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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34화


그리고 이덕형 등의 다른 신하들도 그에 동의하니 대세는 그쪽으로기울어지는 듯하였다. 특히 이항복과 이덕형은 지금의 상황에서는 명군의 참전이 반드 시 필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나라간에 병사를 빌리는 일은 그리 쉽게 결정을 내릴 사안이 아니었 다. 특히 선조는 그특유의 고집불통의 자존심을 내 세워 명군의 청병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 다. 그 탓에 시간은 자꾸만 지연되어 갔다.

그런 와중에도 허준은 매일 밤잠을 설치며 보냈다. 이상하게 지난번에 귀신이 맡기고 간 아이가 잘 회 복되어 가다가 느닷없이 의식을잃은 것이다. 원래 그 아이는 상처가 심하여 살기 어려웠으나 허준은탕 약의 명수인 이공기의 조력으로 간신히 그 아이를 살려놓는 데에 성공하였다. 그것이 벌써 사나흘 전 이었다.

그런데 잘 회복되어 조금만 있으면 의식이 돌아올 줄 믿었던 아이가 갑자기 인사불성이 되어 송장 같 은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어허, 이런 괴이한 일이 있는가?”

허준은 머리를 짜내어 갖은 방법을 써보았지만 아이의 상태는 차도가 없었다. 보다 못한 이공기가 허 준을 말릴 정도였다. 아이가 가엾은것은 이공기도 마찬가지였으나, 까닭 없이 마치 넋이 나간 것 같은 아이는 이제 의술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차라 리 굿이라도 하면 몰라도 말이다.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다 한들 천명은 어쩔 수 없는 법이네. 어째서그리 고민하는가?”

그러나 허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 아이는 살려야만 하네. 꼭 살려야만 해.”

허준이 보았던 그 귀신은 분명 허준이 이 아이를 살 릴 것이고, 장차 <동의보감>을 저술하여 많은 사람 을 구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나 이 아이를 살리지 못한다면 그 예언은 엉터 리가 되는 셈이고,허준이 일생의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던 <동의보감>에 대한 예언도 깨지는 것이 아니 겠는가? 그래서 허준은 초조한 것이었다.

침구와 탕약, 하다 못해 단방(單方)까지 사용해 보 았지만 아이는 깨어나지 않았다. (* 주 : 단방을 주 로 돌리세요. 단방은 한 가지만으로병을 다스리는 약으로 주로 자연물을 일컫는다. 요즘 사람들이 흉 하게생각하는 뱀, 벌레나 기타 조금은 혐오스러운 자연물들을 복용하는 것이 대부분의 단방비결이기도 하나 가짜가 많다. 그래서 아주 급한 경우가 아니면 제대로 된 의원들은 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어 허, 이거 정말 큰일인데…………….’

허준은 몹시 초조해하면서도 이것저것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주 깊 은 구석까지 진찰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아이의 체내에 묘한 기운이 잠재되어 있는 것을 느꼈다.

그 기운은 전부터 희미하게는 느껴왔던 것이었으나 있을 수 없는일 같아서 그냥 무시했던 것이다. 그러 나 아이의 상세가 점점 나아감에 따라 그 기운도 점 점 느낌이 명확해졌다.

‘아니, 이럴 리가? 이런 맥은 의서에서도, 어디에서 도 들어본 적도없는데……

분명 아이의 맥은 제대로 뛰고 있었다. 그러나 그 맥에는 여운이 있었다. 아이의 맥에 가려져 잘 알 수 없었지만 수십 명의 맥이 동시에뛰고 있는 듯한 기이한 맥이 조금씩 느껴지는 것이었다. 이런 일은 의서를 수없이 섭렵한 허준으로서도 들어본 일조차 없었다.

‘이건………… 이 아이의 몸 속에는 수십 명의 사람이 들어 있는 것 같구나. 어떻게 이런 기이한 일이 있 을 수 있단 말인가?’

