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30권 7화 – 달려라, 중원급행(中原急行)구구구(九九九)!
중양표국주 장우양은 요즘 들어 기분이 무척 좋았다.
그가 이끌고 있는 중양표국이 사천제일표국으로 불리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를 대표객이라 부르며 따르고 존경하는 무리들이 늘어나서만도 아니었다.
“예정보다 이틀이나 빠른 속도입니다, 아버… 아니, 국주님! 시간 단축 해냈습니다!”
아들 장우강의 얼굴은 흥분으로 인해 들떠 있었다. 한때 말썽꾸러기 골칫덩이였지만, 우강은 비류연이라는 재난을 만난 이후 어느덧 한 사람의
어엿한 표두로 성장했다.
“그래그래. 애썼다. 우강아!”
아들의 입을 통해 말로 듣고 새삼 확인하니 장우양은 더욱 기분이 좋았다.
‘격세지감이 따로 없구나.’
사천제일이 된 다음에는 자족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있을까 솔직히 부담스러운 면도 있었다. 하지만 그의 동업자인 비류연은 전혀 이대로 멈출 생각이 없었다.
‘중원제일이라..!
얼마 전 중양표국의 최대 동업자라 할 수 있는 비류연과 나누었던 대화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이제 슬슬 해야죠? 사업 확장. 중원표국을 언제까지 맨 위에다 둘 순 없잖아요?”
그 말에 그만 혹하고 말았다.
“뭔가 좋은 방법이 있나?”
“빠름빠름빠름! 새로운 표행 경쟁력이 필요하겠어요.”
그렇게 해서 거대 중원표국의 거대한 조직력에 대응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쾌속표행’이었다. 시간을 단축해 비용을 뽑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큰 난관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녹림도들의 구역을 통과할 때 발생하는 통과료와 지연 시간이었다.
“그건 내가 해결해 주죠. 그쪽엔 좀 받을 게 있거든요.”
비류연이 그렇게 장담하더니,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했다. 거의 평상시 절반 비용으로 녹림칠십이채의 구역들을 통과한 것이다. 시간도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체 무슨 마술을 부렸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비류연에겐 중양표국 전체 수입의 일부를 떼어줘야 했지만, 이런 역할을 해준다면 아깝지 않았다. 덕분에 예상 소요 시간보다 이틀이나 더 단축된 짧은 시간에 목적지, 동정호에 곧 도착할 예정이었다.
설마 여긴 이미 마천각의 영역이니 누구든 허튼 짓은 못하겠지?
막 그렇게 생각하며 안심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아버지, 좀 이상한데요?”
“응? 왜 그러느냐?”
“저 먼지구름은 대체 뭐죠?”
그제야 장우양의 시선이 관도 저편으로 옮겨갔다. 관도 맞은편에서 먼지의 뭉게구름을 일으키며 무언가가 달려오고 있었다. “저건…………!”
최고조였던 기분이 급속도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관도 저편에서 지평선을 넘어 뭉게구름을 뚫고 나타난 것은 한 대의 검은 마차였다.
소문으로 들은 적은 있지만,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장우양의 입에서 놀람이 채 가시지 않은 경악이 흘러나왔다.
“중원급행(中原急行) 구구구(九九九)!”
달려라, 중원급행(中原急行)구구구(九九九)!
-생각지도 못한 조력자
촤—악! 짜—악! 팡! 팡!
사정없이 휘둘러진 가죽 채찍이 세차게 허공을 때린다.
검은 마갑을 걸친 여섯 마리 흑마의 고삐를 쥔 사내는 쉴 새 없이 채찍을 놀리며 다급하게 길을 재촉하고 있었다.
두-두-두-두-두-두-두-두!
스물네 개의 검은 말발굽이 대지를 박찰 때마다,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덜컹! 덜컹!
