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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61화


“휴~ 그나저나 라미아는 이해가 가지만…. 이 누님은 어째 익숙하지도 않은 사람한테 안겨서 이렇게 잘 자는 건지…. 앞날이 걱정된다. 정말….”

메른의 안내로 쉽게 마을 안으로 들어선 일행들은 마을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오래됐다는 느낌이 자연스레 풍겨져 나오는 집 앞에 서게 되었다.

그 집은 천화가 중원에 있던 시대의 장원과 같은 형식의 집이었는데, 주위의 다른 집보다 상당히 크다는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집 뒤로 보이는 커다란 정원에는 색색깔의 텐트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그 모습에 고염천을 비롯한 일행들이 일제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묶을 만한 집들이 꽤 있는데 텐트라니….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인 것은 당연했다.

메른은 일행들의 이런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자신들 역시 처음 이곳에 도착할 때 지금의 일행들과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으니까 말이다.

“이곳에 파견된 몇 곳의 가디언들이 저 텐트를 이용합니다. 물론 그 중에는 제가 속한 영국팀도 있지요. 하하하… 좀 이상하게 보이시죠? 하지만 어쩔 수 없더라구요. 저희들도 처음에 와서 이상하게 봤는데…. 하루 정도 지나고 나서는 저희도 저곳에서 쉬고 있습니다. 원래는 중국 측에서 마련해준 이곳 장원과 주위 몇몇 집에서 숙식하게 되어 있지만…. 쩝, 저희들과 생활 방식이 상당히 달라서…. 차라리 저렇게 텐트를 치고 쉬는 게 더 편하더라구요.”

하지만 메른의 그런 설명에도 이미 중국에 와본 경험이 있는 남손영을 제외한 일행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도대체 달라봤자 얼마나 다르길래, 멀쩡한 집을 놓아두고 텐트를 사용하는가 하는 것이 일행들의 생각이었다.

그런 일행들의 생각을 읽은 메른은 다 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곳에 도착해서 들은 속담 한 가지를 떠올렸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직접 당해봐야 이해를 하지…’

“모른 척하고 그냥 가길래 먼저 들어간 줄 알았더니…. 여기서 뭐해요? 안 들어가고…..”

어느새 일행들의 바로 뒤로 다가온 천화가 장원의 대문 앞에 서서 들어갈 생각을 않고 있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잠든 두 사람과 자신을 모른 척한 데 대한 투정이었다.

일행들은 천화의 목소리에 어느새 쫓아왔나 하고 돌아보고는 여전히 두 사람이 편안히 잠들어 있는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고염천은 구름을 밟고 있는 듯한 천화의 신법에 은근히 눈을 빛냈다.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는 신법이었지만 정말 정묘한 신법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 들어가야지. 근데 그냥 안고 오는 걸 보니까…. 못 깨운 모양이지?”

“쳇…. 근데, 저기 저…. 것들은 뭐예요? 주위에 멀쩡한 집은 그냥 놔두고…..”

텐트라는 이름이 떠오르지 않은 천화는 손으로 텐트들을 가리키며 물었고, 그 모습에 옆에 있던 세이아가 메른에게 들은 대로 설명해 주었다.

하지만 천화에게 그녀의 설명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이었다. 중국에서 그레센으로, 그레센에서 한국으로. 이렇게 그 문화가 전혀 다르다고 할 만한 곳들을 돌아다닌 천화에게 생활방식이 달라서 저런다는 것은 웃음거리조차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혀 무시할 만한 것도 아니기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천화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선 장원에서 일행들은 때마침 밖으로 나오는 40대 중반의 여성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중국의 옛 복식과 비슷한 단색(丹色)의 옷을 풍성하게 걸치고 있었는데, 보기 좋게 살이 찐 모습이 일행들로 하여금 편안하고 후덕한 인상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허리를 살짝 숙이며 흘러나오는 그녀의 목소리 역시 그녀의 모습과 같이 편안한 느낌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마중이 늦었군요. 한국의 염명대 분들이시죠. 문옥련(文玉蓮)이라고 합니다. 과분하게 이번 일의 책임을 맡고 있답니다.”

예의를 차린 듣기 좋은 말이었다. 하지만 아깝게도 중국어인 그녀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천화뿐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저 그녀의 인사에 마주 고개만 고개와 허리를 숙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메른의 간단한 설명에 모두의 시선이 천화에게 옮겨졌다.

“저분이 이번 일의 총책을 맡고 있는 문옥련이란 분입니다. 그리고 닉네임…. 그러니까, 외호가 다정선자(多情仙子)라고 들었습니다.”

천화는 메른의 말에 일행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넘어오자 고개를 끄덕이며 방금 전 문옥련의 말을 그대로 통역해 주었다. 지금까지 메른의 말을 통역해준 딘과 같은 식으로 말이다. 사실 천화가 이곳에 온 이유가 바로 이 통역 때문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고염천은 천화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옥련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선 방금 전과 같은 어리둥절함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염명대의 대장직을 맡고 있는 고염천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환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이 실질적으로 저희 염명대를 관리하고 있는 남손영….”