허준은 기이한 느낌이 들어서 암암리에 한 번 실험 을 해보았다. 아이의 경혈을 침으로 자극하여 몸을 움직이게 하는 묘한 방법을 침술의 대가인 허준은 알 고 있었다. 경혈을 자극하여 아이의 손을 쥐게 만들 어 보았는데 아이의 힘이 무서울 정도로 강한 것 같 았다. 허준은 나무토막을 아이의 손에 쥐어 주었는 데 그 나무토막이 그대로 아이의 손아귀 안에서 으 스러지고 말았다.

‘어허! 이 아이는 장정 수십 명의 힘을 지니고 있구 나! 이런 놀라울데가 있는가?’

허준은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떨쳐 버릴 수 가 없었다. 이렇게 힘이 센 아이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아이의 어머니라고 나타났던 그 귀신도 예사롭지가 않았다. 그때는 믿어지지 않아 설마 하고 넘어갔지만 후에 생각해 볼수록 의심스러 운 점이 많았다.

처음에 그 귀신은 자신에게 포악하게 대했다가 나중 에 가서는 너무나도 극진하게 대했다. 그 귀신이 처 음부터 자신에게 예언을 하려고했다면 왜 처음에는 난폭했을까? 그 점이 허준의 마음에 걸렸다. 그러다 가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이 아이는 정말 사람일까? 아니야, 아니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것인가? 허나 보통 사람이라 고 보기에는 너무 기이한 점이 많다. 이 아이는 혹시 요물이 아닐까? 어허…… 아니야. 가엾은 병자를 놓고그런 생각을 하다니……. 내가 이상해지는가 보다. 그러나 이 아이는………..’

허준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냥 사람이 라고 하기에는아이의 출현이 너무도 기이했고, 아이 의 맥박이나 힘이 무척 강했다.

도대체 이 아이는 누구일까? 그리고 왜 자신에게 오게 된 것일까? 그리고 자신에게 예언했던 그 귀신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 들어 허준은 머리가 깨지는것 같았다.


은동은 집 안으로 들어가다가 놀란 나머지 입을 딱 벌렸다. 분명 밖에서 볼 때에는 그리 크지 않은 집 이었는데,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그곳은 집의 내부 가 아니었다. 사방에는 점점이 박힌 별들이 빛나고 있었으며 무한히 넓은 것 같은 방 안이었다. 밤하늘 의 한가운데로 들어온 듯한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팔각형의 바닥이 보였다.

은동은 지금 그 팔각형 중의 한 변 부근에 서 있었 다. 은동과 같이온 삼신할머니는 그 변의 바깥쪽의 허공에 앉았다. 각 변의 사이는 무척 멀어서 은동은 저편을 보기가 어려웠다. 삼신할머니의 옆쪽 변에는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빛을 내뿜고 있는 것이 있 었다. 무척 밝은 빛이었기에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는 볼 수 없었다.

그 다른 편의 변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은 동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여 다른 쪽 변들을 살펴보 았다. 빛을 뿜고 있는 변 너머에는한 무리의 사람들 이 있는 것 같았으며,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변의 너머에는 시커먼 구름같이 것이 뭉쳐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 구름으로 눈을 돌리자마자 은동의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그러자 삼신할머니가 얼른 은동의 어깨에 손을 댔다. 순간 따뜻한 기운이은동의 몸에 퍼지면 서 떨림이 멎었다. 그러자 삼신할머니는 은동에게말 했다.

“저쪽을 보지 마라.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란다.”

“여…… 여기가 어디지요?”

그러나 삼신할머니는 은동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조용히 하거라. 곧 시작할 모양이다.”

삼신할머니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은동의 몸이 저 절로 휙 옮겨져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었다. 은동이 거의 느끼지도 못한 순간적인 일이었다. 은동은 놀라서 뭐라 말을 하려 했지만 뒤 에서 누군가가 조용히 은동을 제지하며 나섰다.

“조용히 하려무나, 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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