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27화 – 애송아, 발씻고 잠이나 자라

비뢰도 2권 27화 – 애송아, 발씻고 잠이나 자라

애송아, 발씻고 잠이나 자라

그의 뒤통수가 갑자기 서늘해졌다.

“검기!”

젠장, 이건 예고에도 없던 일이 아닌가!

비류연이 돌아보며 뒤에 서 있던

효룡과 장홍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 준 그 잠깐 사이에,

그 작은 틈새를 노리며 그의 뒤통수에서 사납고 날카롭기 그지없는

여섯 가닥의 편월형 검기가 그를 향해 쇄도했다.

어, 그런데 그의 뒤통수와 배후를 노리고 날아오는 치사하고 염치없기 그지없는 공격을 피하려고 보니, 젠장 공간이 너무 비좁았다. 장소가 협소한 관계로 원활한 회피 이동이 불가능했다. 장소는 좁은데 검기는 그 좁은 장소를 빼곡이 메우며 기습적으로 날아온 것이다. 다시 말해 피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젠장!”

비류연은 하는 수 없이 손을 치켜들었다. 순간, 그의 오른손이 새하얗게 빛나더니 이내 벼락처럼 떨쳐 내려졌다. 벼락처럼 빠르고 강한 일격, 분뢰수奮雷手)! 뇌정 (雷情)의 기운을 부린다는 극강의 수법 분뢰수가 시전된 것이다.

검기와 뇌정지기(雷情之氣)가 정면으로 격돌했다. 누가 피할 수 없다 했지, 막지 못한다고는 하지 않았다. 물론 좀더 우위의 힘을 지녔다면 소멸시켜 버릴 수도 있 을 것이다. 비류연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기의 무리를 간단한 손동작 단 일 수로 반쪽으로 찢어발겼다. 분뢰수의 뇌정지기와 예고 없는 검기가 정면으로 충돌하 며 눈부신 섬광이 피어오르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주위를 덮치는 거대한 충격파!

건물이 흔들리고 폭풍이 기하학적인 도형을 그리며 벽을 뜯어냈다. 검림이 산산이 부서지며 수천의 검편이 폭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허공 중에 매섭게 흩날렸다. 맞기만 해도 저승 구경하기 딱 좋을 정도의 위력을 지닌 그대로였다.

“땡! 땡! 때대댕댕!”

그 충격의 여파로 종(鐘)이 세차게 울렸다. 그러나 이내 힘을 견디지 못한 종(鐘)은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뒹굴었다. 건물 한켠을 완전히 제기 불능의 폐허 상태로 만들어 버린 폭풍이 잠잠해지는 데는 다소 시간이 필요했다. 협소한 장소에서 한계 이상의 힘이 한 순간에 격돌하며 벌어진 일이기에 그 피해는 더욱 컸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폭풍이 잠잠해지기 시작했고, 복도를 황색으로 가득 메우고 있던 농밀한 분진도 겨우겨우 거두워졌다.

“종이 울렸으니 합격인가요?

비류연은 마치 아무 일도 겪지 않았던 사람처럼 싱긋 웃으며 복도의 한 쪽 끝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언제부터인가 호랑이 문양의 장식이 달린 길고 묵직한 날카 로운 대검을 지닌 사내가 묵묵히 서 있었다. 그의 검은 일반 검보다 훨씬 크고 날카로운 대검으로 손잡이 부분에 장식된 성난 호랑怒號이 문양이 매우 인상적이었 다. 그리고, 비류연은 그 성난 호랑이 문양의 장식을 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음을 떠올릴 수 있었다.

노호! 성난 호랑이!

근래에 들어 무림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검의 명가 호아장의 유명한 상징이다. 이 남창 내에서도 이 문장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했다. 물론 비류 연도 얼마 전, 호아장을 방문한 적이 있는 관계로 기억이 있었다. 근데 검은 본적이 있으나 노호검을 든 사내는 본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사내가 든 거대한 패검(覇劍)은 호아장에서 수많은 무사들에게 둘러싸여 보았던 일반의 노호검과는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 치 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비류연의 관찰력이 그만큼 뛰어나고, 사내의 검에 관심을 가질 때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의 검이 당시 장원 제자들이 지닌 검보다 한 치가 더 길다거나, 검격의 장식이 좀더 화려하고 정교하다거가, 마지막으로 검신의 색깔이 확연히 눈에 띄는 거무칙칙한 흑색이라는 사실은 비류연과는 별로 상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검이 장주 직전의 후계자에게만 전해지는 신물 패왕 노호검이라는 사실은 더욱 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사부가 사내에게 자신과 장(莊)의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의미로 물려준 검이었다. 사내는 자신의 애검을 더욱 굳게 움켜쥐었다. 패왕 노호검에 담긴 책임감과 기대 때문인지 자신의 검이 한결 무겁게 느껴지는 것 만 같았다.

