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6권 38화 – 효룡과 무흔 일호와의 접선

비뢰도 6권 38화 – 효룡과 무흔 일호와의 접선

효룡과 무흔 일호와의 접선

“왔는가?”

사람의 발길이

좀처럼 닿지 않는 음침한 절벽의

가장자리에 도착한 효룡이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비문(文)이 가리키는 장소는 이곳이 분명했다.

효룡은 암습에 대한 정찰을 핑계로 나와 있던 터였다.

정체 모를 복면인들의 암습이 있은 이후 주변 경계가 더욱 삼엄해져 있었다. 함부로 수상한 행동을 보일 수는 없었다. “예!”

어느 새 그의 등 뒤로 나타나 부복한 무흔 일호가 짧지만 강렬하게 대답했다. 비각 최강의 조직인 무흔비영대의 대주인 그의 이러한 태도는 언제나 그에게 부담스 러움을 안겨 주었다.

아마 금성철벽의 천무학관을 제집 드나들 듯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자신의 등 뒤에 부복하고 있는 이 사람밖에 없다는 것이 효룡의 생각이었다. 벌써 올해만 해 도 소식이 끊어진 비선(秘線)이 다섯을 넘었다. 과연 천무학관은 방심할 수 없는 존재였다. 한 순간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갑자기 비문을 남긴 이유가 무엇이지요?”

이런 외진 곳에서는, 공간과 행동 반경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타인의 시선을 끌기가 쉬웠다. 때문에 웬만해선 무흔 일호가 먼저 연락 암호를 남기는 경우 는 드물었다.

그것은 곧 반드시 알려야만 할 중대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과 동일한 맥락의 이야기였다.

게다가 그동안 몇 번 있었던 수상한 암습에 대해 조사를 부탁해 놓은 것도 있었다.

“저… 각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왠지 암류가 흐르는 듯한 느낌입니다.”

“수상한 암류(暗流)라면 그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이야기입니까?”

의아한 어조로 효룡이 되물었다. 무흔 일호는 기밀의 최상층부까지 접근 가능한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가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암류라니….

“송구스럽습니다. 삼공자!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

무흔 일호의 암흑에 묻힌 듯한 얼굴이 땅으로 푹 수그려졌다. 그는 진심으로 송구스러워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장 윗선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거군요! 설마 대공자 측이?”

번쩍 뜨인 눈으로 효룡이 무흔 일호를 쳐다보았다. 만일 그의 예상대로라면 일은 생각보다 심각할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이번 암습건만 해도 혐의를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아무래도 수뇌부가 연관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럴 때 삼공자의 형님 분 만 있었어도…….?

비통한 심정으로 무흔 일호가 이를 악물며 씹어뱉듯이 말했다.

조용하던 효룡이 버럭 호통을 쳤다.

“조용하세요. 형님의 이름은 각(閣)과 맹(盟), 모두에서 금기시된 이름입니다. 아무리 우리 둘만이 있다고는 하나 성급한 일입니다.”

“제가, 제 입이 너무 경솔했습니다. “

아차 하는 기색으로 무흔 일호가 고개를 숙이며 사죄했다. 그 이름 앞에 누구보다 가장 상처받을 이가 바로 눈 앞에 있는 사람임을 잠시 잊고 실언(失言)을 한 것이 다.

“괜찮습니다. 그것보다 앞으로 각(閣)의 동향에 좀더 주의를 기울여 주세요.”

“존명!”

“스륵!”

‘만났다 헤어질 땐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내연의 관계를 은밀히 유지하고 있는 남녀와 밀정과도 같이 지켜야 할 최고의 철칙을 착실히 지키며, 무흔 일호는 나타났을 때와 마찬가지로 은자들의 모범처럼 은밀하고 감쪽같이 자연 속으로 몸을 숨겼다.

“하아! 언제나 부담만 주고 사라지는군! 저 사람은!”

효룡은 처량한 한숨을 내쉬었다.

무흔 일호의 공경스러운 자세는 언제나 그의 마음 속에 부담을 안겨 주고 있었다.

언제나 그는 자신에게서 할아버지의 모습을 투영하는 것 같다. 어차피 난 그분의 피를 이었으되 능력만은 제대로 이어받지 못한 자신이었다. 그런 불량품인 자신 에게서 전 흑도의 우상이자 신화인 할아버지의 그림자를 투영하는 것은 언제나 그를 부담스럽게 했다.

할아버지의 재림은 그의 하나뿐인 형에게나 어울리는 말이었고, 그나마 지금은 그 이름에 어울리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형!”

이제는 불러도 대답해 주지 않는 형이었다. 5년 전 그날 이후로…….

그때였다.

“채챙! 챙!”

‘검격음(劍擊音)?”

분명히 검과 검이 부딪칠 때 나는 검격음이 분명했다. 게다가 소리로 미루어 보았을 때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장소는? 이런!’

장소는 분명 합숙 훈련소가 있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또다시 습격이 시작된 모양이다.

“콰콰콰쾅!”

‘젠장! 이번엔 기폭음(氣爆音)까지??

설상가상으로 이번엔 강기(剛氣)와 강기가 부딪쳤을 때만 나는 기폭음까지 들려 왔다. 산이 진동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얼마나 강한 놈들이 쳐들어왔기에?”

기폭음이 들린다는 것은 적어도 강기 수준의 무공을 쓸 수 있는 자가 왔다는 게 분명했다. 이전까지의 암습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놈들이 온 것이다. “젠장 도대체 얼마나 강한 놈이 투입된 거야?”

효룡은 합숙 훈련소 방향을 향해 급하게 신형을 움직였다.

어떤 어두운, 기구한 운명이 자신을 향해 손을 뻗치고 있는지 모른 채 !

‘친구를 죽게 할 순 없어!’

그의 신형이 점점 더 빨라졌다. 역시 이런 음습한 일은 체질에 맞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