고염천은 그렇게 말하며 염명대의 한 사람 한 사람을 소개했고 천화는 그 말을 그대로 통역해 주었다. 중간에 남손영이 천화에게 안겨 곤히 자고 있는 두 사람을 깨우려고 했었지만 문옥련이 부드럽게 웃으며 만류하는 바람에 그대로 손을 거두어야 했다.

일행들의 소개가 모두 끝나자 문옥련은 천화에게 안긴 두 사람을 보며 숙소부터 알려주겠다며 앞장섰고, 그 뒤를 일행들을 남겨둔 천화가 뒤따랐다. 문옥련을 뒤따라간 천화는 장원 한쪽에 마련된 몇 개의 방 중 한 방의 침상에 두 사람을 조심스럽게 눕혀 주었다.

천화의 품에서 벗어난 때문인지 나직이 웅얼거리던 두 사람은 곧 편안히 잠들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문옥련은 다시 일행들에게 돌아가며 천화를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눈에는 감탄과 의아함이 떠올라 있었는데, 이곳으로 오는 길에 펼쳤던 상승의 신법에 대한 감탄과 아직 어린 소년에게 그런 절기를 전수한 인물에 대한 궁금함 때문이었다.

“아까 소개받을 때 예천화라고 들었는데….. 천화군은 중국어를 상당히 능숙하게 잘 사용하더군요.”

“별말씀을요. 중원에서 났으니 그 정도는 당연한 거지요. 그리고 편하게 말씀을 낮춰 주세요. 선자님.”

문옥련은 생각도 하지 못한 천화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국에서 염명대와 같이 파견되어 왔기에 한국인인 줄만 알았지 자신과 같은 중국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렇다면 중국인인 천화는 왜 한국에 있으며 그를 가르친 스승은 누구인가.

그런 문옥련의 의문에 천화는 처음 신진혁이란 가디언을 만나면서 이용해 먹었던 내용을 되풀이해서 문옥련에게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그런 대답을 들은 문옥련은 앞서 천화의 이야기를 들었던 다른 사람들처럼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전부 지어낸 이야기인 것이다 보니 알고 있다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힘들었겠군요. 갑작스럽게 당한 일이라…. 그런데 천화군이 안고 있던 라미아양은 중국 사람이 아닌 것 같던걸요? 오히려 서양 사람처럼 보이던데…”

그녀의 질문에 천화는 순간적이지만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한국에서는 라미아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일 뿐이었다.

“….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거든요. 그래서 커서도 라미아에 대한 의문은 가져 본 적이 없었고 할아버지도 별다른 말씀 없이 돌아가셨거든요. 참, 저한텐 그냥 편하게 말씀하세요. 선자님.”

“호호호… 그럼 그럴까요? 그러면 천화도 그 선자님이란 말을 바꿔주겠니? 들으려니 상당히 부담스러워서 말이야.”

“하핫…. 그거야 별로 어려울 건 없죠….. 음…. 그럼 누님이나 누나라고 불러 드릴까요?”

“어머? 내가 그렇게 젊어 보이나 보지? 누님이라니….. 듣기 좋긴 한데, 나에겐 너무 부담스러운걸….”

사실 그랬다. 그녀가 아직 홀몸이라 그렇지 실제 나이 차로 따져 봐도 문옥련이 제때 결혼만 했어도 천화와 같은 아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나이 차이를 두고 누님이라니… 여자로서 듣기엔 좋을지 몰라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가요? 그럼… 이모님이라고 부르죠.”

“호호호…. 좋아. 나도 천화에게 누님이란 말보다 이모라고 불리는 게 더 좋은 것 같아. 그럼 다른 분들이 기다릴 텐데 어서 갈까요. 조카님….”

그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천화와 함께 일행들이 서 있는 곳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비록 오늘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천화의 친근함과 문옥련의 부드러운 분위기에 벌써 꽤나 친해진 두 사람이었다.

그렇게 웃는 얼굴로 일행들에게 돌아온 두 사람은 갑자기 화기애애해진 자신들의 분위기에 어리둥절해 하는 일행들을 이끌고 장원의 서재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갔다.

그 방엔 제법 길다란 책상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 방의 분위기와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임시지만 회의실로 쓰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 같았다.

일행들은 그곳에서 천화를 통해 문옥련의 말을 들었다. 지금 현재 이곳에 머물고 있는 각국의 가디언들과 지금까지 조사된 경운석부에 대한 상황 등등….

하지만 그런 시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늦은 시각에 오랜 비행기 여행이란 점을 감안해 핵심적인 내용만을 간추려 문옥련이 이야기해준 덕분이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문옥련의 안내에 따라 각각 두 명씩 짝을 지어 하나의 방이 주어졌다. 문옥련은 각자의 방을 정해준 후 혹시라도 몰라서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밖에 비어있는 텐트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물론 일행들은 그녀의 말에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몇 시간 후 일행 중 몇몇의 인물이 졸린 눈을 비비며 문옥련이 말한 비어 있는 텐트를 찾아 좀비처럼 어슬렁거려야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각 방의 침상과 가구 등이 모두 옛날의 것인 덕분에 일행들에게 상당히 낯설고 불편한 느낌을 주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천화와 이태영은 두 사람이 사용해야 할 침상을 혼자 차지하고서 편하게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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