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9권 23화 – 태극의 인재를 찾아라!

비뢰도 9권 23화 – 태극의 인재를 찾아라!

태극의 인재를 찾아라!

빙검 관철수

은설란이 비류연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는

소문이 학관 내에 나돌자 대부분의 관도들은 코웃음을 치는 데

그들의 내공의 거의 전부를 소진시켰다.

몇몇은 은설란이 ‘헛수고한다’고 서슴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은설란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일단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에 대한 판단이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자의 직감도 크게 작용 하고 있었다.

은설란이 비류연에 대해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그녀는 점점 자신이 미궁으로 빠져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비류연에 대한 정보는 알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모르게 되기 일쑤였다. 사람들의 의견이나 동일 사건에 대한 증언이 너무나 차이가 많이 나고 있었다. 게다가 무당산 일에 관해서는 대답을 회피하거나 두루뭉술 얼 버무리는 사람들도 많았다. 무엇이 껄끄러운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그들은 비류연에 대해 대답을 회피하고 있었다. 그것만은 여인의 자존심을 걸고 맹세할 수 있었 다.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은설란의 의욕은 점점 더 고조되어 갔다.

“비 공자는 어떤 사람이죠?”

이번 질문의 대상자는 나예린이었다.

“언제나 소란스런 사람이죠.”

나예린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물론 비류연과 함께 한 이후 그의 주위가 조용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은설란에게는 맥이 빠지는 대답이었다. 그 녀에게만은 좀더 다른 대답을 원했는지도 모른다. 남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사실 따위는 그녀에게 무용지물이었다.

“그것 말고 다른 할 말은 없나요?”

은설란은 좀더 색다른 정보를 듣고 싶었다.

“그가 소란스럽다는 것 이외에 무슨 다른 표현이 있을까요?”

“음!”

이진설이 그녀의 말에 동조하듯 옆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처음에는 군웅회주 철옥잠 마하령, 두 번째는 구정회주 창천룡 용천명! 정말 화려한 전적을 자랑하는 사람이로군요. 정말 대단해! 정말..

이진설은 비류연이 저지른 큰 사건들을 손가락으로 꼽으며 말했다.

“이번엔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걱정이로구나!”

나예린이 근심 섞인 목소리로 이진설의 말에 화답했다.

“호호호! 나 소저는 비 공자의 안위가 매우 걱정스러운 모양이지요?”

은설란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예린은 은설란의 갑작스런 질문이 무척이나 당황스러웠다.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확대시키는 일은 삼가 주세요.”

“호호! 그렇게 정색하며 말할 필요까지 있을까요? 그렇다고 비 공자가 싫은 건 아니잖아요?”

은설란이 넌지시 나예린을 떠보았다.

“무… 물론 싫어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요.”

“호호호! 꼭 그렇게 뒷말을 강조할 필요는 없어요. 제가 원한 답변은 앞부분이지, 불필요한 뒷부분이 아니거든요. 묻지 않은 질문에 대한 답까지 주시다니 나 소저 답지 않군요.”

“그… 그건….”

은설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런 방면으로는 도가 튼 그녀였다. 연애 무경험자인 나예린은 은설란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나예린은 혼란스러웠다. 여기까지만 할까?”

더 이상은 나예린에게 역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었다. 세상과 벽을 쌓고 있는 그녀에게는 한 발짝 한 발짝씩 점진적으로 접근해 가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었다. 

“그것보다 그 소란스런 분이 이번엔 무슨 일을 벌일까요?”

은설란은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이번에는 냉엄하기로 소문난 총 노사 빙검 노상과 싸우는 것 아닐까요? 저기 왜 염도 노사랑도 싸워 이겼다는 소문도 돌고 있잖아요?”

이진설이 웃으며 말했다. 웃고 즐기자는 목적 하에 한 가벼운 말이었다. 하지만 비류연이 염도와 싸웠다는 소문이 도는 것은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이진설의 말대 로 싸워 이겼다는 소문까지도 돌고 있었다. 그러나 비류연이 전신에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기 때문에 그 소문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또, 쓸데없는 소리!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구나!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않느냐! 실없는 소리 그만 하고 수련에 정진하도록 하거라!”

“헤헤… 네!”

혀를 삐죽 내밀며 이진설이 웃었다. 그러나 약간 억지가 섞인 그런 웃음이었다. 아직은 안면 조절이 완전치 않은 모양이었다. 이진설은 다른 일이 신경 쓰여 죽겠 지만 감히 두려워 말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의 진상을 물어보기에는 용기가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그녀는 은설란과 제대로 시선을 맞출 수가 없었다.

“부탁하네!”

