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4권 – 29화 : 중간계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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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29화 : 중간계로 가다


중간계로 가다.

– 얘야.. 얘야..?

은동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조금 정신이 들었다. 누굴까? 그 목소리는 여자의 목소리 같았는데 생전 처음 듣는 음성이었다. 아니, 예전에 저승에서 전심 법의 소리를 듣던 것처럼 귀가 아니라 마음 속으로 들려오는목소리인듯 했다.

눈을 떠보아라. 그리고 일어나려무나.

누군가가 은동의 눈 주위를 슬쩍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은동은 눈을번쩍 뜰 수 있었다. 그런데 눈을 뜨고 은동은 어 하고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여기가 어디지?’

은동이 있는 곳은 한번도 와보지 못한, 아니, 꿈에 서도 보지 못했던 이상한 곳이었다. 오색구름과 따 사로운 밝은 빛만이 사방을 가득 메우고 있는 곳. 구름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어디지? 내가 죽은 건 아닐까?’

그러나 은동은 이미 저승에 가본 일이 있었다. 저승 의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 저승과 흡사한 느낌 있 었으나 저승보다 훨씬 밝고, 따사로운 느낌이 가득 한 곳이었다. 은동은 죽지 않았으면 이것이 꿈은 아 닐까 생각하여눈을 비볐다. 그러나 눈을 비비고 다 시 눈을 떠보아도 주위는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분 명 아까까지는 몹시 아프고 괴로웠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몸이 날아갈 것처럼 가뿐했다.

‘이거 어떻게 된거야? 정말 죽은건 아닐까? 죽어서 극락세계에 온 걸까?’

그러는데 다시 목소리가 들렸다.

– 얘야. 정신이 드느냐? ?면 잠시 나와 같이 가자꾸나.

“누구세요?”

은동은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 이상하여 크게 말했다. 그러자우군가가 은동의 뒤에서 은동의 뒷덜미를 톡톡 건드렸다. 은동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곳에는 키가 작달막하고 구불 구불한 지팡이를 짚은 아주 나이 많아 보이는 할머 니 한 분이 서 있었다. 할머니는얼마나 나이가 많은 지 짐작조차 하기 힘들 정도로 얼굴에 많은 주름이 덮여있었으나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할머니의 주 름진 얼굴은 몹시도 선하며 인자해보였다. 이상한 것은 할머니의 얼굴은 분명 난생 처음보는데도 어디 선가 본 듯 하고 낯이 익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할머니는 누구세요?”

“나? 호호호… 나를 모르니?”

할머니는 나이답지도 않게 수줍어하며 입을 가리고 웃었다. 비록 머리가 파뿌리처럼 새하얗고 주름투성 이였지만 젊었을 적에는 퍽 미인 이었을것 같았다.

은동이 그냥 눈이 둥그레져서 할머니를 보자 할머니 는 다시 웃었다.

“너는 내가 기억이 나지 않는가보구나. 하지만 나는

너를 잘 안단다. 네가 응애하고 태어날 적에도 옆에 있었는걸?”

“그런가요?”

은동은 좀 얼떨떨해졌다. 자신이 태어나는 순간을 기억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좌우간 이 할머 니 같이 마음 좋아보이는 분이 거짓말을 할것 같지 는 않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다시 싱긋 웃으며 말했 다.

“너는 은호가 맞지? 보통 은동이라고 부르고…” 

할머니는 은동의 내력에 대해 줄줄줄 말했다. 은동 이 들어보니 조금도틀림이 없었다. 그래서 은동은 물었다.

“그런데 할머니, 여긴 어딘가요? 저는 왜 여기 있지요?”

“너, 이 할미를 따라서 갈 데가 있단다.”

“어딘데요?”

“그건 설명하기 힘들구… 가겠니 안가겠니?” 

“글쎄요. 그건…”

할머니는 은동이 망설이자 씩 웃으며 말했다.

“너… 태을사자라는 저승사자를 알지?”

“네? 아 네.. 할머니가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러나 할머니는 은동의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다시 말했다.

“그리고 흑호라는 호랑이도 알지?”

은동은 너무도 놀랐다. 그래서 대답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데 할머니는다시 말했다.

“호유화라는 구미호도 알구? 그렇지 않니?”

“하..할머니는…”

은동은 놀라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부쩍 의심 이 들었다. 혹시나이 할머니가 바로 그 마수들 중의 하나는 아닐까? 그러나 할머니는 은동의마음 속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얘야. 내가 그리도 흉악해 보이니?”

“아.. 아뇨… 그런건 아닌데…”

그러자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지우지 않고 말했다.

“나는 너와 같이 가서 너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런단다. 아주 중요한 일이라 그래.”

“중요한 일이라뇨?”

그러자 할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여간해서는 너같은 인간계에 사는 사람을 데려갈 수는 없단다. 그러나이번은 일이 일인지라 할 수 없 어서.. 그리고 너는 기왕에 아까 이야기한자들과 인 연을 맺어서 저승까지도 왔다갔다 하지 않았더냐?” 

“네.. 그건 그렇지만…”

그러자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 너는 그때와 비슷한 처지에 있단다. 그냥 꿈 을 꾼다고만 생각하면 그만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아무 염려마라. 너는 세상에서 아직 명이되지 않은 아이이니 절대 죽거나 위험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 다.”

그러나 은동은 아직도 그 할머니가 왜 자신을 같이 가자고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제가 왜 같이 가야 하는거죠?”

“아이야. 지금 네가 가지 않으면 일이 매우 어려워 질지도 모른단다. 태을과 흑호와 호유화를 구하려면 네 도움이 필요해.”

“네? 그들을 구한다구요? 아니 그분들이 지금 어디 에 있는데요?”

“같이 간다고 대답해주면 내 가면서 다 말해주마. 어떠니? 가겠니 가지않겠니?”

은동은 솔직히 아무리 인자하게 생겼다고는 해도 처 음보는 정체불명의할머니를 따라가는 것은 겁이 났 다. 더구나 지금 자신은 몸이 둥둥 뜨는것 같은 것 이, 저승에 갔을 적과 흡사한 상태였다. 그런데 이 할머니를 따라갔다가는 죽어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 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태을사자와 흑호가 뭔가 위험에 빠져 있다고 하니 외면할 수는 없었다. 사실은동은 호유화에 대한 미움은 아직도 지워지지 않아서 호유화는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러나 일단 생각하게 되자 은동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게 마음이 좁고 제멋대로고 사람을 해치는 요 물은 죽거나 살거나몰라! 아무리 예쁘고 나한테 잘해준 적이 있다고는 해도… 으음.. 하지만..’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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