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6권 7화 – 남해도 명물. 바가지 시장

비뢰도 26권 7화 – 남해도 명물. 바가지 시장

남해도 명물. 바가지 시장

-무력 호객 행위

“그렇게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주위를 살피며 긴장한 채 도개교를 건너고 있던 남궁산산을 향해 백색 마의 청년이 웃으며 말했다.

“통행료를 내신 분들을 공격하는 것 같은 상도의에 어긋나는 짓은 하지 않으니까요.”

“은자 백 냥씩이나 받아먹고서 입 닦으면 천벌을 받죠.”

“원래 상인은 신뢰를 중요시합니다. 신뢰야말로 돈을 벌어다 주는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물론 달리 생각하는 속물들도 있습니다만…….” “정말 이곳 오번대 사람들은 돈을 밝히는군요.”

어깨에 들어간 긴장을 조금 푼 채 남궁산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상혼(商魂)이 있다고 표현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상혼이라……. 전혼(錢魂)이 아니구요?”

돈 전(錢) 자에 영혼 혼(魂), 합쳐서 전혼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 말을 쓴 것은 돈을 벌기 위한 의지라기보다는 돈에 영혼을 팔았다는 의미가 더 강했다.

“그건 제 이름이구요.”

“당신 이름이라고요?”

뜻밖의 말에 남궁산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아, 아직 모르셨군요. 통성명이 늦었습니다. 오번대 말단무사인 전혼이라고 합니다.”

“아, 네…….”

남궁산산과 현운이 얼떨결에 마주 인사했다.

“특별 봉사로 섬 내를 안내해 드릴 테니 따라오시지요.”

그리고는 앞장서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긴 도개교를 지나 남해도에 들어서자 현운과 남궁산산은 깜짝 놀랐다. 상상도 못한 광경이 그들 눈앞에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이건 대체…….”

똑같이 생긴 건물군들이 중앙에 뚫려 있는 거리를 기준으로 양쪽으로 일렬로 주욱 늘어서 있었는데 각각의 건물에는 모두 간판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건 물은 모두 거리 쪽이 개방되어 있었고, 무언가 좌판을 꺼내놓고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간판에 쓰여 있는 이름들도 모두 달랐는데, 하나같이 끝에는 ‘상점(商店)’을 나타내는 글자가 붙어 있었다.

“보시다시피 상점들입니다. 뭔가를 파는 곳이죠. 뭐가 이상한가요?”

음식을 파는 데도 있고, 옷을 파는 데도 있고, 장신구를 파는 데도 있었다. 뭘 파는지보다 뭘 안 파는지 세어보는 쪽이 더 빠를 것 같은 그런 장소였다.

“마천각 안에 왜 이런 장소가……”

“그리 이상하게 여길 것 없습니다. 이곳 마천각에서 필요한 모든 생필품과 음식들은 이곳 남해도에서 팔고 있으니까요. 일종의 자체 시장이라 할 수 있죠. 아시다 시피 여기는 섬이고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 매번 강호란도나 육지로 나가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니까요. 천무학관에도 이런 곳이 있을 텐데요?”

물론 천무학관에도 외부의 물건을 들여 파는 곳이 있었지만 이렇게 대규모는 아니었다.

“사번대가 이곳 마천각의 의료 부문을 전부 독점하고 있듯 저희 오번대는 모든 유통과 판매를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판매 수익의 대부분은 저희 남해도에 귀 속됩니다. 학생들의 자치상회라 보면 될 것 같군요.”

물론 대부분에 속하지 않는 나머지 부분은 모두 각에 귀속되었다.

“매우 본격적이군요. 일반 상점하고 별로 다른 곳도 없는 것 같고.”

남궁산산이 약간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세상에 나가도 금세 현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실전적인 배움의 기회를 갖는 거지요. 원래 저희 쪽은 여러 가지 기업들을 운영해 문파의 운영 이익을 확보하 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상(商)행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직접 몸으로 배워보는 것은 무척 도움이 됩니다. 어떻게 상인으로서 상대방과 경쟁할 것인가, 어떻게 다른 상점을 견제할 것인가, 다른 상점의 압력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어떤 물건을 들여놔야 잘 팔릴 것인가? 모두 스스로 고민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견제와 압력이라……. 실제로 이전투구를 한다는 건가요?”

그러자 전혼은 웃으며.

