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 168화


젠장, 제갈형 정말 확실하게 문이라고 찾아낸 거 맞아요?”

“….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나라고 다 알라는 법은 없는 것 아니겠어? 그러지 말고 주위나 경계해. 저 말 대로라면 어디서 나와도 강시가 튀어나올 테니까.”

골치 아프다는 식의 이드의 말을 무난히 넘겨버리는 제갈수현의 대답이었다.

그리고 그 대답이 신호가 된 듯 석실을 둘러싼 나머지 열두 개의 석벽이 마치 원래는 흙으로 만들어졌다는 듯이 부스스 부서져 내려 버렸다.

눈살을 찌푸린 채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드는 부서져 내린 석벽 뒤로 보이는 치렁치렁한 백발 인형의 모습에 조금 신경질적인 말투로 일행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쳇, 조심해요. 석벽에 글을 보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 백혈수라마강시예요. 그 만추자란 늙은이… 우릴 살려 보낼 생각이 없는 모양이에요.”

“젠장, 그럼 이곳엔 정말 저런 괴물 찌꺼기밖에 없단 말이야?”

이드의 말에 미국의 가디언 팀인 채터링의 게릭이 투덜거렸다.

아마 들어가기로 한 이유 중엔 만초자의 말을 모두 믿을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런 투덜거림도 이어지는 말에 멈추어질 수밖에 없었다.

“투덜거리는 건 이 놈들을 치운 다음이다. 빨리 움직여. 저 놈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전에 우리들도 준비를 해야지. 그리고 일행 중에 마법사와 정령사들은 중앙으로 모여요.”

“이미 모였습니다. 그보다… 저 놈들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는데요. 도대체 어떻게 보관했길래 몇 백 년이 지났는데, 곰팡이조차 안 피고 멀쩡한 거지?”

어느새 일행들의 중앙으로 물러선 메른의 말에 나머지 몸으로 뛰는 가디언들이 열두 개의 벽, 아니 이제는 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과연 눈을 돌린 곳에선 각각 한 구씩의 강시가 크르륵거리는 과히 듣기 좋지 않은 숨소리를 내며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말하는데… 절대 저 놈들 피를 뿌리면 안 됩니다.”

다시금 당부하는 듯한 이드의 말에 지금까지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일행들을 따르기만 하던 세 명의 라마승들이 가장 먼저 움직여 보였다.

나직한 불호와 함께 그들 앞에 있는 석관 중 아직 강시가 나오지 못한 석관 앞을 막아선 세 라마승은 특이하게 무공을 사용해서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염주와 법보를 사용하여 강시에 걸린 술법에 직접 대항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덕분에 몸을 일으키던 강시는 백색의 독혈은 물론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버린 채 거친 숨소리만 내뱉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일행들도 뭔가 느낀 점이 있었는지 문옥련의 지시에 따라 아직 일어서지 못한 강시들을 신성력과 술법으로 제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행 중 술법자는 두 명의 가디언 프리스트와 염명대의 신우영뿐이었기에 그들에 의해 제압된 강시는 백혈수라마강시 한 구와 참혈마귀 한 구뿐이었다.

그리고 남은 숫자는 백혈수라마강시 여덟 구와 참혈마귀 한 구.

“좋아. 그럼 각자 한 놈씩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지요. 단… 주위에 독혈이 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누군가에게서 흘러나온 말과 함께 일행들은 한두 명씩 짝을 이루어 자신들 앞에 있는 강시들을 향해 공격 준비를 갖추었다.

이드 역시 눈앞으로 다가오는 백혈수라마강시를 보며 금령단공에 의해 황금빛으로 물든 양손을 펼쳐들었다.

검술이 장기인 이드이지만 함부로 검을 휘둘렀다간 백혈수라마강시의 독혈이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내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권장지법을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허리에 매달려 있는 일라이져를 감고 있던 천을 벗겨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덕분에 석실 중앙으로 물러나 주위를 경계하던 가부에와 메른 등으로부터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마 지금과 같은 상황만 아니라면 찬찬히 감상이라도 해볼 분위기들이었다.

그러는 사이 강시들의 움직임은 더욱 빨라져 몇 백 년간 굳었던 몸이 완전히 풀린 듯 그 앞에 서 있는 일행들을 공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행동과 동시에 석실의 여기저기서 퍼펑거리는 작은 폭발음과 묵직하고 가벼운 격타음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금령단천장(金靈斷天掌)!!”

쿠아아앙….

강력한 내가장력으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백혈수라마강시를 석벽으로 날려버린 이드는 마치 못 만질 것을 만졌다는 식으로 백혈수라마강시의 가슴을 쳐낸 양손을 탈탈 털어 보였다.

한 순간이지만 가슴에 닿았던 손에 느껴진 그 느물거리는 냉기가 상당히 기분 나빴던 때문이었다.

“우흐… 기분 나빠… 역시 강시는 강시라는 건가. 게다가 철골도 보통 철골이 아닌 모양이군. 뭘, 벌써 일어서려고 그러나… 금령원환지!”

석벽에 처박혀 있던 강시가 꾸물거리며 일어서려는 모습에 이드는 황금빛 지력을 내뿜었다.

그의 손이 세 번 연속해서 휘둘려 졌다고 느낀 순간 강시는 이미 강렬한 쇳소리를 내며 다시 석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런 강시의 양미간 사이의 인당혈(印堂穴)과 가슴 부분의 중정혈(中庭穴), 그리고 배꼽 주위의 음교혈(陰交穴)의 세 부분이 움푹 꺼져 있었다.

이드가 날린 금령원환지의 흔적이었다.

아마 살아있는 인간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져도 좋을 정도의 공격이었다.

