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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63화


“어릴 때면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런데 이드라… 부르기 편한데… 뭐, 그 결정은 다음에 하고 빨리 가서 밥 먹자. 어제 아무것도 먹지도 않고 그냥 잤더니 배고프다.”

그러는 사이 식탁 앞으로 다가간 세 사람은 비어있는 자리를 찾아 앉아 깔끔하게 차려진 요리들로 손을 가져갔다.

각국의 가디언들을 생각한 때문인지 이것저것 화려하진 않지만 상당히 다양한 요리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식사하는 사이 천화의 이름은 완전히 이드로 바뀌어 버렸다.

식사와 함께 간단한 인사와 이야기가 오고 가는 중 천화의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이 같이 온 한국의 가디언들과 문옥령을 비롯한 중국의 가디언들 뿐인 때문이었다.

때문에 어떤 사람이든 발음할 수 있는 이드란 이름으로 바꾼 것이다.

잠시 후 천화, 아니 이제 이드로 이름이 바뀐 이드를 제외하고 만족스런 식사시간을 보낸 사람들은 문옥령의 말에 따라 다시 식탁 주위로 모여 앉았다.

그런 식탁 위엔 아침과 같은 음식 그릇들이 아닌 투명한 음료수 잔이 놓여 있었다.

하나 둘 사람들이 자리에 앉는 걸 보며 모든 사람들이 자리하길 기다리며 제일 상석에 앉아 있던 문옥령은 모든 사람들이 착석하자 가볍게 식탁을 두드려 사람들의 눈과 귀를 자신에게 모았다.

“우선 각국에서 바쁘게 활동하시는 중에도 저희 요청에 이렇게 걸음 해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미 모든 분들께 전달된 바와 같이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모인 목적은 경운이란 이름의 석부의 발굴입니다.”

거기까지 말을 이은 문옥령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중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의 통역을 위해서였다.

너무 한꺼번에 말을 꺼내면 자칫 내용이 틀려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배려에 천화 아니, 이드를 비롯해 각 팀에서 통역을 맞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행에게 열심히 그녀의 말을 전했다.

“이곳이 발견된 것은 약 십여 일 전으로 이 마을의 주민 중 한 분이신 호평(豪枰)이란 분에 의해서입니다.

당시 이분은 마을에 갑작스런 환자가 발생한 때문인지 급히 약초를 구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가 이 석부를 발견하고 바로 저희 가디언 본부로 신고하셨습니다.

이분의 신고를 접수한 저희 본부에서는 곧바로 열다섯 명의 가디언들을 파견, 석부를 수색하고 발굴하도록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대부분도 아시겠지만, 이런 곳엔 다양한 함정과 기관진식들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운석부는 그 난이도가 특히 높습니다. 때문에 저희가 파견한 대원들 중 한 명이 목숨을 잃고 태반의 대원들이 중상을 입는 피해만 입고 물러나야 했습니다.

그 후 두 차례에 걸친 시도가 더 있었지만, 조금 더 깊이 들어갔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수확도 얻지 못했습니다.

해서 이렇게 여러분들의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입니다.”

가디언들이 지금 이 자리에 모이게 된 이야기를 끝으로 문옥령이 잠시 말을 멈추자 자신을 게릭이라고 소개했던 탁한 붉은 머리의 청년이 그녀에게 질문을 던졌다.

“다정선자님의 설명대로라면 저희들도 힘든 것이 아닐까요? 제가 알기론 중국의 가디언분들의 실력도 상당히 뛰어난 걸로 들었는데, 그런 분들이 그렇게까지 고전을 했다면… 대체 어떤 기관들이 설치되어 있는 겁니까?”

“감사하군요. 저희들의 실력을 높게 보셨다니…

하지만, 똑같다고는 볼 수 없지요. 여러분들은 어디까지나 각 국에서 그 실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은 분들이니까요.

물론, 저희 측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나서는 건 당연하죠.

그리고 기관이라면…”

문옥령은 게릭의 말에 대답하면서 옆에 두었던 커다란 종이를 식탁 중간에 펼쳐 놓았다.