“지극히 우리다운 방식으로요. 방금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이곳은 현장의 축소판이니까요.”

즉, 암중의 무력시위까지 있다는 뜻이었다. 그 말에 남궁산산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게 진짜 상행위라 할 수 있나요?”

“현실에서 엄연히 벌어지고 있는 일이죠. 만일 너무 이상적이고 임의적인 환경 속에서 상점을 하다가 막상 현실에서 전혀 쓸모가 없으면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이 쪽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다른 세력의 압력으로부터 자신의 기업을 지켜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금력이든 무력이든 말이죠. 그걸 극복하지 못하면 절대로 ‘돈을 벌 수 없습니다. 시장의 패배자가 되는 거죠.”

지독히 혹독한 방식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은 이미 약육강식의 세계였다.

“아, 그러니 괜찮으시다면 몇 개 사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두 분 가시는 길을 방해할 수도 있으니까요.”

“자, 잠깐만요! 길을 방해한다니요?”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을 들은 남궁산산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그러자 전혼이 별거 아니라는 듯 싱글거리며 말했다.

“좀 전에 말했잖습니까. 이곳은 현실의 축소판이라고요.”

그러자 어디선가 커다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하! 그 말대로다! 상행위라는 것은 바로 전쟁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데 수단을 가려서는 안 되는 법.”

그러자 옆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익의 극을 추구하는 것이야말로 상인이 가야 할 길.”

그러자 그 말을 받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상도(商道)!”

어느새 시장길의 한가운데에 나타난 세 사람이 동시에 소리를 합쳐 외쳤다.

“우리 상점의 물건을 사시오! 그전에는 결코 이 길을 지나갈 수 없을 것이오.”

한 사람은 거구의 남자였고 한쪽에 추가 달린 커다란 저울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남자는 빼빼 마르고 팔다리가 길었는데, 어깨에 메고 있는 기다란 봉 양쪽 에 묵직해 보이는 두 개의 가죽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은 여자였는데, 꽤 화려한 분홍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는데 쇠로 된 긴 자랑 직각으로 꺾어진 자를 들고 있고 허리엔 줄자를 매고 있었다.

“저 무뢰한들은 대체 누구죠?”

남궁산산이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물었다.

“아, 소개가 늦었군요. 저들이 바로 저희 제오 기숙사 상혼대의 판매왕 일, 이, 삼위를 다투는 자들로 저희는 저들을 ‘삼대상(三大商)’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삼대상인지 사대상인지 잘 모르겠지만, 왜 그들이 우리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거죠? 제가 묻고 싶은 것은 바로 그 점이에요.”

“상인이 길을 막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죠. 저들은 당신에게 무언가를 팔고 싶은 겁니다.”

“뭔가를 사고 싶은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는데요?”

“그렇소. 우리는 갈 길이 바쁘오. 그냥 지나가도록 길을 비켜줬으면 좋겠소?”

지금까지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있던 현운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 챘는지 옆에서 거들었다. 그러자 전혼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저들은 뭔가를 반드시 팔기 전에는 자리를 비키지 않을 테니까요. 그들의 상혼이 아마 그것을 용납하지 못할 겁니다.”

“그거 알아요? 그런 걸 ‘강매(强賣)’라고 부른다는 걸?”

“의견 차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지요. 저희는 팔 수만 있다면 수단은 묻지 않습니다.”

“이제는 강매까지 정당화하려 드는군요. 다른 마천각 사람한테도 이러나요?”

“물론 아니죠. 다만 상인은 각각 마주하는 대상의 상황에 따라 항상 다른 거래를 하는 법이랍니다. 그들이 조용히 당신들을 이 시장거리에서 보내주길 바랄 수밖 에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눈곱만큼보다도 더 적으니 포기하는 게 낫다고 침묵으로써 말하고 있었다.

“만일 안 산다고 한다면요?”

남궁산산이 물었다. 그녀는 마음이 동하지도 않는데 무언가를 살 만큼 낭비를 즐기지 않았다. 그것은 틀림없이 무의미한 소비였다.

“글쎄요,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그는 무척이나 회의적인 듯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뜻이죠?”

“저 세 사람은 아마 두 분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호객 행위를 과연 얼마나 거절할 수 있을지 의문이군요.”

