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6권 – 12화 : 마지막 싸움


마지막 싸움

“좀 천천히 가세. 힘이 드네.”

배 안에서 이순신은 키를 잡은 손으로 이마에 땀을 닦으며 헐떡였다. 그 안에는 곽재우가노를 젓고 있었으며, 은동이 법력을 발휘하여 날아오는 화살이며 총탄이 모두 빗겨나가도록술법을 쓰고 있다가 말을

건넸다.

“어서 가야 합니다. 놈들을 놓치면 다시는 이런 기회를 잡기 어렵습니다.”

그러자 곽재우가 웃으며 말했다.

“내 평생 이런 일은 처음일세. 정말 그 배 안에 그런 요물들이 있단 말인가?”

곽재우가 묻자 은동은 눈빛을 빛내며 확고하게 대답 했다.

“틀림없습니다.”

이순신은 죽지 않았다. 이순신이 갑자기 기도를 올 린 것은 은동에게 자신의 지휘가 없이도전황이 변하지 않으니 이제 되었다고 알리는 신호였으며, 커 다란 별처럼 보였던 불덩어리는하일지달과 팔신장, 팔선녀들이 법력을 모아 만들어낸 것이었다.

호유화는 모두의 시선이 그 불덩어리에 쏠린 틈을 타서 재빨리 이순신의 모습으로 둔갑을하였으며, 태을사자는 진짜 이순신을 순식간에 통천갑마를 써 서 이 작은 배로 이동시킨 것이다.

그리고 흑호는 다 부서진 왜선 한 척을 감시하며 작 은 배를 안내하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은최후의 싸 움, <해동감결>에 적힌 마지막 구절을 실행시키기 위해 행해진 것이다.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자 셋이, 죽지도 못 하고 살지도 못하는 자 셋을 이겨야 난리가 끝난다 고 <해동감결>에서는 말하고 있었다. 그 중 죽지 않게 된 은동이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히데요시를 이김으로써 하나는 이루어진 셈이다.

그리고 성성대룡이 마지막으로 호유화에게 일러준 바에 따르면 흑무유자와 풍생수, 소야차등 세 마리 의 마수는 고니시 휘하의 졸병 하나의 몸에 숨어 버렸다고 했다. 그동안 그들이모은 인간의 영혼들 또한 암흑의 대주술에 걸려 역시 다른 졸병 한 명의 몸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은동 일행은 성성대룡의 마지막 정보로 그들을 찾아 내었으나 문제가 생겼다. 예언을 이루기위해서는 나 머지 둘의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자가 있 어야 하는 것이다. 은동은 이미 한 명을 이겼으나 나머지 두 사람이 더 있어서 그자들을 이겨내야만 예언은 완벽하게 실행하게 된다.

비록 왜란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지만, 그 예언을 이루면 장차 왜국은 적어도 한참 동안은조선을 침 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삼신대모가 말했기 때문이 다. 그래서 그들은 이제 현재를건졌지만, 미래를 위하여서라도 가야만 했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동안 마수들이 지녔던 영혼 들이었다. 거의 이만 명에 달하는 가엾은영혼이 윤 회는커녕 승천도 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잡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자는 바로 인간이어야 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그왜병을 졸졸 따라다니며 빈틈없이 감시하면서도 선뜻 엄두를 내 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낸 다는 그 암흑의 대주술은 아직 이루어질 가망이 보 이지는 않았다.

헌데 태을사자는 곽재우를 만난 적이 있었다. 곽재 우는 이제 의병을 해산하고 숨어서 도를닦는 사람 이 되었다. 그러면서 곽재우는 김덕령이 죽어 원혼 이 되어 그 원을 풀 곳이 없으니 승천도 하지 못한 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태을사자는 묘안을 짜내었다. 김덕령 의 죽은 혼령에게 곽재우의 몸을 빌려주는 것이었 다. 그러면 그 사람은 죽은 김덕령이라고도 할 수 없고 산 곽재우라고도 할 수 없으니, 죽은 것도 아 니고 산 것도 아닌 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 머지 한 사람을 구하지못해 그들은 애가 탔다.

헌데 노량해전의 전날, 마침내 은동이 묘안을 짜냈 다. 은동은 이순신이 이제 더 살 의사가 없으며, 전 쟁이 끝나면 자살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몹시 안타 까워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래서 은동은 태을사자 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왜란종결자인 이순신이 이대로 죽는 것은 너무 안 타까워요. 이순신을 죽었다 하고 살려내면 안 될까 요?”

