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4권 2화 – 음공 수업과 천음선자

비뢰도 4권 2화 – 음공 수업과 천음선자

음공 수업과 천음선자

비류연은 매우 정결하고 단정하며 완벽할 정도로

청결하게 정돈된 자신의 방에서 오늘의 수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방은 청소 상태가 어찌나 완벽한지 먼지 한 톨 살지 못하는 비정한 장소가 되었고, 한낮의 태양 광선을 잡아 들여놓은 듯한 광택으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하지만 실내가 이렇게 지나칠 정도로 깨끗이 정돈되어 있는 것은 비류연의 공이 당연히 아니었다. 느긋하다 못해 게으르기까지 한 비류연의 성격으로 볼 때 그런 기적은 일어날 리 없었다. 오히려 비류연은 그 방 안의 정리 정돈의 완벽함을 해치는 적대적인 존재라고 정의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비류연에 의해 손상된 완벽함 은 곧바로 순식간에 복구되고 만다.

모용휘는 비류연이 방 안의 정리 정돈과 청결의 완벽함을 어떤 식으로 손상시키든 간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반 각 안에 그것을 모두 복구해 내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였다. 오후의 햇살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청소 상태가 너무나 완벽하여 묘하게 비류연의 심리를 압박하는 감도 없지 않았다. 그의 중증 결벽증에 기인 한 청결에 대한 집착은 너무나 대단하여, 이제는 아무리 막무가내 안하무인의 대명사 격인 비류연이라 할지라도 방을 함부로 어지를 만한 용기가 쉽게 생기지 않았 다. 그 정도로 모용휘의 청소와 청결에 대한 집념은 무서울 정도였다.

티끌 하나 없는 방 안이라니 너무나 비인간적이고 비정상적인 게 아닌가 하고 비류연은 투덜투덜 불평 불만을 늘어놓았지만, 모용휘의 귀를 통과하여 그의 머리까 지 전달되지는 못했다.

하긴 가끔은 이런 깔끔함도 나쁘지만은 않았다. 특히 새벽 햇살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면 온 방 안이 빛에 잠기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한다.

방 안에 가득 찬 빛의 물결 한가운데서, 자신에게 향한 수많은 원한에 사무친 살의와 비난의 화살들을 알기나 하는 건지 비류연은 느긋하게 오늘의 수업을 준비하 고 있었다. 오늘은 드디어 음공에 관한 수업이 있는 날이라 오랜만에 비류연은 들뜬 마음으로 뇌금(琴) 묵뢰(墨雷)를 닦고 있었다.

뇌금 묵뢰!

금년 초 한 문파를 그 밑바닥까지 뒤엎어 버리는 엽기적인 술수를 사용해 천관에 입관할 때 비류연의 등에 매달려 있던 거무튀튀한 바로 그 묵금. 평상시에는 들고 다니기 귀찮아 염도에게 떠넘겨 들게 했던 물건.

본인 얘기로는 사부로부터 확실하게 정당한 절차를 거쳐 인수 인계 받았다고 주장하지만 의심 가는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묵뢰라는 이름을 소유하고 있는 그 뇌 금은 그의 사문인 비뢰문의 비보(秘寶)로서 아무나 함부로 소유하거나 다룰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러나 비류연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적법한 절차를 거친 당당한 사문의 후계자이며 다음 대의 장문인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사문(師門) 것이 모두 자기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물론 그의 사부가 들었다면 주먹을 풍차처럼 휘두르며 극구 부인했을 이야기였다.

게다가 묵금이 더욱 중요하고 가치 있는 보물인 이유는 그 안에 봉뢰함(封函)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뇌신(神)의 힘을 봉인하고 있다고 알려진 봉뢰함은 비뢰 문 최고의 보물로 그 용도는 바로 진(眞) 비뢰도의 보관에 있었다.