“호객 행위라는 가증스러운 말 대신 솔직하게 ‘폭력’이라고 하면 어떨까 싶은데? 그게 더 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남궁산산이 기가 막히다는 어조로 이죽거렸다. 폭거도 이런 폭거가 없었다. 차라리 칼을 들고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게 훨씬 움직이기 편할 것 같았다.

“폭력이라니, 그건 오해예요. 우린 어디까지나 정중하게 손님을 모실 뿐이지요. 정중하고 편안한 접객이야말로 저희 ‘금홍의복점’의 자랑이지요. 최고의 옷이 필 요하지 않으신가요? 그럼 저희 금홍의복점으로 오세요.”

삼대상 중 유일한 여인이 가장 먼저 나서서 말을 걸었다.

“흥, 저런 쓰레기 같은 ‘오위점’에는 눈길 한 번 줄 필요도 없어. 우리 ‘사위루야말로 최고 중의 최고지. 우리 사위루의 최고급 지향의 명품 접객에 비하며 다른 곳 의 그것은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지. 암, 그렇고말고. 그러니 부디 우리 사위루에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시는 게 어떨까? 최고의 음식을 제공하지. 맛도 좋고 정력에 도 좋은.”

“허허, 이 두 사람도 참. 나 서열 삼위 오대붕’이 여기 멀쩡히 서 있는데 어떻게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나? 거짓말도 정도껏 해야지, 듣고 있는 내 가 다 부끄럽네. 진정한 상혼을 지닌 사람이라면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고 알아서 물러나야 할 것 아닌가? 내가 운영하는 마천각 최고의 종합 숙박점 ‘삼위루’가 버 젓이 간판을 달고 영업을 하는데 어찌 자네들이 앞으로 나서려 하는가? 고객을 함부로 속여서야 쓰나? 고객의 주머니를 열려면 정직해야지. 암, 정직해야 하고말고.”

“쳇, 그 순위도 이번 일분기 결산 때까지요. 이번 분기가 지나면 반드시 우리 사위루의 매상이 전 점포 중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을 테니 말이오.”

“아니죠, 아니죠. 이번의 매상 1위는 저 ‘서열 오위 여홍아’가 운영하는 최고의 의복 전문점 ‘금홍의복점’이에요. 냄새나는 남정네들이 운영하는 두 상점과는 격이 달라요, 격이. 저희 금홍의복점을 이용해 주신다면 최고의 옷을 맞춰 드리겠어요. 어때요, 거기 계신 소저 분? 저희 가게의 옷을 입으시면 옆에 계신 남자 분의 마음 도 단번에 홀리실 수 있을 거예요. 오호호호.”

“나, 난 이런 의지가 약한 남자 따위 관심없어요! 왜 내가 이런 남자를 위해 치장을 해야 한다는 거죠?”

남궁산산이 약간 상기된 얼굴로 항의했다.

“어머, 부끄러워하시긴. 저 정도면 준수하고 장래도 있어 보이네요. 고객님께서 관심없으시면 저 멋진 남자 분에게 제가 도전해 봐도 상관없겠네요?”

서열 오위 여홍아가 현운을 향해 은근한 미소를 보내며 묻자 남궁산산이 소리쳤다.

“그건 안 돼!”

그녀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였다.

“어머, 왜 안 되죠?”

“그건…….”

그러자 옆에서 거구의 서열 삼위 오대붕이 끼어들며 여홍아의 말을 끊었다.

“더 이상의 독점적 호객행위는 인정할 수 없소, 여 점주.”

그러자 빼빼 마른 사내, 서열 사위 정홍돈이 맞장구를 치며 은근히 끼어들었다.

“나도 오 루주의 말에 동감이오. 혼자 너무 나서는 것은 좋지 않소. 그렇지 않소, 거기 남자 분? 어떻소? 우리 음식점의 자랑거리 ‘특별 불끈불끈식’은 특히 남자의 정력에 좋다는 평판이 자자하오. 단 한 번만 먹어도 당장에 옆에 있는 여자 분의 몸과 마음을 동시에 빼앗을 수 있는 진정한 남자가 될 수 있을 것이오. 어떻소? 우리 식당에 들러 한번 맛을 보는 게?”

현운은 극구 사양했다.

“아, 아니, 꼭 그걸 먹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소만? 게다가 도사고…….”

