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30화 – 곧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곧 일은 벌어지고야 만다
비류연이 모용휘와 만나기 전,
장홍, 효룡과 함께 관내 공고판에 붙어 있는 숙실 배정 현황을
확인하고 있을 때였다.
유심히 공고판에 적혀 있는 이름을 확인하고 있을 때
효룡과 장홍은 비명에 가까운 질문을 터트렸다.
“에에, 네가 특별 전형 수석 입격자라고?”
효룡과 장홍, 두 사람은 모두 경악했다. 그리고 자신들의 눈동자 확대율을 한계치에 이르도록 시험하고 있었다. 도저히 그런 경악스런 사실을 믿지 못하겠단 표정 이 역력했다. 절대로 도대체가 납득이 안 간다는 것이다.
“어, 어떻게 알았어?”
얘기도 안 했는데 그 사실을 알아챈 두 사람이 신기하다는 듯 비류연은 반문했다. 거짓이라 믿었던 일을 사실이라 무심히 말해 버리는 무신경하기 짝이 없는 비류 연을 원망하며 두 사람은 어의 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표정은 거의 울상에 가까웠다.
“당연하지. 동거인이 누군지 두 눈뜨고 잘 보라고!”
“두 눈은 지금도 똑바로 뜨고 있다고. 대체 누군데?”
비류연이 아는 건 단지 자신의 이름 옆에 나란히 적혀 있는 그의 이름 석 자뿐이었다.
“정말 모른단 말야?”
“아직 확인해 보지 않았거든. 내가 점쟁이도 아닌데 아직 만나지도 않은 사람을 어떻게 알겠어?”
“휴우, 꼭 눈으로 봐야 아나?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것만이 아니라 귀로 들어서 아는 방법도 있다네.”
장홍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공고 서찰 맨 앞줄에 비류연과 나란히 적혀 있는 이름을 손가락으로 두들겼다. 다시 한 번 똑바로 보고 확인해 보라는 무언의 시 위였다. 하지만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본다 해도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칠절신검(七絶神劍) 모용휘! 이번 승천무제의 수석 입격자라구. 쉽게 말해 우승자(優勝者)지.”
칠절신검 모용휘!
스무 살 약관의 나이에 벌써 신검(神劍)의 칭호를 획득한 무림 최고의 기린아. 무림 팔대 세가의 으뜸이라는 모용세가의 둘째 자제로 어릴 적부터 그 뛰어난 재능 과 천재성으로 강호의 주목을 받아 온 신동이었다. 이번에도 팔대 세가의 으뜸인 모용세가의 힘으로 특별 전형으로 손쉽게 합격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승천무 제의 참가를 자처 보라는 듯이 뭇 고수들을 누르고 당당히 우승, 수석 입격자의 신분으로 화려하게 천무학관에 입관한 기재 중의 기재이다.
든든하고 막강한 자신의 배경에 기대지 않고, 오직 스스로의 힘과 능력으로 천무학관에 수석으로 입관한 것은 칭찬 받아 마땅한 일이요 하나의 쾌거라 할 수 있었 다. 세 살 어린애들도 다 아는 유명한 인물을 지금 비류연은 모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 그래?”
말과 다르게 별로 놀라는 기미는 없어 보였다. 어지간히 무딘 신경인 것 같다며 효룡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자기보다 더 심하지 않은가. 질릴 정도였다. “어가 아냐. 승천무제의 우승자와 같은 방을 쓰는 사람은 특별 전형 시험의 최고 득점자뿐이라네.”
장황하게 과장된 몸짓을 지으며 비류연에게 장홍이 다시 말했다.
“맞아!”
“뭐?”
“이 몸이 그 특별 전형 시험인가, 뭔가 하는 시험의 최고 득점자가 맞다고.”
장홍의 눈이 평상시보다 두 배는 크게 벌어졌다. 그의 두 눈은 지금 한 가지 사실만을 염원하고 있었다. 강렬한 염원을 담고 있는 장홍의 두 눈을 빤히 쳐다보며 비 류연이 그의 염원을 정확히 읽어 내었다.
“자네 지금 내가 현실을 부정해 주길 바라는 거야?”
“난 단지 거짓을 진실이라 서슴없이 말하는 이 참담한 현실에 잠시 회의를 느낀 것뿐이네.”
비류연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는데 어찌 주저함이 있을 수 있겠어? 이 몸이 우승하는 게 당연하지.”
비류연과 만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잠시 동안 그와 함께 하면서 그의 행동을 지켜 본 그로서는 비류연이 정통과 권위를 자랑하는 최고의 시험인 특별 전형에 서 무수한 후기지수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직 천무학관과 강호 무림의 미래에 대해 절망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소망은 아무래도 이루어지기 힘들 것 같았다.