미친 듯이 회전하는 바퀴가 땅의 굴곡과 만나 상하로 요동친다. 바퀴와 바퀴를 연결한 차축(車軸)이 삐거덕삐거덕 비명을 지른다. 당장에라도 바퀴들을 토해내고 궤도를 벗어나 부서지고 싶어 안달이라도 난 듯했다. 다른 마차였다면 예전에 그리되었으리라. 하지만 이 철갑마차는 달랐다. 이 중원급행 구구구호는 어떤 과격한 질주에도 견딜 수 있도록 특별히 설계 제작된 마차였다. 전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를 뚫고 나갈 일을 대비해 만들어진 특별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견고하게 버티나 승부라도 내볼 생각인지, 마부의 채찍은 잠잠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더 급해질 따름이었다.
평소라면 윤기 나는 검은 갈기를 휘날리며 당당하기 짝이 없었을 여섯 마리 검은 준마가, 지금은 숨 가쁘게 헐떡이며 당장에라도 혀를 쑥 내밀고 쓰러질 것처럼 달리고 또 달렸다. 멈추면 죽기라도 할 태세였다.
이 구구구(九九九) 호의 후부에는 ‘화급(急) 지대(至大)’라 적힌 빨강 깃발과 ‘정천(天) 무한(無限)’이라고 적힌 하얀 깃발이 맞바람을 받아 찢어질 듯 세차게 펄럭였다.
금세라도 분해되는 게 아닌가 심려될 정도로 거친 질주였으나, 야생마처럼 날뛰는 여섯 필의 말을 마부는 채찍 하나와 고삐 하나로 능수능란하게 몰아갔다.
그의 전신에서 풍기는 기운은 일개 마부가 뿜어낼 수 있는 그런 기운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부의 이름은 유은성, 무림에서 점창제일검이라 불리는 사나이였던 것이다. 점창파의 차기 장문인으로까지 거론되는 인물이었지만, 그는 현재 기꺼이 마부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다. 그가 고삐를 잡기에 합당한 여인이 이 마차에 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 유은성이 오래전부터 사모해 온 여인이었다. 그것도 벌써 이십 년이 넘도록.
그걸 딱히 잘못이라 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그 순정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지 않은 것을 칭찬해야 마땅하다.
다만 문제가 있긴 있었다. 평생 무공밖에 수련한 적이 없어 어떻게 그 마음을 표현해야 될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표현하지 않았다고 해도 마음이란 건 그 염이 강하면 강할수록 넘치게 마련이다. 넘치면 주변에서도 다 알아보게 된다. 그가 그녀를 사모한다는 것은 어지간히 티가 났던지, 양파 있는 사람 대부분이 알고 있었다. 에
오직 한 사람. 당사자인 그녀만 빼고는 모두 알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그녀는 무공광이었던 것이다. 여자는 나이가 차면 당연히 혼인을 해야 한다는 관습 따윈 그녀가 도달하고 싶어하는 길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었다. 평생 결혼하지 않고 여도사가 되어도 상관없어하는 당찬 여인이었다. 그녀는 남자의 장신구가 될 마음 따윈 털끝만큼도 없었다. 그리고 그만한 기량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사모한 지 이십 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는데도 그의 마음을 아직도 알아챌 수 없다는 것은, 그 여인이 둔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독특한 감각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것일까?’
확답을 들은 적은 없지만 그런 건 아닌 듯했다. 직접 물어보는 방법도 있지만 확답을 듣는 것은 두려웠다.
한줄기 가능성마저 모두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차이고 차이고 또 차여도 계속해서 불굴의 의지로 그녀를 공략할 자신이 없었다.
아직 수행이 부족해서일까?
그 전에 자신의 마음이 부서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심한 얘기지만 그만큼 그는 연애에 대한 내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도 일말의 믿음은
있었다. 그녀 역시도 자신만큼이나 연애에 대해서, 사랑에 대해서 모른다는 확신이.
다만 그녀는 한 명의 사내만을 그 마음에 품었는데, 애석하게도 그 대상은 그가 아니라 다른 남자였다.
아직 어렸던 그와 그녀를 구해준 한 남자, 그 남자의 뒷모습은 너무나 넓고 거대했다. 다행히도 그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동경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그리고 얻을 수 없는 마음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 마음을 품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 역시 너무나 오랫동안 검만을 수련해 왔기에 상대의 마음을 어떻게 알아채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뿐이라 여겼다.
