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3권 11화 – 진성곤 임성진과의 만남
진성곤 임성진과의 만남
“쯧쯧, 힘이 남아도나 정말 쓸데없는 데 힘빼고 있군.”
다시 한 번 등 뒤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비류연과 효룡, 장홍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그곳에 한 손에 거무튀튀한 곤(榥)을 든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한 명 서 있었다.
굵고 짧은 목이 인상적이었다.
“누구시죠?”
비류연 옆에 서 있던 효룡이 물었다.
“나? 난 천관 3학년인 진성곤(震星榥) 임성진이라고 하네. 만나서 반갑네.”
통나무를 연상케 하는 팔뚝과 다리, 두터운 목, 거대한 얼굴로 압도적인 박력을 내뿜으며 사내가 자신을 소개했다. 사내의 손에 들려있는 흑색의 곤을 살펴보니 놀 랍게도 강철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매우 굵고 묵직해 보였다.
“특이한 무기를 들고 계시는군요? 틀림없이 무게도 무겁겠지요?”
특별하면서도 무식하게 생긴 무기에 대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효룡이 물었다. 강호에도 곤을 무기로 쓰는 사람은 많았지만 이 사내처럼 굵고 묵직해 보이는 곤 을 병기로 쓰는 인물은 없었다. 일반적으로 단단한 종류의 나무로 만드는 게 보통이었다.
“별로, 겨우 50근밖에 안 나간다네.”
사내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이 정도 무게쯤이야 버드나무 가지 휘두르듯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50근이요?”
“정말 대수롭지 않군요.”
감탄사는 친구들의 입에서 터진 것이었지만, 그 다음 말은 비류연의 것이었다. 사내는 비류연이 정말로 별거 아니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의외의 반응, 매 우 흥미롭다는 표정이 임성진의 얼굴에 떠올랐다.
“자네 이름이 어떻게 되나?”
“비류연이라고 합니다.”
싱긋 웃으며 비류연이 대답했다.
“그래, 멋진 이름이로군. 그런데 저 녀석들은 왜 또 싸움질인가?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오늘따라 왠지 다른 날보다 유달리 위험하구먼.”
검혼회와 도백회의 감정적 충돌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지만, 오늘만큼 살기등등했던 적은 최근에 없었다.
“그건 저희들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사소한 발단을 얘기하라면 여기 있는 이 친구 효룡의 동호회 가입 문제가 시발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죠.”
“뭐? 가입!”
임성진은 자신이 매우 경악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얼른 말했다.
“그만두는 게 좋아. 저런데 들어갔다가는 패싸움으로 밤낮을 보내게 될걸. 그래서야 인생에 무슨 재미가 있겠나. 저런 재미없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곳엔 안 들어 가는 게 최상책이라네. 암, 그렇고 말고.”
임성진이 회의적인 태도로 연신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의 말투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가요?”
“물론, 저런 데 들어가는 걸 보고 스스로 제 무덤 판다고 하는 거야. 또 다른 말로 화약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든다고도 하지.”
타이르는 듯한 어조로 임성진이 말렸다. 그리고 저 두 곳이야말로 절대로 사양해야 할 동호회라는 사실을 22가지 이유를 일일이 들어 가며 열변을 토했다.
“이제 알겠나?”
방금 전 임성진의 열변을 들었다면 누구나 납득했을 것이다. 비류연과 효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임성진의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걸렸다.
“그럼 어디 추천할 만한 데라도 있나요, 선배님?”
비류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임성진은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물론이지. 우리 동호회에 가입하게. 우리야말로 천관 최고의 동호회지. 그야말로 사나이의 가슴에 불을 당기는 곳이지.”
“그런 엄청난 곳이 어딘데요? 그런 엄청난 곳이 정말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 보고 싶군요. 유료가 아닌 이상은요.”
흥미진진함으로 두 눈을 별같이 빛내며 비류연이 물었다. 원래 비류연은 무료, 또는 공짜, 혹은 떨이라 불리는 것들에게만 무한한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그 외의 것들은 일단 그의 관심 밖이라는 게 문제였지만.
“물론 돈 드는 일은 아니니 안심하게 따라와 보면 알 걸세. 그 전에…….’