“자네가 정말 특별 전형 시험의 우승자라고?”
“응.”
그런데도 비류연은 그러냐는 듯, 그런가 보다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효룡과 장홍은 내심 어의가 없었다. 남들 같으면 어깨에 힘 잔뜩 준 채 고개 빳빳이 들고 사방팔방에 뽐내고 다닐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장홍과 효룡의 어처구니없다는 불신의 눈빛은 이내 선 망의 눈빛으로 변했다. 특히 장홍 쪽은 별 변화가 없었는데 효룡의 변화는 눈에 확 띄었다.
효룡과 장홍 뿐만 아니라 주위에 있던 몇몇 신입 관도들도 비류연의 처지가 대단히 부러운 듯, 비류연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선망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썩 좋은 기분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귀찮아서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비류연은 정말 그러고 싶었다. 이런 사소하고 하찮은 일에 무슨 감탄할 게 있다고 저런 눈초리 로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자신의 동거인으로 확정된 유명인 모용휘에 대해서도 별 신경 쓰지 않으려고 했었다. 근데 문제 가 발생해 버리니 신경을 안 쓸래야 안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들의 첫 대면부터 암중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강호 최고의 기재로 꼽힌다는 모용휘가 그 자신 혼자서만 자신의 세계에 빠져 극도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까지는 좋았다. 깨끗하게 청소해 놓고 살겠다는 데 누가 뭐랄 사람이 있겠는가? 청결 유지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칭찬의 대상이 될지언정 원망의 대상이 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모용휘의 청결 유지 욕구는 비류연의 원망과 짜증의 대상이 되려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 본질이 아니라 정도의 과도함에 있었다. 혼자 불치의 결벽증에 걸려 청결 유지에 과다한 노력을 경주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제발 자신만 은 거기에 부디 끌어들이지 말아 주었으면 하는 게 바로 비류연의 절실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동거인이 자꾸만 자신에게 청결과 청소, 그리고 정리 정돈에 대한 무언의 압력을 가해 오고 있음을 문득문득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의 동거인의 병에 강제로 감염 당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기 때문이 다.
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대단한 이 모용휘라는 샌님은 정작 방을 함께 써 보니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일종의 완벽주의자라고 해야 하나? 그는 한 톨 의 먼지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자신의 관물을 온통 각 잡아 놓고 방 안을 꼭 순백의 백지장처럼 청소해 놓았다. 그 자로 잰듯한 완벽한 완전무결 함에 비류연은 질려 버리고 말았다. 그는 청결함만으로 사람을 질리게 만드는 신기하고 놀라운 재주가 있었다. 구석과 난간 틈새의 작은 먼지 하나도, 어떤 사소한 물건 하나의 삐뚤어짐이나 휘어짐도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것인 듯했다. 거의 병적인 수준이었다.
그는 방을 완전히 자신만의 무색 무균의 공간으로 변화시켜 놓고 있었다. 그의 영역 안에서 비류연은 단지 하나의 오물에 불과했다. 그는 어떤 불결함이 자신의 주 위에 접근해 오는 것을 매우 꺼리는 듯, 방어벽을 쳐놓고 있는 듯했다.
그의 곁에 있다가는 반드시 두 가지 꼴로 귀결될 것 같았다. 하나는 그의 결벽증에 전염되거나 결벽증의 영향으로 질식사를 하거나……. 어느 쪽이든 비류연으로 서는 모두 사양하고 싶은 결말이었다. 접근하기가 매우 껄끄러운 것도, 혼자서만 깨끗한 척 하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 성이었다. 이런 놈과 일 년 열두 달 동안 계속해서 같은 방을 써야 한다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불쾌해지고 눈 앞이 암담해지는 비류연이었다.
그래서 비류연은 자신의 밝은 내일과 희망찬 미래를 위하여 뭔가 손을 써야 되지 않나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잡힌 것은 아니지만, 원래 남에게 휘말려 들기를 좋아하지 않는 비류연이다 보니 방법을 강구하기로 작정했다. 우선 계획은 천천히 작성하기로 하고 일단 어느 정도는 두고 보기로 잠정적인 결론을 지었다. 아직은 새로운 자극에 견딜 수 있었다. 아무튼 비류연이 자신의 미래를 위해 모종의 음모를 꾸미기로 결심한 이상, 이제껏 탄탄대로의 휘황한 삶을 보내 온 모용휘의 앞날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았다.
