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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19화


“지진술!”

그러자 흑호가 내려진 땅바닥이 갑자기 우르릉거리 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무들이 흔들리며 잎새들이 와르르 떨어지고 백골귀들이며 시백인들도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그러나 흑호가 이번에는 공력을 끌어 모아 왼 손으로 한번 더 땅을 쳤다.

“갈라져랏!”

흑호의 호통이 떨어지자 갑자기 우르릉 하는 천둥같 은 소리와 함께 땅바닥이 쩍쩍 갈라지면서 틈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아까 삭풍술에 밀려났던 뼈 무더 기들이며 중심을 잘 잡지 못하고 있던 백골귀들이 그 갈라진 틈으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마음 같 아서는 땅을 잔뜩 벌려서 백골귀며시백인들을 모조 리 매장시켜 버리고 싶었으나 흑호는 공력이 탈진해 짐을느끼며 왼손을 떼었다. 그러자 갈라졌던 땅은 다시 우르릉 거리며 닫혀갔다. 그 안에 끼었던 백골 귀며 시백인들이 허우적거렸으나 놈들은 모조리땅 속에 밀려 깊숙히 묻혀버리고 만 것이다. 그 다음 땅은 원상대로 다물어져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 았다. 그러나 그렇게 없어진 백골귀들은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흑호는 아랫배가 허전해지는 것을 느 껴서 속으로 뜨끔했다.

‘에쿠쿠. 너무 잘난척하고 큰 술법을 썼나보다. 아 직 반이나 남았네 그려. 공력도 없는데 이 일을 어 쩐다?’

그러나 흑호가 언뜻 놈들을 돌아보니 놈들은 흑호 에게 다가들지 않고멈칫한 상태로 있었다.

‘그러면 그렇지. 나의 엄청난 법력을 보고 기가 죽었구나. 허허허.’

그런데 언뜻 다시 생각해보니 놈들은 이미 죽은 후에 조종을 받는 것이라 지능이 없고 무서움이란 것 을 모르는 놈들이었다. 그런 것들이 겁을 먹을 리는 없었다.

‘그러면 놈들을 숨어 조종하던 주술사 녀석이 질렸 나보지. 좌우간 그렇다면 허세라도 한 번 부려 볼꺼 나?’

흑호는 선뜻 어깨에 힘을 넣으며 앞으로 나섰다. 그 러자 놈들은 주춤하더니 덩달아 한 발자국 물러서는 것이다. 그러자 흑호는 호탕하게 껄껄 웃으면서 다 시 땅을 칠 듯 겁을 주어 보았다. 그러자 놈들은 갑 자기 뒤로 돌아서더니 다시 휘청휘청하면서 오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이놈덜! 어디를 도망가느냐! 한 마리도 놔주지 않 을라!”

흑호는 외치면서 도망치는 백골귀 녀석들 몇 마리 를 후려갈겼다. 해골바가지가 퍼석 부숴지며 데구르 르 굴러갔다. 흑호는 해골바가지가 부숴지는 것이 재미있어서 다시 몇 놈을 잡아 박살을 내려고 했으나 갑자기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멈칫했다. 

“이제 그만 두어라. 그런 졸개들을 건드려서 뭐하느 냐?’

그 소리는 크지는 않았고 나직한 목소리였으나 엄청 나게, 상상도 할 수없을만큼 크고 울리는 목소리였 다. 흑호는 자신도 모르게 부르르 몸을 떨며 뒤로 몸을 돌렸다. 그러나 그럭저럭 달빛을 받아 환하던 뒷편이 온통시커멓게 되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노라하는 흑호로서도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누..누구여! 뭐여?”

흑호가 소리를 지르자 다시 그 커다란 목소리가 울 려왔다. 커다란 범종(梵鐘) 수십개를 동시에 치는 것 같은 울림이랄까? 그러나 그 울림은 자신의 그 냥 뒤가 아니라 자신의 위쪽에서 울려오고 있었다. 흑호는 얼른 위를올려다보고 자신도 모르게 헤엑 하 는 소리를 냈다.

자신의 뒤가 어두워진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뒤에 거대한 형체를 지닌무엇인가가 서 있었던 것이다.

그 형체는 엄청나게 거대하여 길이가 수십장은 될 것 같았다. 처음 언뜻 보아서는 몸체가 어떻게 생겼 는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컸으나 차츰 뒤로 물 러서며 자세히 보니 그 형체는 지느러미 같은 다리 가 뻗어 있고 목이 긴 물짐승의 형태였다. 몸은 비 교적 가늘고 길었으며 어디까지 뻗어 있는지 보이지 가 않을 정도였다. 흑호의 머리한참 위에 세워진 머 리조차 흑호의 몸보다 대여섯배는 클 법 싶었다. 

