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11화 – 모용휘, 빈대떡을 부치다
모용휘, 빈대떡을 부치다
“왜 이렇게 된 거지?”
모용휘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찌하다 자신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인가?
이런 것은 절대 청결하지 않다.
‘나한테 다 맡겨!’
당시 귓가를 쟁쟁이 울리던 목소리!
“휴우…….”
맡기라고 했을 때 덜컥 맡기는 게 아니었다. 무슨 신용이 있다고 합숙 훈련에 필요한 제반 경비 일체와 여정 계획 일체를 비류연에게 맡겼던가!
일렁이는 물결따라 흘러가는 배 위에서 난간 부여잡고 후회해 봐도 이미 소용이 없었다. 때는 이미 늦었다. 물결을 타고 흘러가는 배는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이런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사실에 대해 비류연은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었다.
원래 합숙 훈련을 떠날 때는 고급스럽지는 못하지만 불편함은 없을 정도의 여행 경비가 천무학관으로부터 몽땅 지급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들의 모습은 짐짝처럼 곁다리 끼여 들어간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물론 대우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해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 었다. 그저 짐짝처럼 실려 가다니 말이 되지 않았다. 단지 한 가지 편리한 점이라면 이들이 여행길에 매우 능숙하다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모용휘는 가끔 그들이 선망어린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는 집요하기까지 한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우리 속의 관상용 동물도 아닌데, 왜 이들의 구경거리가 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생은 고해(苦海)요, 불가해(不可解)의 연속(連續)이라더니……. 자신이 처한 현재 상황이 문득문득 납득이 안 가는 모용휘였다.
모용휘는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뜨거운 모종의 것을 진심을 다해 토해냈다.
“우웩!”
처음 하는 수로 여행은 나름대로 흥미로웠다. 항상 산에서만 살다가 배 여행은 처음 해 보는 비류연이었다.
게다가 비위 약한 사람들이 으레이 겪곤 하는 배멀미도 하지 않으니 만사태평일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비류연은 누구처럼 배 난간에 고개를 처박고 사색이 되어 있는 것과는 정반대로 천하태평이었다. 사실 무림 고수씩이나 돼서 배멀미를 한다는 게 오히려 비정상이었다.
지금도 모용휘는 여전히 울렁이는 속과 맹렬히 비무 중이었다.
“이보게, 휘! 괜찮나?”
경쟁자이자 선배인 청흔이 그의 등을 두들겨 주며 말했다.
“괘…괜찮습니다.”
별로 설득력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번 일행 중에서 청흔은 약간 껄끄러운 존재였다. 다들 왜 청흔과 동행해야 되는지 내심 불만이었다.
일 학년 천검조에겐 존경하지만 다가가기는 힘든 하늘 같은 선배요, 주작단에 있어서는 얼굴 마주 대하기 껄끄러운 동기였다.
하지만 어찌 이들의 감정이 모용휘의 복잡 무쌍한 감정과, 심정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청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일이 닥치는 상황은 의외의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무당산까지 동행하게 된 이 둘은 의외로 사이좋은 모습을 보여주어 주위를 놀라게 했던 것이다. 모용휘와 청흔!
둘은 사이좋게 한 달 동안 의약전(醫藥殿) 침상에서 나란히 누워 지낸 사이였다. 그만큼 삼성무제 검성전 결승전에서 서로가 입은 상처는 큰 것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리를 털고 일어난 지금, 둘 모두의 마음에 원한이나 증오는 자리하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서로의 무공 성취에 탄복하는 마음이 더욱 컸다. 아직 은 복잡한 여러 가지 상념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지만.
하지만 서로의 실력을 인정했기 때문인가? 삼성무제 검성전 결승 이후 의외로 가까워진 모습을 보여주는 두 사람이었다. 내심 서로를 자신의 호적수로 인정한 것 이다.
그래서인지 일행 중에서 모용휘의 상태에 신경 써주고 있는 이는 청흔이 유일했다.
청흔이 딱하다는 투로 말했다.
“하하! 천하의 칠절신검이 고작 배멀미에 패하여 백기를 들다니 강호 천하가 들썩거릴 기문(奇聞)일세. 직접 보고 있는 나도 믿지 못하니 그 누가 자네의 이런 모 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맞는 말이었다. 지금 모용휘의 모습 어디에도 완벽하고 청결하기로 이름 높은 칠절신검의 위상(位相)은 존재하지 않았다.