모용휘의 과도한 청소로 인해 맹렬한 정신 공격을 받고 있던 비류연에게 방문객이 찾아왔다. 이제 막 정리 정돈을 끝내고 온 이들은 효룡과 장홍, 그리고 비류연이 처음 보는 적의 무복의 청년이었다. 모용휘의 지나친 결벽증에 지쳐 있던 비류연에게 그들의 방문은 한 줄기 청량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방문자가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이라는 사실이었다. 한 명은 비류연도 처음 보는 사람으로 아직 소년 티를 채 벗지 못한 앳된 청년이었다. 적의 무복의 청년은 효룡과 장홍의 뒤로 마치 부록처럼 따라붙어 들어온 것이다. 비류연이 자신의 검지로 그 소년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쪽은 누구야? 처음 보는 사람인데?”
비류연의 시선이 그들 둘 뒤에 서 있는 한 청년에게로 향했다. 왠지 소심해 보이는 인상에 사람 좋아 보일 것 같은 얼굴을 한 단정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아, 소개하지. 이번에 우리와 같은 방을 쓰게 된 윤준호 소협이라네. 화산 낙안봉 출신이지?”
소협이라는 말에 청년이 볼을 붉히며 말했다.
“소협이라니 당치도 않은 호칭입니다. 화산파의 윤준호라고 합니다.”
“아아, 그 화산파(華山派)! 거긴 나도 아는 데지. 만나서 반가워. 난 비류연이라고 해.”
이 세상에 화산파도 모르는 사람도 있나?”라는 당연한 의문을 떠올리게 하는 말을 내뱉으며 이번에도 역시 스스럼없이 인사했다. 청년의 첫인상이 그리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리 무림 정세와 세력 판도에 어두운 비류연도 화산파(華山派)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예전엔 몰랐는데 주작단의 16명 제자들 중에 화산파 제자 말괄량이 화무용이 있어 그녀를 계기로 알게 된 것이다. 그 전에는 그 유명한 9파 1방에 대해서도 거의 백지나 다름없는 상태였다.
이 청년은 비류연과 같은 특별 전형 출신으로 여리게 생긴 것 답지 않게 전대 화산파 장문인이었던 매화검제 종학연의 추천으로 이곳에 들어오게 된 청년이었다. 비류연과 시선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걸 보니 왠지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인 것 같았다.
그런 윤준호를 보는 비류연의 시선에 약간의 이채(異彩)가 띄었다. 전혀 무림인 같아 보이지 않는 소심하기만 해 보이는 그는 지금 한 사람을 향해 선망의 뜨거운 (?) 시선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 선망과 존경의 대상은 바로 청소광마 모용휘였다. 옆에서 열심히 아직까지도 방 구석구석을 미세한 먼지 하나 남김없이 제거해 나가 는 모용휘가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존경과 선망이 가득 담긴 눈으로 바라보는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 봐?”
“예?”
모용휘를 넋 나간 듯 쳐다보고 있던 윤준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다. 다른 곳에 너무 넋을 놓고 있어 비류연이 무슨 말을 했는지도 모르 는 게 틀림없었다. 어리둥절해 있는 그를 보며 비류연은 다시 한 번 질문을 더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멀 그렇게 바라 보냐고? 구멍나겠다.”
그의 말에 윤준호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으잉, 수상한 취미라도 있나? 별 대수롭지도 않은 질문에 얼굴을 붉히다니…….
“으잉, 설마 좋아하는 거야?”
“예? 지금 도대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전 엄연한 정상인입니다. 오해하지 말아 주십시요.”
하지만 오해하기 딱 좋은 붉게 물든 얼굴로 그가 정색하며 변명을 했다.
“그럼 왜 그렇게 쳐다봤어?”
“그거야 저의 우상이기 때문이죠.”
윤준호가 모기 기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비류연의 청각이 무공으로 단련되어 있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지도 모를 정도로 그의 목소리는 작았다. 비 류연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너 참 이상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저 석상 같은 청소광에게 무슨 숭배할 만한 점이 있다고 우상으로 삼아. 뭐 저 녀석의 청소 실력과 정리 정돈 실력이 놀랄 만큼 대단하긴 하지만.”
이번엔 윤준호가 이상한 생물 쳐다보듯 비류연을 쳐다보았다.
“칠절신검 모용휘는 우리 또래 강호 후기지수들에겐 너나 할 것 없는 우상입니다. 모르셨습니까?”
물론 몰랐다. 그런 거 알아서 뭐 하겠는가. 그의 말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비류연은 효룡을 쳐다보았다. 놀랍게도 효룡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친구에게 경의와 놀라움을 선사해 주기 위한 배려일까? 그렇다면 별로 고맙지 않은 배려였다.
