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54화
“허헛,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만…. 이렇게 손이 저려서야. 과연 대단한 실력이야. 하지만 말이야….. 완전히 결말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그렇게 여유를 부리면…. 이렇게 낭패를 본다네…. 백룡광신탄(白龍狂身彈)!!!”
은근히 말을 끌던 갈천후는 천화가 막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파라락 하고 옷이 휘날릴 정도로 빠르게 몸을 휘돌렸다. 그리고 그 원심력에 공중으로 들려 함께 휘둘러진 양팔을 따라 땅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던 백혈천잠사의 가닥들이 무식할 정도로 한데 엉키고 뭉쳐져 천화를 향해 짓쳐 들어오는 것이었다. 상대의 움직임이나 변식같은 것이 전혀 없는 그 공격은 정말 미친 용이 무식하게 돌격하는 것과 같았다.
천화는 멈칫하는 사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백혈천잠사 뭉치 모습에 방금 전 시전 했던 분뢰보를 시전 해 그 자리에서 사라지듯이 뛰쳐나가며 빠르게 검을 휘둘렀다.
“쳇, 갈천후 사부님의 백혈천잠사니까 가능한 거죠. 보통은 여기서 끝이란 말입니다. 풍화(風花)!! 차앗…..”
잠시의 방심을 갈천후의 애병인 백혈천잠사로 돌려버린 천화는 갈천후의 공격이 자신에게 다가오기도 전에 그의 면전에 도착하고 있었다. 이어 거침없이 휘둘러진 그의 검에서는 황금빛 검기의 파편들이 뿌려졌다. 잠시 바람에 날리듯 움직이던 황금빛 기운은 어느새 갈천후의 목 주위에 모여 바람에 휘날리는 양 서서히 회전하고 있었다. 조금만 서툰 짓을 하면 바로 목을 날려버리겠다는 기운을 품고서 말이다. 그리고 그 사이로 검을 들이민채 서있던 천화가 갈천후를 바라보았다.
“이번엔 확실하게 끝난 것 같은데요.”
“허허…. 아무래도 그런 것 같구만…. 어떤가… 자네 실력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나이트 가디언 파트의 학생주임을 맞아 보는게?”
갈천후는 이번엔 정말 졌다는 듯 그때까지 들고 있던 양팔을 내려 트렸고 그에 따라 미친 듯이 날뛰던 백혈천잠사 뭉치가 그대로 시험장 바닥으로 떨어져 흐트러졌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선 패한 뒤에 따르는 씁쓸함 같은 것은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상당히 흡족해 하는 듯 보였다.
천화의 첫 인상이 좋았던 때문인지 지금 갈천후의 기분은 대성한 손주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거기에 자신이 알지 못하는 상승의 신법과 검법 견식 했기에 그 또한 상당히 흡족했던 것이다. 더구나 자신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기절할 듯한 목소리로 손을 내저어 대는 천화의 모습은 다시 한번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절~~ 대로 싫어요. 학생주임이라니…. 무슨 그런…. 차라리 제가 항복하겠습니다. 저기요…..”
“허허허허허….. 아니네, 아니야. 뭘 그런걸 가지고 그렇게 기함을 토하는 겐가? 허허허…. 어쨓든 대단한 실력이야….”
그런 그를 보며 천화도 빙긋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러길 잠시 갈천후는 금령원환지를 얻어맞은 팔 목의 통증이 풀렸는지 양팔을 들어 올려 먼지를 털듯이 툴툴 털어 대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뜻 없고 성의 없어 보이는 행동에 신기하게도 주위에 흐트러져 있던 백혈천잠사들이 주인의 부름을 받은 애완동물 만약 갈천후의 팔목으로 휘감겨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서야 테스트를 위한 시합이 완전히 끝난 것을 인식한 구경꾼들로부터 굉렬한 함성과 박수가 쏟아져 나온 것이다.
시험장 위의 두 사람이 보여준 실력과 앞에 있었던 시험들을 비교하자면 이해가 됬다. 하지만 그 시끄러운 괴성들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성에 오래가지 못하고 잦아들었다.
갈천후는 주위의 소요가 좀 줄어들자 천화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검기를 퍼부어 놓고도 별로 지치지 않은 모습의 천화였다. 물론 자신도 그렇게 장시간 손을 나눈 것이 아니기에 그렇게 지치지는 않았지만….. 아직 어린 천화가 저 정도의 실력을 보인다는 것에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잊는 그였다.
“흠… 이제야 좀 조용해지는 구만. 자, 그럼 자네는 어떻할 텐가?”
“…. 어떻하다니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화는 갈천후의 물음에 고개를 갸웃해 보였고, 그런 모습이 손주의 재롱으로 보이는 갈천후는 또다시 웃음을 내비쳤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는 주위 선생님들, 특히 나이트 가디언 파트의 선생님들은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평소엔 그의 모습대로 저렇게 호탕한 웃음을 잘 보아지 않는 그였던 것이다.
“음? 손영군이 말해 주지 않던가?”
천화는 갈천후의 말에 뭣 때문에 그의 말을 못 알아들었는지 상황을 이해하고는 슬쩍 남손영이 앉아 있는 곳을 바라보며 싸늘한 빛을 뿜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마 테스트 진행에 대한 숙지사항 같은 게 있었던 모양인데, 저 남. 손. 영. 이 자신에게 말하지 않은 것 같았다.
