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4권 – 15화 : 은동을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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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15화 : 은동을 구하다.


은동을 구하다.

은동이 갸날픈 신음소리를 내자 호유화는 의원을 죽이려던 것도 잊고얼른 은동에게 다가갔다. 

“은동아! 어때? 정신이 드니? 응?”

말하면서 호유화가 언뜻 보니 샘처럼 솟구쳐 오르던 은동의 출혈은 이미 거의 멎어 있었다. 호유화가 잡 아온 의원의 의술은 정말 용한 것 같았다. 은동은 인혼주에서 얻은 거대한 힘으로 자신의 몸을 찔렀으 므로 중상도 이만저만한 중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의원은 다른 약조차 쓰지 않고다만 침술만으로 일단 은동의 출혈을 멎게 한 것이다. 은동은 신음소 리를내면서 무어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으나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호유화는 안타까와 발을 동동 구르다가 다시 의원에게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마치 의원을 잡아먹을 듯이 소리를 쳤다.

“어떻게 좀 해 봐! 살려 내라구!”

그러자 다소 어리둥절한 기분으로 있던 의원은 간신 히 입을 열었다.

“일단.. 어흠..흠…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소. 지금 이런 산 속에서 어떻게 더 이상의 치료를 한단 말이오? 이 환자를 구하고 싶다면 어서환자를 집 안으로 옮기고 약을 써야 할 것이오.”

“집? 그런 거 없어!”

그러자 의원은 조금 정신이 드는 듯 싶었다.

“아니, 보아하니 상처가 매우 중하고 또 무슨 병기 같은 것에 상한 듯싶은데… 그럼 어디서 온거요? 그리고… 그리고…”

의원은 잠시 말을 더듬다가 다시 말했다.

“나는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이오? 나는 분명… 어 허.. 어건 꿈이 아닌가?”

그 사이에 호유화는 잠시 머리를 굴렸다. 이 의원은 자신의 진면목을 보았으니 그냥 둘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의원은 재주가 비상하니 이 의원을 없애면 은동을 치료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일단은 은동을 살려놓고 보아야했다. 그래서 호유화 는 다시 얼른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하면 이 의원의 의심도 사지 않고 은동을 치료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어허… 내가 어째서 이런 곳에 와 있을까… 못된 여우에게라도 홀린것은 아닐까?”

‘뭐야?’

호유화는 ‘못된’ 여우에게 홀렸다는 이야기를 듣자 순간적으로 발끈했다.

“좌우간 어서 고쳐! 고치지 못하면 가만 두지 않을 거야!”

그러나 의원은 그다지 놀란 것 같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호유화를 타이르는 것이었다.

“지금 일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좌우간 이 환자는 몹시 용태가급하오. 그러니 소리치지 마시 오!”

하면서 의원은 잠시 중단했던 침을 다시 은동의 몸에 놓기 시작했다. 의원은 몹시 놀라서인지 아니면 침을 놓느라 정신집중을 해서인지 온 몸이금새 땀으 로 흠뻑 젖었다. 그것을 보고 호유화는 속으로 감탄 했다. 지금분명 이 의원은 제 정신이 아닐터인데도 앞에 위급한 환자가 있는 것을 보고 자신의 일은 뒤 로 미루고 환자부터 살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음. 내가 사람은 제대로 잡아 왔군. 그나저나 못 고치면 국물도 없어.’

의원은 비지땀을 흘리면서 세 번이나 은동의 전신에 침을 놓았다. 그리고는 호유화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일단 어떻게 된 것인지 말 좀 해보시오. 나는 어떻 게 여기 오게 된거요? 그리고 당신은 대체 누구 요?”

“저..저는…”

“혹시 요물이라면 허튼 수작을 부리지 말고!”

호유화는 다시 요물이라는 소리를 듣자 화를 낼 뻔했으나 은동을 생각하고 간신히 참았다. 그리고는 곧 태도를 바꾸어서 지극히 슬픈 목소리로말했다.

둔갑뿐만이 아니라 가성(假)을 내는 데에도 호유 화를 따를 자가 없었다.

“놀라지 말고 내 말을 들어 보시오… 나는 실은 산 사람이 아니오.”