다시 뭐라고 말하려는 정홍돈을 오대붕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서열 사위와 오위는 좀 빠져 있게. 이 두 분은 우리 주루를 이용하실 생각이니까. 그렇지 않소이까, 두 분? 우리 주루에는 분위기 좋은 객실들이 많이 있소. 본 각 의 학생들도 짧고 달콤한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누기 위해 연인끼리 자주 이용한다오. 지금 두 분이 이용한다면 평소 가격의 이 할을 할인해 주겠소.”

오대붕의 폭탄발언에 남궁산산과 현운이 불에 달구어진 쇠처럼 새빨갛게 변했다.

“우, 우, 우, 우, 우…….”

뭐라고 항의를 하고 싶은데 충격으로 혀가 마비돼서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우, 우, 운우지락이라니……!”

“그렇소. 음양합일이라고도 하지요. 그게 뭐냐 하면 남자와 여자가 한 이불에서…….”

“돼, 됐어요!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그 정돈 알아요. 당신 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는 거예요!! 미, 미, 미, 미쳤어요?”

남궁산산이 펄쩍 뛰었다. 사실 이건 호객행위가 아니라 신종 정신 공격 수법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들 정도였다. 그 증거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은 현운도 마 찬가지였다.

“그, 그, 그, 그렇소. 게, 게, 게다가 난 무당파의 제자요. 도사란 말이오.”

“아, 그건 걱정할 것 없소. 도사면 어떻고 중이면 또 어떻소. 보아하니 아직 예비 도사인 것 같은데, 남녀상열지사에 그런 건 다 무의미하오. 게다가 우리 주루는 이 용고객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비밀을 지키니 안심해도 좋소.”

“입 다물고 있을 테니 안심하라니? 이건 그런 문제가…….”

“좋소. 내 술 한 병을 덤으로 넣어드리리라. 이건 정말이지 출혈봉사요, 출혈봉사.”

오대붕은 두 사람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은 듯했다.

“이보시오. 사람 말 좀 들으시오.”

오대붕과 정홍돈, 여홍아 세 사람은 서로가 자기의 가게가 최고라고 주장하며 티격태격 싸웠다. 그러면서도 그 틈틈이 남궁산산과 현운 두 사람에게 자신이 운영 하는 식당으로 오라고 권유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저들이 왜 저러는 거죠? 왠지 쓸데없는 일에 경쟁이 치열한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죠. 곧 일분기 결산일이 다가오거든요.”

“그거랑 이거랑 무슨 상관이죠?”

“아. 저희 부대는 좀 특수하고 별나다면 별난 서열 체계를 채택하고 있어서요. 매번 일 년에 네 번씩 각 점포의 총매상액을 결산합니다. 그리고 그중에 차례대로 순 위를 매기지요.”

“그래서요?”

“대장과 부대장을 제외하고, 서열 삼위부터 나머지 소속대원들은 그 매상 순위를 가지고 서열이 정해집니다.”

“뭐라고요! 그런 터무니없는 기준으로 서열을 정해도 되는 건가요? 무공의 실력이 아니라?”

남궁산산이 어이없어하며 반문했다.

“이곳에서는 그것이 규칙입니다. 그리고 흑도에서는 원래 강한 자가 대부분 더 많은 돈을 버는 법입니다. 보호비나 기타 등등으로 쓸데없이 나가는 지출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저들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드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지요. 매출을 올리기 위한 모든 수단이 인정됩니다. 바가지, 강매, 협박, 무력시위, 폭 력, 협잡 등등등, 살인 빼고는 모두 허용되죠.”

삼대상이라 불리는 이들의 두 눈에서 자신들의 골수까지 빼먹겠다는 거의 광기에 가까운 의지가 번들번들거리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다시 일분기 결산의 때가 오기 때문에 모두들 초조한 것이다. 지금 그들의 매출액은 거의 박빙, 봉을 잡는 쪽이 보다 더 큰 승리의 기회를 쥐게 되는 것 이다. 그러니 저절로 굴러 들어온 봉을 양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만일 거절하면 어떻게 되죠?”

“그건 아무 고려 대상에 들어 있지 않을 겁니다. 어디든 그곳에서 주머니를 푸셔야 할 겁니다.”

“통행료로 은자 백 냥이나 내는 바람에 이제 돈이 거의 없거든요?”

