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5권 1화 – 창천의 나래

비뢰도 5권 1화 – 창천의 나래

세상에는 종종 믿어지지 않는 일이

한 번쯤, 가끔씩 일어나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그때가 되면 사람들은 이 세상의 변덕스러움과

어이없음에 감탄하거나 욕을 하게 된다.

그런 맥락에서 천관도들에게 있어 비류연의 삼성대전 결승 진출은

그야말로 신의 농간이라 불러야 마땅한 일이었다.

창천의 나래

“호오, 특이한 깃털 색을 지닌 매로구나.

저처럼 푸른 창천의 색을 지닌 매가 우리 학관에 있었던가?”

감탄사를 터뜨린 이는 여인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여인의 왼쪽 눈에는 안대가 대어져 있었다.

하지만 안대로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가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해 주고 있었다. 바로 그녀가 독안봉(獨眼鳳) 독고령이었다.

그녀는 지금껏 창공 위로 떠올라 바람을 타고 나는 수백 마리의 매를 보아 왔지만, 저처럼 특이하게 생긴 매의 비행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그 펼쳐진 날개 의 당당함이 마치 하늘의 제왕 같았다.

“저도 처음 보는 매로군요. 저 정도로 특색 있는 매라면 저의 눈에 띄지 않았을 리가 없을 텐데요.”

나예린도 독고령의 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창익(蒼翼)! 혹시 저것이 그 유명한 동방의 해동청이라는 매인가? 저렇듯 긍지 높게 창천을 가르는 매를 보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구나.”

해동청 시원스런 날갯짓에 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는 독고령이었다. 시원스럽게 바람을 가르는 매의 비행을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모양이었다.

“호오? 아무래도 저 매, 목적지가 사매인 모양인 걸! 이쪽으로 날아오는 것 같은데.”

나예린의 시선도 그 사실을 확인하고 있었다. 창천(蒼天)을 휘젓듯 비행하던 매가 날개의 방향을 틀며 이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순간 독고령의 고운 아미가 살짝 찌푸려졌다.

‘누굴까?”

처음 보는 매이고 보니 그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차피 모르는 사람. 이번엔 또 누구란 말인가? 제발 그만 두어 줬으면 하는 것이 그녀의 간절한 바램 이었다. 이젠 지겹기까지 했다.

“저것도 역시 그건가?”

뭔가 짐작이 가는 듯이 독고령이 혼자 중얼거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하는 시선과, 누가 또 저런 쓰잘데없는 헛수고를 하는지 참으로 불쌍하다는 투의 시선이 매를 뛰어넘어 매의 주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그 주인에게로…….

“너, 이름이 우뢰매라고 하는구나.”

나예린이 보기 드물게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 웬일인지 사납기만 하던 이 녀석도 나예린 앞에서는 얌전했다. 오히려 뽐내듯이 오만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그녀 의 왼손 비구(가죽으로 만든 팔 보호대) 위에 앉아 있었다.

나예린이 푸른 깃털을 가진 매의 이름을 알게 된 까닭은 매의 발목에 묶인 편지 안에 친절하게도 그 이름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외의 나머지 내용들 은 그녀를 고민에 빠뜨렸다.

예상 밖의 일이었다. 매의 주인은 그녀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이제껏 단 두 번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그녀의 뇌리 속에 각인시켜 준 바로 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소중한 입술을 빼앗아 간 사람 이기도 했다. 잊으려 해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가볼 생각이니?”

물론 가지 않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으면서도 독고령은 다시 한번 그녀의 마음을 확인했다. 자신의 사매는 수천 통에 달하는 사내들의 서신을 받았지만 그 안에 쓰 여 있는 부탁을 들어 준 적은 여태껏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언제나 차갑게 거절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독고령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말았다. 그녀의 사매가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의외의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저와 연관된 일입니다. 가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녀가 아니었다면 비류연이 삼성무제에 참가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과연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졌기에 그녀 앞에서 그 정도로 큰 소리를 쳤는지 알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녀가 현재 알고 싶은 것은 바로 비류연의 무공 수준이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수를 써서 자신의 앞을 유유히 빠져 나간 백향관 침입자의 용의자로 비류연을 점 찍고 있는 그녀로서는 그의 실력을 봐야할 이유가 있었다.

“사매의 생각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독고령도 마지못해 찬성했다. 그녀가 간다면 독고령 자신 또한 간다는 말과 진배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그 녀석 비무를 관전하러 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여러 사내들이 두 눈에 질투의 불을 켜겠구나! 하긴 그것도 의외로 재미있을지도 모르지. 그 비류

연이란 녀석이 당황하는 꼴이 눈에 선하구나!”

꽤나 볼 만한 장면이 연출되지 않을까 싶어 살짝 미소가 배어나오는 독고령이었다. 철혈여인(鐵血女人)이라고도 불리는 독안봉(獨眼鳳), 그녀의 미소를 보기란 하 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사매 나예린의 곁에서라면 그녀의 미소를 그나마 자주 접할 수 있었다. 나머지 한 사람이 절대 웃지를 않으니 어쩔 수 없이 그녀라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사매는 그녀보다 더한 미소 결핍증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유가 다 그 망할 놈의 늑대 같은 사내 자식들 때문이 라고 확신하고 있는 독고령이었다. 때문에 그녀의 남자에 대한 인식은 더욱 안 좋았다.

일단 그녀가 가기로 했으니 독고령 자신은 반드시 그녀를 대동해야 했다. 그녀의 사매를 늑대들의 마수로부터 철통 경비할 책임은 그녀의 어깨와 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디에 가나 짐승 같은 사내들이 존재하는 한 나예린의 신변에 대해 절대 안심할 수 없었다. 빙봉영화수호대라는 집단이 있다지만, 독고령은 그들을 딱히 신용하 지 않았다. 믿을 게 따로 있지 어떻게 짐승 같은 남정네의 집단을 신뢰할 수 있단 말인가! 때문에 그녀의 남성 불신증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었 다.

그녀의 사매인 나예린 또한 그 점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였다.

허나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더 좋았을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보는 것이 오히려 안 보는 것보다 못한 것도 종종 있게 마련이다. 비류연의 첫 시합! 그것은 그녀의 판 단 기준으로 놓고 보았을 때 비무라고 말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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