그러자 의원은 움찔하고 놀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보니 이 여인은 비록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아름답기 그지 없었으나 어딘가 풍기는 기운이 수상한데다가 길게 늘어진 백발 등이 보통 사람같아 보이지는 않 았다. 더군다나 자세히 보니 여인의 몸은 앉은 자세 를 취하고 있었으나 땅에 붙어있지 않고 허공에 한 뼘 가량 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호유화가 법력 으로부린 수작이었지만 의원은 소스라치게 놀라는 듯 했다. 그런 판에 기절이라도 하지 않는 것이 다 행이었다. 좌우간 호유화는 계속 말했다. 물론 호유 화 특유의 그 거짓말로.

“저는 이 아이의 어미가 됩니다…”

“그..그런데.. 산 사람이 아니라면…”

의원이 더듬거리며 말하자 호유화는 슬픈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이미 왜놈들의 손에 죽어 천지간을 떠도는 원귀가 되었습니다…

이제 제 혈육이라고는 이 아이 밖에는 남지 않았사 온데.. 이 아이마저도왜병들에게 해침을 입어서…”

호유화는 말꼬리를 흐리면서 주루룩 눈물을 흘렸다. 여인들은 마음만먹으면 아무때나 눈물을 흘릴 줄 아 는 사람이 많다. 하물며 호유화에 있어서야 그런 일 은 몹시 쉬운 것이었지만 의원은 정말 마음이 감동 되는 듯 했다.

“허… 그러면 아들을 구하고자 세상에 나와서… 나 를 불렀단 말이오?”

“그… 그렇습니다…”

그러자 의원은 잠시 입을 다물고 뭔가 생각하는 듯 했다. 호유화가 슬쩍보니 의원은 정말 마음속으로 몹시 감동된 듯 싶었다.

‘그래. 어서어서 많이많이 감동해라. 그래서 얼른 은동이나 고쳐달라구.’

호유화는 여전히 슬픈 듯, 흐느껴 우는 듯 어깨를 들먹거렸다. 그러자의원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감동된 듯이 말했다.

“그 정성이 정말 놀랍고 지극하구려… 허나…”

“무엇인지요?”

그러자 의원은 다시 은동의 맥을 몇 번이나 짚어보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힘들겠소… 이미…”

그러자 호유화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 자식이 지금 어디서 수작을 부리려고! 못 고치기만 해봐 네놈을 발기발기 찢어서 잡아 먹어 버릴테니!’

욕설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호유화는 간신 히 참았다. 그리고매달리듯이 의원의 옷깃을 부여잡았다.

“힘.. 힘들다니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자 의원은 퍽 침울한 표정이 되어 호유화의 손 길을 떨치려고조차하지 않고 말했다.

“상처가 너무 심하여 자신이 없소이다… 지금 당장 이라도 손을 쓰지않으면 안될 듯 한데… 어찌하여 나를 데려오셨소.. 허 참..”

“그게 무슨 말씀이옵니까?”

“나는 일개 주부에 불과하오. 어의 양예수 어르신이나 이명원, 이공기등 나보다 나은 의원들이 얼마든 지 있는 터에 어찌하여…’

‘겸손 떤다고 누가 알아주냐? 경황이 없는 판인데 그럼 너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

호유화는 속으로 다시 중얼거렸으나 역시 간신히 꿀 꺽 삼키고는 다시아양을 부렸다. 자존심이 강한 호 유화로서는 만약 자신의 목숨이 걸려 있었다면 절대 이렇게까지 아첨을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은동의 문제가 되자 이상하게도 그런 자존심마저도 쑥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아니옵니다. 아니옵니다! 어르신의 솜씨가 제일 뛰어나답니다! 저는산 사람이 아닌데 제가 그것도 모르겠습니까?”

“말도 되지 않는 소리요. 나는….”

“아닙니다! 나으리는 반드시 크게 되실 분입니다! 순간 호유화는 눈을 크게 떴다. 물론 방금 그 말은 아첨으로 한 말이었지만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자 신의 몸과 동화된 시투력주의 능력이 발동된 것이 다. 미래의 투시란 것도 묘한 것이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마음 먹은 것을 읽기 어려운 반면 생각지도 않 았는데 훌쩍 미래의 내용이 보이는경우도 있다. 이 번의 경우도 그러했다. 순간적으로 호유화는 물론 우연의 일치이기는 했으나 자신이 허황된 말을 한 것 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사람은 분명 후세에 이름을 남길 사람이었다! 400년이 지난 미 래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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