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권 8화 – 염도, 개망신 일보 직전

비뢰도 2권 8화 – 염도, 개망신 일보 직전

염도, 개망신 일보 직전

염도(焰刀)는 어의가 없었다.

머리에 피도 제대로 마르지 않은, 새파란 애송이 겸 풋내기가

자신의 손속을 방해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은 것이다.

염도는 기(氣)가 막혔다. 그래서 저쪽에 서 있는 겁 모르는 애송이에게

한마디 안 해 주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이거 젖먹이 어린애잖아. 너 미쳤니?”

“안 미쳤는데요.”

비류연의 대답은 더욱 가관이었기에 염도는 더욱 더 기가 막힐 수밖에 없었다.

“크크큭. 어디 사는 뉘 집 자식인지는 모르겠지만 겁을 상실한 꼬마로구나. 솜털 뽀송뽀송한 애송이 주제에 나의 도(刀) 앞에 서 보겠다는 것이냐? 나의 도를 막는 방패가 되어 보겠다는 것이냐? 그렇다는 것이냐?”

하도 황당해서 웃기지도 않는다는 투로 염도가 말했다. 그러자 겁을 상실한 풋내 나는 애송이로 평가를 받은 비류연의 입 꼬리가 한쪽으로 살며시 말려 올라갔다. 이윽고 은빛 편린으로 반짝이는 두 개의 눈망울 가득 자신감과 장난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분명 염도 따위는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다고 말하 는 듯한 당당함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고 할 수 있지요.”

순순하고 담담한 인정.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담담하고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절대로 범상치 않은 내용인 것이다. 당연히 비류연의 대답은 염도의 노한 안광을 진노(震怒)라는 이름의 붉은색으로 더욱 더 진하게 덧칠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의 분노가 더욱 더 거세게 물결치게 만들었다.

염도의 붉은 안광은 매섭기 그지없었다. 그 정도와 강도의 세기는 비류연을 입에 털어 넣은 뒤 냉수 한 그릇으로 꿀꺽 삼킬 수 있을 정도로 지독한 살벌함 그 자체 였다. 그의 이런 매서운 안광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무림 천하를 통틀어 몇 되지 않을 것이며 보통 사람은 아마 오금이 저려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것이 다.

아무튼 그의 번득거리는 붉은 눈빛으로 보아 아마도 염도는 어떤 결심을 했음이 틀림없었다.

“내가 이미 한 놈을 잡기로 결심했고 곧 실행할 예정이니, 예정 외의 변수지만 하는 김에 약간의 수고를 더하여 네놈까지 함께 같이 잡아 주마. 그리하여 둘이 저 세상에서 외롭지 않게 사이좋게 보내 주마!’

분명 그런 의미와 의지를 담아 불태우는 눈빛이 분명했다. 그의 이런 결심은 코를 통해 내뿜는 거센 콧김과 붉으락푸르락한 안면과 이마에 솟아 있는 수많은 가닥 의 핏대들로 인해 대변되고 있었다.

“흐흐……. 나에게 덤벼 보겠다고? 그게 가당키나 할 것 같으냐. 네가 그럴 가능성이 천(千)에 하나, 혹은 만(萬)에 하나라도 있을 것 같으냐? 하룻강아지 범 무서 운 줄 모른다고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꼬마야!”

가당치도 않은 헛소리라는 투로 염도가 말했다. 하지만 비류연의 답변은 염도의 속을 네다섯 번 긁은 다음 다시 ‘홱’ 하고 뒤집어 놓는 것이었다.

“아, 그럼요. 물론이죠. 이름 석 자가 꼭 계집애 같은 이상한 아저씨 하나 요리할 실력은 충분히 된다고 자부하고 있지요. 이 험한 세상에 그 정도의 실력도 없이 어 떻게 살아갈 수 있겠어요, 안 그래요 아저씨? 아, 못 믿겠음 시험해 봐도 암말 안 하겠습니다. 빙긋!”

비류연이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곳을 겁도 없이 건드렸다. 그걸 건드렸다가 여러 사람 피를 본 전적이 있는 염도의 절대 금지絶代禁地)를 진흙 발로 보기 좋게 짓밟아 버린 것이다.

“허읍, 컥, 헉, 흑!”

급히 숨을 삼킬 때 터져 나오는 소리들, 그들이 섞이면서 만들어지는 단말마. 만일 맹인(盲人)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화운루의 손님들 모두가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는 걸로 착각했을 것이다. 모두들 너무 급하게 숨을 삼키는 바람에 숨이 모두의 목구멍에 걸린 것이다. 화운루 내부는 완전히 일촉즉발의 초긴장 상태로 돌입했 다.

손만 대도 끊어질 듯 팽팽하게 당겨진 금(琴)의 현과 같았다. 곧 끊어질게 분명한 초긴장의 현을 위태롭게 퉁기고 있는 손길은 현을 당긴 당사자 중 한 명인 염도 (焰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비릿한 웃음이었다.

“흐흐흐, 시험? 오냐, 시험해 주마. 암, 시험해 주고 말고. 흐흐흐, 시험해 줄 뿐만 아니라 채점 평가까지 덤으로 해 주마. 몰론 그 채점 평가의 점수에 대한 대가는 비싸게 치러야 할 것이다.”