“맞아. 칠절신검 모용휘라면 우리 또래의 후기지수들한테는 선망의 대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지. 장래 예비 천하 제일 고수 중 최고 유력 자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로 그의 실력은 출중하지. 개 중에는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도 있어. 특히 그를 광적으로 추종하는 여성 단체 겸 오빠 부대 칠절회는 그 행적 과 활동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놀라움을 넘어 무섭기까지 하다네. 한때는 그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잠들 때까지의 하루 일과를 빠짐없이 관찰하기도 했다더군. 만일 그녀들 앞에서 자네처럼 그를 무시하는 발언을 무심코라도 했다가는 아마 무사하지 못할 걸세. 조심하게나.”
효룡의 설명은 들으면 들을수록 놀라운 것뿐이었다.
“정말이야?”
“물론. 얼마전에도 20대 후기 지수 한 명이 주점에서 술김에 그를 깔보는 듯한 말을 했다가 옆자리에 자리 있던 아가씨에게 왼팔을 베인 사건이 있었지. 그 여 검 객이 바로 칠절회의 회원이었다는 거야. 그 사내는 그 후로 외팔이 검객이 되었지. 꽤 유명한 얘기라네.”
“우와, 대단한데.”
효룡의 상세한 정보가 끝나자 비류연은 새삼 다른 눈으로 모용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시 태도가 바뀔 비류연은 아니었다.
“음, 물론 저 녀석이 좀 잘 생긴 편이고, 무공도 좀 할 것 같고, 좀 똑똑한 축에 속하는 것 같기는 해도 그것만으로 남들의 우상이 되기엔 부족한 감이 없잖아 있지.” 비류연의 말에 효룡이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물론 자네의 표현대로라면 우상이 되기엔 좀 부족한 감이 있지. 하지만 그에 대한 세간의 일반적인 평가는 초절정의 미남아에 무공 수위는 최절정으로 측량하기 가 어렵고, 그 지혜는 만 권 서적을 능가한다고 칭해지니 우상이 될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자네처럼 점수가 짜지 않아서 말이야. 게다가 가문까지 빵빵하니 저 정도 면 일등 신랑감 아닌가. 저만하면 뭇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할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지금 현재도 이미 그러고 있고 말일세.”
“그래, 그렇게 대단하게 보여? 난 아무리 봐도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는 않는데?”
비류연이 진심을 말했다. 그리고 고개를 연신 갸웃거리며 이의를 제기했다. 저기 있던 저 청소 정돈광의 어디가 그렇게 대단해 보이는지 계속 의심스럽기만 했다. “그게 바로 관점의 차이야. 보는 사람이 기준과 수준에 따라 대상에 대한 평가는 달라지기 마련이지. 무생물인 벼루 하나도 보는 방향, 즉 겨우 시선의 위치 이동 하나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바뀌어 보이는데, 하물며 개개인의 개성과 성격, 그리고 수준이 각기 다른 인간이라면 더 말해서 뭐하겠나.”
“흐흠…….”
그제야 비류연은 수긍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모용휘의 우상 자격 심사에 합격 도장을 찍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한 더 이상의 논쟁은 접어 두기로 했다. 갑자기 비류연이 효룡에게 물었다.
“그럼 너도 그런 거야?”
너도 모용휘를 우상으로 여기는 수준 이하의 애송이들과 같은 부류가 혹시 아니냐는 질문이었다.
효룡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내가 그 많은 추종자 중 하나라고 묻는 거라면 틀렸어. 난 오히려 그의 경쟁자라고 할 수 있지.”
효룡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보통 사람이 보면 과도하다고 느낄지도 모를 발언이었다. 그리고 칠절회의 회원이었다면 단호하게 미친놈 취급 할 소리였다. 윤준호와 장홍은 그의 답변에 의외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그리 가볍게 허풍만으로 입을 놀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짧은 만남 중 에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나이에 완벽한 검막을 구사할 정도의 경지에 이른 검도 고수라면 못 할 것도 없겠지.’
얼마 전 검림(劍) 파괴 시 무시무시한 검편(劍片)의 폭풍우를 은백색 검막으로 막아낸 효룡을 떠올리며 장홍은 생각했다. 그의 눈으로 보기에도 효룡은 모용휘 와 견주어도 지지 않을 뛰어난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출신이 애매할 뿐이라는 게 옥의 티였다.
하긴 출신의 애매함으로 말하자면 저기 있는 비류연도 만만치는 않았지만. 둘의 출신에 대한 애매함이 지금 장홍의 골치를 썩이고 있는 가장 큰 골칫거리 중 하나 였다. 아무리 살펴봐도 아직 단서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껏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최악의 가정만은 피하고 있었다. 만일 최악 의 가정이 재수 없게 맞아떨어진다면 자신은 이번에 새로 사귄 이 유쾌한 두 명의 친구를 영원히 잃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바로 자신의 손으로.
