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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7화


“은동아. 네가 활을 받고 좋아하니 나도 기쁘구나. 그 활에는 이름을 붙여 보는 것이 어떠하냐? 내가 붙여 주랴?”

그런데 은동은 뜻밖에도 고개를 저었다. 이미 은동 은 이름을 생각해두었던 것이다. 전에 윤걸이 쓰던 칼의 이름이 백아 였던 것을 생각하여은동은 밤새 이름을 생각해 보았었다.

“그래? 그러면 이름을 무어라 붙일 것이냐?”

“유화라 붙이겠습니다. 버들 류자에 꽃 화 자입니 다.”

사실 은동은 호유화가 자신의 옆에 머물면서 자신 을 보살펴 주는 것을고맙게 생각하여 활에 호유화의 이름을 붙이기로 생각했던 것이다. 무애는 그런 연 유는 몰랐지만 껄껄 웃었다.

“그래. 활은 유연한 것이니 버드나무 류자를 쓰는 것도 좋을 것이고,활의 모양이 자못 아름다우니 꽃 화자를 쓰는 것도 운치가 있구나. 네 문재도 대단 하구나.”

그러나 옆에서 호유화는 몹시 기뻐하고 있었다. 비 록 무애의 앞이라승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크게 내색을 하지는 못했지만 은동이 자신을생각한다는 것에 대해 기분이 몹시 좋았고 심장마저 쿵당거리는 것 같았다. 왜 그런지 이유는 호유화로서도 알지 못 했지만.

좌우간 그 철궁을 받게 된 후 은동은 궁술에 자신 감을 가지게 되었다.

겨우 삼일 만에 은동은 열 번을 쏘면 열 번이 모두 과녁에 적중하여 조금도틀림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무애는 손을 치며 좋아했고 덩실덩실춤까지 추었다. 그러나 은동은 그런 연유도 잘 모르고 멍하 니 생각했다.

‘도대체 이게 무엇이 어렵다는 걸까? 그리고 이 정 도 하기가 왜 그렇게힘들다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다른 까닭이 있었다. 원래 궁술이 어렵고 명궁이 나오기 힘든 것은 화살이 거의 대부 분이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가며 바람이나외부의 영 향을 받는다는데 이유가 있었다. 또 활을 당기는데 는 힘이 들어서 반복하려면 정밀하게 손을 움직일 수 없어서 겨냥이 빗나갈 우려가 많다는 것도 있다.

허나 은동은 워낙이 힘이 세어 활을 당기는데에 아 무런 힘도 들이지 않았고 또 무지무지한 힘을 받아 날아가는 화살은 워낙 기세가 강했기 때문에 바람이 나 외력을 탈 여지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백보정도 밖에서 은동이 활을 당겨 쏘아도 화살은 거의가 부 러져서 뭉개질 정도로 과녁에 박히곤 하였다. 더구 나 힘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활을 당기는것은 매우 힘이 들어서 한번에 오십사(五十射 : 오십번 활을 쏘는 것)이상을 연습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은동은 점점 재미도 붙었고 힘이 지치는 법도 없어서 오십 번은 커녕 일천 번도 활줄을 당길 수 있었다. 그러 니 은동의 실력이 불과 며칠 만에 명궁의 경지에까 지 오르게 된 것이지만 다른 사람들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하고 은동의 솜씨에 다만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있어서는 조금 이야기 가 달라졌다. 무애는 움직이는 과녁을 맞추라고 말 하였는데 그것은 조금 힘들었다. 은동은 아직 그럴 만한 눈썰미 까지는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통 궁 술을 배울 때는 새를쏘아 떨어트리는 경우가 많았으나 무애는 살생을 할 염려가 있어 그런 것을 하지 못하게 하고 흔들리는 나뭇가지나 공중에 던져 올린 나뭇조각 같은 것을 맞추게 하였다. 그러나 서 있 는 과녁은 조준만 하면 백발백중이었으나 움직이는 과녁을 따라 맞추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은동은 계 속 연습을 했고 너무 열심히 연습을 한 나머지 수십 개가 있던 활줄을 거의 다끊어 먹게 되었고 손가락 이 빨갛게 부풀어 오를 정도가 되었다. 호유화는유 화궁을 만들어 준 이후로 며칠동안 틀어박혀 미래의 천기만 읽는 데에집중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 은동이 날이 어두워가는 것도 개의치 않고 열 심히 활을 쏘고 있는데 호유화가 나타났다. 물론 남 에 눈에 띄일까봐 승아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다. 호유화는 은동이 실수할까봐 자신을 호유화라 부르 지 못하게 했으며 반말만 쓰도록 일러서 은동도 오 히려그쪽에 더 익숙해져 가는 참이었다. 어린 은동 의 눈으로 볼 때 아무리 승아가 호유화인 것을 알고 있어도 자기보다도 어려 보이는 승아에게 존대를하 기는 거북하고 말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승아니? 웬 일이야?”