“누구시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비류연이었다. 난데없이 나타나 자신의 뒤통수에 검기를 갈겨댄 사내의 정체가 사뭇 궁금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여전히 밝은 미소를 띄는 것 으로 봐서는 상대에게 딱히 나쁜 감정을 품은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이윽고 사내의 입에서 얼음장처럼 싸늘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그의 두 눈은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소리 없이 불타고 있었다.

“호아장을 기억하느냐?”

당연히 상대가 알고 있을 거라는 가정 하에 내뱉은 질문이었지만 비류연은 그런 사내의 기대를 간단하게 배신해 버렸다. 비류연은 한참을 궁리한 끝에야 겨우 그 곳이 어딘지 생각해 냈던 것이다.

“호아장? 아아, 거기라면 얼마 전에 방문한 적이 있죠.”

그의 말을 듣자마자 사내의 눈에서 신광이 폭사되었다. 섬뜩할 만큼 싸늘하고 강렬한 살기가 어린 눈빛이었다.

“네놈은 무림의 한 문파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걸 겨우 방문이라고 표현하느냐?”

화산이 폭발하는 듯한 격한 외침. 사내는 더 이상 자신 안에 감추어진 분노를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제 이성으로는 조절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내의 감정은 폭 주하려는 중이었다. 거대한 대검을 피나도록 굳게 움켜 쥔 손, 광기와 분노로 번들거리는 두 눈, 조금만 더 힘을 주면 피가 배어 나올 것 같은 악다문 입술, 어디로 보 나 복수라는 광기에 불타는 전형적인 인간상이었다.

대체로 복수에 눈이 뒤집힌 족속은 대가리 속에 이성적인 사고체계라는 것이 치명적으로 결핍되어 있는 족속들이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러므로 될 수 있으면 마주치지 않는 게 상책 중의 상책이다. 그런데 그런 복수에 미치고 싶어하는 인간 하나가 지금 자신 앞에 검을 들고 서 있는 것이다.

“호아장의 대 제자 호천강, 사문의 치욕을 씻기 위해 여기 이 자리에서 너에게 도전한다. 무기를 들어라!”

청의무복의 사내가 검을 앞으로 치켜들며 당당하게 말했다. 그의 절도 있는 동작에는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의 눈에는 충분히 위압적으로 보일 만했다. 놀랍게도 사내는 호아장의 제자들이 그렇게 믿고 기다렸던 그들의 대사형이였던 것이다. 비류연의 호아장 방문 당시 천무학관 입관 관계로 현장(?)에 없었던 바로 그 인물이었다.

그러나 호천강의 도전을 받은 비류연의 얼굴은 여전히 동요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일 뿐.

“도전? 요즘은 도전 신청을 상대의 뒤통수에 예고도 없이 검기를 날리는 걸로 대신하나 보죠? 혹시 이곳의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도전 방식인가요? 아니면 혹시 암습을 도전으로 잘못 알고 착각한 건가요?”

냉소적일 만큼 그의 말투는 정중했다.

“그, 그건 단지 인사치레였을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

호천강이 당황하여 허겁지겁 변명하자 비류연은 거의 폐허로 전락하다시피 한 통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복도를 한 바퀴 둘러 본 다음 말했다. “인사 치레로는 너무 거창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무, 무례한 놈!”

붉으락푸르락 시시각각 변하는 그의 안색을 보아하니 이제 그에게 이성이란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는 듯 보였다. 이제부터는 감정이 육체와 정신을 지배하기 시 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폭발하지 않고 속으로 울화를 삼키고 있었다. 또다시 예고도 없이 선공을 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 번 더 반복된다면 정말 본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예고도 없이 상대의 뒤를 노린 치졸한 비겁자로 낙인이 찍힐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천강은 일단 참았다.

자신과의 치열한 투쟁이 한창인 호천강에겐 아랑곳하지 않고 비류연은 열심히 정황을 분석했다. 그리고 간단히 요약해 보았다.

“그러니까 당신의 얘기는 내가 호아장을 방문해 어처구니없게도 호아장이 피해를 당했다는 거군요. 그 복수를 하기 위해 나를 쓰러뜨리고 사문의 위신을 세우겠 다는 이야기군요! 물론 내가 댁에게 원한을 살만큼의 일을 했는지가 의문이지만 말입니다.”

복수를 당해야 마땅한 이유? 넘칠 만큼 충분하고 다양했지만 비류연은 애써 그 사실들을 무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비류연이 물었다.

