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24화 – 입관식장 탈출 사건

비뢰도 2권 24화 – 입관식장 탈출 사건

입관식장 탈출 사건

장엄함과 웅장함, 그리고 감동의 물결에 몸을 떨어야 할 마땅할

천무학관의 입관식!

하지만, 비류연에게는 하품이 연달아 나올 정도로

지루하기 짝이 없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곳곳에서 감동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신입 관도들을 심심치 않게 목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류연의 눈에는 그들이 단순한 좀생이 정도로 치부 되어 비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수많은 시련을 거치고, 난관을 넘어 도달한 이 자리가 보통 사람들이라면 감동스럽지 않을 리 없었다. 그래서 신입 관도들이 간혹 감 동에 겨운 눈물을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도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감정이 비류연에게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아니 인식이 되지 않았다. 그들이 지금 느끼는 당연한 감정이 그에겐 너무나 낯설고 생소했다.

“이런 끔찍스런 낭비에 감동을 받을 수가 있다니?”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돈을 떠나서는 사고 활동이 원활히 이어지지 않는 비류연이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연무장에 도열한 수천의 인파와 높이 서서 형형색 색으로 날리는 각양각색의 깃발들은 전혀 감흥거리가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식장을 감도는 흥분과 패기, 그리고 열기의 조화로운 협주도 그에게 오직 지루함을 줄 뿐이었다.

상급생 대표의 환영사와 이런 때가 아니면 보기 힘든 관내(內)의 주요 직책 요인들, 스쳐 지나가기도 하늘에 별 따기라는 부관주와 거기에 보기만 해도 가문 칠 대(代)의 영광이라는 천무학관 관주! 그리고 그를 철벽처럼 호위한다는 좌우 쌍위까지, 비류연에게는 그저 무덤덤한 일일뿐이었다.

비류연은 지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 갑갑하고 지루하기 그지없는 입관 식장을 떠나 어디론가 훌훌 날아가 버릴 절호의 기회를……. 드디어 남들은 살아 생전 에 단 한 번이라도 보기를 원하는 천관주와 부관주, 그리고 대노사 대표와 상급생 대표로 줄줄이 이어지는 환영사가 비류연에게는 처절한 고문이었는지 마침내 오 래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기회가 오지 않으면 만들면 되는 법!’

여기까지 가까스로 참은 것만 해도 그로서는 불가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갖춘 셈이었다.

“스윽!”

그의 몸이 허깨비인 양 흐릿해지더니 형체와 그림자가 희미해지고 이내 행사장 내 어디에서도 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없게 되었다. 소리도 형체도 남기지 않는 고 도의 극상승(極上昇) 신법(身法)이었다. 아직까지도 지치지 않고 그에게 따가운 눈총을 찌릿찌릿 보내고 있던 무리들은 간(肝)이 떨어질 뻔했다. 그들은 심장이 목 구멍을 박차고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튀어나온 심장에 발을 헛디뎌 중심을 잃고 미끄러져 자빠지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여겨야 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 도 엄연히 존재하던 비류연이 허깨비 마냥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것도 내심 신경을 쓰며 주의를 기울여 관찰하던 인물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어디로 갔는지, 방향과 속도는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의 시야에서 벗어나 자취를 감춰 버린 것이다.

“이, 이럴 수가……. 종, 종적을 놓쳐 버렸다!’

주의를 기울여 주시하던 상대의 종적을 놓치고 방향조차 포착하지 못하다니, 실전이라면 당장에 이외의 사각에서 일 검(劍)이 날아와 그들의 목을 떨군다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 아닌가. 상대의 종적을 놓친다는 것은 곧 패배를 뜻했다. 이 두 글자 이외에는 아무 것도 존재할 수 없었다. 그들은 오늘 생명 하나를 연명장 부(延命帳簿) 재고란에 기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20줄 짜리 장편 반성문 수십 장을 쓴다고 해도 용서되지 못할 실수였다.