“전~ 혀요. 아무런 말도, 한마디 말도 해주지 않던데요. 저 손. 영. 형은요.”
아주 싫다는 느낌이 팍팍 묻어 있는 천화의 말에 갈천후는 씩 하니 웃어 보이고는 남손영이 이야기 해주지 않았던 숙지사항에 대해 말해 주었다.
“그럼 내가 말해주지. 뭐,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네. 자네의 상태를 보아가며 비무를 진행하자는 내용이지. 한마디로 지금 힘들면 잠시 쉬고, 아니면 곧바로 저기 크레앙 선생과 바로 비무를 시작하게 한다는 것이지. 어쩔 텐가? 별달리 지쳐 보이지도 않은데…. 바로 비무를 시작할 텐가?”
“네, 지금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여기에 오래 서있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요.”
천화는 갈천후의 말에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즉각 대답했다. 갈천후는 천화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진행석을 향해 손짓을 해 보이고는 시험장을 내려갔다. 천화에게 다음에 다시 보자는 말을 건네고서 말이다. 그가 내려가자 그와 함께 시험장 가까이로 다가왔었던 한 명의 밝은 백 금발에 팔 길이 정도에 한쪽 끝에 투명한 수정을 박아놓은 단봉을 가진 외국인 남자가 시험장 위로 올라섰다. 언듯 보기에 이십대 중반이나 후반으로 보이는 크레앙이란 남자는 머리카락 색과 같이 상당히 밝아 보이는 분위기에 조금 장난기가 묻어 있는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꽤나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그 역시 겉모습과는 달리 수준 급의 실력으로 매직 가디언 파트의 학생주임을 맞고 있었다. 더구나 동안이라 젊어 보이는 것이지 실제 나이도 삼십대 중반에 속했다. 물론 천화로서는 모르고 있는 사실이었다.
“마법사라…. 다른 사람은 전부 같은 계열로 상대를 정해 주더니, 왜 나만 이런 거야? 뭐, 어쨓든 젊어 보이는 마법사니까….. 간단하게 끝낼 수 있겠지.”
간단히 상대를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천화는 ‘롯데월드’에서 돌아온 후 계약을 맺은 정령을 소환하기 위해 내력을 끌어 올려 들고 있는 검에 은은한 황금빛의 검기를 쒸웠다. 원래 이런 일은 은밀히 해야 했지만 이번 상대는 마법사였다. 무턱대고 정령을 소환했다간 정령력을 들킬 염려가 있었다. 차라리 이렇게 검기를 사용하는 내력으로 정령력을 감춘 후 정령을 소환하는 것이 더욱 안전했다. 더구나 지금 천화가 하는 것은 저번 연영이 하던 것처럼 정령마법으로 정령의 힘만을 빌리는 것이 아니라 정령을 직접 소환하는 것이기에 정령의 기운이 더욱더 진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소환 노움.’
천화는 대지의 하급 정령인 노움을 소환했다. 우연인지 어떤 일인지 몰라도 몇몇 정령들의 이름이 그레센과 비슷하거나 같은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하급정령들의 경우엔 그 이름이 그레센과 똑같았다. 천화는 자신의 발 밑으로 느껴지는 노움의 존재를 느끼며 조금은 음흉한 듯한 미소를 싱긋이 지어 보였다. 그리고 잠시 후 마주선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는데, 솔직히 오래 끌 수도 없었다. 크레앙의 한국어 실력 덕분이었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문인지 아니면 공부를 하지 않아서인지…. 그의 한국어는 상당히 꼬여 있었다. 그렇게 인사를 마친 크레앙 주위로 일곱 개의 화이어 볼이 생겨나 그 주위를 호위하듯이 회전했다. 이미 갈천후와의 비무를 지켜본 크레앙으로서는 시작 신호도 울리지 않은 상황에서 검기를 생성시키고 있는 천화의 행동이 상당히 불안했던 것이다. 더구나 마법사인 그로서는 눈에 담기 힘든 천화의 공격에 그때그때 대응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테스트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그럼…. 테스트를…. 시작해 주십시요.”
천화는 그 소리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검을 든 한쪽 팔을 휙 들어 올려 크레앙을 가르켰다. 그런 천화의 눈에 흠칫 몸을 빼는 크레앙의 모습이 보였다. 그로서는 검기라도 날리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전혀 그런 것이 아닌 천화의 얼굴에 잠시 후 크레앙이 얼마나 놀랄지에 대한 생각으로 벙긋한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별로 오래 끌 생각이 없거든요…… 노움, 잡아당겨!”
“…. 응? 왜? 노움….. 우, 우아아아아!!!”
검기를 날릴 줄 알았던 천화의 이야기에 멍한 표정을 지어 보이던 크레앙은 한순간 자신의 발 밑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느꼈다. 그리고 그 기운을 채 파악하기도 전에 땅속으로부터 사람의 손과 같은 것이 치솟더니 그의 발목을 잡아끌어 시험장 바닥에 패대기 쳐버리는 것이었다. 크레앙이 그렇게 바닥을 뒹굴며 정신없는 사이 그가 만들어 낸 화이어 볼들이 푸르륵 거리며 사라져 버렸다. 천화는 그 모습에 다시 허공에 대고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