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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14화


‘시호임이 틀림 없다!’

이것은 필경 죽은 후에 그 사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붙이는 시호(諡號)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 은 미래에 보아 그런 것 뿐이오, 지금 당장은 그 사 람이 죽지 않았을 것이 아니겠는가? 시호는 죽은 후에 붙여지는것이니 지금 시호를 알앗다고 그 사람이 누구인줄을 어찌 알 수 있겠는가?

호유화는 발을 동동 굴렀다.

‘망했다! 망했어! 그럴 줄 알았으면 조금만 더 참 고 그 아래 이름까지 보는 건데! 이를 어쩐다. 그렇 게 명백히 투시가 되는 일은 다시는 없을지모른다. 이제 망했구나!’

호유화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다가 다시 호유화 는 마음을 가라 앉혔다.

‘아니다. 꼭 ?ᄆYW 것만은 아니다. 시호가 충무 공인 것으로 보아, 그리고 전쟁을 한 그림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왜란종결자는 무장(武將)임이 틀 림 없다. 그러니 이항복이나 이덕형은 결코 아닐 거 야!’

그리고 호유화는 조금 더 마음을 가라 앉히고 생각 을 해보았다.

‘그리고 분명 그 사람은 백전불패 했다고 했다. 그 러니 조선 땅에서 한번이라도 싸움에 진 사람은 그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신 립도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조선에서 누가 지금 이긴 적이나 있나? 한번도 조선군이 이겼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는데…’

호유화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은동은 고통스럽게 중얼거리다가 지금은 잠잠했다.

‘어쨌거나 빨리 태을사자와 흑호를 찾아 보아야 겠 다. 그리고 은동이를 살려야 한다.’

은동에게로 생각이 미치자 호유화는 차라리 운동을 인간의원에게 맡기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 다. 그러면 자기보다는 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난리가 난 통에 의원을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고 자 신의 의술에지식이 없으니 돌팔이에게라도 맡기면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자기가 벌을 받더라 도 금강산으로 돌아갈까? 하지만 그것은 조금 망설 여졌다. 그러던 중 갑자기 묘안이 떠올랐다.

‘아! 그렇다! 태을사자와 흑호는 어가의 몽진길을 따라간 것이다. 그러니 임금을 보살피는 어의가 일 행중에 있을 것이 틀림 없다. 그러니 그놈을 잡아다 가 은동이를 치료해주게 하면 되겠구나!’

마음을 정한 호유화는 은동을 안고 바람같이 달려 갔다. 호유화가 필생의 힘을 다해 달리자 그 속도는 말이 달리는 것보다도 열 배는 빨랐다. 달리면서 호 유화는 신경을 극도로 써서 태을사자와 흑호의 자취 를 찾으려 하였으나 그 둘은 도력이 높고 암행하고 있는지라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호유화는 조선의 상감을 찾았다. 호유화의 법력을 극도로 쓰면 사방 이십리 안의 존재는 대강 정탐이 가능했다. 하물며 조선 상감이라면 많은 수행원이 잇을 것이고 신하들 중에 뛰어난 자들도 많을 것이니 찾기가 쉬울 것이 었다. 잠시 후 호유화는 조선상감의 자취를 잡아 내 었다. 그는 이미 한양을 떠나 한참 북상하여 대동강 가에 있는 듯 싶었다.

‘됐다! 가면 태을사자와 흑호도 있겠지.’

호유화는 그야말로 화살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갔 다.

호유화는 어가를 따라 잡는데 성공했다. 그때의 날 짜는 5월 24일이었다. 선조의 어가는 5월 7일에 평양에 도달한 것이다. 그때는 많은 사람들이 어가를 따라왔고 또 개성에서 황해도 병정 7000명을 모집하여 올라온뒤여서 그리 급한 형국은 아니었다. 허나 적이 임진강 가에 바싹 이르렀고도원수라 이름 붙은 김명원은 싸울 생각도 없이 계속 도망치며 무 의미하게군사만 흩고 있었다. 그리고 조정은 영의정 이산해의 파직을 요구하는 청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 으며 적이 평양까지 쳐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 위기로 가득하였다. 호유화는 일단 어가 부근까지만 오면 태을사자와 흑호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 하였는데 막상 달려왔는데도 태을사자나 흑호의 모 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 이게 뭐야? 둘이 어딜 간거야?’

호유화는 혹시 그들이 마수에게 당한 것이 아닐까 하여 급히 마기가 떠도는지를 살폈다. 과연 군데군 데 마기가 느껴지기는 하였지만 마수가 나타난 것 같지는 않았다. 아마도 예전의 신립이나 금옥의 경 우처럼 마기에씌인 자들이 있는 것 같았다.

‘조정에도 마기에 씌인 놈들이 몇 있구나. 다 죽여 버릴까.’

