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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60화


그러나 하일지달은 은동이와 있다 보면 흑호를 만날 기회가 있겠지싶어서 그나마 좋다고 고개를 끄덕였 다.

“그리고 또 한가지. 아직 마수들은 은동이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를것이지만, 만의 하나에 대비하여 은동이가 마수들을 보고 느낄 수 있게 해주어라. 성계의 세안수(洗眼水)를 조금 가져다가 눈을 씻어주 면될 것이야.”

하일지달은 곧 은동을 불러 설명하고 세안수로 은동 의 눈을 씻어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은동은 마수들 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된것이다. 삼신대모는 흐뭇한 표정으로 말을 건넸다.

“좋소. 좌우간 이제 되었소. 그러면 출발하도록 하 시오.”

하일지달은 생계 출입을 자주 하니 문제가 없었지 만, 태을사자와흑호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생계로 돌 아갈 수 없었다. 그러자 성성대룡이 나섰다.

“그 일은 내가 하겠소. 나는 생계에 가본 적이 있으 니.”

“대룡께서 그런 일을 하시다니, 파격적이오.”

“상관없소이다. 다만…… 나도 저 아이처럼 바라는 바이오. 대모님, 누님을 꼭 구해주시오.”

죽음의 기로에 서 있는 호유화 이야기가 나오자 은 동은 또다시 울먹이기 시작했다. 하일지달은 그런 은동을 일편 달래고 일편 끌면서사라졌다. 태을사자와 흑호도 성성대룡의 등에 올랐다.

“출발하오!”

말이 떨어지자마자 태을사자와 흑호는 성성대룡과 함께 이미 어마어마한 빠르기로 생계로 돌입하고 있 었다.


이번 해전에 처음 사용된 거북배는 실로 그 효능을 적지 않게 발휘했다. 거북배는 총탄을 겁내지 않고 나아갈 수 있으니, 비록 배를 직접깨지는 못한다 하 더라도 적진을 흐트러뜨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다. 특히 배를 지키던 왜군들이 배를 부릴 엄두 도 내지 못하게 만든것이 가장 큰 효능이었으며, 산 위로부터 달려 내려오는 왜군에게 사격을 가하여 왜 군의 발걸음을 최대한 늦추는 데에도 공을 세우고 있었다. 이순신은 비록 병으로 고통스럽기는 했으나 거북배의 성능이 입증된 것이 상당히 흐뭇했다. 

“신기전을 쏘아라!”

돌격선 앞에 장치된 신기전이 우박처럼 쏘아져 나가 달려내려오던 왜군들의 한가운데에 정확하게 쏟아져 내렸다. 치솟는 불과폭음과 함께 왜군들 여럿이 쓰러져 뒹굴었다. 신기전을 직접 맞아 절명 한 녀석들도 상당수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왜 군들은 신기전의위력에 놀라 마구 달려 내려오던 기 세가 주춤해져 대오가 헝클어지기시작했다. 그러나 놈들은 조선군에게 공을 주지 않겠다는 듯, 이미 죽 은 시체까지도 질질끌면서 도망치고 있었다. 때문에 시체는 몇 남지 않았다.

비록 중간계로 치자면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삼신 대모의 말대로그때의 중간계는 시간 흐름을 수백 배 로 빠르게 해놓았기 때문에 생계의 시간은 그리 많 이 흐르지 않았다.

“지금이다! 어서 쏘아라! 모든 화포를 집중해 *…….”

이순신은 소리를 지르다가 다시 털썩 지휘 의자에 쓰러지듯 앉았다.

귀가 멍멍하고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죽을 힘을 다하여 참고 있었지만 더 버티기가 힘들었다. 주변 의 장졸들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짓자 군관 나대용이 이순신의 앞을 막아 장졸들이 보지 못하도록 했다. 고통스러워하는 대장의 모습을 보여주기 싫어서였 다. 나대용은 이순신의명을 더욱 우렁우렁한 목소리 로 전달했다.

