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58화
물론…… 옷가지 몇 개를 제외하면 챙길 것도 없지만 말이다.
“그럼, 내일 출발하면 언제쯤 다시 돌아오는 거야?”
라미아와 함께 중국에 가져갈 몇 가지 옷들을 차곡차곡 개어 작은 가방에 집어넣던 연영은 한쪽에서 멀뚱히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천화를 바라보며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연영은 거실에 이것저것 옷을 꺼내놓고 고르고 있는 두 사람에게서 오늘 낮에 남손영을 만났던 이야기를 들은 것이었다.
“그건 가봐야 알겠지만, 한 보름에서 한달 정도 걸리지 않겠어요? 그 중국의 가디언들이 함부로 들어서지 못한걸 보면 기관장치들이 꽤나 복잡하고 위험하게 되어 있다는 소리니까 그걸 일일이 해체하고, 부수고 나가려면 그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라미아, 이 옷도 같이 넣어.”
천화는 연영의 말에 자신이 중원에 있을 때의 경험을 살려 대답하며, 자신 앞에 놓인 여름에 입긴 좀 더워 보이는 긴 팔 티 하나를 들어 라미아에게 건네주었고, 라미아는 그 옷을 받아 자연스럽게 개어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익숙한 일인 듯 자연스럽게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연영은 부드럽게 미소를 짓어 보이며 자신이 챙겨놓은 라미아의 옷 가방을 거실의 한 쪽에 세워놓은 연영은 두 사람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내 생각 같아서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이미 간다고 결정됐다고 하니 하는 말인데. 정말 조심해야 돼. 이 전에 이런 고인의 거처나, 고대의 던젼이 발견된 이야기를 몇 번 들었는데, 보통 위험한 게 아니야. 한 마디로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 속에서나 나올 법한 것들이 그대로 실존한다는 말이지. 염명대 분들과 세계 각국의 실력 있는 가디언들과 같이 들어간다니까 조금 마음이 놓이긴 한다만….. 그래도 정말 조심해야 된단 말이야. 특히 천화 너. 네가 라미아와 같이 동행해야 된다고 고집 부린 거니까. 네가 확실히 책임져. 네 말대로 라미아의 실력이 정식의 가디언들과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그런 곳에서 갑자기 발동되는 기관장치에 대처하기는 마법사에겐 어려운 일이야. 알았지?”
“헷, 걱정 말아요. 여러 가지 재주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어떤 큰 위험은 없을 꺼예요.”
천화는 시집가는 딸을 부탁하는 어머니 같은 연영의 말에 자신 만만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도 그럴것이 천화 자신의 실력과 라미아 두 사람의 실력이면 그런 석부는 충분히 뒤져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더우기 천화에게는 이미 그런 석부와 비슷한 곳을 뒤져본 경험이 있었다. 뭐, 그 경험의 결과물이 바로 지금 자신을 ‘이 곳’에 있게 만든 세 가지 물건 중 하나였지만 말이다. 순식간에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천화의 얼굴이 자신도 모르게 슬쩍 찌푸려졌다.
‘그때 천기신령부(天機神靈府)에서 이 놈의 팔찌를 거기 있었던 아무 한테나 던져 줬어도 누님들과 고향에서 떨어져 이런 곳을 헤매고 있진 않았을 텐데 말이야…. 에효~ 뭐, 지금 와서 후회 해봤자 뭘 하겠어. 게다가 꼭 나빴던 것만도 아니고 말이야.’
천화는 그런 생각과 함께 자신의 옷 가방을 챙기는 라미아를 바라보며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천화는 그 미소를 지움과 동시에 지금의 상황에 후회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천화의 시선을 느낀 라미아가 천화를 바라보고는 ‘꺄아~ 귀여워….’ 라며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천화의 속을 모르는 연영으로서는 산 속에서 살다 나온 지 한 달 밖에 되지 않은 두 사람이 걱정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물론, 연영의 쓸데없는 걱정이지만 말이다.