“그것 역시 고려 대상은 안 됩니다. 돈이 없다면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무기나 장신구를 파시던가 안 되면 몸이라도 파시던가 해야겠죠.” “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몸을 팔다니!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아요?”

“이곳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마천각 바깥에서는 매일매일 빈번하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죠. 저들 정도면 아마 전문적인 노예 판매상들과도 끈이 닿아 있을 겁니다.”

“그러니 그런 나쁜 것까지 미리 배워가라, 이건가요?”

“이건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닙니다. 저들이 그렇게 하기를 선택한 거죠.”

“암! 그리고 미인은 좋은 상품이 되지.”

삼대상이 합창하듯 말했다.

빠직!

드디어 남궁산산의 인내력이 임계점을 돌파했다.

“닥쳐요! 이 자식들아! 그 사람이 있는 곳에서 그 사람을 놔두고 맘대로 운명을 결정하지 마!”

남궁산산이 고함쳤다.

“감히 본녀더러 지금 몸을 팔라고?! 그렇게 씨부린 주둥이는 대체 어느 걸레 같은 주둥이실까나?”

걸리기만 하면 그런 지저분한 걸레 따윈 확 잡아 째주겠다는 험악한 시선으로 남궁산산은 세 사람을 쏘아보았다. 시선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아마 골백번 도 더 죽였을 것이다.

“아, 그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의 하나로…….”

전혼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고 말을 얼버무렸다.

“댁도 닥치세요! 문답무용, 다 죽여 버리겠어요!”

챙강!

분노가 폭발한 남궁산산이 거침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살기에 가득한 그녀의 눈이 귀신처럼 세 사람을 쏘아보았다. 순간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지이이이이이이이이잉!

그녀의 분노에 호응하는 것인지 검날이 부르르르 진동했다.

“찔러라! 뇌광살!”

뇌광이 빛의 화살처럼 눈부신 속도로 폭사되었다. 삼대상도 보통 실력자는 아니었는지 그녀의 쾌검을 이리저리 피해냈다. 그러나 옷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어허, 손님, 왜 이러십니까?”

몰아쳐 오는 남궁산산의 공격을 피해내기 위해 진땀을 빼던 오대붕이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손님은 무슨 얼어죽일 손님! 당신들, 오늘 다 본녀 손에 죽을 줄 알아요! 이런 지저분한 강매 두 번 다시 못하게 만들어주죠!”

현운은 사나운 맹수처럼 달려드는 남궁산산을 그저 멀뚱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 역시 무척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꺄악!”

파바바바밧!

여홍아는 비명을 지르며 다섯 걸음 뒤로 물러났다. 들고 있던 직각과 일자의 철(鐵)이 검격을 받은 충격으로 세차게 떨리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소매는 검풍 때문에 볼썽사납게 찢겨 있었다. 오대붕과 정홍돈 역시 자신이 들고 있던 기다란 저울과 가죽 주머니가 달린 철봉으로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검압에 밀 려 각기 다섯 걸음씩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흥, 놓칠 줄 알고!”

기세를 늦추지 않고 남궁산산이 전뢰보를 사용해 세 사람을 향해 파고들었다.

파바바바밧!

다시 ‘뇌전참혼’의 일식이 남궁산산의 검끝에서 빛살처럼 퍼져 나갔다. 그 뇌전은 남궁상의 것보다는 얇았지만 빠르기는 훨씬 빨랐다. 그리고 특히 관통력은 더욱 더 우수했다. 계속해서 뒤로 물러나는 삼대상의 옷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렸다. 그러나 치명상만은 피해내고 있다는 점에서 현운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열 일, 이위도 아닌 자들에게 저런 실력이 있다니……. 하지만 남궁산산 혼자서 세 명을 동시에 상대하다 보니 검기가 세 갈래로 분산되어 검의 위력이 약해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그 사실까지 깨닫고 현운은 깜짝 놀랐다.

“아차! 피하시오, 산산! 유인책이오.”

남궁산산도 현운의 말을 분명히 들었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현운과 떨어져 너무 세 사람에게 깊숙이 끌려들어 간 이후였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남궁산산은 압박해 들어가던 공격을 멈추고 뒤로 물러나려 했다.

촤라라라락!

후퇴를 위해 검세를 늦춘 순간 검을 든 그녀의 손에 뱀처럼 감겨드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줄자였다. 좀 전에 의복점을 한다던 여홍아의 허리에 감겨 있던 물건 이었다.

