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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56화


그러나 삼신대모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은동이 앞으 로 나섰다.

“아이야, 너를 못 믿는 것은 아니다만 네가 받은 능 력은 너무 지나치다. 그래서는 아니 돼. 미안하다 만, 나는 네가 받은 능력을 모두 인정해줄 수 없다. 나도 네 편이기는 하다만, 너무 하구나.”

순간 각계의 존재들이 우 하고 일제히 불만을 표했 지만, 삼신대모는 냉랭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러고 무슨 천기를 지킨다 하시오! 너무들 하시 지 않소?”

삼신대모는 다시 고개를 돌려 은동에게 말했다. 

“아이야, 내가 네 힘을 다시 아까 뭐냐, 그래. 그 스무명의 영혼이들었을 적으로 해주마. 그러나 지금 의 소원들을 다 들어주게 놔둘 수없단다. 너는 너무 어리고, 그 힘들은 너무 막강해. 어떠냐? 한 가지만 네가 원하는 것을 택하거라. 그게 좋을 것이다. 어떠냐? 이 할미 말을들을래?”

은동은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각계의 존재들과 흑호, 태을사자가 안 된다고 했지 만 은동은 똑똑하게 말했다.

“한 가지…인가요? 아무거나 되나요?”

“그럼!”

“난 단 한가지만을 원해요, 삼신할머니. 꼭 들어주세요.”

“그래그래. 할미가 약속하마. 무엇이냐?”

은동은 입술을 깨물면서 손가락으로 누워 있는 호유 화를 가리켰다.

“호유화님을.. 꼭…… 꼭 살려주세요. 능력이고 뭐고 없어도 좋아요. 제발 호유화님을 꼭 살려주세 요. 네? 꼭요…….”

그러자 웅성거리던 각 계의 존재들이나 흑호, 태을 사자까지도 웅성거리던 것을 멈추었다. 은동의 말은 황당하고 이치에 맞지 않았다. 능력들 중의 하나를 고르라는 것이었지, 그런 이야기를 하라는 것은 아 니었으니까.

그러나 누구도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 다. 그러기에는은동의 얼굴이 너무나도 처연해 보였 기 때문이다. 그 말에 삼신대모도한숨을 쉬었다. 그 리고 은동의 슬퍼하는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본 뒤 천천히 말했다.

“그래. 약속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애쓰겠다고 약속하마. 인간 아이치고는 정말 제법이구나.”

그러자 운동은 딱 잘라 말했다.

“애쓰는게 아니고 살려 줘야 돼요!”

삼신대모는 조금 곤란한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 시 덧붙였다.

“하지만 만의 하나, 호유화가 살아나지 못하게 되면 내 무슨 수를써서라도 다음 생에 환생하게 하여 너 와 같이 있게 하여주마. 그러면되었느냐?”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은동이 외쳤다.

“안 돼요! 다음 생이라니요? 꼭 살려주세요!” 

“아하, 이런 답답할 데가…………. 네가 빌지 않아도 이 할미는 최선을다해요. 허나 장담 할 수 없는 것을 내 어찌 장담하겠느냐? 아이야, 착하지, 응?”

“안 돼요 안 돼…….”

은동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삼신대모의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좋다! 환생될 때 같이 있게 해주고, 앞서 받았던 능력을 하나도 없애지 않고 다 주마. 그러니 울음을 그치거라.”

그 조건을 듣고 흑호는 얼른 좋다 하라고 외쳤다. 태을사자도 내심은동이 그래 주었으면 바랐다. 그러 나 은동은 막무가내였다.

“싫어요! 절대 싫어요!”

“어허………좋다. 그러면 내 너와 호유화가 환생할 때 원하는 계의원하는 출신으로 태어나도록 하여주 마! 왕자와 공주로 태어날 수도있을 것이고, 성계의 신인과 선녀로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내 이런 소원은 말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어떠냐?” 

