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에서의 실랑이
-조여드는 심장
“멈춰라!”
비류연은 멈추지 않았다.
“멈추라니까!”
그래도 비류연은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문지기가 폭발했다.
“야, 이야기를 좀 들어!”
그제야 비류연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리고는 귀찮다는 얼굴로 대꾸했다.
““바쁜데 왜?”
“통행증을 보여라.”
“없는데?”
“뭐라고! 통행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
주작단원들과 장홍, 효룡은 모두들 마천각에서 발급해 준 통행증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류연에게는 통행증이 없었다. 물론 연비의 것을 하나 가지고 있긴 하 다. 하지만 그의 이름으로 된 것도 아니었고, 우선 여자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내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정체가 들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연비의 모습이었다면 더 편했을 것은 분명했다. 어떤 제지도 받지 않고 통과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하기 싫었다. 연비의 모습이 아닌 본래의 모습으로 예린을 찾아오고 싶었다.
‘그런 나의 앞을 가로막는다?”
우선 그 터무니없는 무모함에 대해 칭찬해 주겠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것에 대해서는 각오해 두는 게 좋았다. 지금 그에게는 여유가 없었다. 헤 실헤실 웃으며 손속에 사정 따위 두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만일 가로막는다면 오늘 마천각 정문은 두 쪽으로 갈라질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이미 비류연은 날뛸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사부한테까지 덤벼들었다. 이제 더 이상 무서울 것도, 주저할 것도 없었다. 더 이상의 막나감은 이제 있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제 그 어떤 일을 저지르더라도 덜 무모한 일이 되겠지.. 그렇다면 좋다. 오늘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는 무사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자가 될 것이다. 그렇게 결정했다.
“못 들어간다고?”
비류연이 살기를 에누리없이 분출했다. 이렇게 짙은 살기를 드러내는 비류연을 효룡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그라면 무슨 일이든 저지를 수 있을 것 같았 다. 그건 위험했다.
“어떻게든 막아야 해!”
폭발 직전인 비류연의 앞을 효룡이 급히 가로막았다. 그리고는 마천각에 사절단으로 왔을 때 받은 통행증을 내보이며 말했다.
“들여보내 주시지요. 원래 같이 왔어야 할 동료였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지금 온 것뿐입니다. 이 친구가 좀 아팠거든요.”
“아팠다고? 그런 건 이유가 될 수 없다!”
문지기가 외쳤다. 그는 사십대 중반의 도객이었는데, 풍기는 기도가 범상치 않은 게 아무래도 그는 이 성문의 수비를 총괄하는 자인 듯했다.
“좋군. 나도 일일이 허가받고 있을 시간은 없으니까, 빨리 끝내도록 하자고.”
비류연이 한 발을 더 앞으로 내밀었다. 진심이었다. 그는 지금 진짜로 뭔가 저지르려 하고 있었다. 그것도 아무런 망설임 없이. 그 일이 백도와 흑도 사이에 어떤 파 장을 미칠지도 그에겐 관심 밖이었다. 그런 건 나예린을 되찾은 다음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았다.
“자자, 류연. 진정해, 진정. 그러지 말라고.”
장홍은 필사적으로 폭주하려는 비류연을 만류했다. 여기서 폭발하게 놔둬서는 안 되었다. 지금 그의 모습은 평소 그 냉정하고 지독하게 합리적이던 비류연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 친구의 신원은 제가 보증하지요. 들여보내 주십시오.”
효룡이 좋은 말로 설득했다.
“너 따위가 뭔데 신원을 보증한단 말이냐? 절대 안 된다! 꺼져라!”
문지기는 단호했다.
“너 따위.라고라고라!”
효룡의 관자놀이에 푸른 핏줄이 튀어 올랐다. 그는 남에게 무시당하는 게 제일 싫었다.
“내가 좋게 좋게 해결하려는 게 안 보여! 닥치고 들여보내 달라니까!! 크아아아아악!”
효룡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내공이 실린 탓이 성벽과 성문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이봐, 룡룡! 진정해, 진정하라고! 자네까지 날뛰면 어떡하나. 외교 문제가 된다고!”
괴성을 지르며 쌍검을 뽑아 들고 난동을 피우려는 효룡을 장홍이 뜯어말렸다. 장홍의 순간적인 판단이 아니었으면 벌써 성문 앞은 피가 홍건했을지도 모른다. “류연, 자네도 뭔가 좀 더 평화적인 방법을 생각해 보게.”
“난 이쪽이 간단신속해서 더 마음에 드는데? 룡룡이 앞장선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 없잖아?”
“류연! 제발!”