“어서 쏘아라! 모든 화포를 집중하여 쏘아라!” 

잠시 멈칫하던 전선들은 왜병들을 향하여 화포를 쏘 아대고 다시 화전과 화살 등을 날렸다. 그때 한 전 선의 포수가 자칫 실수로 장군전(將軍箭)을 쏘았다. 장군전은 거의 사람만한 크기의 화살로 적의 배를 격파하는 데 쓰는, 요즘의 미사일 같은 형태의 화살 이었는데 좌충우돌하는 군대에게 쏘는 것은 좋지 않 았다. 그런데 그 잘못 쏜 장군전이 하필이면 지휘하 던 왜장 한 명에게 정통으로 명중했다.

그 왜장은 커다란 장군전에 정통으로 몸이 꿰뚫려서 즉사한 것은물론, 몸이 뚫린 채로 그 화살의 힘으로 수십 장이나 날아가다가 처박혔다. 날아간 속도가 엄청났기 때문에 땅에 처박히는 동시에 왜장의사지 가 조각조각 박살이 나서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지 휘하던 왜장이육중하고 커다란 화살에 관통되어 뒤로 날아가다가 산산이 부서지는모습은 왜군들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안겨주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 도 없이 왜군들이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왜군들은 도망치면서도 발악적으로 조총을 쏘아댔기 때문에 조선 군선들은 가까이 접근하지 못 했다. 바로 그때였다. 분명 화포에 맞고 쓰러져 신 음하던 왜병 하나가 벌떡 일어나는 것이 아닌가. 그 자는 분명 거의 죽어 가는 상태였다. 화포에 맞아 뼈가 으스러지고, 하체의 반 정도가 날아가 있었다. 그런 자가 일어선 것이다.

대부분의 조선군들은 도망치는 왜병들을 쫓으며 화 포를 쏘아대고,또 왜군의 배를 깨뜨리느라 이를 눈 치채지 못했다. 그리고 아무도 알아보는 자가 없었 지만, 그 왜병의 등뒤에는 희미한 요기가 넘실거리 고있었다. 그 왜병의 눈이 허옇게 뒤집혀져 있었지 만, 그자는 조총을 천천히 들어 겨누었다. 그가 겨 누는 곳은 수백 장이나 떨어져 있는 이순신의 대장 선을 향해서였다.

조총의 사거리는 백 장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그 왜병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조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순간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조총이 갈라지며 폭발 해 버렸다. 그 폭발 때문에 왜병의 얼굴이 절반이나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왜병이 다시 주 변을 피로 물들이며 풀썩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그 누구의 눈으로도 볼 수 없었지만그가 쏜 조총탄은 강한 마기에 밀려서 보통의 조총탄보다 수십 배 빠 르고 강한 기세로 조선군의 대장선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자네, 묵학선을 보았나?”

성성대룡과 함께 생계로 돌입하면서 태을사자가 흑호에게 물었다.

흑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내 저었다.

“아니, 못 보았수. 나는 천지에서 치성을 드리다가 곧장 왔수. 하일지달을 만나서 말유.”

“음, 그러면 자네, 려(勵)에 대해 아는가?”

“려? 그게 뭐유?”

“나도 잘은 모르네. 그러나 행재소 부근에서 풍생수의 흔적을 느꼈다네.”

“어, 그놈을? 박살을 내지 그랬수!”

“놈들은 여럿이었어. 나는 급히 은신을 하고 놈들의 말을 전심법으로 엿들었다네. 다행히 놈들은 나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했고, 나는 놈들을 피하는 데에 온 힘을 써야 하기 때문에 대적할 엄두조차 내지 못 했어.”

“허어……이번에 다시 만나면 반드시 박살을 내야 지! 사실 놈들은여럿씩 떼로 몰려다니는 경우가 많 수. 전에 탄금대에서도 그러했구.”

“그래. 그런데 놈들은 역시 조선상감의 마음에 무언가 수작을 부리는 것 같았어.”

“이미 알고 있는 일 아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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