모든 신입 관도들은 모골이 송연해 지고 온몸에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들 모두 깊은 패배감을 동시에 맛본 것이다. 그 맛은 결코 달콤하지 않았으며 귀신에 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비류연 옆에 있던 신입 관도들은 열심히 자신의 눈과 귀를 포함한 오감과 정신을 의심해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멍하니 서 있을 뿐이 었다. 방향조차 짐작하지 못하고 그림자 끄트머리조차 잡지 못했다. 자신들의 눈은 장식품에 불과하단 말인가? 이것은 그들이 사라진 상대보다 단번에 하수로 전락 해 버리는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충격은 더욱 클 수밖에 없었다.

비류연이 식장을 빠져나와 간 곳은 가까이에 위치한 고풍스런 전각의 지붕 꼭대기였다. 5층으로 이루어진 꽤 높은 전각으로, 그 지붕 꼭대기에 올라서자, 한창 예 식이 진행중인 연무장의 오색 찬연한 풍경이 일목요연하게 눈에 들어와 경치가 그만이었다. 전각의 기와를 요 삼아, 밝게 비치는 햇살을 이불 삼아 활개친 채 드러 누운 비류연은 생명의 숨결을 들이마시듯, 막힌 속을 뚫어 버릴 듯, 따사로이 내리 쬐는 햇살과 보드랍게 그의 얼굴을 간지는 바람을 들여 마셨다. 햇살이 포근했다. 그래서 그는 이내 잠이 들었다. 아까 전에 이어지지 못한, 끝내는 아쉽게 그쳐야만 했던 숙면의 연장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숙면은 기대만큼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어라?”

기와를 요 삼아 햇살을 이불 삼아 즐기던 꿈도 잠시. 그의 얼굴에 한 줄기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자연적인 것은 분명히 아니었다. 따스한 봄날의 햇살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방해물이었다.

“번쩍!”

평화롭고 기분 좋게 맛좋은 오침을 즐기던 비류연의 눈이 번쩍 떠졌다. 대(大)자로 누운 채 턱만을 치켜든 그의 눈에 사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듯 들어왔다. 나이 는 스무 살 정도일까? 날카로운 검미와 오뚝한 콧날이 인상적인 준수한 얼굴에, 느긋한 미소를 지닌 청년이었다. 밝은 미소가 가득한 싱글벙글한 얼굴, 그 이마에 대각선으로 교차되어 매어져 있는 두 가닥의 푸른 영웅건이 보는 이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그의 등 좌우에 매여진 두 자루의 쌍검(劍), 이 쌍검 또한 두 자 루 모두가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같은 모양, 같은 색을 하고 있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아마 이 두 자루는 형태 뿐만 아니라 무게나 감촉마저도 똑같을 것이 분명했다. “안녕!”

처음 보는 청년이 먼저 인사했다.

포권지례는 없었다. 존칭도 없었다. 단지 우수를 들어 흔들어 보일 뿐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하기엔 다소 어색한 인사였지만, 그 청년에게서는 전혀 어색함을 느낄 수 없었다. 그 청년에겐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어 누가 들었어도 반갑게 느꼈을 인사였다. 그만큼 그는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는 시원스럽기 그지없는 인 상을 가지고 있었다.

“나와 같은 취미를 지닌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군요!”

예상치 못한 지기, 마음을 나눌 동지를 만나 매우 기분이 좋은 듯 그의 말에는 생기가 가득 넘쳤다.

“누구?”

“아, 제 이름은 효룡이라고 합니다. 친구들은 을진무쌍검이라고도 불러 주지요. 제게는 과분하지만요. 사실 의식이란 건 겉보기에 멋있을지 몰라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겐 너무 따분하죠. 지루하기 그지없고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당신도 이곳에 있는 것 아닌가요? 이런 시간에 이런 곳에서 의외의 예상치 못한 지기를 만 나다니, 이래서 삶이란 즐거운 것인지도 모르죠. 예식을 땡땡이 치고 만난 멋진 인연이라? 후후,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늘의 공덕인가 봅니다.”

비류연이 입벌릴 틈도 주지 않고 쉴새없이 자기 할 말을 쏘아붙인 이 효룡이란 시끄러운 사내가 비류연을 보며 밝게 함박 웃음을 지었다. 재밌고 신기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비류연은 그의 미소가 참 밝고 시원스럽다고 생각했다.