검존이 빙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맡겨 주십시오!”

빙검이 공손히 대답했다.

“자네의 눈이 이 천무학관에 있는 그 누구의 눈보다 정확하다고 나는 믿고 있네! 자네가 보고 판단한 것을 그대로 나에게 전해 주도록 하게!”

그렇지 않아도 요즘 눈엣가시 같은 염도의 행보가 수상하던 터였다. 수하의 보고에 의하면 마치 사부와 제자처럼 두 사람이 붙어 다닌다는 믿을 수 없는 보고였다. ‘염도와 같은 사회 부적응자에게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순전한 농담으로 치부하기에는 유사한 보고가 너무 많았다.

“비류연이라고?”

어쨌든 신경 쓰이는 존재가 아닐 수 없었다.

사부는 온몸에 거미줄처럼 미세한 상처를 안은 채 조용히 좌정하고 있었다.

무림에서 신(神)으로 추앙받던 사부가 어느 날 갑자기 상처를 입고 돌아왔을 때, 빙검과 염도는 사부가 농기(氣)가 동해 장난이라도 치는 줄 알았었다. 만일 현 무림에서 사부에게 이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80년 전에 전 무림을 피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공포 그 자체인 ‘그’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80년 전 자신의 사부 태극신군 무신 혁월린과 천무삼성, 그리고 무신마 갈중혁의 합공을 받고는 생사도 판명나지 않은 채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그로부터 80 년이 지난 지금 갑자기 다시 등장할 리가 없었다. 만일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이미 전 무림이 발칵 뒤집혔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치고 무림은 권태로울 정도로 평 화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런 평화로운 무림에서 감히 무신(武神)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곽아!”

“예, 사부님!”

20년 전 그때부터 염도의 여성 이름 열등감은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지금처럼 폭급한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믿겨지지 않겠지만 현재의 모습과 대조해 보면 절대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너는 태양의 기운을 이어받은 건양지기(乾陽之氣)의 소유자다. 알고 있겠지?”

사부의 자상한 목소리에 참았던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이때만 해도 그는 착실하고 성실한 좋은 제자 그 자체였다.

“예!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검염기(劍焰氣)를 익히기에 적합한 체질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너는 건양지체(乾陽之體)라 화령신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체질이다. 그러나 너무 극양(極陽)으로 그 기운이 치우쳐 있어 빙령지기를 받아들이기에는 적합 하지가 않다. 너희 둘 모두 기운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경향이 있는 점이 아쉽구나. 그리고… 관아!”

이번에는 혁월린이 빙검을 쳐다보았다.

“예! 사부님!”

빙검이 깍듯하게 대답했다.

“허허허, 너는 항상 흐트러짐이 없구나! 곽아가 태양의 기운을 이어받았듯 너는 달의 기운을 이어받은 곤음지기(坤陰之氣)의 소유자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 잘 알고 있겠지! 너는 항상 모든 일이 완벽해서 그다지 걱정을 크게 끼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너무 싸늘한 점이 문제구나! 좀더 사람과 가까이 하도록 노 력하도록 해라.

알다시피 너는 곤음지체(坤陰之體)라 빙백신공을 익히는 데 적합하다. 그러나 너 역시 극음(極陰)으로 기운이 심하게 치우치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음과 양 은 원래 하나에서 파생된 하나인 법! 너희들이 힘을 합치면 이 세상에서 너희를 대적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무척이나 자상 자애한 목소리였다.

“사부님…….”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이딴 녀석과 힘을 합치라니요. 그런 심한 말씀 하지 마십시오!’라는 뒷말을 두 사람 모두 차마 잇지 못했던 것이다. 곧 선경에 드실 사부였다. 그런 사부 앞에서 못난 모습 보이고 싶지 않다는 데 서로 암묵적인 합의를 보았던 것이다. 그것이 제자로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부는 그 명성답게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너희들은 여전히 사이가 좋지 않구나! 후우… 당장 사이가 좋아지라고 해봤자 미봉책에 불과할 뿐이겠지. 그렇게 티격태격 다투기만 해서야 어찌 내가 창안한 건곤일월합격진(乾坤日月合擊陣)을 펼칠 수 있겠느냐!”

빙검과 염도 모두 양심의 가책 때문에 찔끔할 수밖에 없었다. 사부의 청정한 눈이 그들의 가식을 단번에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잠시 말을 멈춘 사부 혁월린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시간이 없었다.

“관아! 곽아!”

“예, 사부님! 하명하십시오.”

“잘 들어라! 너희들에게 나의 마지막 심득(心得)과 유언을 전하겠다.”

“마… 마지막 심득이라니요?”

