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4권 20화 – 칠상흔의 과거

비뢰도 24권 20화 – 칠상흔의 과거

칠상흔의 과거

ᅳ奧義대 奧義!

아마도 그날은 최초로 굉천혈영도법 혈류십이도의 모든 초식을 풀어낼 수 있었던 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그는 처음으로 내공의 고갈 없 이 혈류십이도 전 초식을 연환해서 두 개의 칼날 끝에 뽑아냈다.

“썩 괜찮구나.”

사부님의 입에서 나온 것치고는 굉장한 칭찬을 들었다.

“드디어 해냈다!”

그런 뿌듯한 성취감이 기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육신을 가득 채웠다. 그의 사제는 비록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듣는 신동이었지만, 나이 차도 있거니와 아직 어 려서 십초식 이후의 최후 이식(式)에 고전하고 있었다. 알량한 승리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는 나이도 나이거니와 대제자의 입장에서 아직 새파랗게 어린 사제 에게 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그 천재신동 사제가 경애해 마지않는, 하늘과 같고, 그에게는 신 그 자체이며 강호무림 전체에서 신마로 추앙받고 있는 그분의 손자라고 해도 말이다.

그날 처음으로 그는 ‘신마전(神魔殿)’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 안에서 본 것은 하늘 밖의 하늘이었다. 사부님은 이미 십이도를 떠나 새로운 일도 를 찾기 위해 모색하고 있었다. 신마전에 쌓인 수많은 검법서와 도법서와 사방 벽에 붙여진 거대한 종이 위에 휘갈겨진 먹 선은 바로 도가 달려간 궤적이었다. 그것 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사방에서 칼이 조여들어 오는 느낌에 숨이 막혔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래서 물었다.

“천하무적이신 사부님께서 왜 이런 것들이 필요합니까? 더 이상 배우지 않아도 이미 도신의 경지에 오르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배움에 끝이 있다는 말을 난 들어본 적이 없다. 그건 문뿐만 아니라 무 역시 마찬가지다. 왜 이런 귀찮고 번거롭고 머리 아픈 짓을 하냐고? 난 내 자신이 만든 십 이도의 부족함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에게 아직 열두 개 초식이면 족하다고 생각되느냐? 그렇다면 더욱 정진하도록 해라. 그것들이 네 그릇을 채워줄 수 없 을 정도가 될 때까지.”

사부님의 말이 거대한 망치가 되어 자신의 영혼을 후려치는 것 같았다.

“그럼 십삼도란 어떤 초식입니까?”

“십이도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다. 마지막 일도는 초식이면서도 초식이 아닌 초식이 되겠지. 넌 우선 내가 펼치는 십이도를 잘 보아두도록 해라. 그걸 보고 무엇을 얻든 그건 네 복이겠지.”

그리고 그는 보았다. 그리고 알았다.

그날, 같은 초식이 이렇게도 달라질 수 있구나. 시전하는 사람의 깊이에 따라. 그동안 자신이 수박 겉 핥기식으로 열두 칼을 익혀왔다는 것을 뼈저리게 자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하늘 밖에 하늘이 있음을 알았다. 배움의 길이 끝이 없다는 것도.

열두 개의 초식을 넘어선 또 하나의 초식!

이제는 어렴풋이 사부의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십삼도. 그것은 그것을 얻는 것만으로도 이미 열두 개의 초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그런 초식이었다. 일종의 경지를 유형화해 놓은 것이었다. 이제 겨우 초식을 쉬지 않고 펼칠 수 있게된 주제에, 마치 자신이 천하제일고수라도 된 양 의기양양해진 제자에게, 하늘 같으신 사 부님이 해주고 싶었던 말은 명확했다.

천외천(天外)!

하늘 밖에 하늘이 있으며 배움에는 끝이 없으니 부단한 자기 연마를 그치지 말라는 준엄한 가르침이었던 것이다. 그 가르침을 한시라도 잊지 않겠다고 눈물로써 맹세했었다.

하지만 얼마나 값싼 눈물에 얼마나 허망한 맹세였던가!

그 맹세는 한 사람의 손짓 한 번에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갈기갈기 찢어져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후로 그는 계속해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도망치고 싶지 않았다. 이제 지긋지긋했다.

***

“난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칠상흔이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좌도를 휘둘러 던졌다. 질풍처럼 사나운 기세로 날아간 칼이 연비의 목을 댕강 베어버리려 했다. 예상치 못한 기습에 연비는 황급 히 허리를 뒤로 숙였다.

파바바바바!