야생마처럼 날뛰는 효룡을 뒤에서 끌어안은 채 장홍이 버럭 소리쳤다. 자신이 두 손 두 발 다 묶여 있는 상태에서 그가 사고를 치면 막을 방도가 없었다. 어떻게든 저지해야 했다. 그래서 한마디 더 덧붙였다.
“벌써 여기서부터 힘 빼면 시간만 더 잡아먹을 뿐이네. 그건 지극히 비합리적인 일이지 않나.”
“그러니까 아저씨 말은 평화적으로 일을 해결하는 게 훨씬 신속하다 그거지?”
그제야 장홍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떠올랐다.
“내 말이 바로 그 말일세. 돌아가는 것 같아 보여도 그게 가장 빠른 길이네.”
“좋아, 그렇게까지 말하면 까짓것 하지 뭐. 평화적으로 일을 해결하려면 우선 대화부터 시작해야겠군. 귀찮은데.”
“암, 그렇고말고. 모든 건 대화로 시작되는 거라네. 차분히 대화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다 보면 이 세상에 나쁜 사람은 하나도 없단 말일세.”
“그 말 진짜로 믿는 건 아니겠지?”
“일단 믿는다고 해두자고.”
비류연이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귀하의, 별호와, 이름은, 뭡니까?”
‘오, 일단 통성명부터 시도하려는 모양이군.’
그런데 어째 어조가 굉장히 무미건조했다.
“잔살도 장곡이다.”
“아,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물론 비류연은 들어본 적도 없는 이름이었다. 이런 잔챙이 알게 뭐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속마음을 감추고 겉으로는 웃으며 입에 발린 말을 하는 것이 바로 어른들의 세계인 것이다.
‘그래, 잘하고 있네. 허례허식을 빼면 어른들의 세계는 시체나 다름없어. 자네도 이제 어른이 되려 하는군.’
장홍이 멀쩡하게 대화를 나누는 비류연을 보며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자식을 보는 듯한 잔잔한 눈동자였다.
“난 하나도 안 반갑군.”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니 넘어가죠.”
“그럼 뭐가 중요한가?”
“아저씨, 내가 누군지 몰라요?”
마치 자신을 모른다는 것은 지극히 무식하기 짝이 없는 것이라는 눈빛으로 비류연이 바라보자 잔살도 장곡은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 글쎄? 누, 누군데?”
“내 이름은 비류연. 이래도 모르겠어요?”
“그, 글쎄, 잘 모르겠는데?”
비류연이 참으로 딱하다는 표정을 짓자 장곡은 한 일도 없이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기억 안 나요? 지난 화산지회에서 명예롭고 당당하게 우승했던 비류연이라고요.”
“아, 그 비류연!”
장곡도 그 이름만큼은 들어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자, 이제 기억났으니 들어가도 되죠?”
씨익 미소를 한번 지어 보인 다음 비류연은 망설임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 멈춰!”
“왜요?”
“자네가 지난 백주년 기념 화산지회의 우승자인 건 알겠는데, 그렇다고 해서 마천각에 들어갈 수는 없어. 그런 규정은 없다고. 그러니 은근슬쩍 들어가려 하지 말 게.”
비류연은 속으로 ‘쳇’ 하고 중얼거렸다.
“관계없어요?”
“관계없네.”
“그럼 안 들여보내 줄 건가요?”
“물론일세.”
그러자 비류연이 장홍을 돌아보며 말했다.
“들었어?”
“들었네.”
“대화 결렬이군. 그렇지?”
“그, 그렇군.”
“난 충분히 정중하게 허례허식을 담아 얘기했는데 말이지. 좋은 말로 말이야.”
장홍은 갑자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저 친구, 대체 어쩌려는 거지?”
행동을 읽을 수 없다는 게 비류연의 가장 두려운 점이었다.
“그렇다면 그다음 교섭으로 넘어가 볼까?”
비류연은 싱긋 웃으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혹시나 해서 묻는데, 지금이라도 들여보내 줄 수 있나요?”
비류연이 확인차 물었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느냐? 돌아가라.”
잔살도 장곡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만일 그래도 꼭 들어가야겠다면요?”
“절대 안 된다. 허가증도 통행증도, 없는 사람을 마천각 안으로 들여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하는군요. 난 지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들어가겠다고 말하고 있는 거라고요. 이것 하나만은 알려 드리죠.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돌아서는 일은 없어요. 그러니 그냥 문을 열어요. 저 안에서 날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요.”
“불가하다.”
거듭되는 거절에도 비류연은 분노하지 않았다.