비뢰도를 그 안에 보관하면 신기하게도 뇌인(刃: 비뢰도의 칼날)의 예리함이나 뇌령사의 예기가 상하는 법이 없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을 때는 항상 그곳에다가 넣어 두고 있었다. 즉, 비류연이 묵뢰를 가짐으로써 뇌금과 더불어 비뢰문 이보(二寶) 가운데 나머지 하나인 봉뢰함까지도 모두 비류연의 수중에 있게 되는 것이다. 비류연은 비뢰문의 전 기반을 기둥뿌리 하나 남김없이 거덜내고 나온 거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연이 있는 묵금을 모용휘의 투철한 청결 유지 정신에 전염이라도 됐는지 간만에 번쩍번쩍 광나게 닦으며 준비를 서두르고 있던 비류연은 문득 옆을 쳐다보 았다. 거기에는 자신과 똑같이, 하지만 엄청 꼼꼼하고 세심하고 철저하게 자신 소유의 금을 닦는 데 여념이 없는 모용휘가 보였다. 무척이나 의외였다. 평소 그가 검 이외에 손대는 것이라곤 청소 용구와 수백 권의 이름도 복잡하기 짝이 없는 책들, 그리고 지필묵밖에 없었던 터였다.

“어, 너도 금음 수업을 들어?”

비류연의 질문에 모용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쌀쌀맞기는…

“설마 너도 음공 수업을 들을 줄은 몰랐는걸?”

“의외인가?”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는 비류연의 시선이 못마땅한지 모용휘가 되물었다.

“물론. 넌 검밖에 모르는 줄 알았는데 나처럼 음률 같은 우아한 취미가 있었다니, 너처럼 무뚝뚝한 녀석에게는 의외로군.”

음공을 익히는 자신의 우아함(?)을 강조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비류연의 말이었다.

“취미가 아닐세.”

“그럼 뭔데?”

“난 단지 음공에서의 진기 발출과 이용, 운용, 응용 상태와 검공(劍功)에서의 검기 발출과 이용, 운용, 응용 사이의 기(氣)의 흐름과 그 변화의 차이에 대해 관심이 있을 뿐이네. 내 흥미는 단지 그것뿐이야.”

“으엑! 그게 대체 뭐야? 정말 믿을 수가 없군. 믿을 수가 없어. 그럼 단지 두 가지 서로 다른 무공에 대한 원리와 차이에 대한 비교 분석만을 위해 수고롭게 음공을 배운다는 거야?”

온갖 멋을 다 부리기 위해 개인적 취미와 흥미로 음공을 배우려는 비류연과는 달리 엄청나게 복잡한 학술적인 이유로 음공을 듣는 모용휘였다. 비류연이 질리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했다.

“당연하네.”

모용휘는 주저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정말 재미 진짜 없는 놈이라고 비류연은 속으로 욕했다. 저런 재미와 사교성의 부재 덩어리와 계속해서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자신이 스스로도 대견하게 여 겨졌다(비류연, 넌 역시 난놈이야.). 남들이 보기에는 자신도 만만치 않게 괴상한 놈이라는 사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비류연이었다.

“그럼 어느 노사님의 수업인데?”

질문을 했지만 비류연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오늘 시간표에 강의가 잡혀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

오늘 음공 수업을 듣는 사람은 비단 비류연과 모용휘뿐만이 아니었다. 두 사람이 방을 나서자 밖에는 효룡이 금을 등에 메고 서 있었다.

“어라? 효룡, 네가 여기 웬일이야?”

비류연의 말에 효룡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자네 벌써 잊어버렸나?”

“아, 그러고 보니 너와 같이 수강 신청을 했었지?”

한참을 고민하고 나서야 비류연이 손뼉을 탁 치며 말했다. 효룡이 먼저 와서 기다리지 않았다면 효룡은 내버려두고 갔을 것이다.

“이제야 기억이 났나?”

“응.”

비류연은 태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한 기색도 없이.

“자네가 어련하겠나. 이거야 원. 그런데 자네의 금을 보니 범상치 않은 물건 같군.”

비류연의 등 뒤에 메어져 있는 거무튀튀한 묵금은 맨 처음 보았을 때부터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력이 궁금하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아, 이거? 뭐 어찌 보면 상당히 어처구니없는 물건이기도 하지.”