임성진의 시선이 아직도 쓸데없이 기력을 낭비하고 있는 소천군과 구창에게로 향했다. 그들은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힌 얼굴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여전히 막대한 기력을 소모하고 있는 중이었다. 더 이상 지속되다가는 양쪽 다 무사할 것 같지 않았다.
“저 꼴 보기 싫은 걸 끝내야겠지.”
말을 마친 임성진이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다. 성큼성큼 무형지기가 난무하는 장소 바로 코 앞까지 전진한 임성진은 주저하지 않고 그 공간 속으로 자신의 곤을 찔러 넣었다. 서서히 곤이 앞으로 내뻗어졌다. 이내 임성진의 곤이 일렁이는 무형지기 속을 서서히 잠식해 들어갔다.
그는 지금 무림인들이 가장 꺼리는 일 중 하나인 무형지기가 난무하는 공간에 발을 내딛는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내상을 입거나 심한 경우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일이었다. 대단한 배짱과 용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최절정 고수가 아니라서 치명적일 정도로 강력한 무형지기를 내뿜고 있는 건 아니지만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충분히 몸에 상해를 입힐 수 있을 정도의 위력 은 가지고 있었다.
그런 사실들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철곤은 매우 느릿느릿하게 두 사람 사이를 꿰뚫고 지나갔다.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순간, 공간이 부르르 진동하기 시작 했다. 팽팽하게 줄다리기하고 있던 양방 진형에 제3자가 개입함으로써 전황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임성진의 곤이 부르르 세차게 떨렸다. 둘 사이를 꿰뚫고 지나간 다는 것은 둘의 무형지기를 고스란히 뒤집어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임성진은 세월의 흐름처럼 서서히 진입하던 그의 곤을 섬광처럼 앞으로 내뻗었다.
“쾅!”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터지며 자욱한 먼지가 일어나 주위를 둘러쌌다.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은 강력한 굉음이 주위를 휩쓸었고, 충격파가 비류연 일행의 몸을 때 렸다.
“무사할까?”
자욱한 먼지로 휩싸인 한가운데의 결과가 궁금해진 효룡이 비류연을 쳐다보며 물었다.
“자신이 있으니 끼여들었겠지. 설마 아무런 대책 없이 만용을 부렸겠어? 그런 객기를 부릴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던데…….”
서서히 먼지가 걷혀 가는 충격의 진원지를 바라보며 비류연이 말했다.
“저기서 죽으면 정말 개죽음이겠군.”
“그 말엔 나도 동의해.”
드디어 짙은 새벽 안개처럼 일어났던 먼지가 모두 걷히고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그들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 모두들 개죽음은 면할 수 있었던 모양이었지만 완전하 게 낭패를 면한 것은 아니었다. 소천군과 구창의 입가에 가느다란 핏물이 흘러내리는 걸로 봐서 둘 다 약간의 내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리 크게 걱정할 것 까지는 없는 것 같았다.
그들의 옷차림은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멀쩡한 사람은 임성진뿐이었다. 과연 그는 한 수 믿는 재간이 있는 사람이었다. 한 손으로 철곤을 곧게 뻗은 채 당당히 서 있는 그를 보고 비류연은 짧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정말 무식하군.”
“과격하긴 하지만 효과 만점이지.”
히죽거리며 임성진이 말했다. 비류연의 말을 들은 모양이었다. 당연히 고맙다는 인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소천군과 구창은 입을 조개처럼 다물고 등을 돌렸다. 그 리고는 각자 제 갈 길을 갔다.
“쯧쯧, 감사 인사조차 하지 않고 그냥 가 버리는군. 그렇게까지 무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장홍은 그들의 무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어찌 되었든 그 둘의 대치 상태를 종식시켜 준 임성진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생명의 은인일 지도 모를 인물에게 감사 한 마디 없이 홱 사라지다니, 무례도 그런 무례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이 달아날 수도 있었던 일 아니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으로 장홍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임성진은 별로 그들의 무례에 대해 상심한 것 같지는 않았다. 볼일을 마친 임성진은 비류연과 그 일행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그럼 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