참으로 서투른 두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내는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주면 그다음은 어떻게 할까에 대해서도 별로 생각해 둔 게 없었다.
사실 평생 산속에서 검의 경지를 높이기 위해 수련해 온 그가 남녀 간의 연애에 대해서 무얼 그리 잘 알겠는가.
다만 사질들이나 속가제자들이 사범들 몰래 소곤거리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었다.
일단은 둘이서 고급 마차를 타고 느긋하게 주위 경치를 보며 외지로 원행(遠行)을 가는 게 관례라고.
속세에서는 그런 세 가지 요소가 합치된 마차원행을 ‘두루두루 둘러보며 나아간다’ 하여, ‘두라이부(頭邏里赴)’라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마차! 외지! 원행!
‘그렇다면 이, 이게 설마 그 두, 두라이부?’
점창제일검 유은성의 심장은 두근두근 세차게 뛰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애써 자신의 마음을 진정시키며 본 목적에 충실하려고 애썼다. 지금은 무엇보다도 빨리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그것만을 생각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닌가. 그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그는 반드시 질주에만 집중해야 했다.
그랬기에, 관도 저 멀리서 한 무리의 표행이 다가오는 게 보였음에도 그는 무시하기로 했다.
표행은 꽤 대규모인 듯, 관도가 꽉 차 있었다. 펄럭이는 두 개의 깃발을 보니 연화검기와 백무후기였다. 그도 한 번 신세진 적이 있는 중양표국이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무시하고 달렸다.
두두두두두두!!
멈추지 않는 거친 말발굽이 대지를 박찼다.
표행 선두에 선 두 인물을 보니 중양표국의 국주 대표협 장우양과 그의 아들이었다. 예전에 사천에서 올라올 때 유은성은 그들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무시했다.
처음에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하던 장국주 부자의 얼굴이 대변했다. 그래도 그들 부자 역시 강호 경험이 일천한 생초짜는 아니었다. 이 마차가 어떤 마차인지 눈치챈 듯, 표물이 실린 수레를 급히 좌우 길가로 옮기며 길을 터주었다. 수레가 전복되는 것도 감수한 움직임이었다.
덕택에 검은 철갑마차는 표행과 충돌하는 일 없이 관도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갈 수 있었다.
‘감사’
유은성은 마음속으로 국주 장우양에게 사례를 표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는 체는 하지 않았다.
그들의 행적은 모르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아는 사람이 늘어봤자 불리할 뿐.
‘그것도 이미 늦은 것 같지만 말이지.’
너무 급하게 재촉한 탓일까? 뿌연 흙먼지를 뭉게구름처럼 일으키며 관도를 질주하던 구구구 호의 강철 바퀴가, 길가에 서 있던 비석 하나를 들이받았다.
쾅!
주변을 쩌렁쩌렁 울리는 충돌음이 터져 나왔다. 보통 이런 경우 바퀴 축이나 바퀴가 부서져 전복되기 십상이다. 상식적으로 그러했다.
하지만 그런 상식 따위는 엿이라도 먹으라는 듯, 보기 좋게 부러진 것은 들이받힌 비석 쪽이었다.
뚜둑! 허리가 동강나는 듯한 파열음과 함께 한참을 날아갔다가 떨어진 비석은, 데굴데굴 다시 한참을 굴러간 다음에야 멈춰 섰다.
밑둥이 부러져 보기 좋게 날아간 그 비석, 아니, 이정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절명고개[絶命嶺] 입구(入口).
과속금지(過速禁止).
주변의 공기가 뒤바뀐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유 대협, 적(敵)이 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검은 철문이 달린 구구구호의 마차 안쪽에서 한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궤 축이 비틀려 부러져 나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격렬하게 달려가는 중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침착하고 차분한 목소리였다.