묘한 미소를 동반한 비류연의 대답이었다.

“그 정도의 명기를 가지고 있다면 자네의 연주 솜씨도 기대해 봐도 되는 건가?”

미심쩍은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천방지축 비류연 하고 음율 하고는 조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물론이지. 기대하라구!”

언제나 자신만만한 비류연이었다.

천음선자 홍란의 음공 수업은 음율관 삼층에 자리한 특별 강의실이었다. 그곳은 타 강의에 불편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삼중 사중의 완벽한 방음시설이 갖추어 져 있었다. 남들과 따로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모용휘는 뒤쪽에 따로 앉았고, 비류연은 효룡과 함께 자리했다.

과연 명가와 명문의 후예가 떼거지로 집합한 천무학관답게 다른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금들도 명품 명기가 많았지만, 비류연의 묵뢰에 비하면 다들 조금씩 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그만큼 비류연이 소유한 뇌금 묵뢰는 남들의 이목을 끄는 신기(神氣)가 어려 있었다.

천음선자 홍란의 간단한 인사가 끝나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은 역시 음공에 관한 이론 강의부터 시작되었다. 어차피 이 시간은 음공 기초에 대해 가르치는 시 간이다.

“음공이란 금, 경, 비파, 옥소, 피리 등의 악기를 이용한 공력뿐 아니라 사자후같이 소리를 이용해 적을 격동시키고 타격을 입히는 모든 무공 공력을 총체적으로 지 칭하는 것입니다.”

그녀의 물 흐르는 듯한 강의가 시작되었다.

천음선자 홍란은 사십 대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십 대의 미모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래도 비류연으로서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쭈그렁바가지 할망구로부터 금음 을 배우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역시 금음은 미인에게서 배워야 제격이 아니겠는가(경로 사상이 지극히 부족한 생각을 서슴없이 하는 비류연이었다.).

천음선자 홍란마저도 비류연의 묵금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묵금을 보자마자 천음선자의 감성 안에서 악사(樂士)로서의 본능이 꿈틀거렸다. 안력을 돋구어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칠 수 있는 가늘고 투명한 은사로 이루어진 여덟 줄의 현이 과연 자신의 열 손가락 아래에서 어떠한 소리를 낼지 마음 설레어 견딜 수가 없었다. 저렇게 투명한 은사(銀)를 사용한 금은 금음의 대가인 그녀로서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검객이 신검, 보검을 보면 한번쯤 휘두르고 싶은 충동을 거세게 느끼듯이, 미식가가 맛있는 일미 명품(名品) 요리를 보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먹고 싶듯이 악 사도 마찬가지로 신기가 흐르는 명품 명기를 보면 한 번 연주해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명악사일수록 더욱더 강렬할 것이다. 천음선자 홍란도 예외일 수 없 었다.

“소협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비류연이라고 합니다.”

‘응? 이 아줌마가 작업도 안 들어갔는데 벌써 나한테 반했나?”

“실례가 안 된다면 내가 한 번 그대의 금을 연주해 봐도 될까요?”

무림인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악사로서 천음선자가 비류연에게 정중히 부탁했다. 그녀로서는 최대한의 예의를 비류연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도가 지 나치다 싶을 정도의 예의에 대한 보답으로, 일개의 학생 신분으로서 비류연이 거절할 것이라는 의심은 추호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 됩니다.”

그러한 그녀의 믿음은 이 층에서 떨어진 고급 유리 접시처럼 산산히 부셔져 버렸다. 일격에 그녀의 기대를 초전박살 내버린 비류연의 표정은 단호하기 그지없어 협상의 여지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비록 사십 대를 넘긴 지 벌써 오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막강한 내공과 주안술을 이용하여 이십 대 후반의 용모를 유지하고 있는 천음선자는 그녀의 매끄러운 얼굴 에 미용의 최대 적인 치명적인 주름살을 무의식중에 그려냈다.