다음 날 다시 한번 조심하란 말과 함께 두 사람을 꼬옥 안아준 연영은 빨리 다녀오라는 말을 하고는 학교로 나섰다. 천화는 그런 연영의 말에 간단히 대답해주고는 다시 거실 벽에 기대어 편히 앉았다. 그리고 라미아에게 맡겨 두었던 일라이저를 받아 깨끗한 천으로 손질하기 시작했다. 원래 천화 방의 책상 서랍에 굴러다니던 일라이저였지만, ‘롯데월드’에서의 일이 있은 후 어떻게 사용될지 몰라 라미아에게 맡겨 그녀의 아공간에 보관하게 했던 것이었다. 어차피 라미아와는 항상 함께 붙어 다닐 테니까 언제든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사실 오리하르콘으로 이루어진 일라이저였기에 따로 손질할 필요가 없었지만, 필요할 때 가디언들 앞에서 라미아의 아공간을 들어낼 수 없다는 생각에서 또 염명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보내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손질이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들려오는 초인종 소리와 함께 얼굴을 드리미는 이태영의 모습에 천화는 그런 손질을 그만두어야 했다.
“출발할 준비 다 됐지? 아, 저번에 뵐 때 보다 더욱 아름답군요. 라미아양….. 라미아양을 보면 저 녀석이 공처가인 이유가…..”
“허험…. 쓸 때 없는 말하지 말아요. 근데 왜 이렇게 일찍 온 거예요? 어제 손영형이 오후에 출발할 거라고 했는데….”
천화는 문을 열어준 라미아의 모습을 잠시 멍하니 바라보더니 뭐라고 쓸데없는 말을 하려는 이태영의 말을 급히 끊어 버리고서 물었다. 하지만 천화에게서 어제 남손영등을 만났던 이야기를 들어 대충 이태영의 말을 짐작한 라미아는 천화를 바라보며 방긋이 웃어 보였다. 그런 라미아의 시선을 받은 천화는 약간 뜨끔 하는 느낌에 다시 헛기침을 해 보이고 이태영의 말을 들었다.
“뭐? 그게 무슨…. 아, 손영형이 말을 잘못했구나. 아니, 네가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건가? 손영형의 말은 공항에서 출발하는 게 오후라는 이야기였지. 그리고 그러려면 지금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고 말이야.”
“아, 아…..”
“이제 알겠냐? 알았으면, 빨리 나와. 밖에 차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아, 라미아양 짐은 이리 주시죠. 제가 들 테니….”
“아니요. 괜찮아요. 제 짐은 천화님이 들어 주실 텐데요 뭐.”
이태영의 말에 그렇게 대답하며 살짝 돌아보는 라미아의 모습에 자신의 옷가지가 들어있는 가방을 들어올리던 천화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쩝! 쩝! 입맛을 다시며 라미아의 가방까지 같이 들어 어깨에 걸어 매어야 했다. 이태영은 두 사람의 그런 모습에 피식 웃어 보이고는 발길을 돌려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문을 잠근 라미아와 천화가 뒤따랐다. 이태영을 뒤따라 간 곳은 가이디어스의 입구 부근이었는데, 거기에는 유선형으로 잘 빠진 갈색 승합차가 한 대 서 있었고, 그 주위로 여섯 명이 이리저리 움직이며 몸을 풀고 있었는데, 그들 모두 저번 롯데월드 지하에서 봤던 사람들로 팽두숙과 강민우가 빠진 나머지 고염천, 남손영, 가부에, 신우영, 세이아, 딘 허브스 들이었다. 이리저리 가볍게 몸을 풀고 있던 그들도 라미아와 천화를 발견했는지 가볍게 인사를 건네 왔고, 이내 천화와 라미아 역시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 후 천화와 라미아는 다시 남자와 여자들끼리 모여 차에 올랐고, 그 차는 곧바로 공항을 향해 나가기 시작했다. 딘 옆에 앉은 천화는 등 뒤에서 들리는 라미아를 포함한 여자들의 조잘거림을 들으며 누구랄 것도 없이 입을 열었다.