호유화는 눈꼬리를 올렸지만 은동의 상처가 급박한 판이라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호유화는 일단 없어 진 놈들(흑호와 태을사자)은 나중에 찾아 혼을 내주 마 생각하고는 일단 행재소(몽진한 선조가 집무를 보던 이종의 임시궁궐) 안으로 뛰어 들었다. 경비가 자못 엄중했으나 호유화에게 비할 것은 전혀 못되었 다. 호유화는 은동을 치료하기 위해 의원을 잡으러 들어간 것이다. 의원을 찾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 았다. 호유화는 생계에온 후 생계의 존재처럼 몸이 생겨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몸을 감추기는 어려웠 다. 그러나 워낙 둔갑술이 능한 호유화는 휙하고 한 무리의 순라를 도는 군졸로 모습을 바꾸었다. 둔갑 술이 고명하면 모습을 바꾸는 것은 할 수있지만 호 유화는 꼬리까지 동원하여 최고 열 명까지의 사람으 로 둔갑을 할수 있었으니 그런 재주는 정말 우주 전 체를 통틀어서도 드문 것이었다. 후각이 예민한 호 유화는 그 다음 약냄새를 찾았다. 사람들은 순라를 도는 한무리의 군졸을 조금도 의심하지 못했다. 한 참 약냄새를 따라가다 보니 호유화는 자연히 의원들이 있는 곳으로 간 것이다. 그러다보니 부상당한 장 수들과 신하들, 기타 많은 사람들의 상처를 돌보고 있는 몇몇 의원들이 보였다. 시국이 급한 판이라 행 재소에서는 전상을 당한 부상자들을 모다서치료하고 있었던 것이다. 호유화는 다시 훌쩍 둔갑술을 풀고 부상자들 말단에 역시 피투성이가 된 부상자의 모습 이 되어 누웠다. 원래 호유화는 남자의 모습으로 변 하는 것을 극히 싫어했지만 여기서는 방법이 없었 다. 그리고 호유화는 누굴 잡아갈까 생각하며 잠시 의원들이 진맥을 하고 침을놓으며 처방을 부르는 것 을 지켜보았다. 호유화는 의술을 몰랐지만 침을 놓거 나 진맥을 할 때 표정만 슬쩍 보더라도 그들이 주저 하는지 아닌지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었다. 가만 보 니 그 중 한 의원이 나이는 그렇게 많지않았지만 실 력이 대단한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를 허주부라 부 르는 듯 했다. 호유화는 급박하여 그를 대번에 잡아 갈까 하였으나 생각을 돌렸다.

그를 이 자리에서 그냥 잡아가면 사람들이 놀라 난 리를 칠 것 아닌가? 생각한 호유화는 휙 법력을 가하여 암암리에 그 자와 꼭같이 생긴 분신 하나를 만 들었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자의 뒷덜미를 쳐서 의식을 잃게 만들고는 역시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빠르기로 그 의원과 분신을 바꿔치기 했다. 그리고 분신을 조종하여 이렇게 말하게 했다. “내 잠시 측간에 다녀오리다.”

그러자 다른사람들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말했 다.

“그러시오. 허주부. 너무 무리하시었소. 조금 운동 삼아 산보라도 하고오시오.”

호유화는 잘 되었다 싶어서 그 의원의 늘어진 몸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 의원의 몸은 허공으로 띄워 두 었다가 사람들의 이목이 보이지 않는 틈을 타 들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 려와서 호유화는 얼핏 몸을 숨겼다. 그러나 의원의 몸이 있어서 함부로 둔갑할 수는없었다. 호유화는 둔갑술을 펼치자 의원의 몸을 속에 넣고 바윗덩이로 변했다. 그러자 몇몇 대신들인 듯한 사람들이 수근 거리며 급한 발걸음으로지나갔다. 그 뒤를 몇몇 내관들과 군졸들이 따르고 있었는데 모두가 놀라고 무 서워서 떠는 것 같았다.

“사초를 적다가 괴변을 보았다구요?”

“그렇소이다. 갑자기 미친 바람이 일면서 오싹한 기운이 덮치는 것 아니겠소? 거기에다 책자며 문서 들이 휘날리고 문이 저절로 여닫히는 등 괴이하기 이를데 없었소이다..”

호유화가 들어보니 일어난 괴변이라는 것이 단순한 귀신의 장난같지는않았다. 오히려 누군가 생계의 존 재가 아닌 것들이 법력을 기울여 싸운 것같았다. 호 유화는 경험이 많고 생계에서도 과거 여러번 겨룬 적이 있기 때문에 몸이 없는 존재들이 법력을 겨룰 때 그것이 인간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사계의 존재등이 법력으로 싸우면 물체에는 영향을주지 않고 다만 괴이한 힘이 느껴질 뿐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호유화는 덜컥 가슴이 내 려 앉는 것 같았다.

‘가만. 이거 혹시 태을사자가 마수놈과 맞붙은 것 아냐? 그게 아니라면 달리 이런 일이 일어날 이유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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