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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51화


호유화가 조금 몸을 꿈틀하더니 힘겹게 눈을 떴다. “정말, 정말 그게…… 소원이니? 나를…… 나를 살 리고・・・・・・ 싶어?”

호유화가 다시 입을 열자 은동은 그제야 으아앙 하 며 울음을 터뜨리며 호유화에게 얼굴을 파묻고 마구 울기 시작했다. 그러자 태을사자가 슬며시 고개를 숙이며 갓으로 얼굴을 가렸고, 흑호는 와아아 하며 함성을 질렀다.

“살아났다! 살아났다!”

대뜸 삼신대모가 엄숙하게 말했다.

“아직은 모르네.”

그러자 좋아하던 흑호는 깜짝 놀랐다. 그리고 태을사자도 번쩍 고개를 들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 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삼신대모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신계의 전언이 있었네. 아주 드문 일이야. 몇백년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지.”

태을사자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신계라 하시면 팔계의 대표로 참석하신 신계의 대표 말씀입니까?그분은 아까부터 보이지도 않고 말씀도 없었는 …….”

태을사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삼신대모가 벼락같 이 소리쳤다.

“신계가 지고무상한 것이 공연히 그리 된 줄 아는 가? 함부로 말하지말게!”

그러고는 호유화의 손목을 잡고 눈을 감았다. 곧이 어 삼신대모의몸에서 은은한 빛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삼신대모가 눈을 떴다.

“호유화의 소멸은 일단 보류되었네. 신계의 뜻이네.”

그러자 흑호가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죽지는 않는단 거 아니유?”

“그것은 모르네.”

흑호의 눈이 대접만하게 커졌”엥? 그게 뭐여?” 

“신계의 의지로 호유화의 소멸은 보류되었지만 소멸

될지 않을지는알 수 없네. 그건 두고 보아야 해.” 

“뭐가 그런 게 다 있수? 좀 가르쳐 주시면 안 되 우?”

흑호가 자꾸 묻자 삼신대모는 다시 인자한 표정으로 돌아와 말했다.

“자네는 생계의 존재지? 좋아. 자네가 다치면, 그래 서 그 상처가 심하면 어떻게 되지? 죽는가? 죽지 않는가?”

“그… 그거야 많이 다치면 죽을 거구, 아니면…….”

“그것과 같네! 호유화가 살 의지가 있어 이겨낸다면 살 것이고, 아니면 죽을 것이네. 그뿐이야!”

흑호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한숨을 휴 우 내쉬고는 누워 있는 호유화를 내려다보았다. 어 느새 호유화는 다시 정신을 잃고까무라친 듯했다. 호유화의 긴 백발이 헝클어졌지만 호유화는 오히려 평소보다도 훨씬 아름다워 보였다.

“이봐, 제발 죽지 말어. 고양이라고 불러도 좋으니 제발…….”

흑호는 말끝을 흐리고는 아직까지 정신없이 울고 있 는 은동의 뒷덜미를 톡톡 건드렸다.

“좌우간 네 덕에 신계가 감응하셨나 보구먼. 지성이 면 감천이라더니………….”

흑호의 말에 삼신대모가 피식 웃었다.

“엉? 왜 웃수?”

“아무리 그 꼬마의 처지가 딱하다 해도 그런 것으로 신계가 감응하셨을 줄 아는가? 지금 신계는 아까부 터 벌어졌던 재판의 판결을 내려주신 것일세. 그래 서 호유화의 소멸을 일단 자신의 힘에 맡기기로 한 것이고.”

“에이, 살려주면 살려주고 말면 말지, 그건 또 뭐란 말이우?”

흑호가 투덜거리자 증성악신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 했다.

“신계에서 모든 것을 결정한다면 자네 또한 무엇이 되겠는가? 자네또한 신계의 의지대로만 움직이는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겠는가? 물론신계에서 개개의 존재를 다룰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않으신다네.” 

