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4권 – 41화
그러나 무명령도 지지 않았다. 기어코 호유화를 얽 으려고 작정한모양이었다.
“그럼 무엇이냐? 저 꼬마, 그리고 휴정(서산대사)과 유정이라고 하는조선의 중놈, 김덕령, 곽재우…………. 이런 녀석들에게 말한 것이 발설이아니냐?”
“그 이상은 말한 바 없어요! 그리고 그들은 천기를 이해하는 인간들이었어요! 보통 사람이 아니었단 말이에요!”
호유화는 잠시 머리를 휘저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러자 곁에있는 은동의 모습이 보였다. 은동을 보 는 순간 좋은 생각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어 떠올랐 다. 바로 <해동감결>이었다! 물론 은동은 아무 일 도 하지 않았지만 은동이 아니었다면 잊고 지나갈지 도 모르는 문제였다. 호유화는 새삼 은동을 향해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맙다, 은동아. 네 덕에 살아날 것 같구나!’
호유화는 고개를 휙 돌려 무명령을 날카롭게 쏘아보 았다.
“좋아요. 자꾸 나에게 죄를 씌우려는데, 그러면 <해 동감결>은 어떻게 할 거죠? 그걸 내가 썼나요?”
“그게 뭐냐?”
“예언서요! 조선에서 전해 내려오는 예언서라고 했 어요. 그리고 거기에는 내가 시투력주를 응용해서도 알아내지 못한 사실들이 잔뜩 씌어 있었어요! 바로 그것이야말로 천기였단 말이에요!”
“그게 천기였다고? 터무니없는 소리!”
그러자 태을사자가 나섰다.
“그렇지 않소. 무명령님의 말대로 호유화가 서산대 사와 유정, 김덕령, 곽재우 등에게 말한 것이 천기 누설의 죄라면 그것보다는 <해동감결>의 존재 문제 를 먼저 따져야 할 것이오. 중요한 것은 그들이 호 유화를 만나기 전부터 <해동감결>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이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해독할 방법을 찾고 있었소. 그러다가 이 아이,은동과 흑호가 얽혀서 그 뜻을 풀 이하게 되었던 것이오. 호유화가 그들을 만났을 때, 그들은 이미 <해동감결>을 해석한 뒤였소이다.” 증성악신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나섰다.
“그건 맞는 말이오.”
무명령이 분통을 터뜨리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러나 헛소리요! 어찌 생계 따위에 그런 것이 나 돈단 말이오?”
그러자 증성악신인은 차분하게 되받았다.
“생계의 존재들을 너무 무시하지 마시오. 성계나 광 계, 우주팔계의어느 존재도 생계에서 비롯되지 않은 것이 없소. 천기를 만드는 성계의 존재도 생계에서 비롯되는데, 생계의 존재 중 일찍 깨달음을 얻은존 재들이 천기를 하나도 알 수 없다고만은 보기 힘들 지 않겠소?”
무명령이 말문이 막힌 것 같았다. 그때 말했다.
“좌우간 호유화가 한 말이 맞다면, 생계에 천기를 누설한 죄는 아직까지는 없다고 보아야겠소. 어떻소?”
무명령은 조금 기가 꺾인 듯했다. 놈은 뒤를 돌아보 았다. 그 뒤에는흑무유자가 있었는데 아마도 그냥 넘어가라는 눈치를 주는 것 같았다.
그 모양새를 보고 성성대룡이 흥 하고 웃었다.
“우주 팔계가 별개의 세계라더니 꼭 그런 것 같지도 않군 그래.”
무명령은 그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말했다.
“저 꼬마는? 저 꼬마에게 호유화는 대천안통의 술법까지 써서 천기를 여러 번 이야기했소!”
그러자 삼신대모가 호유화를 감싸는 듯 말했다. “저 꼬마는 예외로 합시다. 저 꼬마가 그런 막연한 천기를 안들, 무엇을 바꿀 수 있겠소? 더구나 저 꼬 마는 증인으로 이 자리에 왔으니어느 정도 예외는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오.”
“흥! 저 꼬마를 그렇게 보아준다면, 태을사자와 흑 호라는 놈들도 그리 보아야 할 것 아니오?”
