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1권 – 4화
유정(惟)금강산에도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달빛이 산굽이의 한 모퉁이에 세워진 작은 암자를 비추고 있고, 그정경 속을 한 중년 승려가 걸어가고 있었다. 깎아지르는 절벽의 모퉁이에 난 험한 소롯 길을 중년 승려는 밤인데도 능숙하게 올라가고 있었 다.
승려는 암자 앞에 다다르자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 했다.
“부르셨사옵니까? 유정이옵니다.”
중년 승려는 작은 암자 앞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 이며 조심스럽게 방 안의 기척을 살폈다. 그러자 암 자 안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이 든 노 인네의 목소리였다.
“늦었구나. 들어오너라.”
중년 승려는 공손한 몸짓으로 암자 안으로 들어섰다.
호롱불도 켜 있지 않은 암자 안에는 한 나이 많은 노승이 앉아 있었다. 노승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굵 게 고랑져 있고 수염과 눈썹이 희끗희끗했지만 눈빛 만은 맑고 온화했다.
암자 안으로 들어선 유정이 절을 올리려 하자, 노승 은 손을 저어말리며 합장을 했다.
“한시가 급한 일이다. 어서 이야기부터 해 보아라. 승군(僧軍) 소집은 어찌되었는가?”
이 노승의 이름은 휴정, 후세 사람들에게 서산대사 로 알려진 고승이다. 그는 유정의 스승이기도 했다. 휴정의 앞에 있는 중년 승려 유정은 훗날 사명당 또 는 사명대사로 알려진 역시 당대의 고승이었다.유정 의 명망도 높았으나, 그는 스승인 서산대사 앞에서 한없이 공손하기만 했다.
“대부분의 사찰들에서는 승군에 참여하여 일어날 것 을 설득할 수있었습니다만 개원사(開圓寺), 망환사(望還寺)의 두 도량(道場)은 주지승조차 만날 수 없 었사옵니다. 그리고 진각사(眞覺寺), 무수사(無愁 寺), 소광사(蘇廣寺)의 세 도량은 출가하여 세속을 등진 승려의 신분으로 병장기를 잡을 수 없다고 완 강히 거절하였습니다.”
“오호라…… 승려의 행동은 중생을 구하는 것이 무 엇보다 첫째 가는 일이거늘, 법을 논하고 계율을 따 지면서 정작 가장 큰 본분을 잊고있다니… 아미타불…….”
“하지만 그밖의 대부분 사찰들에서는 젊고 힘 있는 승려들로 승군을 조직하는 데에 동의하였습니다.” “그래 그래, 암 그래야지…………. 백성과 중생들의 위 험이 지척지간에 이르렀는데 말로 염불을 논하고 불 경을 외운다고 어찌 도움이 되겠는가. 선재라, 선재…………….”
서산대사는 혼잣말처럼 조용히 중얼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난리는 보통 일이 아닌 게야. 천기에 어긋나 는 일들이 수도없이 벌어지고 있어. 조선의 국운이 아직 쇠하지 않았고 왜국 또한 이런 무모한 일을 벌 일 것이 아니었는데 어찌하여 조선군이 일패도지하 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구나……. 뭔가 석연치 않 은 일들이 너무도많아………….”
유정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실로 이번 왜란은 보통일이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일들이연이어 벌어지고 있었으며, 조선군은 마 치마에 씌인 것처럼 일패도지하기를 거듭하고 있었 다.
서산대사는 계속 말했다.
“우선 첫째로는 통신사가 다녀왔는데도 조정의 의견 이 어찌하여그렇게 정해졌느냐는 것이니라. 왜국의 국서에 분명 선전포고가 표기되었는데도 어찌 그리 잘못된 식견을 채택할 수 있었을까? 이상해도한참 이상한 일이야.”
유정도 그 내용은 알고 있었다.
왜국은 ‘명을 정벌할 테니 길을 빌려달라’는 내용 의, 누가 보아도선전포고임을 알 수 있는 국서를 보 낸 바가 있었다. 그에 따라 통신사로 제작년(1590년) 3월에 왜국에 다녀온 상사 황윤길(黃允吉)과 서 장관 허성箴)은 왜국이 반드시 난을 일으키리라 고 보고하였다. 그런데 부사로 같이 갔던 김성일(金 誠一)은 풍신수길의 눈이 쥐 같고 행동이 치졸하여 큰 일을 벌일 인물이 못 된다고 주장했다. 거기서부 터 일이 꼬여가기 시작했다.
“서인과 동인의 의견 대립이 아니겠습니까?” 유정은 반대 의견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서산대사와 유정 사이의독특한 문답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서산대사의 의견을 유정이 정말로 받아들이지 못해 서 반대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더 확 실한 결론을 내리기 위해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내 놓고 같이 상의하는 것이다.