귓가에 속삭이는 듯 선명하고 낭랑한 목소리를 듣자, 한껏 긴장하고 있던 유은성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핫핫 맡겨주십시오, 신녀. 이 정도는 제 선에서 처리할 수 있습니다. 쾌적한 여행 즐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한 손으로 고삐를 잡은 채, 허리춤에 찬 쇠꼬챙이처럼 생긴 검을 톡톡 두드렸다. 아미신녀 진소령이 자신을 걱정해 준다는 사실 자체가 기쁘기 그지없는 모양이었다. 하긴, 어차피 그는 진소령과 관련된 일이라면 아주 사소한 걸로도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었다. 이 거칠고 험난한 여정도 그녀와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 천상의 두라이부로 여길 수 있는 이가 바로 그였다.
그런데 이 적들이라는 놈들은 그가 진소령과 함께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유은성은 그 사실에 대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참으로 괘씸한 놈들이었다.
“추살(追殺)!”
뚝! 검은 복면과 검은 야행의를 몸에 두른 복면인이 나무 위에서 떨어져 내리며 유은성의 심장을 향해 칼날을 찔러 들어갔다.
유은성의 눈빛이 분노와 투지로 인해 번뜩였다.
“감히!”
오붓한 시간을 방해받은 것에 열이 난 유은성의 입에서 분노의 일갈이 터져 나왔다.
“나와 신녀의 마차행을 방해하는 놈은 그 누구든 용서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죽어라!”
식상한 저주를 시도하더니, 관도 좌우로 늘어서 있던 나무 위에서 복면을 한 흑의인 셋이 동시에 기문병기를 든 채 뛰어내렸다.
그러나 이미 진소령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대비하던 유은성에게 이들의 공격은 더 이상 기습이 아니었다. 게다가 암습하는 놈들 주제에 보란 듯이 소리를 꽥꽥 지르다니. 그런 암습의 기초도 안 된 놈들에게 무력하게 심장을 내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이놈들이 감히!”
자신과 신녀와의 두라이부를 방해하다니! 그것은 하늘과 땅이 용납하지 못할 대죄였다. 암습 같은 건 이미 예상한 바지만, 역시 열 받았다. 팅!
유은성은 왼쪽 허리에 차고 있던 검집 검막이를 왼손 엄지로 힘껏 때렸다.
그러자 검이 마치 불뿜는 화전처럼 무서운 속도로 튕겨 나왔다. 응축된 용수철이 튀어 오르듯 검이 검집에서 발사(發射)된 것이다.
그 엄청난 빠르기는 그렇게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발검(劍)찌르기[刺尖]
아돌() 삼련첨(三連尖
무시무시한 속도로 튀어나온 검을 허공에서 붙잡은 다음, 유은성은 가볍게 손목을 털어 검끝을 돌리고 섬광의 화살처럼 삼검을 내리찔렀다. 피융피융피융!
정면에서 뛰어내리는 세 명의 몸통을 세 줄기 빛줄기가 허공을 격하며 그대로 꿰뚫었다.
찰칵!
언제 뽑혔는지도 모르게 검은 다시 검집에 꽂혔다.
눈으로 포착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나게 쾌속한 찌르기. 세 자객의 눈에는 그저 눈앞에서 뭔가가 세 번 번쩍였을 뿐이었다.
“이, 이건 설마 강기시(氣矢)………….”
이들 중 조장급은 되어 보이는 자의 입에서 불신의 말이 힘없이 툭 굴러떨어졌다. 그제야 그들은 이 마부의 정체를 깨달은 것이다.
“왜, 왜 점찰제일검이 한낱 마부 따위를……”
그러자 여전히 채찍을 휘두르며 말들을 몰던 마부 점창제일검 유은성이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몸을 마부로 부릴 수 있는 분은 오직 한 분, 신녀뿐이시다.”
여기서 말하는 신녀는 물론 그가 이십 년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고, 아직도 그 마음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아미신녀 진소령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감히! 신성한 ‘두라이부’를!