“근데 사천엔 언제쯤 도착하게 되는 건데요?”
“글쎄…. 우리가 경비행기를 타고 갈 거니까…. 한 10시간에서 14시간? 그 정도 사이일 것 같은데? 뭐, 어차피 내일 날이 새기 전엔 사천성에 도착할 거다.”
“……. 빠르네요.”
“별로, 예전 여객기라면 더 빨리 갔을 거야. 하지만 지금 같이 와이번이나 그리핀, 또 드물게 드래곤까지 날아다니는 상황에 여객기를 뛰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말이다. 으~ 정말 여객기를 타고 갈 수만 있다면 몸도 편하고 좋을 텐데… 그 좁은 경비행기 안에서는 편하게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으아~ 걱정이다.”
남손영은 그렇게 대답하며 투덜거렸지만, 천화의 생각은 여전히 빠르다였다. 비록 TV를 통해 비행기가 얼마나 빠른지 알게 되긴 했지만…. 천화가 중원에 있던 시절을 생각한다면 정말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것이었다. 그 정도로 빨리 도착한다면야…. 잠시 불편한 것 참는 게 대수겠는가. 아니, 그것보다는 지금 뒤쪽에서 이어지는 수다가 사천성에 도착할 때까지 이어질지가 더욱 걱정이었다. 천화는 그런 생각을 하고는 아까부터 보이지 않는 두 사람에 대한 행방을 물었다. 뚱뚱한 모습에 외가 기공을 익힌 팽두숙과 강력한 염력을 사용하면서 세이아 옆에서 떨어지지 않던 강민우가 그들이었다.
“이번 임무가 임무인 만큼 위험해서 내가 빠지도록 했지. 민우 녀석의 염력을 쓸만하긴 하지만 너무 어리고, 팽두숙의 경우는 보는 그대로 발이 좀 느리거든. 뭐, 우리들이 보는 시각에서 느리다는 거지만 말이다. 근데, 저 놈한테 들으니까 아이들 가르치느라고 고생 좀 한다고?”
“뭐, 그렇죠. 해보셨는지 모르겠지만, 무언가 명령하는 것보다는 명령받는 쪽이, 그리고 가르치는 쪽보다는 배우는 쪽이 더 쉬운 법이니까요.”
“훗, 그렇지. 내 이 녀석들을 부려먹느라고 골머리를 좀 썩었으니까 말이야. 특히 그 중에서도 저 놈이 제일 골치 아프지.”
천화의 말에 고염천이 맞장구 치며 남손영을 한 차례 노려보았다. 둘이 비슷한 상황이다 보니, 잠시지만 마음이 통했던 모양이었다. 그런 천화의 눈에 고염천의 허리에 매어 있는 목검 남명이 눈에 들어왔다. 저번에 봤던 모습으로 보아 보통의 평범한 목검 같지는 않아 보였다. 그리고 그의 한쪽 옆구리에 매달린 부적 가방은 새로 만든 부적으로 두둑히 배를 채우고 있는 것 같았다. 천화는 그런 고염천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고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날’을 시작으로 차가 80%가량 급격히 줄어 버린 덕분에 천화들이 탄 차는 막힘 없이 빠른 속도로 공항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공항은 거의 텅 비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까 남손영의 설명대로 이런 경우가 아니면 비행기는 거의 운항을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런 거대한 공항의 한 활주로에 천화들이 탈 하얀색의 비행기 한 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잠시 그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던 천화는 여전히 자신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소곤거림에 나직히 한숨을 내쉬었다.
‘에효~ 왜지 사천까지 저 수다가 이어질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니….. 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