“글쎄다……. 그것은…….”

“하지만 그리 되면 이순신은 죽은 것도 아니고 산것도 아닌 자가 되잖아요! 더구나 그는왜란종결자였고…….”

그 말에 모두가 영감을 받았다. 이순신이 죽은 것으 로 하고 이순신을 살려내면 이순신 또한그야말로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자가 되는 것이 아닌 가!

그리하여 은동은 밤을 꼬박 세우면서 이순신에게 모 든 정황을 털어 놓았다. 이순신은 그 말을 믿지도 못했지만 얼결에 하다 보니 응낙을 하게 되어 결국 은 이 쪽배에 곽재우(라기보다는 김덕령에게 씌인 채였지만)와 은동과 함께 가는 처지가 되었던 것이 다.

이순신은 이 모든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아니, 꿈이라고 생각하는 조금 몽롱한 상태에있었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이순신을 도저히 납득시킬 수 없자 호유화가 약간의 술법을 써서 이순신의 정신을 조금 몽롱하게 만들어 놓았으니 말이다………….

“저기 저 배여!”

흑호가 길게 소리쳤다. 그 배는 이미 포화를 여러 차례 받았는지 만신창이가 되어 깨어진커다란 대선 니혼마루였다. 이미 조용한 것이 그 안의 모든 사람 들이 죽었거나 도망쳐 버린것 같았다.

이순신은 은동을 돌아보았다.

“저기에 그 요물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습니다, 아마도 두 명일 듯싶습니다. 그러니 두 분께서 그놈들을 이겨내셔야만 합니다…………..”

“자네는?”

“저는 이미 하나를 쓰러뜨렸습니다. 이제는 두 분의 몫입니다.”

그러자 이순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 곽공이야 괜찮겠지만 나는 무예가 대단치 않 아. 나는 원래 문관이었고 스물둘에야 무예를 익히 기 시작하였어. 두려운 것은 아니네만……… 조금 무 리라고 여겨지네.”

그러자 운동은 백아검을 꺼내어 이순신에게 쥐어 주 었다. 곽재우에게는 이미 태을사자가 자신의 법기였 던 묵학선을 주었다. 묵학선은 호유화가 전에 우연 히 지녔다가 나중에 태을사자에게 돌려주었는데, 태 을사자는 그것을 법력을 운용하는 데에 사용하라고 곽재우에게 주었던 것이다.

“이 검이면 문제없을 것입니다.”

이순신은 검을 한 번 뽑아보고 다시 꽂으며 말했다.

“활은 조금 연습한 적이 있지만 검을 잘 다루지는 못하는데………….”

아무래도 이순신은 조금 자신이 부족한 듯싶었다. 그러다가 이순신이 은동에게 물었다.

“그런데 자네, 그 예언이 어떻게 되어 있다고 했는 가? 내가 보기에는…………….”

이순신은 그 예언의 구절을 다시 한 번 듣더니 고개 를 저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자를 꼭 쓰러뜨려야만 하는 것은 아닐 성싶은데? 그자를 이기면 되는 것이 아니겠 는가? 어떻게 해서든…………….”

그러나 지금 마수가 들어있는 자들이 장난을 칠 것 도 아니고 경기를 치를 것도 아닐 테니,필경 목숨 을 걸고 빠져나가려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데 어찌 싸움 이외의 방법이 있단말인가?

은동은 답답함을 억누르고 짧게 대답했다.

“글쎄요.”

“좌우간 정말 사실인가? 정말 그자들을 우리가 이 기면 수많은 백성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것인가?”

이순신은 다시 각오를 하는 것 같은 비장한 말투로 물었다. 사실 이순신은 수많은 백성들과군사들의 영 혼이 잡혀 있으며, 그들이 애를 써야만 그들을 구해 낼 수 있다는 말에 그런 연극을 할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예・・다만 누구도 더 이상의 힘을 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천기에 어긋나는…….”

은동이 다시 설명을 하려 하자 이순신은 고개만 끄 덕했다.

“그러면 됐네.”

“다 왔다!”

흑호가 다시 소리를 쳤다. 그 왜선은 이제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싸움이 한창인 노량해협의 변두리 쪽으로 밀려와 있었으므로 주변에 다른 군선들이 없 었다.