그지없는 그의 머리가 오랜만에 지끈거렸다. 젠장 정말 싫은 느낌이었다.
다시 비류연이 고개를 들어 윤준호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너도 그의 추종사 중 하나라 그 말이지.”
윤준호가 고개를 수긍하며 끄덕였다.
“예,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눈동자에 환희의 빛을 띄는 윤준호를 비류연은 한심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호탕하기
“영광은 무슨 염병할 영광. 같은 나이 또래의, 그것도 입관 동긴데 우상화가 어디 말이나 될 법한 소리냐? 사나이라면 그를 능가하고야 말겠다는 패기가 있어야지. 그를 우상화해서 밑에서 고개 쳐들고 바라보기만 하다가는 다섯 번 다시 태어나 봤자 그를 넘어서긴 말짱 헛거야. 그렇게 되면 언제나 그의 밑에서 머물 수밖에 없 지. 괜히 시시한 저 청소광 따위로 너를 속박하지 말라고. 그런 건 시간 낭비일 뿐이야. “
비류연의 말은 신랄하기 그지없었다.
“하… 하지만 전 재능이 별로…….?”
누구나 바라는 최강의 경쟁률과 수준을 자랑하는 천무학관에 멀쩡히 들어와 놓고서도 자신의 재능을 한탄하는 것을 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너무나 순수한 녀석인 것 같았다.
“바보, 노력과 근성만 있으면 불가능은 없어. 게다가 넌 재능이 있어. 이 몸이 하는 말이니깐 믿으라고. 그러니깐 포기하지마. 알았어?”
“예…….”
윤준호가 고개를 푹 숙이며 기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아직도 그의 목소리에선 자긍심과 용기, 그리고 패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근성이 느껴지지 않았다. 비류연 으로서는 특이하게도 상대를 재기 불능의 상태까지 깔아뭉개지 않고 다독거려 준 특이한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에 관한 문답이 오가는 데도 묵묵히, 그리고 무심히 계속 청소만 하고 있는 모용휘였다. 신경 써서 소리 낮춰 이야기한 것도 아니고 보란 듯, 아니 들으 라는 듯이 큰소리로 떠들어 댔는 데도 비류연이 내심 기대한 반응은 없었다.
모용휘는 상대할 가치도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었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주변 이외에는 다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상관없다는 태도가 명백했다.
“자자, 재미없는 얘기 그만하고, 그럼 이제 슬슬 저녁 식사라도 하러 갈까?”
어느새 날도 어둑해지고 저녁 식사 시간이 다가오자 장홍은 다같이 기숙사 식당에 가서 함께 식사할 것을 제안했다. 천무학관은 빨래나 청소 등은 자신이 스스로 해야 되지만 식사만은 무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물론 관내에 일반 식당도 있지만 두 곳의 결정인 차이는 그곳은 유료였고 이곳은 무료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니 사제 (私製) 식당은 부잣집 자제나 거대 문파의 제자가 아니라면 자주 이용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도가나 불가 계열의 제자나 군소 방파의 제자들은 대부분 무료 기숙사 식당을 이용하고 있었다. 이곳도 천무학관에서 많은 예산을 투자해 운용하는 곳이었으므로 그리 크게 맛이나 질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천무학관이란 이름에 걸맞게 엄선한 재료와 숙수(熟手 : 요리사)를 보유한 곳이었다. 장홍의 제안에 모두들 고개 를 끄덕이며 수긍하자, 장홍이 모용휘를 보며 말했다. 모용휘는 여전히 청소에 전념하고 있었다. 두려운 놈!
“어이, 자네도 같이 가지 않겠나?”
옆에 사람을 두고 자신들끼리만 식사하러 가는 것은 예의가 아니었기에 물어 본 것이다. 근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할 것 같던 모용휘가 고 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보내 온 것이다. 천하 제일 기재로 유명한 그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에 일행은 자못 놀랐다. 화산파 출신의 윤준호는 토 끼눈 같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감동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의 우상과 함께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는데 감동하지 않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비류연, 장홍, 효룡, 윤준호, 모용휘는 식사를 하기 위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검혼관에서 10장 정도 떨어져 있는 공동 식당으로 향했다. 검혼관은 남자 전용 기숙사였지만 식당은 6개 남녀 기숙사 공동의 장소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여러 부류의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인 만큼 예기치 못한 의외의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비뢰도』 3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