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6권 2화 – 평화, 그것은 뭐에 쓰는 물건이냐?

비뢰도 26권 2화 – 평화, 그것은 뭐에 쓰는 물건이냐?

평화, 그것은 뭐에 쓰는 물건이냐?

-서해왕락비오

평화. 어쩐지 좋은 울림을 주는 말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가슴 한 켠이 따뜻해진다. 보통 사람들은 전쟁보다는 평화를 바란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평화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전쟁시에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평화시에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찾지 못하는 그런 사람도 있다. 지금 비류연과 대치하고 있는 서해왕 락 비오도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평화란뼛속 깊이까지 전사인 그에게 있어 활약할 기회를 빼앗아가는 일종의 장애물이었다. 그는 좀 더 자신의 힘을 세상에 과시하고 싶었다. 또한 세상에서 자신 의 힘이 얼마나 통할지 확인하고 싶었다. 자신이 약해지고 있는지 강해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상태였다.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 위에서 내려온 뜬금없는 임무는 그에게 있어 좋은 기회였다. 좀처럼 적대 세력이나 침입자들이 나타나지 않는 이 마천각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오랜 만에 생겨난 균열이었던 것이다.

이 단단하고 거대한 조직에 대든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는 이 침입자라는 존재를 인정하기로 했다. 어느 정도 이상의 배짱과 실력이 없다면 그저 그 일(침입)을 상 상하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려 벌벌벌 떨었을 테니까.

이 마천각을 적으로 돌린다는 것은 흑도 전체를 적으로 돌린다는 것과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그만한 상징성을 이곳은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그동안 이곳에서 축 적되어 온 전투 기술은 최강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마천각은 백 년 동안 어떻게 싸워야 잘 싸울 것인가, 어떻게 하면 강해질 것인가만을 줄곧 연구해 오던 곳이다. 그런 곳에 쳐들어오려면 무림을, 아니, 세계를 적으 로 돌릴 각오가 있지 않으면 안 된다.

‘무림공적이 되는 것도 두렵지 않다는 이야기겠지.’

뭐, 이 경우 흑도 쪽의 척살 대상이 된다는 것이겠지만, 별반 다를 것 없다. 공적으로 낙인찍히면 백도 쪽도 이쪽에 손을 댈 수 없기 때문이다.

‘기대에 걸맞게 좀 강한 놈들이었으면 좋겠군.’

진심으로 락비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침입자가 너무 약하면 자신의 활약이나 역량이 두드러져 보이지 않을 것 아닌가. 그런 경우는 곤란했다. 적이 어느 정도 이상 강해야 그의 활약 역시 함께 두드러져 보이는 것이다. 그래야 그의 힘이 각과 맹에 좀 더 인정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곳 마천각을 졸업한 후에 ‘흑천맹’의 특수 전투 부대 ‘굉천(轟天)’에 대장 급으로 발탁될 수도 있었다. 피에 굶주린 전사들이 우글거리며 언제나 싸 움의 선두에 서서 적을 향해 돌진하는 최전선 실전 부대 ‘공천’ 그곳이야말로 그의 힘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적재적소의 장소였다. 마천각 같은 배움의 장 소는 그에게 어울리지 않았다. 좀 더 실질적으로 무력을 휘두를 수 있는 전장이 그는 좋았다.

굉천(天).

흑도 전체를 조정하기 위한 전투 조직, 그곳은 외부의 적에 대한 신속한 대응과 내부의 적을 제재하기 위한 실전 부대였다. 비록 전투 부대지만 가장 직접적인 무 력을 행사한다는 점에 있어서 강호에 막대한 발언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 소속된다는 것만으로도 흑도의 존경과 두려움을 동시에 받을 수 있게 된다. 물 론 그의 목표는 일개 평대원이 아니었다.

굉천에는 여러 개의 부대가 있는데 그 부대 중 하나의 대장이 되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하지만 지금 그쪽의 장들은 대부분 십여 년 전부터 강호에 명성을 얻어온 초고수들이었다. 그러니 공석이 생긴다 해도 그 자신까지 차례가 올지는 미지수였다.

그가 비록 마천십삼대의 대장이라는 전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냥 보기 좋으라는 의미의 전시 행정으로서 학생 네 명을 대장을 세운다고 보 고 있었다.

즉, 무교관보다 실력이 떨어지지만, 학생들의 자율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학생 출신의 대장들은 금방금방 교체된다. 오래도록 그 자리 를 지키고 있는 무교관과는 입장이 다르다.

물론 락비오 본인은 자신의 능력, ‘금강반탄신공’에 자신을 가지고 있었다. 제대로 싸운다면 다른 무교관 출신의 마천십삼대 대장과도 대등하게 싸울 수 있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직접 싸워 그 사실을 증명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었지만, 사사로운 비무는 각규(閣規)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어 지금까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세간의 인식을 바꾸지 못한다. 자기를 다른 마천십삼대 대장보다 한두 단계 낮춰보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뭔가 눈에 확 띄는 활약이 필요했다.

힘이야말로 정의.

그런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기회가 마침내 제 발로 찾아온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그의 힘으로 승리를 손아귀에 쥐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