그러나 은동과 김덕령의 눈에는 그 주변을 빽빽이 에워싸고 있는 수많은 존재들의 모습이보였다.

흑호와 태을사자를 비롯하여 호유화, 하일지달을 비 롯한 팔신장과 팔선녀, 삼신대모와 증성악신인, 그리고 수많은 사계의 사자들과 신장들이었다.

하지만 법력이 없는 이순신은 아무 것도 볼 수 없 었다. 좌우간 쪽배가 부서진 니혼마루에닿자 이순 신이 몸을 일으켰다.

“어찌 되었건 왜군이라니 해치워야 하겠지?”

그러면서 이순신과 김덕령은 부서진 배 안으로 들어 갔다. 은동과 흑호, 호유화도 따라 들어가려 했으 나 삼신대모가 말렸다.

“이제 마지막이오. 인간의 일이니 저들에게 맡겨둡 시다. 은동아, 너도 이미 네 할 일을 다했으니, 여 기에는 관여하지 않는 것이 좋으리라. 마수들이 나 오면 그때는 우리가 나서 아직은 저들이 처리하도록…….”

그 말에 모두는 인간계에서 뽑힌 저 두 명이 어떻게 싸울지 궁금하였고 가슴을 졸이며 묵묵히 기다리기 시작했다. 특히 은동은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곽 재우나 김덕령은 차라리 나을 것이지만 이순신은 실제로는 힘이 거의 없지 않는가?

배 안은 아무도 살아 있지 않은 듯싶었다. 그 배는 병력과 장비를 수송하는 역할을 하는 배였던 모양인 지라, 조총과 화약 등 많은 전쟁물자가 실려 있었 다. 대부분의 물자가 상하지 않은 것을 보고 이순신 은 말했다.

“나는 이 배가 포를 맞아 부서진 줄 알았는데 그렇 지도 않은가 보군. 기이한 일이야………….”

더구나 수많은 왜병들은 모두 참혹하게 죽은 시체가 되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이순신은 그 시체를 보고 불안한 느낌이 드는 모양 이었다.

“이상하군. 이건……… 포를 맞아 생긴 것도 아니며 누가 벤 것 같지도 않구먼…………….. 정말 이것은…….”

그러자 곽재우의 몸을 빌리고 있는 김덕령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모두 산 채로 찢긴 것 같구려・・……”

그 말이 나오는 순간, 시체더미 속에서 무엇인가가 불쑥 튀어나와 이순신을 덮쳐갔다.

“조심하오!”

김덕령은 이순신의 앞을 막아서며 법력으로 그놈의 몸을 쳐냈다. 그러나 다음 순간, 놈은 무서운 기운 을 회오리같이 뿜어냈다. 이에 김덕령 또한 지지 않 고 두 주먹을 무섭게 질러내어권풍을 뿜어내었다. 묵학선을 빼어들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뒤켠에서 또 한 놈이 나타났다. 놈들은 왜병의 모습을 하고 있기는 했으나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추악하게 일그러져가고 있었다.

이순신은 백아검을 휙 휘둘렀다. 백아검은 원래가 법력이 깃든 것이라, 순식간에 검기가 발산되어 나 가 배의 한 귀퉁이가 움푹 베어져 나갔다.

“…… 신기하도다.”

이순신은 중얼거리며 다시 열심히 검을 휘둘러 대었 으나 불행하게도 높은 놀라운 속도로 검기를 피하며 이순신에게 돌입해 들어갔다. 김덕령은 법력을 펼 쳐내어 다른 왜병과 맞서고있었다. 몸이 신력을 지 닌 곽재우가 아니라서 그런지, 아무래도 행동이 부 자연스러워 조금씩 밀리고 있었다.

“이겨내기 어렵겠소!”

김덕령이 소리치자 이순신은 별로 당황하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덤덤하게 되받았다.

“왼쪽 벽으로 붙으시오.”

“뭐라고 했소?”

“왼쪽 벽!”

이순신은 말하면서 다시 백아검을 두어 번 휙휙 휘 둘러 보이고는 먼저 왼쪽 벽으로 가서 바싹 붙었다. 그러자 김덕령은 영문도 모르는 채 두 번 강하게 주먹을 날려 왜병을 밀어내고이순신의 곁으로 왔다.