승아(이하 호유화가 승아의 모습으로 있을 때는 승아라고 이름 붙이기로 함)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은동에게 다가왔다.

“열심히 연습하는구나. 손가락이 다 까졌네.”

말하다가 승아는 은동에게 흰색의 줄 하나를 쓱내밀었다.

“이게 뭐야?”

“활 줄이야. 아마 이건 절대 끊어지지 않을 거야. 손도 덜 아플거구.”

“어?”

은동은 의아하여 다시 그 줄을 바라 보았다. 그 줄 은 흰색으로 번들거리며 빛나고 있었는데 매끄럽고 가볍기가 비할 것이 없을 듯 싶었다. 은동은 그 줄 을 잡고 있는 힘을 다해 당겨 보았으나 끄덕도 하지 않았다. 정말가볍고도 강한 줄이었다. 은동은 기뻐 하면서 그 줄을 시위에 걸었다. 그러자 승아는 더 기분이 좋아졌다. 은동에게 말은 하지 않았으나 그 줄은 바로 자신의 꼬리털을 뽑아 꼬아낸 것이었다.

환수의 꼬리털이라면 수천년도를 닦은 몸에서 나온 것이며 종종 법기로도 쓰일 정도의 물건이니 세상어 디에서도 찾을 수 없을만한 보물임에 틀림 없었다. 그 시위를 걸고나자철궁을 아무리 강하게 당겨도 시 위는 끄덕 없었다. 은동은 좋아서 펄쩍펄쩍 뛰었다. 

“이게 어디서 났어? 정말 좋다.”

“좋으면 됐구.”

그러나 은동은 철없이 불쑥 말했다.

“하나 더 없어? 하나 더 있으면 석저장군님 활에 도 매줄 텐데.”

그러자 승아는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 듯 했다. 아 무리 털이라고는 하나 자신의 몸의 일부를 잘라 준 것인데 미련스럽게 남에게 주고 싶어하다니. 승아는 화가 치밀어서 자신도 모르게 은동을 찰싹 뺨을 때 려 주었다.

은동이 비록 스무명의 기운을 지니게 되었다고는 하 지만 호유화의 기운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 이었다. 은동은 그만 몇 바퀴를 팽이처럼 돌면서 그 자리에 털썩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승아는 깜짝 놀라 누가 본 사람이 없나 주위를 훑어 보았지만 다행히 보는 사람은 없는 듯 했다. 승아는 은동이 끙끙 거리자 얼른 은동을 일으켰다.

“바보같이! 그거 한 대 맞았다고 사내자식이 쓰러져?”

그러자 은동은 대답도 못하고 뺨을 문질렀다.

“왜.. 왜 화가 난 건데..”

“으이구 속터져라. 이 답답아.”

승아는 화가 나서 저만치로 달려가 버렸다. 은동은 도무지 영문을 알수 없어서 다시 활을 집어 들고 연 습을 하려 했다. 그러자 승아가 어느틈엔가 다시 다 가왔다.

“야 이 멍청아. 언제까지나 활만 들고 있을거야?” 

“연습을 해야 되잖아.”

“너 전에 뭐라구 했어? 나랑 같이 있게 되면 내내 나랑 놀아주겠다고했지? 그런데 뭐야. 놀아주기는 커녕 활만 붙들고 있으니.”

은동은 뇌옥에서의 약속을 되살리고 어깨를 움찔 했다. 은동도 물론어린 아이니만치 노는 것을 마다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부친인 강효식과 은동 은 약속을 했던 바 있어서 머뭇거렸던 것이다. 은동 이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승아는 은동을 재촉했다.

“뭐하는 거야? 약속을 지키지 않겠단 말야?”

“아니야… 그건.. 하지만..”

“뭐가 하지만이야?”

“나중에 놀아주면 안될까? 나는 어서 궁술을 익숙 하게 익혀야 한단 말야.”

“왜?”

“그래야 왜군과 싸울 수 있고…. 또 마수들하고 싸 우는데에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거 아 냐.”

그러자 승아는 피식 웃었다.

“마수? 네가 조금 힘이 생기더니 뵈는게 없는 모 양이구나. 네 화살이 조금 세다고는 하지만 마수들이 그 정도로 눈 하나 깜짝 할 것 같아? 왜군이라면 또 모르지만…”

그러더니 승아는 다시 샐쭉 웃었다.

“그런데 왜군들하고 왜 그렇게 목숨걸고 싸워야 하지?”

“그 놈들은 침략자 잖아! 나라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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