“저기 내 뒤의 사람들 안 보여요? 열대여섯 명이 있잖아요? 다들 못 들어가고 있어서 짜증이 많이 나 있단 말이죠. 여차하면 아주 거칠게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럼 서로 문제가 커지지 않겠어요?”
“그 정도 협박으로는 결코 마천각의 문을 넘을 수는 없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서로 더 이상 시간 낭비 하지 말죠.”
체념한 어투로 비류연이 말했다. 장홍과 효룡은 그가 순순하게 물러나려는 모양새가 너무나 수상했다.
“돌아갈 마음이 들었느냐?”
비류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좋게 말하는 건 여기까지네.”
그러자 잔살도 장곡을 비롯한 성문의 호법 하나가 그를 비웃었다. 그들이 단순한 말단 경비들이 아니라, 나름 이름을 떨치는 고수들이었다. 게다가 저 문 너머에는 정문을 지키기 위해 파견된 수비대도 있었다.
“무력이라도 쓰겠다는 거냐?”
“아뇨, 무력 대신 마술을 쓸 생각이죠.”
“마술?”
비류연은 마치 보이지 않는 과일이라도 쥐고 있는 듯한 모양새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자, 이게 보이나요?”
비류연이 물었다.
“뭐가 보인다는 말이냐?”
잔살도 장곡이 반문했다.
“어라, 안 보여요? 내 손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져 있는 ‘이것’이?”
“안 보인다. 미친 것 아니냐? 거기에 뭐가 들려 있다는 거냐?”
“댁들의 ‘심장(心臟)’!”
비류연이 냉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쳤구나! 어서 썩 물러가라!”
“안 믿는군요.”
“보이는 건 빈손밖에 없는데 뭘 믿으라는 거냐?”
비류연의 손은 살짝 오므려져 있긴 했으나, 그 손바닥 위에는 아무것도 올려져 있지 않았다.
“그래요? 그렇다면 한번 시험해 볼까요?”
장곡이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해보던지 말던지.”
“그래요? 그럼 사양 않고.”
비류연은 들어 올리고 있던 손을 서서히 오그라뜨렸다.
꽈아아아아아악!
“커헉!”
갑자기 장곡도와 또 한 명의 호법이 양손으로 목을 움켜쥐며 몸을 비틀었다. 숨이 막히는 듯, 물 밖으로 내던져진 금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린다. 하지만 좀처럼 호 흡은 편해지지 않았다. 숨 쉬기는 더욱더 힘들어지기만 하는지, 그들의 안색이 파리하게 변했다. 창백한 시선에 공포를 담은 채 비류연의 다물어지고 있는 손을 바 라본다.
“이, 이게 대체 어떻게…….”
장홍과 효룡은 이 급작스런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 고통스러워하는 호법들과 비류연의 서서히 조여들고 있는 손을 번갈아 바라보기만 할 뿐 이었다.
반면 그 모습을 지켜보는 비류연의 눈동자는 무심하기만 했다.
“이제 좀 믿음이 가나요? 이 손아귀에 들린 게 당신들의 심장이라는 사실이 말이에요.”
비류연이 서서히 움켜쥐어지고 있던 손아귀를 조금 느슨하게 벌렸다.
“커허어억! 콜록콜록콜록!”
그제야 두 명의 호법은 한꺼번에 숨을 토해내며 연신 기침을 해댔다.
“자, 다시 한 번 묻죠. 이제 문을 열어주실 건가요?”
비류연이 다시 한 번 정중하게 물었다.
“안 된다! 죽어도 이 길을 지나가게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이런 짓을 하고도 무사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물론 무사할 예정이죠. 그리고 우리의 무사안일은 당신들이 신경 써줄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우선 나에겐 시간이 없어요. 그리고 인내심도 바닥난 상 태죠. 그러니까…….”
“자, 잠깐! 뭐 하는 짓이냐?”
두 호법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왜요?”
“그, 그거 말이다! 네, 네 손.”
어느새 비류연은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알 수는 없지만 보이지 않는 심장을 공놀이하듯이 던져 올렸다 받았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두 호법이 보이지 않는 심장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혹시나 하는 의구심이 그들의 마음을 옭매고 있었다. 그 멍청하고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고 비류 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한번 터뜨려 볼까요?”
비류연이 싱글거리며, 잔인한 미소를 띠며 손가락 마디마디를 움직여 보였다.
“그, 그러지 마!”
그 말에 심장이 튕겨 오르는 듯한 충격을 받은 두 호법이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순식간에 심장 박동수가 두 배로 올라갔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에 비류연은 회심 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좀 믿음이 가나 보죠?”