날아온 칼은 아슬아슬하게 연비의 가슴 위를 스치듯 지나갔다. 조금만 대처가 늦었어도 지금쯤 목과 몸이 따로 분리되었을 터였다.

“설마 이 초식은!”

연비도 과거에 한번 이와 같은 초식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방금 칠상흔의 손에서 시전된 초식은 무당산에서 보았던 그 초식이 분명했다. “회선십자인!”

연비가 아는 것은 비단 이름뿐만이 아니었다. 빗나간 칼이 회전하며 되돌아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림없죠.”

때를 기다렸다가 선회해서 돌아오는 칼날을 피했다. 깜짝 놀란 칠상흔이 외쳤다.

“어떻게 이 초식을 알지?”

“좀 인연이 있어서요. 썩 유쾌한 기억은 아니지만요.”

연비가 대꾸했다. 칠상흔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 초식을 안다 해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진 마라!”

갈효봉의 혈류인의 여기서 끝났다. 그러나 칠상흔의 초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른 하나의 칼을 받기 전에 또 하나의 칼을 날렸다. 이번에는 좀 전보다 훨씬 더 위력적이었다. 풍차처럼 회전하는 칼날이 사방으로 혈강을 뿜어내고 있었다. 뻗어나온 도강 때문에 공격 유효 범위가 훨씬 넓어져서 연비는 피하는 데 애를 먹어 야 했다. 이 연환공격이 서너번 반복됐다. 그러나 연비는 모두 피해냈다. 처음과 두 번째의 기습만큼 위협적인 공격은 그후론 없었다. 그래서 약간 마음이 느슨해졌 다.

“저, 바보 자식.”

지켜보고 있던 노사부가 한마디 했다.

쿵!

그 순간 칠상흔이 있는 힘을 다해 앞으로 도약했다. 그리고는 혈강을 잔뜩 품고 돌아오는 칼에 들고 있던 우도를 힘껏 내려쳤다. 우도에도 역시 혈강이 일렁이고 있었다.

굉천혈영도법(轟天血影刀法) 혈류십이도(血流十二刀).

필살오의必奧義).

굉천혈류패왕십자인(轟天血流覇王十字刃).

혈십자(十字).

콰쾅!

수평으로 날아오던 좌도에 수직으로 내려치는 우도가 부딪치며 거대한 붉은 십자가 기둥이 솟구쳐 오르며 강력한 강기풍이 주변에 휘몰아쳤다. 그 위력 대부분이 작정한 듯 연비를 때렸다.

혈류인의 진정한 위력에 연비는 급히 진기를 끌어올려 대항했다. 가장 치명적인 십자강기는 피해냈지만, 그 후속풍까지 피해내지는 못했다. 피하지 못했으니 견뎌 내는 수밖에 없었다. 주변 삼 장의 지면을 파헤칠 만큼 엄청난 위력이었기에, 막는 데만 해도 막대한 진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런 과도한 진기 사용은 연비에게 있 어 그 무엇보다도 치명적인 독이었다.

전신이 진탕되는 순간 온몸의 기혈이 뒤엉키는 듯했다. 주화입마의 조짐이었다. 거대한 진기를 막고 있던 둑에 금이 가는 소리가 ‘쾅쾅! 쩌적!’ 하고 귓가에 울리 는 듯했다.

“어, 이거 정말 위험한데…….’

피가 목구성에서 찰랑거리고 있는 느낌이었다.

‘우와, 이런 느낌 처음인걸. 미끌미끌한데…… 비릿비릿하고…….’

상큼발랄한 기분하고는 하늘과 땅만큼 거리차가 있었다.

“운이 좋군, 직격을 피하다니.”

아무리 연비라 해도 그 공격을 정면으로 당했다면 결코 무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칠상흔의 진면목 중 일부를 본 느낌이었다.

확실히 이자는 강했다.

몸이 무겁다. 만 근의 거암이 머리꼭대기에서 내리누르는 것처럼 무거웠다. 이렇게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않았던 적이 또 있었던가?

아마도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과신했군.’

이렇게 쉽게 몸이 마음을 배신할 줄은 몰랐다. 언제나 몸은 내 마음의 명령에 따른다고 생각했는데……. 몸이 마음을 반영하는 데 약간의 시간차가 있었다. 찰나 의 순간에 생사가 교차하는 전장에서 그것은 생사를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도 있었다. 그리고 좀 전에 연비는 그 분기점까지 갔다가 막 되돌아온 참이었다. 연비도 이제 인정해야만 했다.

멋지게 당했다는걸!