“면목이 없습니다.”
“이런 이런, 자네를 추궁하자는 게 아닐세! 몸이나 잘 추스르게. 곧 적응하겠지.”
“그거야말로 바라던 바이지요. 그때가 되면 드디어 전 유일무이한 소원 성취를 이룬 것이니 천지 신명께 감사드려야겠군요. 우읍…….’
말은 잘 하나 아직도 얼굴이 창백한 걸 보니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천하의 다시 없는 기재가 고작 배멀미로 고생하다니 괴리감 느껴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우리가 지금 왜 여기 있는겁니까?”
수면 위에서 열심히 빈대떡을 부치는 와중에도 모용휘는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신동 기재로 불리우는 공인 천재인 그에게도 이 상황은 불가해한 일이었다. 그러 자 옆에서 만만치 않은 천재로 공인받고 있는 청흔 또한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모용휘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조했다.
그들은 지금 배 위에 있었다. 물론 배를 타고 가는 게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들이 타고 있는 배가 일반 배가 아니라는데 있었다. 왜 그들이 지금 이 배를 타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표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표물도 아니었다.
직업적, 소속적 동일성을 나타내기 위한 동일한 모양의 무복을 입은 무리들.
줄줄이 쌓여 있는 짐! 짐 주위로 정확한 간격을 두고 꽂혀 있는 깃발들! 깃발의 문양은 무사들의 무복 가슴께에 새겨진 문양과 똑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연꽃과 검이 수놓아진 깃발, 연화검기!
여기는 중양표국의 표선 위였다. 그들은 지금 중양표국의 표행에 덤으로 딸려가고 있는 처지였다.
애초에 비류연에게 돈을 맡긴 것부터가 대실수였다. 여행 경비를 자신이 책임진다는 명목 하에 비류연은 합숙 훈련 일행의 경비 일체를 독식했다. 애당초 고양이 한테 생선맡기고, 애소저회에게 미녀 속곳을 맡기는 격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비류연의 수중에 들어간 돈이 도로 내뱉어져 나오는 일이란 애시당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비류연이 가진 삶의 법칙과 의지에 크게 위배되는 일이 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비류연은 여기서 끝낼 위인이 아니었다. 남창지국으로부터 보호금 명목으로 표두급 급여를, 그것도 17명 분씩이나 몽땅 받아내 가로챈 것이다. 날강도나 다름없 었다.
물론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일행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합리적인(?) 판단 때문이었다.
남선북마(南船北馬)!
장강(長江) 이남에선 배, 장강 이북에선 말이라는 말이 있다.
중원을 가로지르는 젖줄 장강의 이남은 그물망처럼 수로가 발달해 있는 관계로 이동시 배가 편리하고, 장강 이북은 광활한 평야가 이어져 있어 이동시 말이 편리 하단 말이다.
특히, 파양호 변을 끼고 있는 천무학관 터인 남창(南昌)은 특히 수로(水路)가 극도로 발달되어 있는 관계로 이동 수단의 편리함에 있어 배를 따라올 만한 것이 없 었다.
때문에 그물망 같은 수로 교통의 중심에 위치한 중양표국 남창지국도 독자적인 수로 교통 운송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표선이었다.
그렇다면 표선이란 무엇인가?
표선이란 표국이 수로에서의 표물을 운송할 때 사용하는 표국 소유의 배를 가리키는 말이다. 설마 표행이 육로에서만 이루어진다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 을 것이다.
빠른 시일 안에 신속한 이동이 요구되는 표행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장 신속하고 편리한 교통 운송 수단이 사용될 수밖에 없다. 장강을 따라 움직이는 데는 당연히 배만한 것이 없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이 표선에 타고 있는 것인가?”
모용휘는 그 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파양호를 끼고 있는 남창으로부터 무당산이 있는 호북성(湖北省)까지는 장강을 통한 수로를 이용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표국에서 표물 운송 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표선에 얹혀 탈 이유는 없었다. 그 외의 뱃길도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표선이 움직이는 것은 표물을 운송할 때뿐, 다른 사사로운 일에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데 왜지??
그런데 지금 모용휘의 눈 앞에서 예외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 중양표국 남창지국의 표행에 덤으로 얹혀 가고 있는 중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