“근데 그럼 더 파래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다.

느닷없는 비류연의 질문. 공사장 확인 작업하는 감독관처럼 비류연이 물었다.

‘더 파라니? 저놈이 미쳤나??

호천강은 비류연이 도대체 뭐라고 지껄이는지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뭐가 말이냐?”

뭔 소릴 지껄이는 거냐? 난 도저히 네놈이 한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정직한 얼굴로 호천강이 되물었다.

“더 파라냔 말입니다. 몰라요?”

어떻게 그걸 모를 수 있느냐며 정말 너무한다는 듯 책망 섞인 어조로 비류연이 말했다. 그런 말을 듣는 호천강으로서는 기가 막히고 억울할 따름이었다.

“말귀가 참 어두운 분이시로군요? 사람에게 두 번씩이나 같은 말은 되풀이하게 만들다니 말입니다.”

얄밉기 그지없는 얼굴로 비류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호천강의 속을 바가지 긁듯 긁었다. 저 자식이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건지, 아님 일부러 그러는 건지, 호천 강으로서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놈이었다. 두 눈 멀뚱멀뚱 뜬 채 비류연의 난데없는 소리에 대해 고민하는 녀석을 위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제 얘기는 청출어람(靑出於藍)이냐, 뭐 그런 얘기지요. 즉 당신이 당신의 사부님보다 강하냐, 그런 말입니다. 머리는 쓰라고 있는 거지 장식용은 아니라고 생각되 는군요.”

비류연이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미소는 호천강에게 절대로 호감을 주지는 못했다는 데 모든 재산을 걸어도 좋다. 오히려 더욱 더 그를 도발시켰을 뿐이 다.

호천강은 또 한 번 울컥했다. 젊고 혈기왕성한 그에게 그런 말은 지독한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그에게도 인내심이라는 것이 용하게도 남아 있 는 중이어서 검을 휘두름과 동시에 짐승처럼 울부짖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이성이란 것도 이젠 얼마 남지 않은 듯했다.

“크흐흐… 어찌 나의 미미한 실력을 감히 사부님과 견줄 수 있겠느냐. 헛짓거리 하지 말아라!”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심화를 가까스로 억누르며 호천강이 대답했다.

“그것 참 이상하네요?”

호천강의 대답을 들은 비류연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뭐가 말이냐?”

호천강의 말투가 점점 더 신경질 적으로 날카롭게 변해 갔다.

“그렇지 않아요? 어떻게 사부보다 못한 실력이라는 것을 본인 스스로도 알고 또 납득하고 있으면서도 당신의 사부 이하 사문의 어른이 대거 포진해 있던 그 호아 장에서도 어찌 하지 못한 나를 어찌해 보겠다고 나설 수 있었죠? 설마 요행을 바라는 건 아니겠지요? 그건 세상을 너무 우습게 보는 행위라구요.”

설마, 하는 비류연의 눈길이 온갖 의문을 담은 채 호천강을 향했다. 그의 어조는 내용에 비해 매우 친절하고 상냥했다. 정말로 나로서는 당신의 상황 판단을 위시 한 전력 분석 능력 및 사고 감각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불가사의가 아닐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이성의 끈이 미약해질 대로 미약해진 호천강의 상태를 아 는지 모르는지 비류연은 계속해서 연속적으로 호천강의 복장을 뒤집어 놓았다. 호천강의 어깨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의 검은 매섭게 전율하는 그의 우수에 힘껏 쥐어져 있어 도저히 손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것 같지 않았다.

“내가 왜 아직도 미치지 않고 있는 거지??

호천강은 그런 자신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머리 속이 점점 더 하얗게 변해 가는 것만 같았다.

‘빨리 정식으로 비무를 해야 해. 빨리 정식으로… 정식…….’

스스로에게 수없이 되뇌며 자신을 추스르려고 용쓰는 호천강에게 비류연은 그의 처절한 노력을 단숨에 물거품으로 만드는 결정타를 날렸다.

“불가능에 도전하는 것도 남아로서는 일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한 번쯤 해 볼 만한 일이라지만 이번 일은 너무도 터무니없는 것 같군요. 제 생각엔 그냥 집에 가셔 서 발이나 세정하시고 숙면이나 푹 취하시는 게 육체 건강 이하 정신 건강에도 매우 이득이 될 거라고 판단됩니다만.”

적어도 겉보기에는 예의를 한껏 갖춘 듯한 비류연의 말은 이미 호천강에게는 비아냥을 넘어 조롱에 가까웠다. 좀 비비꼬아서 얘기하긴 했지만 쉽게 해석하자면 애 송아, 넌 상대가 안 되는 헛수고 하지말고 집에 가서 발 씻고 잠이나 자란 말이 아닌가!