이 조건은 너무도 파격적이어서 다른 계의 존재들조 차입을 딱 벌렸다. 사실 삼신대모는 모든 존재의 출생을 주관하는 신과 같은 존재였기 때문에 지금 말한 것은 삼신대모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조건인 셈이었다. 윤회를 수백 번 거치고 해탈의 경지에 들 어도 인간으로서는성계는 커녕 광계에 오를락 말락 한데, 하물며 성계까지 단번에 올라갈 수 있는 것이 다. 그 말을 듣자 염라대왕이 오히려 반대하고 나섰 다.

“삼신대모님이야말로 너무 지나치신 것이 아니오? 어찌 그런…….”

“지금의 난국이 해결되고 천기가 바로잡힌다면 응당 그만한 보상은해야 할 것이 아니겠소? 더구나 이 아이의 공이 매우 큰데……….”

“아이의 공? 이 아이가 태을사자나 호유화에게는 공을 세웠는지 모르지만 대체 그만한 공을 언제 세 웠단 말이오?”

“당신은 알 수 없으니 그냥 믿으시오. 내 거짓을 말 하지는 않으니.”

그러면서 삼신대모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저 아이를 데려와야 한다던 생각이 맞았구나. 성인 의 예지는 틀림이 없었어.’

그 안의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애당초 삼신대모가 어째서 급히 은동을 데리고 왔는지를…………. 호유화가 도움을 주어서 해탈을 했다던 과거의 성인. 그는 아 직도 호유화가 주었던 은혜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성인은 바로 천기를 직접 만드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재판이 열리기 전 삼신대모에게 이렇게 말 했다. 그 아이를 데리고 가라고. 그렇게만 하면 일 은 풀리게 되며 빗나간 천기를 바로잡을 실마리가 생긴다고 말이다.

과연 성인의 예지대로 은동이 단서가 되어 재판의 결과는 뒤집히기시작했다. 비록 은동은 아무 것도 한 일이 없지만, 만약 은동이 없었다면 이십 명의 영혼의 행방에 대해서는 흑호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 이고, 호유화도 <해동감결>을 생각해내지 못했을지 도 몰랐다.

그렇다면 마계의 음모는 밝혀지지 못하고 천기는 마 수들이 생각한방향대로 어그러지고 말았을 수도 있 다. 그러니 그런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은동은 그저 있는 것만으로도 큰 공을 세운 셈이 된 것이 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까지 은동은 고집스럽게 고개를 저었다.

“싫어요. 나중에 어찌 되었건 싫어요. 호유화님을 살려줘요. 반드시살려줘요. 네? 네?”

그러자 삼신대모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이구, 너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듣기나 하였느냐? 고집도 피울 때 피워야지!”

“좌우간 안 돼요. 꼭…… 꼭 살려주세요. 제발요……. 네?”

결국 삼신대모는 고개를 설레낮 저었다. 

“요 녀석! 할 수 없구나. 좋다! 그러마!”

드디어 승낙이 떨어지자 은동은 좋아서 입을 벌렸 다. 은동은 삼신대모가 얼마나 큰 존재인지는 몰랐 지만, 좌우간 이런 높은 사람이 한번 말하면 호유화 는 분명 살아날 수 있다고 믿어 그리 고집을 피운 것이다. 은동으로서는 호유화를 살려야 한다는 일념 밖에는 없었다.

삼신대모는 은동의 기뻐하는 얼굴을 보자 씁쓸하게 웃었다. 인간계가 아닌 성계 등의 존재들은 거짓을 말할 수 없으며, 맹세를 하게 되면반드시 그것을 지 켜야만 한다. 그런데 삼신대모는 결과가 확실하지 않은 일에 맹세를 한 셈이 되었으니, 실로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삼신대모는 기가 막혀서 웃음을 지 었다.

“요 작은 녀석이 이 삼신할미의 목을 걸게 만드는구 나. 이 녀석아………,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너는 전 우주의 출생을 주관하는 내 목줄을 잡고 내 기를 걸게 한 것이야. 아마 인간 중에서 너만큼큰 내기를 걸게 했던 녀석은 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이다. 호호호… 녀석. 그러나 능력은 주지 못한다! 괜찮으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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