두라이부의 정취가 깨어진 것에 유은성은 새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눈치 없는 자객들이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완벽한 마차 여행이 되었을 것을! 그는 더더욱 이 자객 놈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오붓한 두라이부를 방해당한 유은성은 눈을 시퍼렇게 번뜩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꼬치구이! 꼬치구이! 꼬치구이! 으흐흐흐, 구멍이 송송 난 맛있는 꼬치구이!’
그 기괴한 눈빛 때문일까.
“무, 무슨 짓을 할 생각이냐?”
자객들이 오싹함을 느꼈는지 당황하며 소리쳤다.
“시끄럽다! 자객 주제에!”
마땅히 석고대죄부터 해야 하거늘! ‘죄송합니다’ 같은 말은 어따 팔아먹었단 말인가!
찌르기를 쓸 것까지도 없이, 유은성의 손목이 ‘까딱!’하고 움직였다.
파—앙! 촤라라라라락!
손목을 가볍게 한번 떨치자 채찍이 뱀처럼 크게 꿈틀거리며 날아가더니, 떨어져 내리는 복면인을 휘감았다.
“으헉!”
길 옆에 솟아 있는 나무에 망설임 없이 내팽개쳤다.
“쿠헥!”
비명 소리가 나든 말든, 복면인이 땅에 내동그라지든 말든, 유은성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갈 길을 재촉했다.
***
“저런 멍청텅구리!”
한바탕 소란이 이는 곳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의 한 거대한 나무 위.
웬만한 나무 둥치만큼이나 두꺼운 나뭇가지 위에서, 푹신한 흰 털에 잠긴 채 그 광경을 지켜보던 노인이 불쑥 욕설을 뱉어냈다. 멍청텅구리라 함은 그 어조를 보건대 멍청이와 멍텅구리의 결합어인 모양이었다.
“애가 저렇게 단순하니 아직 여자가 안 생겼지!”
노인이 혀를 차며 말했다.
“꾸우웅?”
노인의 밑에 이불처럼 깔려 있던 백호가 눈빛과 소리로 물었다.
“뭐긴 뭐야? 딱 봐도 미끼구만 얕잡고 덤벙대는 꼴을 보니 한심해서 그런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노인의 말대로 상황이 슬슬 바뀌기 시작했다.
여전히 앞을 향해 질주하는 유은성의 사방에서 그림자들이 소리없이 움직였던 것이다. 좀 전에 시끄럽기까지 하던 공격과는 정반대였다. 방금 전 큰 소리를 내며 뛰어내린 공격은 일종의 미끼인 듯했다.
마음의 덫!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들을 암습할 때는 그들이 자신들이 매복을 눈치채고 있다는 가정을 해둘 필요가 있었다.
왜냐? 그야 고수니깐!
고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많은 의문과 문제가 해결되는 곳도 강호고, 고수라는 이유 때문에 많은 문제에 휘말리는 곳도 바로 강호였다. 고수들만이 강호의 판을 움직일 수 있다.
상대가 고수라는 것을 가정한다는 것은 그에 걸맞게 준비했다는 뜻이다. 고수들은 감각이 발달되어 있게 마련, 그러니 목표를 노릴 때는 감각의 사각이 아닌 심리의 사각을 노린 암살법이 더욱 유효하게 먹힐 때가 많았다.
일부러 요란하게 네 명이서 앞에서 공격한 것은 시선을 앞으로 잡아끌기 위한, 이미 암습을 간파했다는 안도감을 주기 위한 심리적인 덫이었다. 진짜 공격은 등 뒤에서 무음무언으로 공격해 들어오는 네 명의 연환살법!
시끄러운 앞쪽의 세 명을 상대하느라 이미 정신이 쏠린 목표물을, 후위 네 명이 연환공격으로 목숨을 취하는 필살의 암살술. ‘삼사살법(三四殺法)’이었다.
“꾸으응……?”
그 광경을 지켜보던 백호가 질문하듯 소리를 내자, 노인은 콧방귀를 뀌며 답했다.
“도와줄 거냐고? 노부가 왜? 자신이 싸지른 실수는 자신이 수습해야지. 애 보긴 안 한다, 안 해. 게다가 공짜잖아.”
이런 때는 아주 속이 좁은 노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