염도의 양 눈은 이미 쭉 하는 소리와 함께 좌우로 찢어져 있었고, 한 쌍의 거친 적색의 눈썹은 분노로 꿈틀거리며 하늘을 향해 치솟아 있었다. 그의 불끈 쥐어져 있 는 솥뚜껑 만한 양 주먹의 손등에는 먹이를 노리는 푸른 독사와 같은 굵은 혈관들이 툭툭 소리가 들릴 듯한 모습으로 표피 밖으로 튀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염도의 상태를 두 눈 똑바로 뜨고 보고 있으면서도 꿇릴 게 없다는 듯, 비류연은 여유 만만했다. 도무지 그의 얼굴에서 긴장이라는 단어는 눈 씻고 찾아보 려 해도 볼 수 없었다. 아예 덜 떨어진 것인지도 모른다.

“아, 좋습니다. 언제든지 ‘아저씨’의 평가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못 믿겠음 시험해 봐도 좋아요. 물론 ‘아저씨’가 자신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말입니다.” 왠지 얄미운, 염도가 보기에는 아주 얄밉게만 느껴지는, 그리고 시건방져 보이는 미소를 입가에 매달며 비류연은 마지막 일격을 염도(焰刀)에게 가했다.

“물론 아저씨가 자신 있을 때의 이야기니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질 것 같아 자신 없으면 안 해도 되니까요. 내기나 할래요?”

“툭!”

어디선가 누군가의 그 무엇인가가 끊어졌다. 물론 그 누군가는 염도이고, 끊어진 것은 그렇지 않아도 가늘어서 투명하게 보이던 인내의 끈이었다. 그와 동시에 염 도(焰刀)의 내부(內部)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나고, 그 폭발에 의해 방출된 힘은 거침없이 밖으로 터져 나왔다.

그 여파인가? 순간 ‘빠직’하는 소리와 함께, 염도가 밟고 서 있던 화운루의 비싸고 단단해 보이는 멋진 나뭇결의 바닥에 거미줄 같은 문양의 금이 생기더니 주위로 퍼져 나갔다. 이 얼마나 강력한 힘의 역작(作)인가?

염도의 몸에서 발생한 강력한 기(氣)의 파문에 의해 바닥이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진 것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 막 염도의 기세에 의해 손상된 화운루 바닥을 고치려면 주인은 눈물을 삼키며 상당량의 액수로 추정되는 은전을 소모해야 할 것이다.

“흐흐흐, 좋아. 내기? 좋지, 아주 좋아. 그러나 그 내기의 대가로 네놈은 상당히 아주 큰 가치를 지닌 것을 판돈으로 걸어야 할 것이다.”

주위에 앉아 있던 나름대로 한 수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 무인들조차도 견디기 힘든 따가운 살기가 머금어진 엄청난 위압감에도 불구하고 비류연은 태연자약하 기만 했다. 아니, 한 술 더 떠서 얼씨구나, 하고 쾌재를 부르고 싶은 욕망을 지금 비류연은 억누르고 있는 중이었다. 역시 어쩔 도리 없이 무식하게 힘만 센 사람은 단 순하다는 사실은 피할 수 없는 고래(古來)부터의 진리(眞理)가 아니겠는가.

노리던 물고기는 낚싯대에 걸려 있던 미끼를 물었고, 비류연은 조심스럽게 낚싯대를 당기기 시작했다. 미끼를 문 물고기는 이미 물가로 끌려왔고, 이제 낚시꾼은 마지막 마무리로 채를 가지고 건져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아, 전 제 목숨을 걸죠. 부족하면 거기다 중양표국의 전 재산을 걸어도 좋구요.”

마치 제것인 양 아무렇지도 않게 중양표국의 전 기반을 헐값에 넘겨 버리는 비류연의 한마디는, 국주 장우양을 단번에 까무러치게 할 정도로 경악스러운 것이었 다. 아마 장우양의 혼백이 자신의 몸을 떠나 구천을 방황한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용케도 아직 제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장우양이 장하기만 했다.

“흐, 네놈이 중양표국의 전 재산을 처분할 만한 위치에 있다는 것이냐?”

웃기지도 말라는 표정으로 염도가 말했는데, 비류연은 서슴없이 대꾸했다.

“아, 물론이죠. 이대로 두면 괴멸될 게 뻔한 중양표국인데 내가 구해 내면 내 재산이나 다름없는 것 아니겠어요? 그냥 놔두면 없어질 것, 손을 봐서 남아나면 내거 나 다름없죠. 뭐, 걱정 마세요. 저기 있는 국주님도 동의 한 일이니까요. 안 그래요? 장 국주님!”

비류연은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국주 장우양이 볼 때는 가증스럽게까지 느껴지는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동의라도 하듯이 국주 장우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만 있었다. 왜 그랬을까? 왜 장우양이 단번에 거절치 못하고 가만히 있었을까? 모두들 의아스러워 했지만 그의 목덜미에 박혀 있는 가느다란 침() 하나를 알아차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 봐요. 국주님도 동의하잖아요. 이제 됐죠? 그럼 내기를 시작해 볼까요?”

“흐흐흐, 좋다. 저 세상에서 영원히 후회하도록 만들어 주마.”

염도의 굵고 거친 손이 홍염(紅焰)의 손잡이를 잡자, 폭풍 같은 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염도(焰刀)의 절정(絶頂) 검염기(劍焰氣)가 발동되려는 순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