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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6화


사실 중국에는 무림이 있어 한 사람이 수십명을 당 해낼 고수들이 출현하곤 하지만 전쟁에 이르러서는 그러한 고수들은 첩보나 몇가지 활동 이외에는 별반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 상례였다. 아무리 검술 이나 권장술이 신통한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피와 살로 된 몸뚱이로서 전장에 뛰어 들면 일개 병졸과 그다지 다를 것이 없었다. 화살이 비오듯 하고 창과 칼이숲같이 무성한 수백, 수천 명 단위의 싸움에서 는 일대일의 기예를 겨루고할 것 없고 피할 틈도 없 이 어육이 되고만다. 그러나 궁술은 성벽 등에 웅거 하여 적을 공격할 수 있으니 이 또한 효과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도검술이나 권장의 기예는 아 주 어려서부터 기초를 닦고 수십 년을 그일에만 연 마하여 매진하여야 일가를 이룰 수 있는 반면 궁술 의 기예는 불과 몇 년 만으로도 그와 동일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때문에 조선땅에서도 고명한 검법이나 도법, 창술, 택견을 비롯한 권각법등이 많 이 전해지나 실제로 사람들은 체력보강을 위해 조금 익히는 것 외에는 주로 궁술을 익혀 왔다. 만약 은 동이 중국에서 태어났다면 신력을 타고 났으니 권법 이나 장력 등의 분야에서 대성할 법도 하였다. 그러 나 은동은 신력을 타고 났으니 구태여 그런 것에 집중하게 하는 것은 사치라고 무애는 생각하였다. 은 동은 무예를 뽐내기보다는 전란에 맞는 기술로 공을 세우는 편이옳았다. 그래서 무애는 병법을 주로 가 르치고 택견의 조화로 몸을 피하고날렵하게 움직이 는 기술을 주로 가르치는 한편 궁술에 역점을 두어 은동을가르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은동 본 인의 소망이기도 했다.

본래 힘이 약한 아이는 대나무로 만든 죽궁(竹弓)부 터 시작하여 차차단궁(短弓), 왜궁(矮弓), 각궁(角 弓), 장궁(弓)등으로 강한 활을 사용하는 법이었 다. 그러나 은동의 기운이 엄청나다는 것을 안 무애 는 애당초부터 무거운 한 벌의 철궁을 마련하여 은 동에게 주었다. 은동은 팔이 짧아서 장궁같은 큰 활 은 당기기 힘들었으나 신력을 지니게 되었으므로 탄 력은강한 것이 필요했다. 이에 무애는 솜씨있는 대 장장이에게 부탁하여 두 벌의 무지무지하게 강한 철 궁을 만들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보통 활은철 로 만들지 않지만 간혹 고서에 보면 철궁을 썼다는 기록이 나오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무애는 은동을 몹시 귀여워하게 되었던 터라 은동이 강한 힘을얻게 되자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그 힘 을 유용하게쓰도록 하기 위해 오래 생각하여 궁리를 했던 것이다. 무애는 신이 나서그날로 하산하여 금 강산 기슭의 허가라는 대장장이를 찾았다. 호유화는 호기심 때문에 모습을 감추어 둔갑을 한 뒤 무애의 뒤를 따랐다. 무애는산을 내려가더니 어느 작은 마 을로 접어들어 연기가 무럭무럭 솟고 있는제법 널찍 한 어느 대장간을 찾았다. 호유화가 조금 엿들어보 니 그 대장장이는 이미 무애와는 안면이 있는 사이 였고 표훈사에서 일어날 승병들을 위해 병장기 주조 를 맡은 사람이었다. 그는 벌써 십이 대째 대장장이 일을해 왔던 솜씨 있는 집안이었다. 무애의 부탁을 받고 대장장이 허영감은 말했다.

“허허. 우연한 일입니다. 저희 집에 오지 않았더라 면 아마 조선 땅에서 쇠로 활을 만들 수 있는 집을 찾기는 어려우셨을 것입니다. 더군다나이런 철궁을 만들려면 특별한 쇠를 써야 하는데 저희 집에는 이 미 여러 대전부터 비전의 쇠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집에는 철궁을 만드는 법은 말로만 전해지고 있었지 실제로 철궁을 만든 일은 거의 없었 습니다.”

“왜 그렇소?”

“철궁은 힘이 이만저만하지 않으면 당기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이렇게 두껍고 작은 철궁은 만들어 보았자 아무도 당기지 못할것입니다. 장정 다섯명이 달려도 굽히기 어려울 터인데 이런 것을 누가 사용한단 말 입니까?”

“그런 걱정은 말고 만들어나 주시오.”

그러나 대장장이는 여전히 망설였다.

“또 문제가 있습니다.”

“뭐요?”