“네 이놈!”

결국 호천강의 분노는 폭발하고야 말았다. 더 이상의 인내는 없었다. 호천강으로서는 여기까지 참은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가 쥔 패왕 노호검으로 부터 무시무시한 강(强)의 검기(劍氣)가 피어올랐다. 방금 전 그가 말한 사부보다 약하단 말은 단지 겸양에 불과했는지 웬만한 고수로서도 무시하지 못할 무서운 기 운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일은 비류연은 웬만한 고수가 아니란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호천강에게는 불행 중 큰 불행이었다.

자신의 실력도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주제에 당랑거철 식으로 달려들어 뭔가 한번 의외의 결과를 도출해 보겠다는 호천강의 한심함에 비류연은 정중한 비아양과 격조 높은 조롱으로 화답해 주었다. 주제 파악도 못하는 철부지는 그에게 조롱거리 정도 밖에는 되지 못했다. 호천강의 말과는 달리 그의 맹호 삼십육검은 그의 사 부호천상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의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동안 일 년여를 천무학관에서 수련하면서 호천강은 그 자신도 모르게 장족의 발전을 이룩했던 것이다. 그의 이런 자기 발전은 기특하고 가상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비류연을 이길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뻗어 가던 패도적인 검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비류연이 돌진했다. 사방에서 짖이겨 오던 검기는 허무하게 그의 몸을 비켜 지나갔고, 비류연은 유유히 호천강의 하복부에 자신의 오른쪽 발을 꽂아 넣을 수 있었다. 일각(脚) 무생각이었다. 승부는 이 일격으로 싱겁게 결정 났다. 승패의 방향은 너무나 명백 해 재고의 여지도 없었다. 호천강의 얼굴이 창백하게 탈색되었다. 혼비백산할 정도로 경악하는 바람에 혀가 굳어 버려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저… 저… 저저……..”

호천강이 두 눈이 믿어지지 않는 사실을 목격한 사람처럼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패왕 노호검을 든 그의 손이 사시나무 떨리듯 거세게 떨렸다. 호천강은 작금의 현 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건 자신의 복부에 박혀 있는 비류연의 발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차낸 발길질에 얻어맞은 것만 해도 억울하고 분해 죽겠는데 비 류연이 무생각과 함께 쳐낸 분뢰수 – 비류연은 호천강의 복부에 무생각을 처박아 넣는 것과 동시에 그의 보검을 분뢰수로 쳐냈었다 가 더욱 문제였다. 그것은 호 천강에겐 경악을 뛰어넘는 경악이었다. 패왕 노호검의 검신 중 비류연의 분뢰수가 치고 간 자리 위는 이제 그 자취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남아 있질 않았다는 이야 기다. 반 토막이 된 검신의 나머지 부분은 오장 밖 마루 바닥 저편에 깨진 바가지 조각 마냥 꼴사납게 나뒹굴고 있었다.

사문의 신물이 부러진 것이다. 호천강에게는 소림의 녹옥불상이 부서지고, 개방의 취죽봉이 부러진 것과 동일한 경천동지할 사건이었다.

호천강은 자지러질 듯 놀랐고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해 버려 아무런 생각도, 사고도 할 수 없는 상태가 지속되었다. 눈알이 풀리고 다리가 풀린 그의 백치 같은 모습 이 재미있어 제 이격을 날리려던 주먹을 잠시 접고 상태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호천강은 굳어진 망부석처럼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미 그의 머리 속 은 텅 비어 버린 다음이다.

아무리 겉보기에 헤벌쭉하고 나사 하나 빠진 듯 풀려 보이지만 속으로는 능구렁이 수백 마리를 키우고 있는 이가 바로 비류연이었다. 그런 상대를 향해 아무런 대 비책도 없이 달려들다니 얻어터져 나자빠지는 것도 당연했다 나뒹굴어진 당사자에겐 안 된 일이지만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말은 정중하게 한답시고 했지만 아시다시피 속에는 눈곱만큼의 정중함도 없는 비류연이었기에 사정 봐 주기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비류연은 수고스럽 긴 하지만 다시 한 번 손을 벼락같이 놀려 호천강의 전신을 골고루 만져 주었다. 삼복 구타 권법의 작열이었다. 이렇게 한 문파의 후계자를 복날 개 패듯 패 놓은 후 차분히 다음 처우를 고민하고 있을 때, 한 인물이 나타나 그의 수고를 덜어 주었다. 하지만 별로, 아니 결코 환영할 만한 인물은 절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