그러자 서산대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서장관 허성도 역시 동인이 아닌가. 그런 데 조정의 공론이 어찌 그렇게 정해졌는지 모를 일이 야. 김성일도 사려가 깊은 사람이고, 하물며 서애 (西)같은 이까지도 어째서 그렇게 보았는지 모르겠고…….”
물론 황윤길은 서인(西人)이었고 김성일은 동인(東 人)으로 당이 달랐으나, 그때까지만 해도 당파가 그 토록 분열된 시기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것을 당 파의 분열에 의한 상반된 견해 표출로만 보는 후대 사람들의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서장관 허 성은 동인이었다. 결국 그렇다면 그것을 당론에 의한 것으로 단정지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더구나 뛰어난 식견으로 만인에게 인정받던 서애 유 성룡(柳成龍)도 김성일의 입장을 두둔하였으니, 조 정의 공론이 왜에 대한 방비를느슨하게 하는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유성룡은 사람됨이 명석하고 인물을 보는 눈이 있어 서문관이었던권율을 추천하고, 별로 이름이 없던 이순신을 천거하는 등 많은 일을한 사람이었다. 유 성룡과 김성일이 친구 사이기는 했지만, 유성룡이공 과 사를 구분하지 못할 정도의 인물은 결코 아니었 으니 그 또한 이유가 될 수 없었다. 김성일과 유성 룡 등의 인물들이 그렇게까지 정세판단을 잘못한 것 은 후세에 이르러서도 많은 논란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거의 ‘믿어지지 않는 일’로 연구되고 있다. 그렇 다면 그렇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무언가가 식견을 흐리게 만든 것일지도 몰라. 상감 께서도 밝은 분이셨는데 암울하기 이를 데 없이 되 어 버렸네. 확언할 수는 없지만 분명 알 수 없는 일 이 벌어지고 있는 게야…. 아미타불…….”
“어떤 일 말씀이옵니까? 비록 잘못된 것이라 할지 언정 그것은 조정의 공론이 아니었사옵니까?” “결단을 잘못 내려도 너무나 잘못 내렸어. 사람의 심성이 흔들리지않고서야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 내 짐작이 맞다면, 무엇인가 알 수없는 힘이 사람들 의 심성에 영향을 주고 있어……”
유정은 막막한 느낌을 받았다.
실로 상감(선조)의 행동이나 김성일의 행동에는 너 무도 미심쩍은면이 많았다. 특히 선조는 갈수록 잔 혹해지고 두서 없는 행동을 거듭하고 있었다. 정여 립(鄭汝立)의 옥사를 일으켜 수많은 신료들을 학살 하다시피 하고, 무능한 사람을 중책에 앉히는 대신 유능한 사람을 내치기를 밥 먹듯이 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어째서 상감이 그토록 성격이 표변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조정의 신료들이 이를 두고 전전긍 긍하고 있다는 사실은 조선 팔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유정으로서도 그것이 알 수 없는 힘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 알 수 없는 힘이란 무엇이오니까?”
“인간의 힘은 아닐 테지…. 천기까지 어지럽히는 존재니 말이야.경상도의 수군이 전멸한 것만 해도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유성룡은 중론으로서는 왜를 대비하지 않았지만 손 이 닿는 범위에서는 많은 조치를 취해 두었다. 부산 성과 동래성의 방비를 강화하고경상도의 수군을 대 폭 증강한 것은 모두 그의 노력 덕분이었다. 부산성 과 동래성은 성벽을 강화하는 한편 정발(鄭撥) 등의 유능한 장수들을 파견하여 그 성을 지키게 하였다. 또한 경상도 수군의 방비도 강화시켰다. 당시 전라 좌수영과 전라우수영의 수군이 판옥선 25척씩으로 조직되었던 데 반하여, 경상좌수영과 경상우수영의 수군은 판옥선 75척씩으로 조직되어 경상도 수군은 150척에 달하는 대군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대군도 무능한 장수 밑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경상도를 지키던 박홍(朴泓)과 원균 (元均)은 왜군이 부산포 앞바다에나타나자마자 제대 로 싸워 보지도 않고 모든 배들을 물에 가라앉히고 는 1만이 넘는 수군을 해산시켜 버렸다. 박홍은 한 동안 실종되었으며(훗날 박홍은 그 엄청난 군죄에도 불구하고 선조의 아낌을 받아 그를 보좌하게 된다), 원균은 불과 3척의 전선만을 거느리고 전라도로 도 피를 한다.
조선에 제1진으로 몰려온 고니시의 병력은 90척에 불과하였고 그나마 대부분 전선이 아닌 수송선이었 으므로, 본격적인 전투를 벌였다면 대포 하나 제대 로 갖추지 못한 왜의 수군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 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미리부터 겁을 먹고 그런 어리석은 짓을했을까?
이 또한 유정이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 다.
서산대사가 말을 이었다.