그러나 상대는 강시.

이드는 백혈수라마강시가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상당히 고민된다는 얼굴로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런 이드의 시선에 들어오는 일행들과 강시의 모습은 지금의 이드의 상황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단, 한 구의 참혈마귀를 상대하고 있는 우락부락한 저스틴이란 금발의 가디언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독혈에 대해 걱정할 것이 없는 참혈마귀를 아주 시원하게 두드리고 있었다.

“아~ 정말 상대하기 까다롭네… 한방에 날려 버리려고 해도 석실이 무너질까 걱정되고…. 쳇, 느긋하게 더 누워 있을 것이지…”

“크르륵…”

이드가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어느새 몸을 일으킨 강시의 모습에 이드가 다시 양손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강시는 처음처럼 곧바로 달려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마 두 번이나 나가떨어진 덕분에 이드를 경계하는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멍하니 서 있던 강시는 흐느적거리는 요상한 걸음걸이로 이드와의 거리를 순식간에 줄여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공격에 이드는 상당히 놀랐다는 표정으로 급히 몸을 뛰우며 손을 썼다.

“화산파의 월궁보(月宮步)에 복호권(伏虎拳)….. 젠장 화산파 사람이란 말이잖아…. 금령단천… 에 먹어라, 금령참(金靈斬)!!”

놀란 표정 그대로 급히 몸을 피하며 반사적으로 장을 뻗어내던 이드는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급히 장을 거두어들이며 청동강철이라도 부러트릴 듯한 금령참의 초식을 펼쳐냈다.

퍼퍽!

이드의 장에 맞아 미처 피하지 못하고 금령참을 얻어맞은 강시의 팔이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힘없이 축 늘어져 덜렁거렸다.

그러나 그런 중한 부상에도 강시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지 곧바로 이드를 향해 짖혀 들어왔다.

역시나 덜렁거리는 팔은 사용하지 못하는 듯 움직이지 않고 있어 상당히 보기 거북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보는 입장에 따라서 다른 것.

이드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강시를 만족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 아무리 지가 강시라지만 기본적인 뼈대가 없는 이상 근육만으론 움직일 수 없지. 좋아, 다시 간다. 금령원환지에 다시 금령참!!”

쿠쿠앙…

“크, 크롸롸롹…..”

“좋았어. 성공이다. 이로써 양쪽 팔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

재빠른 신법으로 이번 공격을 성공시킨 이드는 허공에서 몸을 비틀며 멋지게 착지했다.

그 사이 나머지 한쪽 팔마저 쓸 수 없게 되어 버린 강시는 이번엔 참지 않고 커다란 괴성을 질러대며 눈을 붉게 물들인 채 이드를 향해 돌진해왔다.

하지만 양팔을 잃어 공격 능력이 반에 반 이상 떨어진 강시가 뭘 하겠는가.

곧바로 이어지는 이드의 공격에 다시 한번 석실 석벽에 처박힐 뿐이었다.

“좋아. 이번엔 쉽게 일어날 수 없겠지. 그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조금 여유롭게 주위로 눈을 돌린 이드는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독혈 때문에 백혈수라마강시를 상대하는 일행들이 제대로 된 공격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이드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강시를 상대하고 있는 소년이 그랬다.

열아홉의 나이로 이드와 라미아를 제외한다면 일행 중 최연소자인 그는 중국의 가디언으로 이번 일에 참가한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어린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실력이 부족한 그는 절영금(絶影禽)이란 외호답게 강시의 공격을 잘 피하고는 있지만 연신 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드는 그 모습과 자신 앞에서 아직 일어서지 못하고 꿈틀대는 강시를 번갈아 보더니 곧 분뢰의 보법을 밟아 절영금과 강시 사이로 끼어들었다.

“이 놈은 내가 맡을게요. 형은 저 녀석을 마무리해 줘요.”

“하, 하지만… 이 녀석은 내가…”

하지만 쉽게 이드의 말을 따르지 못하고 사족을 다는 절영금이었다.

그로서는 자신보다 어린 이드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꺼려졌던 모양이었다.

“이런 상황에 정해진 상대가 어디 있어요. 상황을 보면서 싸우는 거지. 빨리 저 녀석이나 마무리해줘요. 일어나기 전에!!”

절영금의 마음을 눈치챈 이드는 단호한 음성으로 절영금을 밀어붙혔다.

그다지 고집스러워 보이지는 않는 절영금의 모습에 자신이 강하게 나가면 그에 따를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과연 이런 이드의 생각은 맞았는지 잠시 머뭇거리던 절영금이 곧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돌려 세웠다.

“그, 그럼 부탁한다.”

이드는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주위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모두 잘 들어요. 이 녀석들의 약점은 뼈입니다. 강한 경력(經力)으로 팔 다리의 뼈를 부셔버리면 움직이지 못할 겁니다.”

이드의 말은 순식간에 통역이 되었고 여기저기서 “오!” 하는 탄성과 함께 공격에 활기가 돌았다.

처리하기 까다로운 강시들의 공략법이 나온 덕이었다.

이드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시원한 격타음에 눈앞에 있는 강시를 향해 장력을 펼쳤다.

아니, 펼치려고 했다.

눈앞에 있던 강시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달려가지 않았다면 말이다.

“뭐, 뭐야… 어딜 가는… 형, 피해요!!”

엉뚱한 곳으로 뛰어가는 강시의 모습에 그 앞으로 시선을 돌린 이드의 눈에 이제 막 장을 뿌리려는 절영금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런 경고성 외침보다 강시의 행동이 조금 더 빨랐다.

퍼퍽…

“아아악…!!!”

랜덤 이미지