“태을사자와 흑호는 일단 심판이 남아 있으니 그 다음에 이야기해도 늦지 않을 것이오.”
삼신대모가 계속 받아치자 무명령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좋소. 그러나 호유화가 앞으로 인간들에게 시투력 주를 응용한 어떤 이야기라도 하게 되면, 그것은 천 기를 어긴 것이오. 중하게 심판 받아야 할 것이오! 저 꼬마도 마찬가지!”
호유화는 속이 뜨끔했다. 자신은 왜란종결자의 정체 에 대해 드디어 알아냈다. 그러나 그것을 상의조차 할 수 없게 된다는 것 아닌가? 그렇지만 별 수 없 는 노릇이었다. 일단 이 위기는 모면해야 하니까 수 긍해도 일단은 무방할 듯싶었다. 막 수긍하려는 순 간, 호유화는 기가 막힌 묘안이 떠올랐다.
“가만, 단 한가지는 그럴 수 없어요.”
“그게 무엇인가?”
“왜란종결자에 대한 것만은 안 됩니다!”
“왜란종결자? 그게 뭐야?”
“지금 조선에서 일어난 난리를 마무리 짓는 사람말이에요. 그 사람은 천기에 이미 정해져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에 대해서는 내가 누구에게도 아직 발설하지 않았어요. 그에 대해 알아낸 것이 바 로조금 전이었으니까. 그러나 태을사자는 그게 누구 인지 이미 알고 있으니 그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내 가 천기를 누설한 것은 아니에요!”
“그만!”
무명령이 노기가 치민 듯 외쳤다.
“너는 그러면서 그 왜란종결자라는 게 누구인지 말 하려는 것 아니냐! 어디서 술수를 부리느냐! 너는 천기를 방금 또 누설한 것이다!”
중간계에서 언쟁이 가열되는 동안, 이순신의 함대는 이미 바다에떠 있었다. 이미 날짜는 5월 29일. 이 순신은 새벽에 출항하여 곧장 나아가 노량에 도달하 여 원균을 만나고 있었다. 원균은 몸집이 매우 비대 하였는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매우 성정이 조급하 고 난폭한 사람이었다.
이순신은 원균을 무척 싫어했다. 그것은 고니시가 가토를 싫어하는것과도 비슷하였다. 원균은 성질이 급한다데가 공명심이 많고 공연히호언장담을 하는 등 성격이 제멋대로이고 난폭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조용하고 차분하며 꼭 해야 할 말 이외에는 하지 않 는 사람이었다. 이순신이 원균을 개인적으로 싫어한 것은 처음에는 원균의 행적 때문이었다. 칠십오 척 에 달하는 거대한 수군을 거느리고서 그것을 스스로 싸움 한 번 없이 가라앉히고 수군을 모두 해산시킨 자가 어찌 싸우겠다고 어슬렁거리며 나서는 것일 까?
그리고 지난번 해전을 치르고 보니, 원균은 전공을 다소 세우기는하였으나 그것은 명목뿐이었다. 원균 은 3척밖에 안 되는 전선을 몰고용감하게 적선에 돌진하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이순신이 함포로 부순 배에 난입하여 목을 베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 나 이순신은 그런것이 딱 질색이었다. 지금 조선군 이 살아나는 길은 목숨을 걸고 싸워서 왜군을 하나 라도 더 빨리 없애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전 공을 세우기 급급하여 목베기에만 신경을 쓰고 방심 한다면 숫자가 적은조선군은 언제 역습을 받아 혹독하게 당할지 모르는 판이었다. 이순신은 원균에게 그런 말을 해보려 했지만 원균은 여전히 헛소리만
하고있었다.
“목을 베지 않으면 상감께서 어떻게 기뻐하시겠소?”
그 말 한 마디가 끝이었다. 게다가 원균은 자신이 잘 싸워서 승리를거둔 것으로만 착각하고 있었으며, 대다수의 부하들도 그렇게 속고 있었다. 하긴 적선 에 난입하여 용감히 돌진하는 모습은 언뜻 보기에도 용맹무쌍한 모습으로 비춰지리라. 원균은 그 전법을 ‘당파전술’이라 불렀고 심히 자랑스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