“이런 것쯤!”

자신의 손을 봉쇄하려는 줄자를 검으로 쳐내며 몸을 뒤로 뺀다.

휘이이이이익!

그런 그녀를 향해 오른쪽에서 무언가 묵직한 것이 마치 철퇴처럼 날아왔다. 급히 고개를 숙여 그것을 피하자, 철퇴는 ‘쾅!’ 소리를 내며 옆에 있던 가게의 벽을 단 숨에 박살내버렸다. 알고 보니 그것은 철퇴가 아니라 정홍돈의 철봉에 매달려 있던 가죽 주머니였다. 사실 이 가죽 주머니는 그냥 평범한 가죽 주머니가 아니라, 바 로 금화와 은화가 가득 든 돈주머니였다. 그는 자신의 몸 이외에 다른 곳에 돈을 보관하는 게 두려워 항상 돈을 지고 다녔는데, 여차할 경우에는 그것을 무기로 사용 하기도 했다. 돈을 보관하는 가죽 주머니와 그것을 잇는 가죽 끈은 특별 주문 제작한 것이라 웬만한 도검에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게다가 한 개가 아니라 두 개 였기 때문에 산산은 또 한 번 그 철퇴(鐵樞), 아니, 전퇴(錢樞)의 공격을 피해내야 했다.

퍼억!

다시 한 번 또 다른 가게의 벽이 박살 났다. 튕겨 나온 파편이 눈 쪽으로 날아드는 바람에 남궁산산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살짝 감았다.

쉐에에에에에엑!

그 틈에 철추가 파공음을 내며 날아들었다. 바로 오대붕의 쇠저울에 달린 추로, 쇠저울과는 긴 쇠사슬로 이어져 있어 여차할 경우에는 적의 두개골을 깨부술 수 있 는 훌륭한 무기로 변했다. 그 철추가 무서운 속도로 남궁산산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들었다. 서로 티격태격하며 매출 경쟁을 벌이던 모습과 달리 의외로 호흡의 척 척 맞는 세 명의 연환공격에 완전히 허점이 드러나고 만 남궁산산은 그 공격을 피하는 게 불가능했다.

챙!

그때 그녀를 감싸며 날아온 철추를 튕겨낸 사람이 있었다. 바로 현운이었다. 그는 남궁산산이 위험해진 것을 보고 곧바로 싸움의 한가운데로 몸을 던졌던 것이다. “괜찮소, 산산?”

얼떨결에 현운의 품에 안기는 꼴이 된 남궁산산이 얼굴을 붉히며 그를 밀어냈다.

“어, 언제까지 안고 있을 거예요?”

“아, 미안하오.”

화들짝 놀라 서둘러 손을 떼는 현운을 향해 산산이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괘, 괜찮아요. 저런 녀석들은 나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어요. 현운, 당신이 끼어들지 않았어도 말이에요.”

“물론 잘 알고 있소, 산산. 그대가 저 세 사람을 한꺼번에 쓰러뜨릴 만큼 충분히 강하다는 건. 하지만 한 사람이 싸우는 것보다 두 사람이 싸우는 게 훨씬 시간이 절 약되지 않겠소? 더구나 우리에겐 대사형이 맡긴 일이 남아 있잖소?”

현운의 달래는 말은 효과가 있었다. 그의 말은 충분히 남궁산산의 자존심을 살리면서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 들어간 ‘대사형이 맡긴 일’이라는 말은 무한한 효과를 발휘했다.

“흠흠. 하긴, 대사형이 맡긴 일이니 신속하게 처리해야겠지요.”

“물론이오.”

“그러니까 나 혼자 처리할 수 없어서 당신의 손을 빌리는 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대사형을 위해 시간을 단축하는 거예요.”

“물론이오.”

산산의 변심을 걱정하기라도 했는지 현운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자, 그럼 저 강매쟁이들을 빨랑빨랑 정리하고 이 악덕상인의 두목을 만나러 가기로 하죠.”

“그거 좋은 생각이오.”

둘은 곧바로 의논에 들어갔다.

“어디로 할래요? 제일 약해 보이는 여자 쪽?”

“아무리 그래도 여자는…….”

“이봐요. 적에 남녀노소가 어디 있어요? 남녀 평등 몰라요, 남녀 평등?”

약간 심기가 불편한 목소리로 남궁산산이 전음을 보냈다.