두 왜병은 음산한 웃음을 흘리더니 무시무시한 포효 를 냈다. 그리고 징글맞게도 두 놈의 몸에 주변의 죽은 왜병들의 팔다리가 처덕처덕 붙기 시작했다. 놈의 몸은 눈 깜짝할 사이에죽은 왜병들의 몸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괴수로 변해 가는 것이었다.

배 밖에서는 은동과 태을사자 등이 배 안에서 풍겨지는 이상한 낌새를 채고는 발을 굴렀다.특히 하일 지달은 그 술수를 아는 듯 외쳤다.

“마수들이 죽은 자들의 몸을 이용하여 술법을 펴고 있어요! 저 둘은 당해내지 못할 겁니다!”

그러자 흑호가 소리를 지르며 가슴까지 쳤다.

“우리도 술법으로 도와줘야 하우! 마수놈들이 술법을 펴고 있잖수!”

그러나 삼신대모는 손을 저어 그들을 제지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 보게. 술법으로 놈들 을 파괴하면 수만명의 영혼까지 같이 망가질지 모르 네! 술법을 쓰지 않고 저들이 마수놈들의 몸을 파 괴해야만 되네! 조금만………….”

무슨 형체를 지녔는지도 모르게 거대하게 커진 괴수 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대며 하늘을보며 길게 포효했다. 그것을 보고 김덕령조차 안색이 변했다. 마수들은 모든 법력을 그 주술에 몰아넣고 있어 김 덕령이나 곽재우도 상대가 안 될 것 같았기 때문이 다.

“이장군! 물러서시오! 내가 어떻게든……”

그러자 이순신이 담담히 말했다.

“그렇다 한들 사람의 몸으로 된 괴물이오……”

그러다가 김덕령에게 조용히 물었다.

“화섭자가 혹시 있소?”

“그건 왜?”

“빌려 주시려오?”

괴수가 막 덮치려는 순간, 이순신은 태연하게 화섭 자를 꺼내 불을 퉁겼다.

“미안하오. 곽공, 아니 김공……. 같이 갑시다.”

순간, 그 불은 바닥에 쏟아져 있던 화약에 옮겨붙어 순식간에 불길이 배를 온통 뒤덮었다.

그 배에 탔을 적부터 이순신은 왜선에 많은 화약과 총포 등이 실려 있는 것을 유심히 보아두었다. 그 래서 가급적 화약을 등지기 위해 왼편 뱃전에 붙은 것이다. 괴수가 달려드는 순간, 이순신은 주저하지 않고 화약에 불을 붙였다.

‘화약이 폭발하더라도 네놈들이 먼저 박살이 날 것 이다. 조금이라도 우리가 더 버티면 우리가 이기는 것이지.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화약은 곧 대폭발을 일으켜 시체로 이루어진 괴수는 폭발에 휘말려 박살이 나버렸다. 그러나 괴수의 덩 치가 컸던 탓에 김덕령과 이순신에게는 다행히 직접 적인 폭발력이 미치지 않았다. 게다가 김덕령이 법 력을 썼기 때문에 둘은 그을리고 다치기는 했지만 아직 무사했다.

배 밖에서 상황을 보고 있던 모든 자들은 배에서 폭 발이 일어나자 깜짝 놀랐으나 삼신대모는 얼굴빛이 환해지며 말했다.

“해냈소! 드디어 이순신이 해냈소이다!”

수만을 헤아리던, 마수에게 붙잡힌 인간의 영혼들은 왜병의 몸이 박살이 나자 뛰쳐나와 사방으로 흩어 졌다. 이순신의 기지 덕분에 영혼들은 모두 무사하 게 풀려난 것이었다.

만약 술법을 써서 놈들의 몸을 깨뜨렸다면 영혼들도 많이 다쳤을 것이며, 마수들이 술법에대해 방어를 하고 있었기에 그다지 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러나 이순신이 사용한 것은화약의 폭발력이었으니 순수한 물리적인 힘이었던 것이다.

마수들은 본디 물리적인 힘에는 타격을 입지 않아 그 생각을 하지 못하였지만, 그들이 들어가 있던 인 간의 몸은 어찌 되었건 물리적인 존재여서 화약의 폭발로 박살이 나버린 것이다. 그러니 그들이 이루 려던 암흑의 대주술조차 그 그릇이던 왜병의 몸이 깨지고 깨트려지자 마침내 영혼들이 한꺼번에 해방 되었다.