분명 속임수일 것이다. 그렇게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되뇌었지만, 마음 밑바닥에서는 여전히 씻기지 않는 불안이 일렁거린다.
“우리가 졌다. 들어가라.”
마침내 두 사람이 이를 갈며 말했다. 문을 지키는 책임자로서 이미 그들의 자존심은 엉망진창이 되었다. 증오의 시선을 뿌리는 것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시선을 받고 자책하거나 할 정도로 비류연의 감성은 말랑말랑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둬라, 들어가긴 쉬워도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이 가는 소리가 저 뒤에 서 있는 주작단의 귀에까지 똑똑히 들릴 정도였다. 분하겠지. 그 기분, 왠지 알 것 같아 주작단 중 몇몇은 눈가를 훔쳤다. 왠지 저 모습이 남 의 모습 같지 않았던 것이다.
“그 문제는 나올 때 고민하도록 하죠.”
그렇게 말하더니 갑자기 오른손을 위로 던져 올렸다.
“무, 무슨 짓이냐!”
비류연은 씨익 미소 지었다. 실로 악마의 미소라 해도 어울릴 만한 그런 미소였다. 던져 올렸던 투명 심장을 받아 든 손과 다른 한 손을 세차게 마주쳤다. 그리고 소 리쳤다.
“빵!”
단번에 심장이 터져 나가는 듯한 소리에 공기가 쩌렁쩌렁 울렸다.
우렁찬 소리가 터지자마자 화들짝 놀란 호법 두 사람은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기절한 두 사람의 입가에 게거품이 보글보글 솟아올랐다. “소심하기는.”
기절한 두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비류연은 문으로 다가갔다.
“어떻게 한 건가?”
옆으로 다가온 장홍이 물었다.
“간단한 속임수지. 하지만 알려주면 재미가 없잖아?”
“그래도 좀 가르쳐 주게, 궁금하잖나.”
“간파당한 마술은 이미 마술이 아니지. 그건 그냥 속임수일 뿐이야. 나중에 또 써먹을 때도 불편하고.”
“그걸 또 쓸 생각인가?”
“그냥 보이지 않는 손으로 심장을 만져줬다고 생각해 줘.”
“그렇다는 건 진짜 그랬다는 건 아니군.”
“그 이상은 기업 비밀이야. 문파 비전이라고.”
“자네 문파는 그런 속임수도 가르치나?”
“속임수라니, 듣는 사람 기분 나쁘게. 응용이라고 해주게.”
비밀은 뇌령사에 있었다. 보이지 않는 뇌령사를 이용해 몰래 그들의 목을 조른 것이다.
사전 심리 조작을 통해 의식을 심장으로 쏠리게 했기 때문에, 목이 조여서 숨이 막히는데도 심장이 움켜쥐어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가벼운 암시 덕분에 판단력 이 무너진 것이다.
그 때문에 비류연은 굉장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인 것이다. 마치 그의 손바닥 위에 진짜 심장이 있는 것처럼.
“이렇게 요란하게 진입했으니 앞으로가 시끄럽겠군.”
장홍은 폭풍의 예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쩐지 일이 점점 커져 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어떤 수를 써도 수습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그 해결을 비류연에게 기 대할 수도 없었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나예린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해서 다른 말은 조금도 들어가지 않고 있었다.
비류연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문을 발로 차서 활짝 열었다. 그리고는 뒤돌아보며 물었다.
“자, 돌아갈 사람?”
아마 이것이 마지막 기회일 것이다. 이 선을 넘어가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된다. 이것은 비류연은 친구들에게 주는 마지막 선택지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지, 자네랑 끝까지 어울리는 수밖에.”
장홍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업이죠, 업. 전생에 무슨 잘못을 저질렀기에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원.”
효룡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주작단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그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돌아갈 거야?”
“갈 수 있을까?”
“가도 된다잖아.”
“대사형 말을 믿어?”
“음… 못 믿지.”
“아마, 그랬다간 뒈지지 않을까?”
“분명 보복이 기다릴 거야.”
“역시 대사형이니까.”
“그렇지, 대사형이니까.”
“할 수 없지. 함께하는 수밖에.”
“이럴 때 잘 보여놓자고. 그럼 앞으로 좀 편해지지 않을까?”
“일리있네. 자, 그럼 빠질 사람?”
“……”
투덜거리면서도 끝내 발걸음을 돌리는 이는 없었다.
비류연은 씨익!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고개를 앞쪽으로 향했다.
“악우를 둔 자의 응보 아니겠어.”
그렇게 나오면 그와 어울리는 자들은 할 말이 없었다.
“자, 그럼 화려하게 날뛰어보자고, 친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