇게 강단이 없어서야 어따 써먹겠나? 좀 더 이 늙은이를 즐겁게 해주게나!”

슈욱!

다시 그의 칼이 칼집과 함께 쾌속하게 바람을 가르며 움직였다.

깡!

이번에는 북치는 소리 대신 쇳소리가 났다.

모용휘가 자신에게 날아오는 노인의 칼집을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을 들어올려 막고 그 반동을 이용해 뒤로 물러났던 것이다.

“호오?”

처음으로 나온 반응이라 그런지 노인은 점점 더 흥미가 생기는 모양이었다.

“그럼 어디? ”

슈욱! 다시 뱀처럼 영활하게 움직이는 칼집.

“앗!”

카카캉!

교착상태! 칼집을 내지른 사람도 검집으로 그걸 눌러 막아낸 사람도 양쪽 모두 교착상태에 빠져 움직이지 않았다. 모용휘는 어느새 질러온 그의 칼집을 왼손에 잡은 검집으로 내리 누르고 있었다. 또한 뒤로 튕겨나가지도 않았다. 부르르 떨리는 그의 발은 원래 있던 곳에서 반 보 정도 뒤로 밀려나 있었다.

“오호호! “

이제는 좀 재미있어졌군, 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노인의 덥수룩한 머리카락과 두툼하고 산적 같은 눈썹 밑에 감춰진 두 눈에 장난기가 감돌았다.

“어디 솜씨를 한번 볼까?”

대치상태에 있는 두 개의 칼 중 자신의 것을 손목의 힘만을 이용해 살짝 밀었다. 작은 동작이지만 거력이 담긴 한 수였다.

모용휘는 자신을 향해 밀려오는 힘을 거스르지 않고 누르고 있던 검집을 뒤로 유연하게 빼며 받아 흘렸다. 이때 저항하면 오히려 자신의 검을 빼앗기거나 유리한 고지를 잃어버릴 수 있었다.

이번에는 노인이 살짝 칼집을 뒤로 뺐다.

뒤로 빠진다고 멀뚱히 보고 있으면 속박력을 상실하고 겨우 만들어놓은 봉쇄가 무용지물이 되어 상대의 칼이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현재의 봉쇄를 놓치면 다음 수는 솔직히 막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는 이번에도 역시 거스르려 하지 않고 힘의 방향에 순응하며 앞으로 움직였다.

‘두 번씩이나!”

도제는 이 사실이 무척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어디?

이번에는 칼을 손목의 힘을 이용해 좌측으로 회전시켰다. 소용돌이에 휘말린 통나무처럼 모용휘의 검이 회전 안에 휘말려 들어갔다.

완전히 밖으로 내쳐지든 아니면 역으로 자신의 검을 누르든 양쪽 다 모용휘에게 불리한 일이었다. 게다가 힘으로 눌러 저항해 보려 해도 내공의 차이 때문에 불가 능에 가까웠다. 게다가 아래로 떨어지는 힘은 막을 방도가 없었다.

캉!

마침내 모용휘의 검집이 튕겨져 나가자 그의 가슴은 완전히 빈틈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모용휘가 단말마를 터트렸지만 도제의 칼은, 아니 칼집은 모용휘의 목 앞에 싱글벙글 그를 비웃듯 놓여 있었다. 서늘한 살기가 도 끝을 타고 전해지자 모용휘는 전 신의 신경을 팽팽히 팽창시킬 수밖에 없었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몸이 급작스럽게 긴장하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갈색 서리처럼 뽀얗게 앉은 수염 밑에 파묻힌 노인의 입이 실룩거렸다. 나름의 미소였지만, 백 년 동안 미소를 지은 기억이 없어서인지 어색하기만 했 다.

“제법 품질이 양호한 놈도 섞여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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