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7화 – 금기(禁忌)의 이름
금기(禁忌)의 이름
불길을 머금은 칼날 앞에서는
절대 그의 이름 석 자를 입에 담지 말라. 잘못하면 진노(怒)의 염화가 너희의 몸을 잿더미로 만들지니.
이것은 강호 무림에 떠도는 한 가지 금기(禁忌)에 대한 이야기다. 강호에 회자되는 불문율에 의하면 염도(焰刀), 그 이름과 그의 도(刀) 앞에서 지켜야 될 절대의 규칙, 즉 어겨서는 안 될 금기가 하나 있다. 절대적으로 지켜져야만 되는 금기(禁忌), 그것은 바로 그의 앞에서 절대로 본명(本名) 석자를 입에 담으면 안 된다는 것 이었다.
이제까지 손으로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고의적이든 실수(?)든 간에 좌우지간 이 금기된 불문율을 어겨, 한 번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게 되거나, 또는 한 평생을 불구의 몸으로 지내야만 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겪게 되었다. 명(名)한 번 잘못 댔다가 명(命)을 달리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던 것이다. 염도(焰刀)! 강호 무림 천하에서 도를 쥐고 강호를 걸어가는 모든 도객들의 선망의 대상인 가공할 무위(武威)와 높고 뛰어난 무명(武名)을 소유한 그도 한 가지 아 주 심각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이름 석 자에 대한 무한대의 영원한 열등 의식이었다.
영(榮)희(喜)!
영화롭고 희망찬 미래를 가지는 사람이 되라는 고마운 뜻으로 그의 부모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이었다. 그리고 현재에 이르러 이름 그대로 무림 최고의 영화를 누 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이름에 이어져 울리는 여운은 여인의 이름자를 떠올리게 했다. 바로 그 울림과 어감이 문제인 것이다.
“사내대장부가 어찌 여자 이름같이 들리는 이름을 쓸 수 있단 말인가? 난 죽어도 못 해!”
라는 것이 염도 곽영희의 생각이었다. 그는 마치 여인의 호칭처럼 들리는 자신의 이름이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싫다고 해서 부모님께서 지어 주신 이름을 함부로 갈아치울 수도 없다는 것이 바로 문제의 핵심이자 강호의 불행이었다.
이름을 갈아 버릴 수만 있었다면 수십 번도 넘게 더 갈아 치웠을 염도였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으니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는 한 가 지 금기를 세웠다. 아무도 그의 앞에서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부르지 못하도록 금기를 정한 것이다. 만약 이 금기를 어길 시에는 끔찍한 결과가 돌아가도록 그는 주저 없이 즉각적인 조치를 취했다. 때문에 이로 인하여 비참한 꼴을 당한 사람의 수는 책으로 엮으면 『염도 금기 위반자 처벌 명부』 한정판 전3권으로 만들 수 있을 정도 였으니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그러니, 이처럼 과격하기가 불같은 성질의 염도가 세운 절대 금기를 어기고도 장우강이 멀쩡할 리가 없는 것이다. 멀쩡하다면 어찌 염도 진노 화극염(焰刀震怒火 極炎 : 이건 대충 염도가 되게 화나면 주위에 있는 것 깡그리 다 태워 버림이라는 뜻)이라는 말이 떠돌겠는가.
“쾅!”
언제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염도(焰刀)는 자신의 이름 석 자가 말이 되어 세상에 튀어나오는 순간 자리에서 튀어나와 오른발을 장우강의 바로 앞 마루 바닥에 내 딛고 있었다. 표현할 수도 없는 강맹한 진각에 의해 견고하기 그지없던 화운루의 마루 바닥이 깨어져 올라오면서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날아갔다. 단 한 번의 위 력적인 진각과 동시에 내뻗어진 시뻘겋게 물든 오른손이 강맹하고 매서운 파공성을 일으키며 장우강의 가슴을 강타했다. 물론 그 속에 담긴 그의 화령신공의 공력 은 그 위력이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맞으면 즉사를 면치 못하였으리라.
하지만 장우강도 허수아비는 아니었다. 그동안 청성산 꼭대기에서 청풍을 맞으면서 갈고 닦은 청성산의 검기가 헛것은 아니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순간적인 반 사신경을 발휘하여 용케도 염도의 장력을 피하려는 몸부림을 시도해 볼 수는 있었다. 즉, 순간적으로 오른쪽 방향으로 회전력을 준 다음 뒤로 비틀면서 몸을 빼냈 다. 하지만 직격을 피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장하고 대견스러운 것이었다. 염도의 홍염장을 반의 반도 다 피하지 못한 채 고스란히 격중 당하고 말았다. “텅!”
장우강의 몸이 들썩하더니 북 터지는 소리와 함께 이 장(丈) 거리에 떨어져 있는 벽까지 날아가 처박혔다. 움푹 처박혀 버린 장우강을 중심으로 파문 모양의 균 열이 벽에 그려졌다. 그나마 용케도 처음의 회피 동작으로 겨우겨우 죽음만은 면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중상(重傷)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염도 의 생각은 달랐다. 단 한 수의 장력으로 싹수머리가 눈곱만큼도 없는 무뢰배인 장우강의 목숨을 끊어 놓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염도 곽영희는 우 수(右)을 천장을 향해 치켜들었다.
마지막 일격을 가해 확실히 끝장을 내겠다는 태도였다. 화령지기(火靈之氣)가 염도의 전신기맥을 타고 돌아 염도의 우수에 집결되고 맺혀 파괴적인 힘으로 승화 (昇華)되려 할 때, 허공을 찰나(刹那)의 시간에 가로지르는 은빛 섬광의 빛 두 줄기가 있었다.
“쐐애애액!”
공기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파공성을 내며, 섬뜩한 예기를 머금고 날아온 이 두 줄기의 은빛 섬광 때문에 염도는 자신의 우수를 거두어들이고 자리를 피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이미 지나간 뒤에 놀라서 피한 것이었다. 두 줄기의 은빛은 그의 몸을 적중시키지 않은 채, 마치 위협 시위만 하는 듯이 아슬아슬하게 그의 곁을 스 쳐 지나갔던 것이다.
이렇게 두 가닥의 은빛 빛살은 순식간에 염도의 손속을 무력화시키고 다시 허공을 선회하여 한 사람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마도 허공(虛空)이란 이름의 화폭 (畵幅)을 가로지르는 두 줄기의 은빛 나선을 그려낸 장본인일 것이다. 그의 손에는 막 자신에게로 회수되어진 두 개의 동그란 철환이 들려져 있었다.
화운루의 마루 바닥이 염도의 진각에 의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여파로 생겨난, 뿌옇게 객점 안을 덮고 있던 먼지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그 주인의 윤곽이 뚜렷이 나타났다.
“웬 놈이냐?”
염도의 붉게 빛나는 두 눈동자가, 허공이라는 이름의 투명한 화폭(畵幅) 중에 은빛 나선의 가늘고 아름다운 무늬를 그려낸 장본인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그 은빛 나선의 세공은 그가 다음에 하고자 했던 행동을 방해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기에, 염도의 눈에는 약간의 의아함과 넘칠 만큼의 노기(怒氣)가 담겨 있었다.
마침내 그 장본인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났고, 산 채로 잡아서 씹어 먹을 듯, 끓여 먹을 듯, 볶아 먹을 듯, 튀겨 먹을 듯 뚫어져라 상대를 응시하는 적안(赤眼)이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찌를 듯한 살기(殺氣)와 노기(怒氣)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미세한 의아함이 스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