“인간의 본성이 강하고 절개가 대쪽 같다면 그 어떤 사마(邪魔)도침범하지 못하지만, 본성이 약할 때에 는 외력에 좌우되기 쉬운 법. 박홍과 원균이 설령 비겁자라 해도 그토록 나약한 태도를 취한 데에는필 경 곡절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기가 어 그러지고 있는게야…….”
유정은 서산대사가 능히 천기를 짚어 앞 일을 예언 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서산대사 의 입에서 천기가 어그러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자, 유정은 새삼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그런 일들이 천기를 어그러트린 일들이었사옵니까?”
서산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들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니 라…. 그러니잘 살펴보아야 할 것이야. 승군의 참 여는 비단 군사수를 늘리는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니라. 승려들의 힘이라야 될 일들이 있어. 그알 수 없는 힘들에 저항하려면, 일반인들보다는 그래도 도를 닦은 승려들이 낫지 않겠느냐?”
“정말 인간의 힘이 아닌 어떤 힘이 개입했다면・・・・・・ 우리로서도 역부족이 아니겠사옵니까?”
“설사 그렇다라도 하는 데까지는 해 보아야지. 내 이미 선가(家)와 도가(道家)의 분들께도 기별을 보냈느니라. 그쪽에서도 천기를 누설하지 않고 사람 들에게 위기를 알리려 애쓴 모양이다만…………….”
“하기는 난리가 나기 전부터 징조가 많이 보였습니 다만………… 사람들이 하늘의 소리를 듣지 않고 경계를 게을리 하였으니………….”
유정은 말꼬리를 흐렸다. 이미 왜란이 나기 전부터 난리의 조짐이라 할 만한 일들이 수도 없이 나타났 다. 그 많은 일들 중 유정의 머릿속을 스치는 일이 있었다.
조선을 건국하였던 태종대왕은 임인년(1422년) 오 월 초열흘에 한재(旱災)가 매우 심할 때에 붕어하였 는데, 태종은 한재를 비관하여 자신이 죽은 후 이 날에는 꼭 비가 내리게 하겠다고 하였다. 그 후 이 백여 년이 지나도록 오월 초열흘이 되면 꼭 비가 내렸으나 임진란이 일어나기 직전인 선조 신묘년 (1591년)에 이르러 비가 내리지 않더니 다음해에 왜란이 일어났다. 이것은 많은 조선 백성들이 알고 있던 유명한 이야기였다. 또한 선조 십육년(1583 년)에는 갑산 땅에 커다란 귀신이 백주에 나타났는 데, 머리는 잔뜩 흐트러뜨리고 커다란 이를 드러내 었으며 왼손에는 바가지를 들고 오른손에는 불덩어 리를 들고 성 안을 활보하니 사람들이 놀라 숨지 않 는 이가 없었다. 성중에서는 군대를 동원하여 북을 치고 활을 쏘았어도 쉬이 없어지지 않다가 글 잘하 기로 이름 높던 허봉()이 귀신 쫓는 글을 지어 겨우 쫓았는데, 역술에 능했던 수암(守菴) 박지화 (朴枝)가 이를 보고 십 년 내로 큰난리가 날 징조 라 예언했었다. 유정은 수암을 만나 그가 탄식하는 것을 들은 바가 있었다. 또 <초씨역림(焦氏易林)>이 라는 책으로 점을친 결과 다음과 같은 해석이 나왔 다.
– 세상이 말세가 되어 모두 형식에만 흐르매 넘어진 시체는 삼 대와 같고, 피는 흘러 절굿공이가 떠내려 갈 것이며, 아이를 낳으면 어미만 알고 아비는 모르게 될 것이니 그 다음에야 난리가 다할 것이다. 그 밖에도 많은 조짐들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불길 한 것들이었다.유정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 다.
‘백성들이 얼마나 많은 피해를 입은 후에야 난리가 끝날지 모르겠구나…….’
유정이 암담한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서산대 사가 물었다.
“그런데, 해동밀교(海東密敎)에서는 아직 기별이 없 느냐?”
해동밀교는 대략 신라 때부터 내려오는 종파로, 밀 교의 진전을 이어받아 술법에 능한 비밀 종파였다. 이 종파와 교류가 있었던 서산대사와 유정은 그곳의 주술과 술법들을 상당수 배우기도 했다. 후에 유정 은 왜국에 사신으로 가서 많은 이적을 행하였는데, 그때 보인 유정,즉 사명대사의 신통력은 거의 해동 밀교의 주술에 의한 것이었다.
“해동밀교에는 무애를 보냈습니다만, 아직 당도하지는 않았사옵니다. 아마 지금쯤은 충청도 변경에 도 달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산대사는 고개를 갸웃해 보이고는 다시 고개를 끄 덕이며 말했다.
“조금 늦어지는구나…………. 좌우간 승군의 조직부터 서둘러야 한다.그리고 무애가 도달하면 반드시 나에 게 알리도록 하거라.”
“예.”
유정은 서산대사에게 합장을 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