연비는 입 안에 머금고 있는 피가 뿜어져 나오지 않도록 애썼다. 하지만 가느다란 핏줄기가 입가를 타고 흘러내리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날뛰는 힘을 억지로 내 리누르고 있는 제어력이 거의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보아하니 너의 몸 상태도 정상은 아닌 듯하군. 초반부터 진기가 불안정한 상태였는데 지금은 더욱 극심해진 것으로 보인다. 내가 잘못 봤나?”

“아뇨, 잘 봤어요. 당장 온몸의 혈관이 터지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죠. 음……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몸 안에서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 같은 느낌?”

“감당하지 못할 힘은 쓸모가 없을 뿐 아니라 해롭기까지 하지.”

아무래도 칠상흔은 어느 정도 원인을 눈치 챈 것 같았다. 하지만 상대가 알든 모르든 연비는 상관없었다.

“충분히 해로워요, 지금까지만으로도.”

“하지만 아직 쓰러지면 곤란하다. 이제부터 내가 얻은 십삼도를 보여줄 차례니까. 아마 네가 마지막으로 보게 될 광경일 것이다.”

그 말에는 깊은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칼을 간 자에게서만 보여지는 그런 자신감이었다. 그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음 한 수에 담을 생각인 것 이다. 연비는 거절하지 않았다.

“아름다운 광경으로 부탁해요.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보게 될 수많은 광경보다는 아름답지 않겠지만 말이에요.”

“계집아이가 배짱이 대단하구나!”

사실은 아니지만, 뭐 굳이 대꾸할 필요성은 느끼지 않았다.

“그 말, 실수한 거예요.”

그러나 연비는 왠지 기분이 무척 나빠졌다.

“글쎄, 과연 실수한 건 어느 쪽일까?”

“이거 고민되네요.”

“항복할 건지 말 건지에 대한 건가?”

“아뇨, 그럴 리가요. 벗을 수 있느냐, 벗을 수 없느냐 그것이 문제로군요.”

““버, 벗다니. 아무리 미인계를 쓰려 해도 소용없다!”

약간 얼굴을 붉히며 칠상흔이 사납게 외쳤다.

“응큼하긴. 역시 변태 맞군요.”

“이 몸은 변태가 아니다!”

길길이 날뛰는 칠상흔은 무시한 채, 연비는 소매를 걷고 손목에 차여 있는 황금색 ‘봉황환(鳳凰環)’을 바라보았다. 원래는 두 개였지만 지금은 하나밖에 남지 않은 팔찌였다. 이것은 묵룡환이 너무 눈에 띄기 때문에, 그 위에 황금으로 얇게 도금을 한 다음 임시로 봉황을 조각해 놓은 물건이었다. 그러므로 백 근의 무게에 변함은 없었다.

그러나 고민은 있었다. 사부가 툭 던진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참, 경고하는데 남은 묵룡환은 절대로 풀지 마라!”

“왜요?”

“죽.는.다.”

사부가 묵룡환을 풀고 진기를 자극한 다음 해준 경고가 생각났다. 현재로서도 힘이 날뛰고 있는 상황에서 또 한 마리의 용을 풀어놓는 것은 그리 현명한 방법이 아 니었다. 현재 그의 신체는 한 마리의 용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워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있으면 질 수도 있었다. 폭주된 힘과 십삼도가 부딪치면 잘해봐야 양패구상이었다. 그다음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칠상흔의 칼을 받을 자신은 없었다. “자,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겠지.”

칠상흔이 취한 자세는 분위기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연비 정도 되는 실력이면 상대의 기수식만으로도 앞으로 펼쳐질 초식의 위력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일 종의 본능이었다. 지금 칠상흔은 그 존재 전체가 고요 속에 침참되어 있는 듯했다. 보다 큰 고요 속에서 더 큰 움직임이 나오는 법. 저 침묵의 고요가 품고 있는 초식 의 위력을 가늠해야 했다. 이미 펼쳐진 다음에 감지하면 늦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이나 하고 있다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패배하기 딱 좋았다. 새로운 풍

경은 아무에게나 자신을 보여주지 않는다.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서 걷는 사람만이 남과는 다른 풍경을 볼 수 있는 법이다. 

‘풀까?’

지금 이 상황에서? 또 하나의 묵룡환을?

다른 때 같았으면 망설이지 않고 묵룡환을 풀었겠지만 지금은 좀 꺼려졌다. 다행히 지금 나예린은 대기실에서 쉬고 있는 상태였다. 은근슬쩍 푼다면 자신의 정체 를 눈치채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그러나 그 힘을 지금의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확신이 부족했다. 그것은 곧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힘을 무사히 쓸 수 있다고 해 서, 그걸 다 쓴 다음에 무사하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목숨을 건 도박이었다.