사실 비류연이 이처럼 타인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기록으로 남겨야 할 정도로 드문 일이었다. 원래 그는 금전적 인간 관계 이외의 사람에게는 거의 관심을 두 지 않았다. 하지만 효룡은 이런 의외의 곳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동지를 만난 사실이 너무나 신기한 듯 감탄사를 연발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그는 들떠 있었다. 자신과 공감대를 가진 친구를 만나기란 인생을 살면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류연은 효룡의 이런 호들갑에도 우선 겉으로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 다.

“다 말했어?”

여태껏 계속 효룡을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던 비류연이 눈살을 찌푸리더니 마침내 입을 열었다.

“예.”

“저기 근데…….”

“예?”

비류연을 내려다보며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던 효룡이 눈길을 돌리며 반문했다.

“다 좋은데 이젠 그만 좀 비켜 줘. 햇살이 가려지거든. 그건 싫어.”

비류연의 말은 효룡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때서야 효룡은 자신의 실수를 눈치챈 듯 ‘아차’하며 한 발자국 옆으로 몸을 물렸다. 다시 햇님이 비류연 의 전신을 포근히 감싸안았다. 그제야 만족한 듯 비류연은 찌푸려졌던 눈살을 풀고 미소를 지으며 햇님의 포근함과 따스함을 음미했다. 돈으로도 사기 힘든 사치스 러운 호강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비류연의 모습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효룡이 마음을 굳힌 듯 옆자리로와 비류연과 똑같이 활개친 채 벌렁 누었다. 햇살이 효룡의 안면을 기분 좋게 자 극했다.

“어? 그 옷 새로 산 거 아냐? 더럽혀져도 괜찮아?”

비류연이 물었다. 여전히 쓸데없는 걸 잘 걱정해 주는 비류연이었다.

“상관없어. 기분이 좋으니깐!”

어느새 효룡의 말은 평대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비류연은 그런 사실에 특별히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만큼 그와 효룡 사이의 대화에는 허물이 없었다. 비류연이 효룡에게 물었다.

“어때?”

“기분 최고야, 이 해방감! 이 충만함! 하하하.”

효룡이 홍소를 터트리며 대답했다. 그의 대답에 비류연도 같이 미소를 지었다. 비류연은 그의 대답이 만족스러웠다. 비류연이 오른손을 내밀었다. 그가 남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다니, 천지개벽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내일 세계의 멸망을 걱정하는 이가 있다 해도 아무도 그를 비난하지 못하리라.

“난 비류연이야. 잘 지내보자.”

효룡이 그의 손을 맞잡았다. 둘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었다. 전각 아래는 행사 진행으로 부산했지만, 전각 위의 두 사람은 속세와는 손을 끊은 신선처럼 여유를 누 렸다. 모든 게 평화롭고 한가하기만 해 보였다.

입관식이 모두 끝나고 신입 관도들 만을 따로 집합시키는 신호가 울려 퍼질 때까지도 둘은 전각 위의 일광욕을 끝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물론 내려올 생각도 없는 듯했다.

“이봐, 류연?”

효룡이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비류연을 불렀다.

“응, 왜?”

“누가 우릴 보고 있는데?”

“응, 알아. 아까 너 올라 올 때부터 쭉 있었어. 너 따라온 거 아냐?”

효룡의 몸이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게 움찔거렸다. 그러나 이내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효룡은 멋쩍게 뒤통수를 긁적이며 말했다.

“응, 글쎄? 그렇게까지 사랑 받는 사람은 없는데? 하하하…….”

좀 전의 반응과는 달리 그의 음성은 태연하기만 했다.

“그래? 그럼 신경 꺼.”

별로 대수로울 것 없다는 식으로 비류연이 말했다. 하지만 말처럼 그것의 실행이 그리 쉽게 될 리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시선이 계속해서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더 이상 농땡이 치지 말고 내려가라는 뜻 아닐까?”

“그런가? 남이야, 토사물로 빈대떡을 부쳐먹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약간 짜증스럽다는 투로 비류연이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타인의 간섭은 정말 사절하고 싶었다.

“어, 그런 전적이 있었어?”

효룡이 매우 흥미진진한 눈빛을 하며 물었다.

“난 아냐. 하지만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전적을 가진 사람이 있지. 친구들과 술을 퍼먹고 자는데 친구 중 누군가가 자다 일어나 취중에 그릇에다 구토를 해 놓은 거 야. 아침에 그 녀석이 일어나 보니 적당히 굳어 있는 토사물을 보고 빈대떡 재료로 착각했나 봐. 그래서 그걸로 빈대떡을 부쳐서 먹었다더군.”