두 사람 모두 처음 듣는 소리였다.

“하산(下山)해서 강호에 나가거든 절대 나의 죽음을 발설하지 말거라! 무림에서는 천겁령의 핵심 세력이 모두 사라지고 그 잔당들만 남았다고 생각하나 나의 생 각은 다르다. 그들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잠시 동면에 들어가 있을 뿐이다. 아직 완벽하게 당시의 세를 부활시키지 못한 그들에게 나는 엄 청난걸림돌이겠지. 무신마 갈중혁이 생생히 살아 있고 나의 죽음이 확실해지지 않는 이상 그들도 함부로 모습을 드러낼 생각은 못할 것이다. 절대 나의 죽음을 발 설하지 마라! 그리고 너희들이 나의 제자들이라는 사실도 될 수 있으면 숨기도록 하여라.”

“사부님… 안 됩니다.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무림을 위해서라도 아직 돌아가시면 안 됩니다.”

“이것은 거역할 수 없는 천명(天命)이다. 이제 나의 유지(有志)는 너희들을 통해 이어질 것이다.”

스윽!

사부는 품속에서 물건 하나를 꺼냈다. 흰 비단 포에 소중히 싸여 있는 물건! 이것이 그가 후대에 남겨야 할 마지막 물건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견원지간이라서 불 안하기 짝이 없는 제자 둘뿐이었다. 일말의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대안은 남아 있지 않았다.

꿀꺽!

마른침이 두 사람의 목젖을 타고 뒤로 넘어갔다. 느닷없는 흥분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내 너희에게 이것을 전하마!”

사락사락! 비단천이 벗겨지자 상서로운 광채가 비단 보자기 안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이… 이것은!!!”

두 사람의 눈이 경악으로 부릅떠졌다.

“확실히 기억했느냐?”

“네… 사부님! 흑흑흑”

두 사람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지금 두 사람은 흐느끼고 있었다.

“염백(炎魄)과 빙혼(魂)! 정(正)과 반(反)을 한데 아우를 수 있는 자를 찾도록 해라! 신도 홍염(紅焰)과 신검 빙루(氷)가 길을 인도할 것이다. 그 자가 바로 태 극을 하나로 합칠 인재이다. 성신(星辰), 별의 기운을 가진 자를 찾아라!”

사부의 마지막 유언이자 충고였다.

“태극의 인재! 그 인재를 찾으면 서로 협력하여 태극을 합일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라!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너희들의 손에서 무림의 구성이 나오길 저승에서 기 원하마. 나와 너희의 인연은 여기까지구나!”

온몸에 거미줄처럼 미세하게 나 있는 상처를 입은 사부였지만, 좌정한 채 흐트러짐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생명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충분히 예지하고 있었다. 염도와 빙검, 모두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북받치는 슬픔을 참아낼 수 없었다.

“사부님! 원수를 알려주십시오! 저희들이 반드시 사부님의 원수를 갚아 드리겠습니다.”

“흉수를 알려주십시오!”

염도와 빙검 모두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러나 그들의 사부이자 천겁혈세 때 무림의 구성이었던 태극신군 무신 혁월린은 조용히 미소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은 너희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이 승부에 나는 한 점의 후회도 없다. 미련이 남았다면 승부에서 승리하지 못한 것, 그것 하나뿐이다. 너희들의 실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 태극의 인재를 찾아 태극을 합일시킬 때까지는 다른 생각은 절대 품지 말도록 해라!”

“사부님! 흉수를 알려주십시오!”

다시 한 번 염도와 빙검이 무신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태극신군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에게는 너무나 벅찬 짐! 나는 그런 무거움 짐을 떠넘기고 너희를 떠날 수는 없구나. 대신 혁소운, 그 아이를 부탁한다. 그 아이도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결 정할 것이라 믿지만 너희들이 도와주었으면 좋겠구나.”

“예, 사부님!”

하염없는 눈물이 두 사람의 눈에서 쏟아져 나왔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 법! 무인이 되어 검을 잡았을 때부터 이미 각오한 바이다. 너희들은 너무 슬퍼하지 말거라. 그럼! 후사를 부탁한다.”

그리고 무신은 그 영광스런 이름을 무림 역사에 찬란히 남긴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무림의 거성이 유성이 되어 떨어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은 전 설이 되어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사부님..”

빙검은 왼손을 자신의 품에 가져다 댔다. 그때 이후로 한시도 몸에서 뗀 적이 없는 물건이었다. 염도와 함께 나누어 받은 사부님의 생명과 같은 물건이었다. 목숨 을 걸고 지켜야만 하는 물건이었다.

잠시 과거를 회상하던 빙검의 시선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