그 종이 위에는 두 개의 그림이 굵직한 매직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산의 그림으로 그 외형이 제법 잘 그려져 있었는데, 산의 한 부분에 붉은 점이 표시되어 대략의 위치를 표시하고 있었고, 다른 하나의 그림은 어떤 건물 입구 부분에 해당하는 단면도로 그 주위로 이런저런 설명이 붙어 있었다.

“먼저 있었던 세 번의 시도로 도면에 표시된 지점까지의 기관진식들은 파괴되어 있어요.

그리고 이때까지 나타난 기관과 진식의 수는 여섯 개예요.

첫 기관은 석부의 입구예요. 단단한 석문으로 되어 있는데, 첫 번째 시도 때 도저히 열 수 있는 방도를 찾지 못해 부수고 들어갔다가 쏘아지는 비침의 공격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었어요.

그리고 그다음 기관은 이곳에 설치된 것으로 오 미터 가량 바닥이 없어요.

대신 그 위를 교묘한 환영진법이 펼쳐져 있어서 절대 알아볼 수 없어요.

다음으로 설치된 것이 지옥혈사란 기관이에요. 옛 서적에 나와있는 기관인데…

바닥에 수 없는 구멍을 뚫어 놓고 그 밑에 수십 마리에 이르는 독사를 풀어놓았어요.

그 위를 아까와 같이 환영진법이 펼쳐져 있어서… 그 위를 사람이 지나가면 독사가 그 많은 구멍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공격하게 되죠.

네 번째로… 이렇게 여섯 개죠.

이 경운석부는 특이하게 대부분의 기관이 진법과 연계되어 있어요. 덕분에 더욱 기관을 찾거나 알아보기가 힘들지요.”

문옥령은 그 말을 끝으로 식탁 주위에 둘러앉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얼굴은 그녀의 생각대로 딱딱히 굳어있었다. 방금까지 설명한 그 위험한 곳에 자신들이 들어가야 하니 당연한 반응들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각오한 일인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발견된 던전들 대부분이 이런 함정들을 가지고 있고, 또 같이 들어갈 사람들의 능력을 믿는 때문인지 쉽게 받아들이는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의 한 명이 그녀에게 의문을 표했다.

“어차피 그때그때 상황에 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건 다른 던전들과 똑같은데…

게다가 그 더럽게 위험한 만큼 쳐들어가는 우리 실력도 만만치 않으니 그 일을 크게 신경 쓸 거 없는 것 같은데, 선자님, 그럼 우리들이 그 석부에 쳐들어가 거사 일은 언젭니까?”

상당히 거친 모습의 마치 용병이나 날 건달과 비슷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렇게 가볍고 단순한 만큼 조금 무겁던 분위기가 스르륵 풀려 버렸다.

“사실… 제가 지금 석부에 대한 설명을 하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에요.

원래 오늘 러시아에서 가디언들이 오게 되어 있었지만, 갑작스레 몬스터들이 날뛰는 바람에 그 일정이 취소되었습니다.

간단히 말해 모일 인원은 모두 모였다는 이야기죠.”

“그럼…”

“네, 여러분들만 좋으시다면 언제든 출발할 수 있어요. 어차피 준비물들은 벌써 준비되어 있으니까요.”

문옥령의 말에 식탁 주위에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은 말도 통하지 않으면서 간단히 눈빛을 나누었다.

그리고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여기저기서 대답이 흘러 나왔다.

그 대답은 한 가지였다.

“그럼, 바로 출발하죠. 그렇지 않아도 심심하던 참인데…”

그 말을 끝으로 문옥령의 말을 듣지도 않은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며 자신들의 숙소로 향했다.

각자 필요한 장비를 챙기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몇 시간 후 문옥령과 라미아를 품에 안은 이드를 선두로 한 일행들은 측면으로 경사가 심한 산의 한 부분에 자리한 커다란 동굴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냥 보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동물의 보금자리와 같은 이 동굴이 바로 경운석부의 입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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