“이런 두꺼운 철궁을 만드는 것은 가능합니다만 그 러려면 보통의 활줄을 먹여서는 활이 제 구실을 하 지 못합니다. 보통의 활줄을 두껍게 꼰다하더라도 스무번을 제대로 당기지 못할 것이며, 반나절 시위 를 먹여두면끊어지기가 십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무애는 한사코 철궁을 만들기를 원해서 결 국 대장장이는 철궁두 개를 만들기로 했다. 두 벌을 만든 이유는 하나는 은동에게 주고 하나는 김덕령에 게 선물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활을 당길 수 있는 사람은 아마현재 조선 땅을 통틀어 그 둘밖에 없을 터였다. 호유화는 그 사실을 알고은동에게 달려가 은동에게 활 이야기를 했다. 은동은 활을 받게 될 것을알자 매우 기뻐하였다. 사실 은동은 어린아이였 으며 아버지가 무관이었던터라 어릴 적부터 전쟁놀 이나 병정놀이를 좋아 했었다. 그런데 가짜가 아닌 정말 자기의 무기를 얻게 되자 그 기쁨이 몹시 컸던 것이다. 호유화는 은동이 기뻐하는 것을 보고 자기도 모르게 뭔가 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틀 후 밤 중에 다시 허씨 대장간으로 내려갔다. 철궁은 거의 완성되어있었는데 과연 그 쇠는 보통의 쇠가 아닌 듯 했다. 호유화는 활 두 개를조금 더 살펴보았는데 아마도 크기가 좀 큰 것이 김덕령에게 줄 것이고 좀 작은 것이 은동이가 쓸 것 같았다. 호유화는 씽긋 웃으면서 작은 활을 집어들고 활에 법력을 가해 술법을 걸었다. 호유화가 활에 건 술법은 활을보다 강 하고 탄력있게 만드는 술법이었다. 호유화는 그 활 에 이십년 수련의 법력을 불어 넣었으니 그 활은 실 로 고금을 통해 보기 힘든 신병이기가된 셈이었다. 어떤 사람도 이십년의 법력을 쌓기가 어려운 판인데 그 이십년의 법력을 활에 불어 넣겠는가! 그러나 호유화는 이미 수천년 도를 닦아법력의 경지가 우주 팔계를 통틀어 보기 드물 정도였으므로 이십년 정도 법력을 쓰는 것은 큰 생색을 내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호유화는 흐뭇한마음으로 다시 아무도 모르 게 산으로 올라갔다. 다음날 허영감은 작은 철궁이 자기가 담금질 햇을 때보다 더 빛나고 탄력이 있어 보여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그냥 자기의 솜씨가 더 발 전되었나보다 하고 혼자 생각하며 두벌의 활을 무애 에게 전해 주었다.

그 철궁들은 크기는 작지만 놀랄 정도로 무겁고 튼 튼했다. 그중 김덕령이 쓸 큰 철궁은 무게가 설흔 두근이나 되었고 은동의 작은 철궁은 무게는스물네 근이나 되어 보통 사람은 한 손으로 들고 있기조차 어려울 정도의정도의 무게였다. 그러나 천하장사인 김덕령이나 이십명 분의 신력을 지니게 된 운동은 활을 들거나 당기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 것이었 다. 걱정했던 활줄은 일품 명주실을 구해 꼬아 보았 으나 활의 힘을 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승려들 중 한 사람이 궁술의 조예가 있어서 전해 내려오던 비전의방법으로 금실과 머리카락을 특수한 약에 담가 꼬아서 수십개의 활줄을 만들어 내었다. 그 활줄이어야 철궁을 간신히 당길 수 있게 되었는데 그래도활줄은 자주 끊어지곤 했다. 좌우간 철궁은 사흘만에 만들어지게 되었고무애는 기쁜 마 음으로 은동에게 활을 주었다. 은동은 호유화에게 귀뜸을받아 자신의 무기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 고 있었으나 진짜로 그 활이자신에게 주어지자 기뻐 서 어쩔 줄 몰랐다.

“허허허. 그래그래. 꼭 열심히 무예를 닦아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하느니.”

은동은 너무도 좋아서 몇 번이나 고개를 수그리면서 무애에게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호유화는 승아의 모습을 하고 그 옆에 앉아 있었는 데 은동이 무애에게절을 하는 것을 보고 은근히 생 각했다.

‘요 녀석. 그 활도 잘 만든 것이지만 내 법력이 들 어가지 않고서는 그렇게 좋을 리 있었겠어? 나한테 도 그렇게 고마워 하면 나도 기분 좋을 텐데..’

하지만 호유화는 생색을 내기는 싫어서 가만히 그 옆에서 은동을 지켜보았다. 그러자 무애는 은동이 활을 받고 너무 좋아하는 것 같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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