“너.. 너는 무어여?”

그러자 그 거대한 존재는 익살맞게 말했다.

“내가 누구냐고? 그러면 너는 누구지?”

“나..? 나는 흑호라고 하는데..”

“그렇구나. 네가 계속 천지에서 치성을 드린 그 호랑이로구나. 흐음. 성역을 지키려고 저것들과 맞서 싸울 생각을 하다 니, 제법 기특하구나.”

흑호는 물론 성역인 천지가 놈들 발에 밟히는 것이 싫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놈들이 자신을 따라 오는 줄 알고 놈들에게 달려든 것이다. 하지만이 거대한 녀석은 흑호가 다만 치성을 드리다가 성역을 지키려 고 백골귀등과 싸운 줄 아는 모양이었다. 보통의 존 재라면 그냥 아무말 하지 않았을것이나 원래 단순한 흑호는 그냥 무심코 한 마디를 내뱉았다.

“꼭 그런 건 아니유. 나는.. 그냥. 방해받는게 싫어 서…”

그러자 거대한 존재는 갑자기 흥흥흥 하면서 명랑하 게 종이 울리는 것같은 기이한 소리를 냈다. 아마도 웃음소리인 모양이었다.

“그래? 그러냐? 흥흥흥…”

“그런데 댁은 누구냐니깐?”

그러자 거대한 존재는 웃음을 그치고 말했다.

“나는 천지를 지키는 수룡(水龍)이다. 아름은 하일 지달(河逸)이라고 하지.”

“수.. 수룡?”

흑호는 그제서야 아하 하는 소리를 냈다. 백골귀들 이나 시백인 들은 자신을 두려워해서 도망친 것이 아닌 듯 싶었다. 흑호의 술수에 놀랐다기 보다는 바 로 이 하일지달의 거대한 형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놀란 것이 분명했다. 물론 백골귀들은 지능이 없 으니 놈들을 어디선가 조종하던 주술사 녀석이 본 것일테지만.. 하긴 하일지달이 지느러미 같은 발 한 번만 놀려도 백골귀 놈들은 그야말로 납작하게 깔려 가루로 부스러질 것 같았다.

그것도 한 번에 열마리 정도는 충분히. 그러자 우쭐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제기. 정말 크네.”

“흥흥흥…”

흑호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올렸다. 그 거대한 존재 의 얼굴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일지달 의 머리는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흑호는 위로 휙 하고 뛰어 올랐다. 하일지달 의 얼굴을 보고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흑호가 위 로 뛰어 오른 순간, 하일지달의 거대한몸은 거짓말 처럼 사라져 없어져 버렸다.

“에엑? 어찌 된 거야?”

흑호의 몸은 다시 아래로 떨어져 원래의 자리에 내 려섰다. 그런데 그곳에 자기만한 덩치의 처음 보는 기이한 짐승이 있지 않은가? 목을 길게 뺀그 짐승 의 얼굴은 사람과 무척 흡사했다. 그것도 여자의 얼 굴 모습과. 그짐승의 몸은 잘 보이지 않는 비늘과 색색의 가늘고 섬세한 털로 덮여 있었고 전반적으로 물짐승처럼 매끄러워 보였다. 그 짐승은 미소를 지 은 채 흑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라라… 네가.. 아니 당신이 하일지달?”

“맞다.”

“음냐. 아니 어떻게 커졌다 작아졌다 하지?”

“그것이 용의 특기야. 너는 그것도 모르느냐? 벌레 만큼 작아질 수도 있고 하늘을 덮을만큼 커질 수도 있단다. 흠. 나는 너를 생각해서 좀 더 가깝게 이야 기를 나누려고 작아진 건데, 불만스러우면 도로 커 지겠다.”

그러자 흑호는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니아니. 안그래도 되우. 지금이 좋수. 그런데 하일지달… 으음. 뭐라 불러야 하나?”

“너나 나나 금수인데 인간들처럼 격식을 찾느냐? 그냥 이름을 불러라.”

하일지달은 아까 거대한 덩치일때는 몰랐는데 퍽 장 난스러운 것 같았다. 거기다가 체구를 작게 하고보 니 흑호의 눈에는 몹시 예뻐 보였고 귀엽다는 생각 마저도 들 정도였다. 그리고 아까는 사방이 울릴만 큼 목소리도컸었으나 목소리도 갸날퍼져서 조그만 방울이 댕그렁 거리며 울리는 것 같아 듣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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