“아무리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있지 않겠소. 역시 저 빼빼 마른 남자 쪽이 좋겠소.”

“흥, 좋아요. 그쪽으로 하죠.”

“신호는 그쪽에서.”

“하나…… 두울…..”

“호오, 손님 두 분께서 손을 잡는다 해도 우리 셋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오. 그러니 얌전히 우리 가게의 매출을 올리는 데 협조해 주기 바라오.”

“호호호, 당연한 말씀.”

“돈은 걱정할 필요 없소. 돈이 없으면 검, 검이 없으면 몸을 팔면 되니까.”

정홍돈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순간 남궁산산과 현운이 동시에 ‘셋!’ 하고 외쳤다.

그리고는 다짜고짜 가장 빠른 초식으로 정홍돈을 공격해 갔다. 다른 두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기세였다. 번쩍 하는 검광이 양방향에서 정홍돈을 향해 쏟아 져 내렸다. 자신들에게 공격이 들어올 줄 알고 있던 오대붕과 여홍아는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공격이 없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가 정홍돈을 보고는 깜짝 놀 랐다. 무수한 검광에 베여 조각난 그의 옷은 속곳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머리는 거의 산발이었다.

툭툭!

그가 보물단지처럼 여기던 가죽 주머니가 그가 들고 있던 철봉에서 툭툭 끊어지더니 바닥에 떨어지며 좌르륵 금화와 은화를 바닥에 쏟았다. 그리고는 뒤를 이어 정홍돈도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

“저 칼날조차 들어가지 않는 특수 가죽을 찢다니……. 방금 건 설마…… 검강!”

여홍아의 입이 쩍 하고 벌어졌다.

“믿을 수가 없군. ‘검강합벽’이라니…… 이런 젊은 나이에 검강이라니…….”

얼떨떨해하는 두 사람을 보며 남궁산산이 기세 좋게 코웃음을 쳤다.

“흥, 우리 주작단에서는 이런 건 기본이라 할 수 있지.”

“삼대 이로 싸워야 되는데, 이쪽이 둘일 때는 말이지, 무조건 한 놈부터 조져.”

“왜요?”

“그럼 이 대 이가 돼서 숫자가 딱 맞잖아. 간단한 산수지.”

그것이 대사형이 그들에게 가르쳐 준 다 대 다의 싸움에서의 기본이었다. 상대편이 셋일 때는 둘이서 이쪽의 시선과 손발을 묶고 그 틈을 타 나머지 하나가 둘 중 하나를 공격한다. 그럼 자연히 남은 한 사람이 신경이 쓰여 동작이 둔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미리미리 저들이 준비가 되기 전에 한 명을 기습적으로 제거해 버 리면 쪽수가 딱 맞게 되어 그 후로는 마음 편하게 싸울 수 있다는 게 대사형이 해준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삼대상은 남궁산산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일 덕분에 약간 방심하고 있었다. 그때 현운이 가세하여 방심하고 있던 정홍돈을 기습해 행동 불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

다.

“이제 맘 편히 싸울 수 있겠네요.”

“한 사람이 하나씩 맡아서 처리합시다. 빨리 처리하고 다음에 또 할 일이 있으니까.”

남궁산산과 현운이 그들을 쓰러뜨리는 데는 그렇게 많은 초식이 필요하지 않았다. 일대일이라면 서열 삼위 이하에게 질 만큼 어설프게 단련되지 않았다. 서열 일 위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비류연도 이 두 사람을 보낸 것이다.

서걱! 서걱!

풀썩! 풀썩!

그렇게 삼대상이라 불리던 상혼대의 서열 삼위에서 오위까지의 세 사람을 모두 제압했다.

“잘 봤어요? 이게 바로 주작단의 실력이에요, 진정한.”

검을 검집에 집어 넣으며 남궁산산이 으스댔다.

“이거참, 이들의 호객행위를 물리치다니, 정말 대단한 실력이군요. 다시 봤습니다.”

쓰러진 세 사람을 둘러보며 전혼은 이 상황이 약간 믿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남궁산산이 양손을 허리춤에 올리며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 그럼 이제 이곳의 대장님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전혼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세 사람을 쓰러뜨린 이상 더 이상 여러분의 앞길을 막을 장사치는 없을 겁니다. 따라오시지요. 대장의 집무실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