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
– 눈물
밤은 원하는 자에게도 원하지 않는 자에게도
언제나 동등하게 방문한다. 차분한 어둠이 세상을 감싸는 밤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모용휘도 밤에 유달리 생각이 많아지는 유형의 인간이었다. 그는 그것을 수행의 부족으로 치부하고 있었지만, 의식의 흐름을 강제로 막거나 하지는 않았다.
“역시 그만두어야 할까… 수신 호위직을…….”
모용휘는 지금 고민 중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호위 일은 적성에 맞지 않는 듯했다. 게다가 비류연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자신마저도 그의 자유분방함에 물들어 버리는 듯한 느 낌이었다. 평소의 자신이 사라져 버리는 듯한 왠지 야릇한 느낌, 그의 감정은 지금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용천명!”
이름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지만 얼굴을 대면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그가 지금 수신 호위직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같은 연배 중에서 그가 진심으로 감복한 이는 몇 명 되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용천명의 기도는 단연 빼어났다.
“잘 부탁한다고 했던가…….”
그 사람에게만은 절대로 지고 싶지 않았다. 오랜만에 그의 가슴속에서 투쟁의 본능이 들끓고 있었다.
“이대로는 안 돼!”
이대로 계속해서 수신 호위직에 신경을 기울인다면 점점 더 용천명에게 뒤떨어질 듯한 느낌이었다. 지금은 주변의 모든 것에 신경을 끊고 수련에만 맹진하고 싶었 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 현재 그에게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은 바로 수신 호위직이었다.
“역시 그만둔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러나 ‘어떻게?’가 문제였다. 좋은 말로 부드럽게 자신의 의사를 전할 자신이 그에게는 없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 또한 그의 자기모순이기도 했다. 최초로 자신에게 맡겨진 책임을 미루고서까지 이기고 싶은 상대가 나타난 것이다. 청흔 때 도 서로에게 깊이 감탄했을 뿐 이런 감정이 들지는 않았었다. 비천룡 청흔 때와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그래서 모용휘는 일단 움직이고 보기로 했다.
은은한 달빛과 검은 밤하늘에 촘촘히 박힌 보석 같은 별들. 깊어지는 밤, 깊어 가는 시간, 만물이 포근한 밤의 장막 안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 나 달과 별과 밤에 취해 심야에도 잠들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천무학관 한켠에 위치한 정자 운향정(雲香亭)!(나예린이 비류연에게 최초의 입맞춤을 당한 곳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운향정은 미인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지금도 그곳에는 자신의 마음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달을 바라보며 쓸쓸한 눈동자를 발하는 여인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예전에 한 남자의 정혼녀였고, 지금은 생명을 걸고 사랑한 정혼자를 여읜 짝 잃은 한 마리 작은 새였다. 자신의 마음을 비추는 달빛이 애처롭게, 그리고 쓸 쓸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이름은 은설란이었다.
“난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월광이 너울지는 정자의 난간에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어 보지만 그것만으로는 고민이 가시지 않았다.
이곳 천무학관에 온 지도 벌써 한 달.
그러나 무당산 혈사와 갈효봉의 죽음에 대한 아무런 단서도, 그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었다. 이미 어려움을 각오한 터라 직면한 고난에서 도망칠 생각은 없었지 만, 아직 그녀의 눈앞에는 캄캄한 어둠의 장벽이 가로막혀 있었다.
물론 순순히 협조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쯤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사를 시작해 놓고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아무 런 전진이 없자 그녀도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들의 태도는 명백했다.
숨긴다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진실의 은폐를 조장하는 느낌이 아니었다. 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억울하기 짝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실마리는 단 하나.
천지쌍살이 그곳에 나타났다는 소문 그것뿐이다.
‘천지쌍살(天地殺)! 한때 사파의 공포라고까지 불리던 무공고수이자 잔학하기 그지없는 살인광들! 그들이 왜 그때 무당산에 있었단 말인가?”
특수 임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무리가 많았다. 탈출한 효봉의 신병 확보에 거의 근신하고 있다시피 한 그들이 나섰다는 데 벌써 어폐가 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 무단행동으로밖에 볼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생각하기 싫지만 또 다른 가정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또 다른 계통으로 명령을 받았는지도…….’
만일 그렇다면 매우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다. 반역에 하극상은 어느 시대를 통틀어서도 문제가 안 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흑천맹의 권위에 도전한단 말인가?”
현 사파의 그 어떤 세력도 감히 흑천맹의 권위를 건방지게 넘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현실적으로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그녀는 더욱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달빛이 더욱더 푸르스름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은설란은 마음이 아려 왔다. 외로운 밤, 쓸쓸함이 느껴질 때마다 항상 한 사람의 얼굴이 창백할 정도로 푸른 달과 겹쳐진다.
‘대가(大)!’
통곡하는 마음으로 소리 없이 외쳐 보지만 이제는 영원히 대답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이제 그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