이를 보고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저승사자들은 환호 성을 올리며 인간의 영혼들을 이끌어 갔다.

“보이시오, 이장군?”

김덕령은 해방되어 기뻐하는 수많은 영혼들을 보면 서 이순신에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이순신은 고 개를 저었다. 그러다가 이내 웃으며 말을 건넸다.

“아니오. 그러나…………… 뭔가 느껴지기는 하는구려.”

다음 순간, 배가 크게 기울어지며 남아 있는 화포들 과 화약들이 다시 폭발하려 했다. 김덕령과 이순신 은 휘청 몸이 기울어지며 곧 물에 빠질 것이라 여겼 으나 둘의 몸은 어느새 하늘에떠 있었다.

은동이 곧 달려가서 이순신과 곽재우, 김덕령의 몸 을 빼낸 것이다. 이순신은 온몸이 쑤시는데다가 하 늘을 나는 것에 정신이 없어서 곧 기절해 버렸으나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감돌았다.

그러나 하늘에서는 아직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숨어 있던 왜병의 몸이 부서지자 그 안에마지막까지 숨어 있던 흑무유자와 풍생수, 소야차가 뛰쳐나온 것이다. 흑무유자가 뛰쳐나오자 가장 먼저 호유화 가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갔다.

“이놈! 중간계에서 잘도 나에게 암습을 가했겠다?”

흑호도 소야차에게 일족을 잃은 한이 골수에까지 스 며있는 터였다.

“거기 서라, 이눔!”

마지막으로 태을사자는 조용히 호유화에게서 다시 받은 묵학선을 펴들고 풍생수 앞을 막아섰다. 흑풍 사자, 그리고 윤걸을 해친 흉수가 바로 풍생수가 아 니었던가?

“아직 우리에겐 해결할 것이 남지 않았던가…?”

드디어 삼대 삼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흑무유자는 마계 서열 사위의 강적이고, 호유화 또한비록 은동 에게 상당량의 법력을 넣어 주었다고는 하나 역시 막강한 위력을 가진 환계 제일의 존재이니, 충분히 상대가 되었다.

소야차는 마수의 일족이라 해도 이제 상당한 힘을 지닌 흑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단 풍생수만은 워낙이 불사의 괴물이라, 비록 태을사자가 법력은 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상대하기가 그리 쉽지 않 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은동은 태을사자에게 백아검을 던져 주었다.

“사자님, 윤무사님의 원수도 갚으셔야지요!”

그러다가 은동은 문득 과거 어디에서인가 들은 말을 떠올렸다. 풍생수는 화(火)와 금(金)의술수를 같이 써야만 없앨 수 있노라는…….

은동은 태을사자에게 날아가는 백아검을 보며 생각 했다.

‘백아검은 금에 해당하니 화의 술수만 더 있으면 태 을사자가 상대하기 쉬울 텐데……. 성성대룡에게서 배운 술법이 남아 있었으면 좋으련만………….’

무심결에 은동은 성성대룡의 술수를 외웠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그 술법이 먹혀 들어서, 갑자기 백아검 이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불꽃의 검으로 변하였다.

” 어어…….”

은동은 처음에는 놀랐으나 금세 그 연유를 알게 되 었다. 과거 좌수영에서 마수들과 싸울 때, 자신은 그 술법으로 시백령을 해치운 것으로 여기고 그 술법 을 모두 쓴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시백령을 해치운 것은 오엽이로 변했던 호유화였으니 자신의 술법은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태을사자는 그 검을 받아들고 풍생수를 노려보면서 은동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풍생수는하필 자신의 극성이 되는, 그 기이한 무기를 보자 저절로 안색이 변했다.

잠시 후, 거의 비슷한 때에 세 마수는 원한을 지닌 세 존재의 손에 의해 영원히 소멸되어버렸다. 그리 고 때를 같이 하여, 노량해전도 끝나고 왜군은 2백 여척의 파괴된 배를 남기고궤주하였다.

모든 조선군사들은 그때서야 이순신의 죽음을 알고 슬피 울었으나 이제 난리가 끝났다는 생각에 모두들 한숨을 쉬며 다시 하늘을 보았다. 밤새 싸운 끝이 라 해는 또다시 떠오르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도하게 금빛 햇살을 사방에 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