하지만 태을사자는 판결을 신계에서 내렸다는 것이 의아했다.

“흠…… 그런데 판결은 아까 내려진 것이 아니었소이까?”

태을사자가 묻자 삼신대모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우리가 내린 판결이지. 허나 대개 신계에서는 아무 의견을 제출하지 않는다네. 이런 정도의 일로 는 말이지. 그러나 이번만은 다르네. 확실하게 지시 가 내려왔다네.”

“우주 팔계는 독립적인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신 계의 지시를 모두가 따른단 말입니까?”

“지금 여기에 신계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자가 있다 고 보는가?”

그건 그랬다. 신계에 저항하거나 말을 듣지 않는 계 는 유계와 마계에, 잘 해야 환계 정도였다. 그러니 나머지 계들은 신계의 결정에 불복할 리가 없었다. 

“허나 시간이 없소이다. 이러는 동안에도 조선 …….”

“아까 비추무나리께서 중간계의 시간을 역전시키셨 네. 지금 여기는시간이 수백 배로 빨리 가고 있으니 염려하지 마시게.”

그 말을 듣고 흑호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아예 거꾸로 해주실 수는 없수? 그럼 손해를 안볼 텐데?”

그러자 삼신대모가 호호 하며 웃었다.

“우리가 사는 우주에서의 시간은 역전시킬 수 없다 네. 어렵기도 하거니와 가장 중요한 천기가 어그러 진단 말일세.”

흑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흑호는 자신이 생각 해도 좀 황당한소리를 성질에 못 이겨 마구 내뱉는데도, 자기보다 까마득히 높은 삼신대모가 전혀 싫 증내지 않고 꼬박꼬박 자상하게 알려주는 것이 눈물 겹도록 고마웠다. 그래서 웬만하면 삼신대모의 말에 는 꼬투리를 달지않기로 마음먹었다.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삼신대모가 묻자 태을사자와 흑호는 고개를 끄덕이 며 긴장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마계와 유계에서 음 모를 꾸민 사실이 이제 만천하에 드러났는데 별 다 른 것이야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태을사자 는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성계의 신장군(神將軍)에다가 생계의 신인, 선녀들, 환계의 환수들이 모두 동원될 수도 있겠구나. 가만, 아까 보니 광계의 존재들은 위력이 엄청난 것 같은 데 광계의 존재까지도 올지 모른다.’

한편 흑호는 이렇게 생각했다.

‘금수의 우두머리라는 귀찮은 것은 이제 안 해도 되 겄구먼. 우리도마수 몇을 해치울 수 있었는데, 설마 우주 팔계에 우리만한 자들이 없을라고. 나는 이제 좀 편안히 놀 수 있겠구먼.’

다만 은동만은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눈물조차 흘 리지 못하고 우는 품이 가련했으나 중요한 시점이어 서 모두들 은동은 가만 놓아두고있었다. 이윽고 삼 신대모는 지팡이를 땅에 힘차게 찧으며 엄숙하게 외 쳤다.

“신계의 판결을 전한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광계의 비추무나리, 생계의 증성악신인, 사계의 염라대왕과 환계의 성성대룡 등 이 일제히 엄숙한 태도를 취했다.

각각의 예법은 달랐으나 하나같이 엄숙하고 진지하 다는 것만은 알 수있었다. 태을사자도 곧 예를 갖추 었고 쭈뼛거리던 흑호도 이내 고개를조금 숙였다. “마계에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졌 다. 또한 무명령과 흑무유자에게는 그 책임을 물어 야 할 것이다. 흑무유자는 도망쳤으니 곧 추적하여 잡거나 그를 내놓도록 마계에 전하라. 그리고 호유 화는 일단 천기에 관련된 부분이 남아 있어 소멸을 멈추도록 하였으니스스로의 힘에 따라 살아날지 아 닐지를 정하게 되리라. 그리고 나머지자들과 생계 조선국에서 벌어지는 마수들의 음모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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