“먹을 만 하데?”

“응, 꽤 먹을만한가 봐. 재료가 멀겋고 끈기가 적어서 계란에 밀가루만 약간 더 풀어서 전을 부친 후에 친구들이랑 나눠 먹었다더군. 그게 아주 별미였데. 물론 나 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모두 기겁을 했지만.”

“모르는 게 약이라는 이야기지. 우리도 한 번 해 먹어 볼까? 의외로 놀라운 맛의 새 지평을 찾을 지도 모르지.”

“포기하라고 적극적으로 권하고 싶군.”

“그래? 그럼 신 요리 실습은 일단 접어 두기로 하지. 그런데 도대체 그 친구가 누구야? 정말 궁금한데?”

“응, 별 거 아냐. 이름도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비류연은 효룡의 질문에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회피했다. 절대로 그 사건의 범인이 노학이라고는 말해 줄 수 없는 비류연이었다.

“아까부터 신입 관도 집합 신호가 울렸어. 숙소 배치도 받아야 하니 이만 내려가자.”

“숙소?”

‘그런 것도 있었냐? 나는 몰랐는데?”라는 표정으로 비류연이 반문했다. 효룡은 내심 어의가 없었다.

“너 그럼 여태껏 그런 것도 모르고 있었단 말야?”

“응!”

비류연은 모르는 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효룡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비류연의 손을 끌고 조금 전부터 집합 신호가 울리는 곳으로 향했다. 비류연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짐짝처럼 그렇게 효룡에게 끌려갔다. 비류연을 끌고도 체중이 전혀 부담이 되지 않 는지, 효룡의 신법은 표홀 하기만 했다. 그의 내공 수위와 경공 조예가 범상치 않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비류연을 끌고 집합 장소로 향하던 효룡이 비류연을 보며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류연?”

“응?”

“방금 그가 정말 천무학관 사람이면 우린 벌써 찍혔겠는걸? 벌써부터 농땡이 치는 걸 걸렸으니 말이야.”

말은 이렇게 했지만 효룡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당혹감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은근한 미소마저 짓고 있는 것이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감시자 따 위는 신경도 안 쓴다는 태도였다. 그들을 은밀히 주시하던 낌새도 어느덧 사라져 버렸고 다행히 집합 장소는 연무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그들은 몇 개의 전각 을 넘어 금방 ‘청심관’이라 적힌 건물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신입 관도 집합 장소였다.

건물은 다수의 인원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고 웅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전각 안에는 이미 많은 수의 신입 관도들이 모여 대기하고 있었다. 육백에 가까운 인원이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청 안은 비좁다는 느낌을 찾을 수 없었다. 그만큼 전각 안은 넓었다. 아울러 수백 명의 사람이 모인 곳임에도 불구하고 전각 안은 썰렁할 정도로 조용했다. 비류연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분이 나빴다. 그때 우렁찬 목소리가 전각 안에 울려 퍼졌다.

“무혼각주님께서 드십니다.”

신입 관도들의 시선이 소리의 근원지로 일제히 집중되었다. 이윽고 무인 세 명의 보좌를 받으며 한 초로의 노인이 걸어나왔다. 호위 무사들의 가슴에 수놓아진 삼 검룡(三劍龍)의 무늬가 노인의 높은 신분을 간접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었다.

비류연도 나중에 효룡에게 들어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천무학관에서는 연차에 관계없는 그 능력의 척도를 가슴에 새겨진 무늬로 결정한다고 한다. 삼검룡이면 세 개의 교차된 검과 검을 감싼 세 마리의 용이 새겨진 무늬다. 물론 검룡의 숫자가 하나씩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그 실력 차는 천지 차이로 벌어진다고 한다. 하나 의 숫자가 하나의 무도 단계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삼검룡(三劍龍)이면 웬만한 문파의 적전 제자 따위는 손 아래로 본다는 실력이다. 그런 삼검룡이 세 명이나 호위하는 데 노인의 신분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 무 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모든 이의 시선이 그 노인에게로 쏠렸다. 바라보는 관도들의 눈에는 흠모와 존경의 빛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