도박에서 가장 중요한 것 때와 운이었다.

연비는 천시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때를 기다렸다.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때를.

마음이 가는 대로 몸을 움직인다.

다른 사람에게는 꿈에라도 오르고 싶은 경지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비류연에게 있어서는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었다. 사부를 다시 만나기 전까지는 말 이다.

이제는 웃음이 날 지경이었다. 누군가를 한바탕 거하게 비웃어주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누군가는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억누르고 있던 힘이 깨어났다곤 하지만, 다른 누구의 힘도 아닌, 원래부터 자신 안 깊숙한 곳에 잠재되어 있던 힘이었다. 누군가에게 거저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 런데도 그걸 제어할 수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물론 말이 된다. 몸은 잠깐만 정신을 놓아도, 마음과 생각과 계획에 상관 않고 제멋대로 굴기를 좋아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제력을 길러 자재(自在)함을 얻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 연마와 단련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수련법을 옛날에는 ‘경(敬)’이라 불렀던 모양이다.

언뜻 보면 어려워 보이지만 개념은 간단하다. 날이면 날마다 자기 자신이 누군지, 자기가 무엇이 되고 싶은지 상기하며, 그 일에 매진하게 만드는 것이다. 쉽게 말 해 엄격한 자기 관리이다. 말은 쉽게 했지만 행하기는 무척 어렵다. 자기를 놓치는 순간 그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는 것쯤 정도만 기억해 두자. 기억해 둔다 해도 잊어버렸을 때보다 나쁜 일은 결코 생기지 않는다. 고삐 풀린 육체는 끝없는 욕망과 본능에 따라 움직일 뿐이고, 육신을 잃은 정신은 빛을 잃고 퇴락할 뿐이다. “자기 몸 하나 감당하지 못하면서 남을 이기겠다니…….?

정말 이 상태로는 사부의 재수없는 비웃음을 흠뻑 받는다 해도 반박할 말이 없지 않은가. 그런 것은 별로 좋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야 한다.

“어떻게?”

그것이 문제였다.

“안주하려면 안주해라. 따뜻한 요람 속에서 안주하면 얼마나 편하고 좋겠냐. 그게 바로 인생에서 패배하는 지름길이지. 제대로 실패하고 싶다면 이것보다 효과 만점은 방법도 따로 없거든.”

사부가 지나가듯 해준 말이 문득 머릿속에 떠올랐다.

“자기 연마를 그만두고 가만히 멈춰 있으면 현상 유지는 될 것 같지? 그러나 틀렸어. 산을 올라가다 멈추면 그 순간 퇴락이 시작되지. 바로 그 순간이 뒤처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올라가다 멈추면 그것이 바로 곧 추락이지. 남들은 다 올라가는데 가만히 서 있으면 어떻게 될까? 가만히 멈춰 있으면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지는 법이다. 올라갈 의지가 있는 놈은 발을 멈추는 법이 절대로 없거든. 그러니 길은 두 개뿐이야. 올라가거나 내려가거나.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건 네 자유다. 그러니 이거 하나만은 잊지 말거라. 중간은 없다는 것을.”

나선(裸線)의 길에서 선택지는 둘뿐이다. 올라가거나 아니면 내려가거나. 안주는 있을 수 없다. 그 자리에 주저앉으면 뒤처질 뿐.

여기까지 와서 다시 추락할 수는 없어!’

정상이 어딘지 모르지만 반드시 도달해 주지. 분명 그 정상이 사부의 봉우리를 넘은 다음에 있을 것이다. 지금은 사부의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언제가 반 드시 그곳을 밟고 말리라! 그곳에서 사부의 머리 가마를 내려다본다면 분명 무척이나 기쁘겠지. 그러니 여기서 태평하게 지고 있을 순 없었다.

“반드시 이긴다!’

비록 그것이 목숨을 건 도박이 된다 해도.

척! 연비는 현천은린의 우산대 끝에 손을 올려놓았다.

스르릉!

우산대에서 맑은 소리를 울리며 뽑혀 나온 그것은, 밤하늘처럼 어두운 묵광(墨光)을 띤 채 날카롭게 빛나는 신체 위에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은사가 화려한 파문 을 그리며 새겨져 있었다.

마치 하나의 우아한 예술품처럼 느껴지는 그것은 바로 ‘검(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