“이유를 들을 수 있을까요?”

체면이 있기 때문에 천음선자는 화를 간신히 삭힌 다음 질문했다.

“전 손가락 없는 선생님에게 금음을 배우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

그녀는 선뜻 비류연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사실 비류연이 가진 뇌금 묵뢰는 신기(神器)임에는 틀림없지만 매우 고약한 특성을 지닌 물건이 라, 함부로 손을 댔다가는 손가락이 썩은 무처럼 동강나기 쉬웠다. 묵뢰의 여덟 줄 금현(琴絃)은 뇌령사(雷靈絲)라는 희대의 기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예리함은 명 검 보도(寶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비류연도 예전에 겉모습만 보고 멋모르고 손댔다가 손가락이 끊어질 뻔한 위험을 겪은 적이 있었다. 졸지에 절지인(切指人)이 되어 인생 망칠뻔했던 것이다. 물론 요즘은 아무렇게나 만져도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믿지 못하시는군요.”

비류연은 홍란의 의심과 의혹에 가득 찬 눈을 정면으로 직시하며 말했다.

왜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는 걸까? 염도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생각해 보아도 멋지기 그지없는 수작으로 염도를 제자로 탈바꿈시킨 후, 짐 꾼 대신 그에게 묵뢰를 맡겼을 때 그 또한 비류연의 신신당부를 믿지 않았다. 묵금을 맡길 때 분명히 절지 마물이니 조심하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끝내 말을 듣지 않 고 손가락을 댔다가 하마터면 네 손가락으로 도를 쥘 뻔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묵금은 희한한 요력을 품고 있어서 피의 향기를 뿜어내며 사람을 유혹하는지도 모른다. 음공 공부를 하여 연주해 보지도 않은 금이 벌써부터 여러 사람의 피를 부르니 이게 제대로 연주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만 해도 비류연은 즐거워졌다(이게 즐거워할 일인가?).

“휴, 그렇게 못 믿으시겠다면 할 수 없죠.”

묵금의 과거 전적을 잘 알고 있는 비류연은 더 이상 홍란을 설득하는데 포기했다. 그 뇌금을 본 자는 꼭 피를 봐야 정신을 차리는 모양이다. 천음선자 홍란도 예외 는 아니었다.

그래도 손가락 개수가 열 개보다 부족한 선생에게 금음을 배울 의향이 없는 비류연은 한 가지 충고를 잊지 않았다. 천음선자에게는 목숨같이 소중한 손가락을 구 해 준 귀중한 충고, 천금같은 조언이었다.

“살살 건드리세요. 아주 살짝!”

천음선자는 그의 말을 들었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투명한 묵뢰의 현을 향해 살짝 손가락을 퉁겼다.

“스윽!”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였다. 어지간한 수준 이상의 외문 기공을 전문적으로 익힌 사람이 아니라면 결과는 모두 매한가지인 것이다.

“앗!”

천음선자가 황급히 옥지(玉指)을 거두어들였다. 눈처럼 흰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선홍색 열매처럼 한 방울의 피가 맺혀 있었다.

“이게 어찌 된 조화죠?”

“그것 보세요.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전 분명 책임 안 진다구요.”

비류연이 투덜거렸다.

천음선자는 자신의 부주의와 경거망동을 묵묵히 자책하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검지 끝에 맺힌 한 방울의 붉은 열매를 본 순간부터 비류연을 대하는 그녀의 시 선은 백팔십도 완전히 달라졌다. 자신의 손에도 상처를 입힌 마금(魔琴)을 아무렇지도 않게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이 평범하게 보일 리 없는 것이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죠.”

무안으로 붉어진 얼굴을 급히 감추며 그녀는 수업을 시작했다. 비류연의 첫 음공 수업은 이렇게 한 방울의 붉은 혈실(血實)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울러 비류연의 첫 수업은 화려하게 시작되었다.

수업 시간 내내 비류연을 향한 천음선자 홍란의 묘하디묘한, 한 마디로 부담스러운 시선은 끊이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